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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 3회차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 (고치령 ~신선봉 갈림 ~ 상월봉 ~ 국망봉 ~ 비로봉 ~ 연화봉 ~ 죽령)

 

 

30년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았던 산 얘기입니다.

봄이면 철쭉 군락지가 산꾼들을 불러모았고 가을이면 비로봉과 국망봉 초원의 누런 풀들이 황소의 등을 연상케 했던 산입니다.

겨울에는 칼바람과 눈이 다른 여느 산들과의 비교를 허락하지도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곳을 85년 늦은 가을 찾았었습니다.

그날 능선 종주를 마치는 마지막 봉우리인 국망봉에서 그만 그  황홀한 누런 초원에 눈이 멀게 되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국망봉을 빠져나오니 좌측으로 좁은 비알을 따라 하산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절집 초암사를 지나 죽계구곡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걸어 배점리로 진행을 했었습니다.

물론 퇴계 이황의 채취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 노력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 구간은 아무래도 소백산이다. 소백산을 노래한 시인 묵객들이 제법 많다. 서거정은 소백산이 태백산에 이어져 서리서리 백리나 구름 속에 꽂혀 있네.”라고 노래했고, 주세붕은 국망봉에 올라 서울을 보니 장안은 보이지 않고 용문산만 보이네.”라 하였다. 이중환은 복거총론 산수조에 태백산과 소백산 또한 토산이지만 흙빛이 모두 수려하다(大小白又土山也 然土色改秀頴).”고 하고 하였고, 방사 남사고(1509~1571)는 소백산을 보고 갑자기 말에서 내려 절을 하며 말하기를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此活人山也).”라고 말하였고 저서에도 병란을 피하는데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이다(著言以太小白 爲避兵第一地).”라고 극찬을 하였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09쪽

 

그 당시 무척 후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인데 아마 퇴계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읽지않고 왔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염치와는 상관없이 눈으로 본 소백은 왜 그렇게 황홀했었는지.......

키 작은 나무와 풀 그리고 계곡의 물과 물소리가 아름다웠던 산이었습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의 어울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소백을 찾을 때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얼킨 소백과의 추억과 인연은 지금껏 영원합니다.

 

그 소백을 간다고 합니다.

 

퇴계가 소백에 든다고 하니 승려 종수宗粹가 이렇게 소백에 대해서 알려주었다고 하죠?

"이 산에 올라 조망하기에는 가을날 서리 온 뒤가 가장 좋고 혹은 오랜 비가 내린 뒤 새롭게 갠 날이 아주 좋은데 주 태수(주세붕)도 비에 닷세 동안 막혀 있다가 날이 개자마자 곧바로 올라갔기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멀리는 한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족히 용문산까지는 볼 수 있었다는 것이겠죠.

 

남진으로 대간을 진행하고 있는 해밀팀의 이번 구간에 그 소백이 들어 있습니다.

비가 온 다음 말게 개인 날이라는 해밀.

기대가 됩니다.

 

그 구간인 고치령 ~ 죽령.

일반적으로 무박으로 끊는 구간입니다.

그 구간 중,

북진으로 진행을 하면 죽령 ~ 연화봉의 그 지루한 구간을 어둠 속에서 좀 가뿐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남진을 할 경우  고치령 ~ 신선봉 갈림길의 답답한 구간을 산뜻하게 지날 수 있게 되고.....

각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연화봉 ~ 상월봉 구간 만큼은 놓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인 구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덕유산의 주릉 구간 만큼 후한 평점을 주고 싶은 곳!

그 소백산 구간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해밀 대원들과 함께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과연 오늘 소백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만추의 소백으로 달려갑니다.

 

수지를 출발한 차량은 두진아파트 앞을 거쳐 단양휴게소를 지나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우리를 고치령까지 데려다 줄 반트럭이 대기하고 있군요.

 

마을 이장님의 도움을 받으며....

