얼마 전 산행 중 만나 안면이 있는 옥매화 님께서 메시지를 하나 보내오셨습니다.
이번에 코뿔소에서 백두대간 9기를 출범하는데 총무라는 중책을 맡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정식이 9. 2. 토요 무박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진행하자는 제안입니다.
코뿔소라.....
끈적끈적한 팀워크.
코뿔소와의 첫 만남은 2013. 1. 27.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낙남정맥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원래 그 코뿔소의 낙남정맥 출정일이 2013. 1. 13.이었습니다.
처음 구간부터 동참하려 했는데 2013. 1. 12. 그러니까 출정식 전날 한남금북을 졸업하고 과한 음주를 한 탓에 참석을 못하고 2구간부터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이 구간은 2013. 9. 26. 땜빵).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무섭게 질주하던 시기였습니다.
토요일 산행을 마치고 바로 일요일에도 산행을 이어갔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한남금북 마치고 금요무박은 호남(2013. 2. 23. ~ 2013. 11. 3.)으로, 토요 무박은 낙남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한 해에 정맥 7개를 모두 졸업했을 정도였으니 정말이지 열심히 산행을 하여던 것이죠.
사실 다른 정맥은 혼자도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낙남과 호남은 교통 문제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동행한 산악회에서 무박산행을 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지막 구간은 코뿔소와 함께 하지 못하고 사정상 혼자서 졸업을 하였었죠.
그렇게 2013. 11. 16. 낙남을 마치고는 9정맥을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혼자서 9정맥 졸업을 하게 된 그 아쉬움을 준희선생님, 맨발사부님, 신경수 선배님 그리고 삼돌이님의 분에 넘치는 환대로 달래기는 했었습니다.
각설하고 저로서는 '옥매화'님의 그 제의를 거부할 이유가 없군요.
더욱이 마침 얼마 전(2017. 8. 21.) 출간한 졸저拙著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이라는 책자의 내용을 발로 시험, 검토할 기회도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이 기록은 책의 내용과 오늘 걸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감흥의 적당한 믹스mix를 통하여 또 다른 산행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따끈따끈한 책 구경이나 할까요?
이 책은 백두대간이 초행인 제 사랑하는 후배 장감독과 함께 북진을 하면서 기록한 백두대간과 관련한 모든 것들의 기록입니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 만큼 동행하는 이는 책에서와 같이 '장감독'이 아니라 '칼있으마' 김상균이고 또 코뿔소 대원입니다.
오늘 지리산 산신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안아 주실까요?
그 출정식 첫 날로 들어가 봅니다.
집 가까이 있는 석수역을 출발한 버스는 잠실을 경유하여 오늘의 목적지인 중산리로 떠납니다.
중산리를 들머리로 하여 오늘 백두대간의 첫 발을 떼기 위한 것입니다.
산경표에서 백두대간은 백두산 ~ 지리산 구간이라고 했어. 그 백두대간을 함에 있어 우리는 북진을 하기로 했으니 그 북진의 시작인 천왕봉으로 올라야겠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걷는 이 산길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 선조가 만들어 주신 산경표를 따라 걷는 거라는 점을 인식해야 돼. 그 천왕봉 아니 백두대간에 이르는 구간, 대간꾼들은 그 구간을 접속구간이라고 하지. 천왕봉으로 오를 수 있는 코스는 몇 군데 돼. 어느 방향으로 오르든지 상관없어. 우리는 북진하는 대간꾼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구간인 중산리 ~ 천왕봉 구간으로 오를 거야. 그러니 오늘은 그 구간을 오르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담아 보는 것으로 정리하자.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7쪽
대장님들이나 대간 산행에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예외로 하고...
백두대간의 진행 방법은 남진이 있고 북진이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든 대간을 이어가는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왜 북진일까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나라의 아버지 산줄기이니 당연히 남진이어야 맞지 않을까요?
그 백두대간을 이어서 걷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쪽 백두대간이 시작하는 진부령부터 걸어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방법 즉 남진(南進).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진부령으로 진행하는 방법 즉 북진(北進)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되는 날 북쪽의 나머지 백두대간 구간을 이어가기 위해 두 번째 방법을 택한다. 즉 북진(北進)이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9쪽
코뿔소도 북진입니다.
북진일 경우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약 35.2km를 한방에 진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2016. 7. 9. 그 구간을 쉬는 시간 포함 12시간 42분에 걸었으니 다른 분들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아마도 초행길인 분들도 있고 대간길이 처음인 분들도 있으니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한 집행부의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2017. 9. 3. 04:00
코뿔소 대원들을 태운 버스 3대는 중산리 법계사 사하촌 식당가로 들어섭니다.
산행 채비들을 갖추고....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7. 9. 3. 일요일
2. 동행한 이 : 코뿔소산악회
3. 산행 구간 : 백두대간 첫걸음 (중산리~천왕봉~장터목 대피소~세석대피소~벽소령 대피소~ 음정마을)
4. 산행거리 :23.7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중 산 리 |
04:20 |
|
| |
천 왕 봉 |
5.6 |
07:00 |
160 |
|
장터목대피소 |
1.7 |
08:45 |
105 |
56분 휴식 |
영 신 봉 |
4.0 |
11:30 |
165 |
70분 조식 |
벽소령대피소 |
5.7 |
14:55 |
205 |
40분 휴식 |
음정마을 |
6.7 |
16:00 |
65 |
10분 휴식 |
계 |
23.7 km |
11:40 |
08:44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그리고 출정식에 임합니다.
백두대간 산신 어찌보면 천왕天王이신 환웅 혹은 단군 왕검에게 지내는 제祭입니다.
음복까지 끝내고 산행에 듭니다.
- 이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몇 장 갖다 쓰기로 합니다.
04:20
오늘 산행의 시작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안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 사무실을 지나 법계교法界橋를 건넙니다.
부처님 나라와 속세와의 경계를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겠죠.
우리나라에서 최고지에 위치한 법계사에서 따온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선계仙界와 속계俗界의 경계로 이해합니다.
직진하면 순두류 마을로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조금 전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던 상가 앞에서 이 순두류 마을까지 셔틀버스가 운행을 합니다.
그러니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던 분들이 상태가 좋지 않거나 좀 편하게 진행하려는 분들은 로타리 대피소에서 좌틀하여 순두류로 내려간 다음 거기서 버스를 타고 편하게(?) 하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안내산악회 대장님들이 회원들에게 시간에 늦을 경우 탈출을 권유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분들이 이 버스로 중산리 ~ 순두류 ~ 로타리 대피소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호기있게 산행을 시작하는 분들이 그렇게 뺀질(?)거리며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좌틀합니다.
그러면 통천길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대간길을 하늘길이라고도 하죠?
바로 이 통천길 때문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지금같이 어둠이 깔려 있을 때면 그 소리의 크기는 더합니다.
시천천矢川川입니다.
이 시천천이 있어 이곳이 시천면 중산리가 되었죠?
이 시천천은 백두대간과 영신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내대천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덕천강에 흡수되게 되죠.
그 덕천강은 백두대간과 남덕유산 사이에서 발원하는 남강이 임천, 양천등 많은 지류를 흡수하여 흘러온 남강에 합류되면서 자기 소임을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강은 낙동강에 흡수되고 그리고 그 낙동강은 남해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왜 갑자기 물줄기 얘기를 하느냐고요?
산줄기는 곧 물줄기이기 때문입니다.
물줄기를 봐야 산줄기가 보이고 모든 산줄기들은 물줄기들이 만나는 곳 즉 합수점合水點 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합수점을 우리말로 두물머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두물머리라 하면 양수리의 두물머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위와같이 그것을 보통명사로 사용할 때에는 우리나라에 무수히도 많은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금방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과 이어지는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조금 이따 더 살펴보기로 하고....
04:43
그 시천천을 건너는 현수교를 건넙니다.
이 정도에 오면 대원들은 위에 입었던 자켓들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기 바빠지기 마련입니다.
몸에 서서히 열이 나기 때문이죠?
발동이 걸렸다는 겁니다.
이곳은 3거리이기도 합니다.
직진하면 장터목대피소 우틀하면 천왕봉으로 오르는 곳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장터목까지 와서 천왕봉을 포기하고 중산리로 하산했을 경우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 바로 여긴 것이죠.
물 한 모금 마시고 땀을 훔친 다음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연속되는 돌계단에 무릎은 시큰거려오고....
그러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보게되는 이정표입니다.
그러면 누구든 카메라를 꺼내들기 마련입니다.
이름 자체가 망望바위이니 여기서 주위를 둘러봤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럴까요?
그런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붙여놓은 이름은 사실 믿을 바가 못되는 것이 부지기 수입니다.
지도 #2
05:43
어쨌든 머리에 두른 헤드랜턴이 무거워 질 무렵 동쪽부터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탄성을 지를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
천왕봉입니다.
백두산(頭)에서 흘러내린(流) 기운이 머물러서 만들어진 산 두류산의 최고봉 천왕봉입니다.
그러니 천왕은 천신天神 환인일 수도 있고 반신반인半神半人 환웅일 수도 있으며 단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리산의 옛 이름은 두류산이라고도 했고 방장산이라도 도 했습니다.
그 유래를 살펴볼까요?
백두대간의 시작은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1915m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은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 등이라고도 했다. 이들 중 두류산(頭流山)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해석해 보면 백두산(頭)에서 흘러(流)내린 산이라는 뜻이다. 즉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이 지리산까지의 이음이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이 두류산이라는 이름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이해했다. 사실 지리산을 “이 산을 타다보면 지루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억지 얘기도 가끔은 등장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라는 의미이다. 곧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 둠’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 ‘두르〉두류’로 변천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갖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는 ‘두르〉드르〉드리〉디리〉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갖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지루한 산’, ‘지혜로워 지는 산’이라는 말은 삼가자.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7쪽
재미있죠?
산 이름이 괜히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합니다.
산 이름은 곧 역사라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장터목 대피소 혹은 로타리 대피소에서 이른 새벽 기상하여 동절기 옷을 챙겨서는 벌써 이 시간에 일출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좌측으로 눈길을 더 주니 제석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측 황금능선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에는 이 위치에서는 아직 성급합니다.
능선稜線.
요사이는 마루금이라는 말도 많이 쓰죠?
마루금의 올바른 뜻은?
여기서 팁 하나!
이 글을 읽다보면 마루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대간길을 걷다 보면 ‘마루금 산악회’라고 쓰인 표지띠도 볼 수 있다. 마루금? 마루금이 뭘까?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다. 마루금 개념을 처음 제안한 이는 조석필 선생이다. 선생의 저서 ‘태백산맥은 없다’에 나오는 개념으로 이는 지도와 관련지어 생각하여야 한다.
마루금은 주로 대간이나 정맥 등 이른바 산줄기 산행을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개념이다. 즉 우리가 산행을 준비할 때 필수적으로 지도를 준비하고 그 지도에 우리가 갈 길을 미리 정해야 한다. 그러고는 갈 길을 연필이나 형광펜 등으로 알아보기 쉽게 선을 긋는다. 일반산행이면 개울을 건너고 능선을 타고 그것들을 반복하지만 산줄기 산행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물론 접속 구간이 계곡을 거쳐야 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이럴 경우 지도 위에 능선을 따라 선을 긋게 된다. 봉우리에서 안부를 지나 또 다른 봉우리로 그리고 고개로.... 이렇게 그은 선을 능선의 능陵 즉 ‘산마루’에서 ‘마루’를 따왔고 선線에서 ‘금’을 따와 ‘마루금’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능선은 우리가 실제로 산을 걸을 때 사용하는 즉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라 본다면 마루금은 지도상에 그은 선 일종의 맵소스map source라고 보면 될 것이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94쪽
백두대간 아니 산경표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해는 1980년입니다.