 

이번 구간도 보통은 죽령 ~ 고치령이다. 사실 대형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죽령, 도래기재, 화방재 정도이니까 고치령이나 마구령에서 구간을 끊기가 애매하다. 그러나 당일 산행이면 몰라도 무박산행일 경우 고치령에서 끊기는 좀 억울하다. 그렇다고 무박산행으로 도래기재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없이 마구령이다. 그러나 고치령이나 마구령에서 끊는다고 해도 접속구간이 문제다. 대중교통이나 일반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 고치령의 경우 단산면 좌석리이고, 마구령의 경우 부석면 임곡리이다. 일행이 4명 정도여서 택시를 이용하면 별문제가 없으나 단체일 경우 문제가 된다. 이럴 때는 보통 마을 이장댁으로 문의하여 1.4t 트럭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여료도 기름 값 정도만 들이면 되니 아주 저렴하다. 넉넉한 시골 인심을 경험할 수 있다.

 

 - 졸저 전게서 309쪽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0. 21. 토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좌석리 ~ 고치령 ~ 형제봉 갈림 ~ 신선봉 갈림 ~ 상월봉 ~ 국망봉 ~ 비로봉 ~ 1연화봉 ~ 연화봉 ~ 2연화봉 ~ 죽령

4. 산행거리 : 29.56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좌 석 리

 

02:40

 

 

고 치 령

4.70

03:45

65

30분 휴식

신선봉 갈림

8.75

07:25

165

20분 휴식

상 월 봉

1.22

08:06

41

20분 휴식

국 망 봉

0.74

08:28

22

비 로 봉

2.54

10:02

94

40분 휴식

연 화 봉

4.58

12:08

126

20분 휴식

죽 령

7.03

13:58

110

25분 휴식

29.56 km

08:43

07:05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02:46

한번에 트럭 짐칸에 다 오를 수 없으니 3개 조로 편성을 합니다.

1조가  떠난 다음 무료하게 기다리느니 임도를 따라 걷습니다.

1km 정도 걸으니 1조를 내려놓은 차가 돌아옵니다.

하늘은 온통 별들로 가득 찼습니다.

도시에서는 별을 볼 생각이나 여유도 없이 살아가다 그나마 이렇게 산에나 오면 그들을 대면할 수 있군요.

무박 산행의 우리에게 주는 혜택입니다.

03:45

마지막 3조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고치령 산신각을 담아봅니다.

고치령에는 장승 여섯 기와 표지석이 있고 산령각이 있다. 마락리로 넘어가는 좌측 길에 샘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고치령 산령각에는 금성대군과 단종을 모셔 놓았다.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은 세조의 잘못을 간하다 순흥으로 유배 되었는데, 이때 그는 순흥에 있으면서 영월로 유배된 단종에게 밀사를 보내 소위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게 되었다. 그 밀사가 다니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그러니 이 고치령은 단순한 고갯길이 아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양백지간(兩白之間)인 이곳에 산신각을 세워 금성대군은 소백산 신령으로, 단종은 태백산 신령으로 모시게 되었다. 태백산 천제단 바로 아래에 있는 단종의 비각이 거기에 있는 이유다.

 -   졸저 전게서 323쪽 

 

이 고치령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들이 있죠?

마구령과 함께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였는데 중요성은 마구령보다는 떨어졌다는 것 같고....

역사 얘기를 떠나 산줄기 입장에서 하나 더 볼까요?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구절이 있다. 바로 유홍준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기억을 더듬어 책의 관련 부분을 찾아보면 '부석사는 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길로 가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자리 잡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 중턱이 된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양백지간이라는 개념은 <감결>에 나오는 풍수지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당연히 그 용어가 만들어질 때는 태백산맥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양백지간이라고 써놓으면 마치 그 옛날부터 태백산맥이 존재하였고, 그 태백산맥이라는 산줄기가 두 개로 갈라지는 그  사이에 부석사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는 유 청장의 생갹일 뿐 산맥도를 보더라도 이 부석사와 태백산맥은 동질감을 전혀 느낄 없는 위치에 있다. 뒤에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봉황산 운운하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우리 같은 대간꾼이 느끼기에는 섭섭한 마음을 가지기에 너무 충분하다.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태백산맥을 미리 상정해 놓고 양백지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조석필도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이것을 지적한 바 있다.