그러니 그 이전까지는 그런 이름을 붙일 줄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 아니 더 정확하게는 1988년 경 이전만 해도 백두대간, 낙남정맥 등 대간과 정맥이라는 이름 대신 OO능선, XX능선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했습니다.
그 흔적이 설악으로 가면 공룡능선이니 서북능선이니 하는 개념이고 지리로 오면 동서남북 능선과 초암능선, 황금능선 등 아닙니까?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산경표를 우리들이 산줄기 산행을 잘 즐기라고 만들어 주신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우리는 그 산경표를 되찾음으로서 우리의 산하를 더 유용하고 폭 넓게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선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정도 올라오면 은은하게 목탁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법계사가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05:46
이동전화 통신탑이 나오면서 이내 로타리 대피소입니다.
지도 #2의 '가'의 곳입니다.
예전에는 로타리 산장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죠?
새소리만 들리던 선계에서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린다. 여기가 다음날 일찍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객들의 베이스캠프인 로타리 대피소(자도 상 ‘나;의 곳)다.
1978. 10. 26. 남명 조식 선생의 13대손인 조재영은 부산 ‘로타리 클럽’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에 대피소 문을 열고는 ‘로타리 산장’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민간인이 운영하던 것이 2000. 7.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기부채납 되어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지금의 ‘로타리 대피소‘가 되었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5쪽
붉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남동쪽으로 낙남정맥 능선이 삼신봉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06:30
그러고는 개선문입니다.
예전에는 개천문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개선문이라고 합니다.
뚜껑도 없는데....
그렇게 써놓고 말뚝을 박아버리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팀 말고도 많은 팀들이 천왕봉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만큼 저변이 확대된 느낌입니다.
06:49
그러고는 천왕샘天王泉입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렇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올해 6월달에 현장에 임해보니까 이렇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아마 모르긴해도 제 산행기가 공단 직원들의 모니터링 작업에 포착된 거 같습니다.
좌측 천왕봉 바로 아래 직벽에는 천왕샘(지도 상 ‘다’의 곳)이 있다. 석간수인 이 샘의 물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이 옆의 안내문에는 이 샘이 남강 발원지란다. 거짓말!
“거짓말? 여기가 남강의 발원지가 아니란 말이야? 그럼 남강의 발원지가 어디야?”
국립공원 안의 안내판을 잘못 써놨다니 장감독은 자못 놀란 표정이다.
“남강 들어봤지? 진주 남강. 논개가 촉석루에서 왜장 로구스케를 안고 떨어져 죽었다는... 그 남강의 발원지가 여기가 아니라는 말이지.”
“무슨 말이야? 여기 이렇게 써놨는데!”
하긴 어디든 안내판에 씌어져 있는 글을 보면 그 내용을 신뢰하기 마련이다. 산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의외로 엉터리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남강의 발원지
그렇다. 그럼 남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산경도(山經圖)를 보자. 백두산을 떠난 백두대간은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 ~ 속리산을 지나 약1528.7km 지점에 이르러 남덕유산1507.3m을 만난다. 대간은 거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육십령으로 향하면서 좌측으로 산줄기 하나를 내어 놓는다. 그러면 대간과 그 줄기 사이에 물줄기를 하나가 생기게 되는데 이게 바로 남강이다.
즉 남덕유산이 남강의 시원(始原) 곧 발원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가지 줄기는 대한산경표에 의하면 남강기맥이라는 도상거리 약 139.3km의 산줄기가 된다.
“무슨 얘기하는 거야? 갑자기. 대한산경표가 뭐고 남강기맥은 또 뭐야? 그리고 산경도는 또 뭐고? 산자분수령? 합수점? 가지 줄기? 갑자기 형 무슨 얘기를 그렇게 어렵게 하는 거야?”
용어의 혼란이 오는가 보다. 하긴 장감독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산을 가면 그냥 산이면 되는데 갑자기 생소한 단어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니 혼란스러운 거 같다. 하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지리시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들이니까.
“그래 하나씩 보자. 우선 산경도는 말 그대로 산줄기 지도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어. 장감독도 우선 그냥 슬쩍 넘어가듯이 보기만 하면 돼. 앞으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얘기들이니까. 이 지도를 잠깐 봐. 우리나라 산경도는 백두산에서 나온 백두대간이 지리산 천왕봉까지 큰 줄기(굵은 선)로 뻗어있고 그 옆으로 정맥이라는 조금 더 가는 줄기들이 나와 있지? 이번에는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자. 그러고 백두산을 나무의 밑동이라고 보자. 그러면 백두대간이 나무의 큰 줄기같이 보이지? 거기서 옆으로 무수히 가지를 치는 작은 줄기들. 이 산경도에서는 그 작은 가지를 정맥이라고 부른 거야. 그러니까 가지 줄기니 뭐니 하는 얘기들은 우리나라의 산줄기들을 나무에 빗대어 본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를 나무 수(樹)를 써서 수체계이론(樹體系理論)이라고도 하는 거지.”
말이 길어지고 자신에게는 처음 듣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조금은 헷갈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궁금증이라면 참지를 못하는 장감독이 벌써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니 별 부담은 없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그리고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자. 아까 한 얘기 반복해서 얘기할 게. 가만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봐. 하나의 산줄기(A)에서 다른 산줄기(a)가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분명 물줄기(b)가 나오고 그건 분명 계곡을 형성하게 돼. 크든지 작든지 말이야. 그렇지 않아? 산줄기가 분수령이 되는 건 확실하고 그 산줄기에서 내려 온 물들은 다 계곡으로 모이잖아? 그 개울이 모여서 천(川)이 되고 그 천(川)이 모여 조금 더 큰 천(川)이 되고 그러고는 그게 모여서 다시 강(江)이 되고, 그 강(江)들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고... 이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어?”
“그건 알지. 그런데 또 합수점이라는 건 또 뭐야? 산줄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고?”
“합수점(合水點). 말 그대로 물이 모이는 지점이지. 양수리에 가면 ‘두물머리’ 있지? 합수점의 우리말이 두물머리 아니겠어? 양수리의 양수(兩水)가 곧 두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 개의 물줄기 가령 남한강과 다른 하나의 물줄기 가령 북한강이 만나는 곳. 그곳이 두물머리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두물머리가 무수히 많은 셈이지. 그 두물머리를 한자로 쓰면 합수점이고.”
자전거를 타는 장감독이니 두물머리 얘기를 꺼내니 귀가 번쩍 열리는 것 같다.
“양수리. 나도 잘 알지. 자전거 타고 가봤던 곳이니. 그런데 그 합수점이 산줄기와 무슨 상관이야?”
“그럴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야. 조금 전 얘기했어. 이 합수점은 산줄기를 얘기할 때 아주 중요한 개념이야. 나중에 자세히 보겠지만 산경표라는 책은 이 ‘합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론이야. 그 핵심은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고.”
“정말 머리 아프게 만드네. 산자분수령은 또 뭐야!”
장감독이 짜증을 낼만도 하다. 사실 천왕봉에 아직 오르지도 못했다. 즉 대간길에 아직 한 발도 내딛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복잡한 얘기를 많이 하는가 하는 불평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래. 간단하게 산자분수령을 보자. 앞으로 계속 나올 얘기니까 미리 간 좀 보자는 거야. 지도 좌측을 보면 가장 굵은 선이 백두대간이야. 그리고 좌측 위로 남덕유산이 보이지? 남강기맥도 보이고. 이게 백두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가지를 쳤다는 걸 보여주는 개념도야. 앞으로 자꾸 애기할 거지만 우리나라 산줄기에는 반드시 계급이 존재해. 위계질서가 명백하다는 것이지. 같은 급이라도 서열이 있게 마련이고. 즉 군대에서 병장이라고 다 같은 병장이 아니잖아? 이게 아주 재미있는 많은 것을 보여주게 돼. 그러니까 그 계급 개념들의 한 가지인 기맥(岐脈)이니 지맥(枝脈)이니 하는 것들은 나중에 보기로 하자. 우선 백두대간(A)에서 남강기맥(a)이 가지를 쳤다는 것만 생각하자고. 자, 봐. 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갈리는 그 사이로 남강(b)이 흘러나오지? 아까 얘기했잖아. 한 가지에서 다른 한 가지를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물줄기가 하나 흐르게 된다는.... 바로 그 원리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를 영어로 표현해보면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정도가 되겠지. 이따 자세히 볼 거니까 우선 개념만 알아둬.”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법적인 해석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산 곧 산줄기는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고 해석하자. 이를 ‘산자분수령의 제1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自’를 스스로란 ‘부사(副詞)’로 본 거다. 고로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까 물을 만나면 그 산줄기는 맥을 다하게 된다. 그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합수점도 그냥 합수점이 아닌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6쪽 이하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백두대간이 초행길이 아니신 분들은 익히 들으셨잖습니까?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우선은 관용구로서의 산자분수령만 보기로 합니다.
그럴 경우 남강의 발원지는 여기가 아니고 남덕유산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남강의 발원지라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남강이 맥을 다하는 곳이 개념도에서 보다시피 낙동강과 만나는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의 쌍절각 부근이고...
공단 직원들이 작년 산행기에 이것을 지적한 취지의 산행기를 본 것 같다는 얘깁니다.
그러고는 무려 11년 정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 안내판을 제거한 것이죠.
주지하다시피 이 천왕샘은 시천천의 발원지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백두대간의 끝이자 남한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발원하는 샘이 그저 작은 개천의 본류에 불과하다니!
어찌보면 백두대간에 대한 모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백두대간의 역할이 나라를 동서를 구분하는 것이지 큰 강을 내놓는 그런 역할이 없는 것을....
우선 이 정도만 보죠.
천왕샘에서 목을 축이고 우틀하자마자 긴 나무계단이 대간꾼을 압도합니다.
정상이 시끄럽죠?
07:00
드디어 정상입니다.
등로는 여기서 경상남도 함양군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정상석 옆에서 사진도 한 방 날려 봅니다.
지리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 가지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죠?
예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사당과 성모상입니다.
천왕봉 정상석, 성모상
다시 지리산이다.
천왕샘을 지나면 바로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힘겹게 올라가면 남한 최고봉이자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끝나는 천왕봉이다. 이 천왕봉 정상석에서 낯익은 글귀가 보인다. “韓國人의 기상 여기서 發源되다” 천왕봉 정상석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 모델 No.1일 것이다. 이 정상석은 이 지역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었던 한 국회의원의 작품이다. 원래는 ‘영남인’이었던 것을 ‘경남인’으로 고쳤다가 다시 ‘한국인’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천왕봉에는 볼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왜구와 광신도 때문에 사라진 성모상이 그것이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 성모상은 천왕봉을 지키다 14세기 말에 왜구에 의해 훼손당한 적이 있었다. 간신히 복원하여 놓은 그것을 1970년대 몰지각한 종교인이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또 훼손하였었다. 그것을 천왕사 주지 혜범이 어렵사리 찾아서 지금은 이 성모상을 천왕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응. 나도 들어 봤어. 14세기말 최무선의 진포대첩과 연관된 얘기지. 그 전쟁이 화포를 이용한 해전으로서는 세계 최초였었다고 하잖아. 서양의 레판토 해전보다 191년이나 앞섰었고.”
“인물로는 천왕봉의 이 성모상과 고토 분지로, 최무선, 이성계 등과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진포대첩, 황산대첩을 연결시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형. 근데 진포대첩이나 황산대첩 때 왜구 그 잔당들이 여기까지 와서 여기 있던 성모석상의 목을 쳤다? 이게 무슨 얘기야?”
“그게 참 재미있어. 나중에 해당되는 대목에서 또 얘기하자. 그리고 성모상 얘기는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 보면 자세히 나와. 나아가 후세 사람들이 그걸 다시 붙여놓았다는 말도.”
조금은 의아스러운 모양이다.
“그럼 그 성모는 누구야?”