- 졸저 전게서 323쪽 각주

03:45

몸도 대강 풀고...

그럼 오늘 산행을 시작해 볼까요?

오늘 구간의 시작은 영주시 단산면 안입니다.

여기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을 만날 때 까지는 온전하게 영주시 단산면 안에서 진행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백두대간이 군계郡界나 시계市界는커녕 면계面界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몇 군데 되죠?

①경상남도 거창의 삼도봉이라고도 불리는 '초점산' 부근이 그렇고, ②경북 상주의 큰재 부근, ③ 경북 문경의 황장산 부근, ④경북 봉화의 박달령 ~ 구룡산 구간 그리고 ⑤태백의 화방재 부근이 그렇죠?

이것을 거론하는 이유는?

예. 그렇습니다.

백두대간은 그래도 명색이 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척량 산맥임을 자임自任하는 산줄기 아니겠습니까?

그런 백두대간이 시계나 군계는커녕 면계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다니!

그로서는 자괴심을 갖기에 충분한 곳들이라는 얘기입니다.

04:33

그렇게 어둠 속을 걷다보면 우측으로 안내판 하나가 보입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인데 이 지점이 갖는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까 보았듯이 여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을 만나게 됨에 따라 대간길은 다시 도계의 역할을 회복한다는 점이 그것이고,

둘째는 여기서 우측으로 도계를 따라 진행하면 인삼과 형제의 전설이 있는 형제봉1207m으로 갈 수 있겠고,

마지막 하나는  북진하는 대간꾼들에게 특유한 것으로 이곳이 '알바하기 아주 쉬운 곳'이라는 점입니다.

전에는 북진하는 꾼들이 이곳에서 만연히 직진하는 바람에 알바를 많이했었습니다.

무턱대고 직진하기 십상인 곳이라는 것이죠.

어쨌든 앞으로는 이 안내판이 알바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해주겠군요.

좌틀합니다.

04:48

마당치를 지납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 지 시간이 경과하는군요.

여기서 우틀하면 남천계곡을 통하여 온달관광지로 갈수 있는데 식수원보호문제로 등로가 폐쇄된 곳입니다.

04:58

공사용 자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계단을 만들기 위하여 나무와 쇠파이프 그리고 고무 발판이 보이고 .....

05:12

지도 #1의 '나'의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군요.

후미팀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입니다.

바람이 조금 서늘함을 느끼게 합니다.

벌써 만추인가요?

하는 일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조동진이 그리워집니다.

낮은 톤으로 불러주는 '나뭇잎 사이로'가 생각납니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지도 #2

06:05

연화동 3거리입니다.

지도 #2의 '다'의 곳인데 우리같은 대간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곳입니다.

다만 이 루트를 이용하여 아까 우리가 올라오던 좌석리 세거리 마을로 갈 수는 있습니다.

동쪽으로 여명이 보입니다.

영주시내 방향입니다.

구름이 낮게 깔렸고....

아마도 날이 밝으면 운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6:24

지도 #2의 '라'의 곳에서 자리를 폈군요.

저도 빵에 막걸리 한 잔으로 조반에 갈음합니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20분 정도 놀았나요?

다시 일어섭니다.

 

신선봉 갈림길로 가는 방향.

좌측으로 상월봉1396.4m을 봅니다.

어둠 속에서 나와서 그런가?

뾰족한 삼각형 모습에 얼떨결에 비로봉으로 착각을 합니다.

07:05

우측으로는 삼형제봉이 보이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 답답함과 지루함을 소백은 틀림없이 보상해 줄 것이니 그걸 믿고 묵묵히 걷습니다.

함께 걷는 대원들의 기대가 대단합니다.

소백이 처음이시라나.....

오늘 횡재들 하신 겁니다.

이런 날씨에 이런 분위기와....

07:14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07:19

삼형제봉을 보면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직진하는 루트는 저 삼형제봉을 넘어 신선봉1375.9m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상월봉을 정면으로 보고 걸어야,

바위봉인 1265.5봉을 사면으로 치고 돌아 목책을 보면서 조금만 내려가면, 

지도 #3

07:25

출입금지 표지판이 나옵니다.

지도 #3의 '마'의 곳으로 이 목책을 넘으면 영춘면과 가곡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이 면계가 구인사로 진행하는 루트가 되기도 합니다.

안내 산악회에서 종주 코스로 많이 내놓는 상품이죠.

소위 '죽(령)구(인사) 종주'라는 코스인데 소백산 주릉을 걷는 코스이기 때문에 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국망봉 ~ 상월봉을 지이곳에서 이 목책을 넘어 진행을 하게 되는데 등로에서 살짯 벗어난 곳에 있는 삼형제봉을 들르느냐 여부가 산행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신선봉1375.9m인데 사실 이 신선봉은 별 특징이 없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삼형제봉의 주봉이 신선봉이고 이 신선봉의위치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다음 이 신선봉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봉우리에 관심이 쏠리는데 그 봉이 바로 민봉1362.4m입니다.

 

상월조사와 98

 

잠시 대간길을 접어두고 이 길을 따라 들어가 보자. 일단 그 능선은 신선봉1375.9m을 지나 삼각점(단양306)이 있는 민봉1362.4m으로 들어간다. 민봉을 내려서자마자 1315.3(참고도에는 1313봉으로 표기)으로 떨어진다. 이 봉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봉이다,

 

 

 

잠깐 개념도를 보자. 대간에서 갈라진 운달단맥 줄기는 1315.3(참고도의 1313)에 이르러 좌우측으로 산줄기를 가지 친다. 또 그 가지들은 다시 가지를 치는데 그 가지줄기들의 끝에는 봉우리가 하나씩 생기고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하여 그 가운데에서는 골이 하나씩 파여져 있는 게 보인다. 모양이 딱 부채 같으며 봉이 9개이고 그 사이에 골이 8개여서 98문이라 부르는데 이 그림은 순전히 구인사 상월조사와 관련이 있다. 1945년 상월스님이 삼간초암을 짓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로 명명하고 이 98문에서 수행을 통해 대도를 이뤄 천태종을 중창시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고 우리 산꾼들이 이 98문을 산행하는 방법은 상당히 어렵다. 보통 어의곡리 한드미 마을 정다운 민박집 옆으로 올라가서 새발문봉을 들렀다가 위 참고도의 1066.2봉으로 나와서 귀기문봉으로 진행하고는 다시 1066.2봉으로 나가 배골문봉 삼거리로 나갔다가 배골문봉으로 들어가서는 배골문봉 봉우리를 찍고 다시 삼거리로 나와 본절문봉 삼거리로 가서 같은 방법으로 진행을 하여 아곡문봉까지 진행함으로써 9봉을 마무리하게 되는 방식이다. 매 봉우리마다 왕복을 해야 하니 참 힘들고 잡목과 가시덤불로 고생하는 산행 방법이고 산행 코스다. 길 역시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다행히 단양산꾼 &공병덕이 나름대로 표지띠도 많이 달아 놓아 어느 정도 낯설지는 않게 해 놨다. 참고로 덕평문안골로 진행을 하면 바로 구인사로 진행하게 된다. 사실 속리산의 88문에 비할 바는 아니긴 하다.