“기록에 의하면 15세기 정도에 이 천왕봉에는 성모묘(聖母廟)라고 하여 세 칸짜리 작은 사당이 있었어. 거기에 이 성모석상이 모셔져 있었고. 여기서 맑은 날을 보지 못할 경우 이 석상에 기도를 하면 날이 갠다고 했데. 속설에는 이 성모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고 하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라고 나와 있고.”
삼대가 덕을 쌓았어야 맑은 날을 볼 수 있다는 천왕봉. 방장산인(方丈山人) 남명 조식은 이 천왕봉에서 하늘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
만고불변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자신은 울지 않는다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3쪽 이하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이 사진 한 장 말고는 이상하게 색이 다 바래서 나오는군요.
하는 수없이 예전 사진을 빌려다 씁니다.
중봉1874.6m 그 뒤로 하봉1754.7m.
그 뒤의 두류봉1617.4m은 머리 끝만 살짝 보이는군요.
우측에 희미하게 보이는 고봉이 웅석봉1099.9m....
덕천지맥의 맹주죠.
조금 우측으로 파인더를 돌리니 웅석봉이 중앙으로 왔습니다.
좌측 봉우리들이 손짓을 하는군요.
암!
족보에 들어가 있는 봉우리들인데 불러줘야죠.
좌측 왕산925.6m, 우측이 필봉산858.2m.
그쵸?
중봉 우측으로 보이는 줄기들이니까...
족보를 따져볼까요?
조금 반복되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산이라는 게 그냥 보는 것보다 녀석들 족보를 따져 보는 게 훨씬 친숙하게 되고 어디가서 '이빨(?) 좀 깔 수'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는 '산경표'입니다.
이걸 대간, 정맥에 기맥, 지맥이라는 개념을 보충하여 현대식으로 새롭게 만든 게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을 혼자 저술하다 보니까 독단으로 흘러 산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함을 보완하면서 새롭게 수계水系 위주로 새롭게 산경표를 짠 게 '대한산경표'로서 '산으로' 박흥섭이 내놓은 산줄기 체계입니다.
자세한 건 뒤로 미루고 일단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중봉 ~ 하봉 ~ 도토리재~ 웅석봉을 지나 덕천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 거리 약54.4km의 산줄기를 덕천지맥(신산경표에서는 웅석지맥)이라 합니다.
이 덕천지맥을 진행하는 방법은 바로 이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중봉 ~ 하봉 ~ 독바위봉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그러면 왕등재에서 지맥은 우측으로 진행시키고 북쪽으로 가지를 치는 줄기를 보게 됩니다.
이 가지 줄기를 따르다 보면 왕산을 지나게 되고 더 북진하여 봉화산528m, 선바위산287m로 진행할 수도 있고 우틀하여 필봉산으로 가서는 산청군 금서면의 매촌리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줄기를 진행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얘기는 나중에 또 보기로 하고 시야를 북쪽으로 돌리면,
조금 불만입니다.
미세먼지입니까 개스입니까.
흐릿한 것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비만 내리면 다 해결되는 것인데....
그래도 볼 건 봐야죠.
중간에 높이 솟은 봉이 삼봉산1187m.
그 우측 뒤가 오도봉1038.5m, 멀찌감치 우측에 희미한 게 법화산992.9m.
이 뒤로 봉화산 ~ 백운산 ~ 덕유산 ~ 대덕산 ~ 수도산 ~ 가야산 까지 다 확인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사진은.....
진행방향으로 가운데 멀리 반야봉1732m이 구름에 가렸고 그 우측 뒤가 만복대인데 그저 희미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그 앞 줄의 움푹 파인 고개가 비리재 그리고 그 우측의 삼정산1156.2m이 더 명백하군요.
그 우측으로 지리서부능선 상의 덕두산1151.5m은 명백한데 바래봉1146.8m은 구름에 가렸습니다.
멀리 웅석봉.
좌측부터 시루봉, 촛대봉, 아까 머리 끝만 보였던 영신봉.
구름에 가린 반야봉과 그 좌측의 노고단.
노고단 좌측으로 왕시루봉.
바로 앞이 제석봉.
그 뒤 바위봉이 연하봉.
07:56
올라온 지 근 한 시간만에 자리를 텁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이제부터 백두대간 접속 구간을 끝내고 지금부터 백두대간 북진의 대여정을 시작합니다.
백두대간을 시작함에 있어 한 가지 유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책에서 인용해 보면,
이따 영신봉을 지나면서 자세히 보겠지만 백두대간이 ‘반드시’ 산자분수령에 충실한 산줄기는 아니다. 산경표는 이름 자체가 그러하듯 선조들은 백두대간을 백두산과 두류산 즉 지리산을 잇는 큰 산줄기로 봤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운 좋게도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 축의 북쪽 끝에는 백두산이라는 나라의 최고봉이 있었고, 남쪽에는 지리산이라는 남쪽의 최고봉이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 작명을 하는 방법도 멋지다. 백두대간을 백두산에서 따온 말인지 백두산과 두류산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한 이름인지 그것도 애매하다. 두류산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것도, 그 이름이 ‘두르’에서 ‘두류’를 거쳐 ‘지리’가 된 것도 교묘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백두대간은 그것을 연결하는 선에 불과하지만 신비롭기만 하다. 신이 내린 이 조화를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이라고 표현하였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3쪽 이하
백두대간 종주 산행의 첫 발을 뗍니다.
도상거리 약 720km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이제부터 함양군과 산청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우측으로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는 곳을 지나,
08:15
통천문입니다.
08:35
제석봉을 지나면서 예전의 민초들의 아픔을 곱씹고....
장터목 너머 우측의 연하봉과 중앙의 촛대봉 그리고 우측의 영신봉까지 봅니다.
08:45
드디어 장터목입니다.
아까 천왕봉에서 막걸리 한 통은 깠으니까 여기서는 소주 한 팩.
대원들이 배낭을 털으니 먹을 것들이 푸짐하군요.
1종 창고가 다른 게 아닙니다.
저는 산에서의 주식이 떡이니.....
새벽에 못 본 분들 얼굴들을 익히고....