 

 - 졸저 전게서 321쪽

 

여기서 가곡면을 만나면서 이제부터는 단양군 가곡면과 영주시 단산면의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그 구인사 입구를 잘 찾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한데 아까 출입금지 표지판과 이 이정표가 포스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07:27

그 이정표에서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곳에서 다시 갈림길 이정표를 만납니다.

예전에는 막혀 있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정규 탐방로가 된 을전 갈림길입니다.

어의곡리로 합류되는 루트죠.

늦은맥이 쉽터에서 후미를 기다리느라 20분 정도 푹 쉽니다.

07:57

다시 출발합니다.

10여 분 정도 오르다 좌틀합니다.

황홀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어둠 속에서 숲속을 뚫고 오느라 얼마나 지루했습니까?

그 보상을 해주기 시작합니다.

그 첫 봉우리가 1396.4봉입니다.

이 봉우리는 원래 무명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구인사 상월대조사의 법명을 따 상월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

그럼 좌틀하여 소백이 주는 그 보상이 무엇인가 그 실체 확인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물론 정규 등로는 우측으로 직진을 하는 루트고....

08:06

오!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소 등 같은 모습'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철쭉나무 사이로 난 좁은 등로 아니 대간길을 따라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능선 우측이 운해 잠긴 가곡면 일대.

그 위로 누에봉이라는 별칭을 가진 삼태산878.2m이 이름 그대로 누에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월지맥이라는 이름으로 지맥 산행을 할 때 지났던 곳입니다.

벌바위골 우측으로 머리가 보이는 봉우리들이 9봉8문의 봉들이고....

우측으로 조금 더 고개를 돌려보고....

상월봉 정상에서 .....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나 좌측으로 신선봉으로 빠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조금 더 우측으로.....

정면 뒤로 형제봉이 뚜렷하고....

J3에서 수고해 주셨군요.

08:12

더 머물고 싶은데 뒷 분들을 위해서 방을 뺍니다.

철쭉 사이로 국망봉을 봅니다.

순흥땅 위로 조금 더 높아진 오늘의 태양을 봅니다.

철쭉 사이로....

전에 느꼈던 감정이 새로워 짐을 느낍니다.

아!

스무 살 말년 시절.

그때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뒤를 돌아봅니다.

과거가 되어 버린 상월봉 시간.

상월대조사는 저 바위 위에 올라 수행을 하셨을 법도 합니다.

저 상월봉 좌측이 대간길.

그리고 그 바위 우측으로 진행하는 루트가 소백태극종주 길입니다.

가운데 신선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이 민봉.

이 길을 그렇게 와 보고 싶었던 것이죠.

예전에는 풀들이 키가 더 작지 않았었나?

좌측 끝이 국망봉에서 초암사로 떨어지는 루트.

음...................

실컷 느끼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갈색 톤은 적색 톤으로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마치고.... 

08:28

그러고는 국망봉입니다.

 

마의태자와 국망봉?

 

국망봉이다. 바위 뒤로 올라가면 1등급대삼각점(영주11)이 있다. 국망봉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정확하게는 개골산)으로 가는 도중 이 국망봉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하여 국망봉이라는 것이다. 국망봉이 궁금해진다.

 

사실 사료(삼국사기)에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은거했다는 사실만 나오지 다른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의태자라는 이름 역시 이광수의 신문소설 마의태자를 통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니 태자는 종묘(宗廟)에 곡()을 하고 처자를 죽이고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입고 있던 비단옷이 부끄러워 찢어버리고 대신 삼베옷을 입고, "고려가 주는 양식을 소·돼지처럼 먹고 사느니, 차라리 신라 사람으로 칡뿌리를 캐먹고 살겠다."며 끝까지 신라 사람으로 여생을 마쳤다고 하는 얘기도 사뭇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말이다.

 

그러면 마의태자가 금강산을 가게 된 루트를 한번 따라가 볼까? 우리가 지나온 하늘재 옆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미륵대원과 덕주사를 마의태자와 그 동생 덕주공주가 조성했다는 유래가 있다. 그리고 양평 용문사에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을 가는 도중 들러서 지팡이를 땅에 꽂아서 생겼다는 은행나무가 있으니 그렇다면 홍천 경유, 인제를 통해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여전히 동해안 루트를 타고 금강산으로 갈 수 있는 빠른 길이 있었을 것이라는 부정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충주가 직할시 성격의 도시였으며 여기서 한강이라는 수로를 이용하여 양평으로 이동한 다음 홍천 ~ 인제 ~ 금강산 루트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설은 아직도 마의태자 전설이 남아 있는 인제의 지왕동이나 왕터라는 지명이 신라부흥 운동설과 관련하여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떤 설에 의하더라도 이 국망봉은 마의태자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그런 봉우리가 된다.

 

 -  졸저 전게서 318쪽

 

바위 뒤로 올라가 1등급 대삼각점(영주 11)을 봅니다.

국망봉에서 이어지는 대간길은 비로봉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연화봉이 살짝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도솔봉이 보이는군요.

좌측으로 움푹 파인 곳이 묘적치(재). 

가곡면 일대와 삼태산.

소백 주릉.

구름이 없었으면 9봉8문을 어느 정도 어림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온 길과 신선봉.

조금 더 우측으로....

상월봉.

그 우측....

소태.

단체사진 촬영하고 비로봉을 향하여 다시 진행합니다

08:45

15분 정도 머물렀군요.

진행방향으로.... 

지도 #4

08:50

연신 폰만....

어의계곡.....

08:52

금수강산 형님과 함께.

여기서 좌틀하면 초암사 ~ 죽계구곡 ~ 배점리 루트입니다.

퇴계 이황과 주세붕이 즐겼던 루트죠?

배점리는 배순과 이황 때문에 생겨난 마을 이름입니다.

차라리 죽계구곡 입구의 배점마을 입구에 있는 배순의 정려비(旌閭碑)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즉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배순이라는 대장장이가 그 자리에서 점방을 차려놓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점방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백운동서원(지금의 소수서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서원에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들을 납품하게 된 배순은 서원을 드나들면서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어서 귀동냥으로나마 글을 익히고는 어느덧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어느 날 강학당 댓돌 아래서 귀동냥을 하고 있던 배순을 발견한 퇴계 이황은 연유를 물어보고는 간단하게 쪽지시험을 본 결과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을 확인하고 그에게 유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단다. 그 후 퇴계는 임기를 마치고 서원을 떠났고 그러고는 얼마 뒤 세상을 뜨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배순은 삼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선조가 죽었을 때에는 매월 삭망에 상복을 입고 산에 올라가 제물을 차려놓고 삼년 동안 곡제사를 지냈는데 이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때 배순이 제사를 지냈던 봉우리를 나라를 바라보는 산봉우리라고 하여 국망봉(國望峰’)이라고 불렀고 배순이 점방을 열었던 마을이라고 하여 배점(裵店)이라고 했다.

 

- 졸저 전게서 319쪽 

우리는 이 삼거리에서 우틀하며 고도를 낮춰 숲으로 들어갑니다.

소백 주릉을 진행하면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이죠.

한여름에 이곳에서 땀을 훔치며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능선길로 빠져 나옵니다.

좌측 비로봉에 마대 자루 같은 게 쌓여 있군요.

'공사중'이라는 얘기입니다.

09:30

지도 #4 '바'의 이정표를 지나고,

뒤로 돌아 국망봉을 봅니다.

좌측에는 삼형제봉이 더 우뚝해 보이고.....

가곡면 운해와 삼태산......

국망봉............

드디어 금계저수지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데 저 풍기읍 뒷산이 용암산635.5m인가요?

09:40

오래된 철계단을 올라, 

09:43

배점리 월천계곡 방향을 봅니다.