그러고 보니 120명에 가까운 대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도 사실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계속 무전기들은 이런 저런 상황들을 알려오고...
집행부가 상당히 분주합니다.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1시간 10분 정도 눌러앉아 있다가 다시 자리를 텁니다.
10:06
장터목을 떠나 처음 만나는 연하봉의 위치가 애매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곳을 일출봉이 아닌 연하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공단에서는 일출봉?
하긴 뭐 이런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이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그림만 가지고 본다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연하봉(일출봉)이라는 것이 공단에서 얘기하는 저 연하봉보다 폼이 더 나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10 :11
공단에서 이야기하는 연하봉이라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군요.
지도 #2의 '다'의 곳입니다.
이정표를 확인합니다.
이 연하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사실 이런 화창한 날씨보다는 안개가 조금 끼고 노을이 지려고 하는 저녁 정도가 보기 좋습니다.
우측으로는 반야봉이 여전하고....
지도 #4
10:20
1693.6봉입니다.
뾰족봉 우측으로 촛대봉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0:35
지도 #3의 '라'에서 촛대봉을 봅니다.
날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연 환경은 대간꾼의 의지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0:56
그러고는 촛대봉입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천왕봉은 여전하고.....
아무리 역광의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건 좀 아닙니다.
아무래도 카메라 노출에 문제가 있는 듯....
촛대봉은 세 개의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라인을 넘어 좌측 끝봉우리까지 가서 조망을 합니다.
우측에 1578봉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 능선을 따라 거림마을이 보입니다.
이 능선을 타고 거림으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진행할 능선을 보고.....
이 위치에서 보는 세석대피소와 그 뒤의 영신봉 그리고 좌측 뒤로 반야봉입니다.
육안으로야 만복대, 정령치 바래봉 그리고 덕두봉까지가 명백한데 사진은.....
오랜만에 세석을 시원하게 관찰합니다.
우측 촛대 제1봉에 많은 분들이 올라와 계시군요.
서둘러 나갑니다.
11:12
세석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예전 야영장으로 황폐화 되다시피 했던 세석평전이 이제 많이 푸르름을 되찾은 모양새입니다.
영신봉을 향합니다.
11:17
세석갈림길에서 직진을 합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진행을 하면 영신봉 삼거리입니다.
여기서 우측 라인을 넘어가면 영신봉이죠?
11:30
그 영신봉 정상입니다.
여기가 낙남정맥이 분기되는 곳입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여기서 하동군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 낙남정맥만큼 말도 많고 문제도 많은 봉우리는 없습니다.
아까 잠깐 말씀드렸었죠?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어떤 점이 그럴까요?
영신봉 고찰 - 산경표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지난 구간 얘기했듯이 영신봉은 여러 가지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우선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 후로 그 역할이 달라진다. 즉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에는 영신봉 ~ 삼신봉 ~ 상불재로 이어지는 지리남부종주를 시작하던 곳이었다. 즉 예전에는 단순하게 지리 주릉에서 지리남부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라 생각하고 걸었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산경표를 알고 난 후에는 낙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리는 곳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산경표를 몰랐던 예전 산꾼들은 지리산의 많은 능선을 성삼재 ~ 천왕봉을 주릉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능선을 그은 다음 거기에 맞는 이름을 붙여 중거리 종주 산행을 즐겼었다. 그중 이 영신봉이 지리남부종주의 시작점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지난 번 잠시 이야기하였지만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의 예외 구간이다. 아니 예외 구간이라기보다는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위배되는 구간이다. 산자분수령을 한 번 더 보자. 산자분수령을 관용구로 이해할 때 산줄기는 곧 분수령이 되므로 이 줄기 위로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의 어떤 것은 좌측 또 어떤 것은 우측으로 흐르기 마련임은 이미 얘기했다. 그러니 백두대간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줄기이므로 백두대간 위로 내리는 빗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물들은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백두대간 중 영신봉 ~ 천왕봉 구간에 내리는 빗물은 그렇지가 못하다. 즉 이 구간의 대간길에 내린 빗물은 우측 즉 마천쪽으로 가면 임천을 만들고, 좌측 즉 시천쪽으로 가면 덕천강을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남강으로 합쳐져 낙동강으로 흡수된 다음 남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낙남정맥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에서 나뉜 물줄기는 절대 만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줄기가 남강이라는 작은 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무슨 얘기냐고? 생각해 봐. 백두대간이 뭐야?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잖아. 그러니 동쪽으로 가는 물줄기들은 낙동강이나 동해로 가게 되고 서쪽으로 가는 물줄기들은 서해나 남해로 가게 되잖아. 그런데 이 구간에 내리는 빗방울은 임천과 덕천강으로 각각 흘렀다가 다시 남강에서 만나게 되잖아. 그러고는 낙동강 ~ 남해로 가게 되는 거 아니야? 지난 구간 지도에서 확인해 봐.”
“그러네. 심각한 오류네.”
“산경표가 잘못 됐다고 여기게끔 됐잖아? 그래서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게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야.”
박성태의 신산경표
누구든 쉽게 의심을 품고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색이 백두대간인데 남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그래서 산경표의 이런 오류를 해결하고자 박성태 선생은 고민 끝에 신산경표를 발표한다. 신산경표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간 줄기를 이 영신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 줄기를 남해안 노량까지 진행하게 한다. 그렇게 하고 보니 백두산 ~ 노고단 ~ 영신봉 ~ 노량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 박성태 선생은 그 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을 붙인다.
즉 좌측 지도의 백두산에서 내려와 노고단 ~ 영신봉 ~ 천왕봉으로 가던 줄기를 영신봉에서 우회전시켜 삼신봉을 거쳐 금오산 ~ 연대봉 ~ 노량으로 이어지게끔 마루금을 그렸다. 그렇게 한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산경표의 백두대간에 대응하여 ‘신백두대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신산경표에서 신백두대간을 고안해 낸 이유는 무엇일까? 괜히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산경표는 그 취지를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이므로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말을,
⓵정맥도 10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데 하물며 아버지 격인 대간이 바다도 아닌 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
⓶대간이 바다로 가야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동서를 양분한다는 기본정신에 합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을 ‘영신봉 ~ 천왕봉’에서 남해 방향으로 틀어 ‘영신봉 ~ 노량’으로 향하게 했고, 그 이름을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럼 끝난 것일까?
“그게 신백두대간이야? 그 방향으로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신선하군.”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
첫째, 산경표 교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던 산경표에 감히 손을 댔다는 거지.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정 필요하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 해야지 왜 대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만들고 또 산경표의 정맥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냐는 거야.
둘째, 그러면 영신봉 ~ 천왕봉 (A)구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 ~ 웅석봉 ~ 백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 분기점을 영신봉이 아닌 천왕봉으로 그대로 놔둔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거야. 이 점이 오히려 신산경표의 약점이 된 거지. 즉 이는 신산경표가 북한의 청북정맥이나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에서 중간의 겹침줄기를 없애면서 이를 정맥에 포함시켰던 과감한 시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가 돼 버렸어. 곧 천왕봉에 와서는 꼬리를 내렸고 이는 일관성의 결여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것이지.”
처음 듣는 용어에 정맥까지 동원되니 이해가 갈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지도를 펴가며 열심히 찾아본다.
“어려운 대목이야. 나중에 다시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거야.”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은데... 하지만 형. 이른바 신산경표의 태도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대간이 동서를 구분한다는 얘기는 맞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사실 문제는 있네. 영신봉 ~ 천왕봉 ~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지맥(枝脈)의 한 구간으로 봐야 한다면 결국 ‘천왕봉’이 지맥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걸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백두대간에서 천왕봉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신산경표는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했어?”
“그렇지. 어려운 얘기야. 어쨌든 신산경표는 그 구간(A줄기)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어. 사실 산경표에서도 그런 애매한 구간이 있을 때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었거든.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그랬던 거지. 그런데 그런 걸 해소하겠다고 한 신산경표가 다시 이런 애매한 구간을 ‘무명줄기’로 놔두겠다고 했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 모양새가 된 거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산경표의 편제에 따른다면 이 웅석지맥은 천왕지맥으로 그 이름도 바뀌어야 해. 그렇게 되면 지리산 = 천왕봉이라는 인식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게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거 아니겠어? 그 점이 신산경표는 싫었던 거야.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뭐야?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큰 줄기라는 것 아니야? 신백두대간이 굳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점을 강조하여 영신봉 ~ 삼신봉 ~ 노량 코스로 맥을 돌리겠다면 그 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빼라는 거지. ‘신(新)’자도 넣을 필요 없이 그냥 백노(白露)대간 혹은 백지(白智)대간‘으로 부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왜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빈 공간으로 놔뒀냐고 비난을 퍼붓는 거야.”
“그럼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신산경표의 생각도 참신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 하지만 우리가 산경표를 생각할 때에는 우리의 잣대로 산경표를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봐. 분명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생각할 때 등산을 하기 위한 능선 산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어 놓은 것이 아니었거든. 10대강을 위주로 생활권을 크게 구분하고 있는 것. 그걸 파악했던 것이지. 그래서 산줄기의 끝이 강의 크기나 길이 등에 관계없이 부, 목, 군, 현의 치소(治所)로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산경표는 그냥 산경표야.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자고. 그대로 둔 다음에 거기에 우리 현대인의 생각을 가미하고 변형시키자고. 이럴 때 분명히 용어의 정립의 필요할 거야. 신산경표에서 정맥을 합치고, 없애고 대간의 무명줄기도 정맥에 편입시키는 등 변형을 줬거든. 난 이런 점이 불만이야.
가령 이 신백두대간만 해도 그래. 굳이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 다음 ‘백두산 ~ 노량’이라고 구간을 설정해 놓으면 천왕봉이 애매해지잖아. 물론 영신봉이나 천왕봉이 다 지리산이니 ‘백두산 ~ 지리산 ~ 노량’으로 봐야 하고 지리산 안에 천왕봉이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고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대간길을 걸을 수도 있어. 하지만 웅석지맥이 문제가 된다니까. 대간 거리의 확정도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특징이자 자랑이 뭐야? 나라의 산줄기 길이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한편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은 백두대간을 ‘백두대산줄기’라 이름하였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 삼신봉1289m에 이른 다음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돌려 구재봉773.7m에서 마치게 그렸다.
낙남정맥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 점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낙남정맥을 몰랐었다. 아니 이런 문제 때문에 낙남정맥을 억지로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환이 보통 사람인가!
어쨌든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이곳이 낙남정맥이 갈리는 영신봉이라는 점과 낙남정맥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에 나오는 우리나라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하나의 정맥으로 글자 그대로 낙동강 남쪽을 받쳐주는 정맥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4쪽 이하
참고로 신산경표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산경도를 제시하고 있는 '대한산경표'의 그림을 볼까요?
참고도 #1 대한산경표 상 낙남정맥 부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산경표는 우리에게 백두대간과 1정간 13정맥만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 산경표가 조선시대의 인문지리 인식체계를 집대성한 말 그대로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였습니다.
그것이 구한말 일제통감부 체계로 들어가자 모든 교육 시스템이 일본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특히 조선어와 국사 그리고 지리과목이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하자원 침탈에 눈이 먼 일본은 독일의 지질학자 고체에 이어 1900년 8월 일본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울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를 파견하기에 됩니다.
고토분지로의 저서인 조선기행록을 보면 고토는 1901년 1월 3일 군산을 출발하여 1월 19일 부산에 도착한 후(군산 → 부산),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남해안을 거쳐 2월 16일 목포에 도착(부산→ 목포)하고, 2월 20일 목포를 출발해서 내륙을 거쳐 3월 19일 다시 부산에 도착(목포 → 부산)했다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맞지 않는 것 같다. 조선근대사의 권위자인 최혜주의 논문에 의하면, 최혜주는 당시 일본의 동방협회회보 86호(1902. 4. 20. 81~82쪽)를 근거로 “고토는 1900년 8월 하순부터 다음해 3월 하순까지 강원,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 지역을 조사하고, 1901년 8월 상순 다시 8개월간 두만강, 압록강지역을 조사하였다.”고 게재하였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105쪽 각주
이 탐사 여행의 결과물로 1903년 고토는 '조선산맥론'을 발표하게 되고 그 논문 안에는 우리나라 산줄기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36개의 산맥이 자리 잡게 됩니다.