멀리 순흥저수지가 보이는군요.

09:46

어의곡 삼거리입니다.

대원들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고.....

가운데 용산봉 944m 좌측이 삼태산.................

그 좌측으로,

갑산732m과 그 좌측으로 금수산1016m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주목관리소와 제1연화봉 그리고 좌측으로 연화봉과 관측소의 제2연화봉까지.....

우측 운해 뒤로는 월악산 영봉!

소백산이 안구 정화제眼球淨化劑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군요.

덕유가 생각납니다.

무룡산에서 동엽령으로 가던 곳의 나무 계단이....

어느 여인네의 부드러운 허리 곡선을 연상시키고....

호남정맥의 사자산이 이런 모양이죠?

사자 머리와 사자 꼬리를 잇는 능선.......

그 비로봉으로 오룹니다.

10:02

예전 정상석.

올라온 곳을 돌아봅니다.

...............

중앙에 삼형제봉, 신선봉, 민봉이 차례대로 서 있고......

저 끝이 두타, 청옥 정도가 되려나....

그러면 중앙에 탖 같은 게 보이는 데가 함백산?

좌측 도솔봉.

중앙 제1연화봉.

주목 관리소 넘자마자 천동동굴로 빠지는 길이 나올테고......

그 뒤로 금수산....

한참 놀았으니 또 내려가야죠.

이제 순흥읍을 버리고 풍기읍을 만나 영주시 풍기읍과 단양군 가곡면의 도계를 따라 걷습니다.

주목과 어의계곡.

.....................

...................

뒤를 돌아 비로봉을 보고.....

어의계곡 삼거리 갈림봉.

연화 제1봉과 도솔봉.

..................

....................

10:40

데크에서 또 발이 묶이는군요.

후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좀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지도 #5

부드러운 능선.

달밭골을 따라 내려가 금계저수지를 봅니다.

지난 번 저 금계저수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팬션에서 1박을 하며 산행을 하셨다구요?

또 새우 얘기가 나오고....

11:37

제1연화봉을 지나면서 연화봉과 제2연화봉을 봅니다.

제1연화봉은 우측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도 비탐방입니다.

거기에 오르면 예전에 삼각점을 확인하면서걸어 놓은 표지띠가 있을 것인데....

그냥 통과!

제2연화봉을 내려오면서 비로봉을....

12:05

지도 #5의 '사'의 곳인 연화봉 삼거리입니다.

직진하면 연화봉을 놓치게되죠?

좌틀합니다.

12:09

연화봉입니다.

정상석과 너른 데크가 있는 곳.

철쭉제 행사가 이곳에서 열릴합니다.

천문대와 대간길.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음..

비로봉까지 한 줄로....

천문대와,

연화제2봉.

희방사 내려가는 길.

우측 중앙고속도로와 대간길.

 

지도 #6

12:49

단체 촬영을 마치고 자율 산행으로 죽령까지 진행하기로 합니다.

지루함이 시작됩니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하염없이 따릅니다.

13:00

그나마 제2연화봉 전망대가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좌측으로 슬음산671.3m에서 올라오는 능선이 보이고...

저 능선이 소백태극종주 상진대교 방향입니다.

13:05

제2연화봉표지석을 보고,

 

지도 #7

13:55

지루하게 50분 정도 내려오니 공단관리사무소입니다.

단양행 버스가 오늘도 손님을태우기에 여념이없고....

13:58

죽령 표지석과,

다음 구간 들머리를 보고는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10시간 정도 걸었군요.

물론 쉬는시간이 더 많았지만 덕분에 시력이1.5로 올라간 느낌을 받습니다.

뒷풀이는 순두부가 아닌 두부전골에 두부 부침까지....

정겨운 분들과 깨끗한 날씨 덕에 행복한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만 뺀다면....

다음 구간은 죽령 ~ 저수령이라.....

도솔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오래오래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