- 이 산맥이라는 개념은 우리 선조들이 쓰던 우리 산줄기 개념이었지 고토 분지로이 창작물이 아닙니다. 우리 고유의 산줄기 개념으로서의 산맥을 지질구조선의 다른 이름에 산맥을 갖다 붙임으로서 용어의 혼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 그의 제자 야쓰쇼에이는 그 산맥들을 단순화 시켰고 통감부 체제하의 일제는 그것을 학생들이 배우는 지리교과서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지리교과서는 해방이 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리 교과서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산맥 체계가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 자세한 것은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이나 조석필의 '태백산맥은 없다' 참조
2) 어쨌든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은 산경표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하면서 신백두대간 + 12정맥 + 12기맥 + 162지맥을 근간으로 한 '신산경표'라는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실로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산꾼들의 행보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능선 종주 산행 중심에서 대간 + 정맥으로 움직이더니 이제는 기맥이나 지맥으로도 발길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외연이 확장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신산경표는 선생께서 혼자서 작업을 하다보니 오류가 발견되기시작합니다.
즉 선생께서 표방한 '산경표의 정신 계승' 즉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부합되기 보다는 단순하게 긴 줄기 즉 산경 위주로만 진행되는 오류가 발견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일관성의 결여로 비춰지기 충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 이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입각하여 물줄기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그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3) '산으로' 박흥섭과 J3의 배병만이 그 주창자들인데 이들도 그냥 발원지와 합수점을 위주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물줄기의 세력도 보아야한다는 점에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습니다.
박흥섭의 주장 즉 대한산경표의 입장에서 이 지리산 부근을 보겠습니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에서 마무리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지리인식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맥의 끝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낙남정맥은 영신봉에서 가지를 치게 됩니다.
그 낙남정맥은 영신봉 ~ 삼신봉 ~ 옥산 삼거리를 지나 무선산 ~ 무학산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옥산삼거리에서 남진하는 산줄기는(신백두대간의 일부) 금오산 ~ 용산 ~ 두우산을지나 섬진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섬진동지맥이 되게 됩니다.
그러니 대한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이라는 우리 기본 산줄기를 세분하자면 영신봉 ~ 천왕봉 구간만큼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예외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천왕봉에서 연장되는 덕천지맥(신산경표상 웅석지맥)은 신산경표와 같이 그대로 인정이 됩니다.
복잡한가요?
기회가 되면 또 보기로 하죠.
아직도 영신봉입니다.
여기서 천왕봉 부근을 볼까요?
장터목 대피소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촛대봉도 확실하죠?
도솔산인께서는 이렇게 정리를 하신 것을 인용해 보면,
이 촛대봉을 1472년 김종직은 증봉甑峰, 1487년 남효온은 빈발봉, 1611년 유몽인은 사자봉, 1851년 하익범은 중봉 그리고 1879년 송병선은 촉봉燭峰이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촛대봉은 촉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보면 되겠군요,
후미가 지나가는 것도 기다릴 겸 여기서 '칼있으마'님이 가지고 온 곡차 한 잔 즐깁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이들이 우리 목소리를 듣고 여기까지 와서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가시는군요.
그 세 분 중 한 분은 따로 오신 분인데 산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중,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산록'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계족산이니 빙발봉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이를 영신봉, 촛대봉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폼이 완전 도인같이 느껴지더군요.
40분 정도 놀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이제부터는 하동군과 함양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지도 #4
12:38
길을 가는 도중 다시 그 도인인 도솔산인님을 만나 그분께서 말씀 하신 좌고대로 갑니다.
좌고대에서 바라본 대성골입니다.
저기 어디서 빨치산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지도 #4의 '마'의 곳 부근입니다.
도솔산인님께서 촬영해주신 좌고대와 필자 모습.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에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坐高臺)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신봉 [靈神峰, Yeongsinbong]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국토지리정보원)
점필재의 유두류록과 시를 보고 좌고대와 영신대까지 찾았다고 하는 선생은 대단한 분임에 틀림없는 듯 하였습니다.
12:39
이곳을 지나기는 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이곳이 좌고대라니....
13:07
지도 #4의 '바'의 곳에 칠선봉이라고 명찰이 붙어 있습니다.
항상 지나다니며 봐도 확실히 이곳이 아닌데.......
13:19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칠선봉에서 천왕봉을 조망합니다.
중봉 ~ 하봉까지도 일렬로 서 있군요.
14:07
선비샘에서 물보충도 하고 덕펑봉을 지납니다.
지도 #5
14:20
1382.5봉에 도착하면 지금은 차츰 그 흔적도 없어지고 있는 비상도로가 나오고 곧 벽소령대피소도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14:44
다 왔죠?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은 파랗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벽소령碧宵嶺.
오늘 구간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이제는 음정으로 내려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성삼재까지 내빼고 싶지만 오늘 대간길이 초행인 분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내린 집행부의 고육책이라고 봅니다.
14:55
10분 정도 쉬다가 일어납니다.
음정 이정표를 따르면서 대간길에서 벗어납니다.
이제부터는 온전하게 함양군 마천면 안에서 진행을 하게됩니다.
하염없이 긴 임도를 따라 내려갑니다.
김포 산친구 산악회의 김회장님이 아니었으면 지루해 죽었을 뻔 했을 겁니다.
15:31
연하천 대피소로 직접 빠질 수 있는 즉 지리북부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을 봅니다.
생각 같아서는 벽소령대피소에서 직진하여 삼각고지에서 지리북부능선을 타고 녹색선을 따라 진행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지도 #6
16:00
음정마을 까지 정말 지루하게 내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입니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마치고 2주 후에 다시 이곳으로 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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