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산산악회에서 백두대간에 든다고 합니다.
이번이 3기이니 두 번 정도는 종주한 경력이 있군요.
보통은 북진北進인데 이번에는 남진南進으로 진행을 한다고 하고.....
원래 정석은 남진이 맞습니다.
대륙의 산줄기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관문에 백두산이 있고 우리는 그 산줄기를 이어가야 하니 그 시작은 백두산으로 보는 게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볼 때 백두산은 통일이 될 때 이어가기로 하고 우선은 지리산을 시작으로 북진을 하는 게 보통입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대간꾼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니 남진을 택하는 이들은 특별한 경우로 보통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북진을 했으니 이번에는 남진으로 대간을 진행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남진이 정석 아니냐!"는 정통파를 자처하는 이들의 변辨일 것입니다.
어쨌든 뫼산에서는 남진으로 진행을 한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동참을 권하시는군요.
풍부한 산행 경력의 마음 씀씀이도 남다른 다올 대장님께서 3기를 이끄신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기로 합니다.
백두대간!
백두와 두류를 잇는 산줄기라는 뜻이겠죠.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대간꾼들의 공통된 심정일 겁니다.
한때는 그러니까 약 70년 정도 일본인들에 의해 이름조차 잊어버렸고 어쩌면 우리 뇌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를 뻔했던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요?
백두산은 대륙의 산줄기들을 하나로 모은 다음 이를 다시 우리나라 전체로 골고루 퍼트렸다. 대륙의 모든 기운과 일체의 생명의 원천은 이 산줄기를 타고 물줄기를 만들고는 곳곳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조선산맥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백두대간이라 이름했다.
조선산맥 아니 백두대간이라는 산줄기 개념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다. 하긴 그 백두대간과 정맥이라는 산줄기들은 일제강점기 시절과 식민교육에서 해방되지 못했던 기간 동안 잠시 우리 곁을 떠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70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 기간을 제외하고 백두대간과 정맥은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우리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르며 우리나라 모든 산과 산줄기 그리고 물과 물줄기의 근간이 되는 아버지 산줄기 백두대간. 우리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산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녹아 있는 백두대간. 일본의 지질학자가 도용(盜用)한 ‘산맥’ 개념과의 충돌로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백두대간.
그렇게 일제에 의해 고초를 겪고 난 후, 다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허리가 잘린 채 신음하고 있는 백두대간. 그래서 오늘도 반쪽만 그 답사를 허락하여 결국 미완으로 마무리하여야만 하는 백두대간.
그 백두대간에 기대어 살았던 예전 민초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 백두대간으로 인해 그 부근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우리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어느 순간은 삼국시대의 백성으로, 어느 고개를 넘을 때에는 고려 시대의 사람으로 또 어느 산을 오르내릴 때에는 조선 사람이 되어 그 백두대간을 걸어보면 어떨까.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8쪽 이하
산줄기를 걸을 때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해서는 별로 재미 없습니다.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주변 산줄기도 보고 이 고개와 저 봉우리에 얽혀있는 얘기도 들어보면서 가면 산줄기를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 산은 무엇이겠습니까?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은 우리 민족에게는 초월적 존재 아니겠습니까?
거의 우리의 본성처럼 내재되어 있는 산은 자연과 신 그리고 하늘과 맞물려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너무 친숙하고 그러면서도 외경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 산의 중심에 백두대간이 있습니다.
남진입니다.
무박으로 이 대간을 진행할 경우 남진과 북진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합니다.
낮에 진행하던 곳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되었고 어둠 속에 지나던 어느 곳은 전혀 낯선 세상이 되어 다가옵니다.
오늘 저로서는 첫 구간이 남진인 경우는 처음입니다.
남진으로 진행하는 북설악의 첫 모습은 어떨까요?
자, 그럼 슬슬 그 백두대간에 들어가 봅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1. 26. 일요일 2. 동행한 이 : 뫼산산악회 대원 3. 산행 구간 : 백두대간 남진 1구간 (진부령 ~ 마산 ~ 병풍바위 ~ 대간령(새이령) ~ 신선봉 ~ 상봉 ~ 미시령 4. 산행거리 : 15.69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진 부 령 02:50 마 산 봉 5.83 05:17 147 대 간 령 3.56 07:12 105 신 선 봉 2.95 09:15 123 30분 대기 상 봉 1.37 11:13 118 50분 대기 미 시 령 1.94 13:09 116 계 15.65 km 10:19 08:59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지금이야 이 진부령이 대간길의 시작이자 마지막 종착점이었지만 예전에 북진하는 이들의 꿈은 향로봉까지였습니다.
오늘 구간 하산을 하여 미시령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나눈 대화 중 한 대원-다음엔 닉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향로봉 유감
“형. 여기서 끝난 게 아니잖아? 향로봉은? 진부령 ~ 향로봉 구간은 군부대 허가 신청을 내면 된다고 하던데.”
“그래. 예전에는 그랬지. 그 마지막이 2009. 4. 30. 이전까지라고 보면 돼. 물론 그 이후라도 억지로 들어갔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는데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불가(不可)야. 우선 이곳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고성군 문화관광과와 접촉을 해야 돼.”
① 우선 고성군에 가려는 묵적이 적시된 출입허가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여기에 학술목적, 공무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② 이유가 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할 산림청에 허가 신청을 촉탁하게 되는데, 이곳이 산림유전자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 하고, ③ 설사 통과되었더라도 군부대와 협조가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예전과 다를 것이라 한다.
한 산악회에서 한 질의에 대해 동부지방산림청의 회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 안녕하십니까? 산림행정에 관심을 가져 주심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지방청장과의 대화방에 제기하신 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립니다.
◎ 민원인께서 등산하고자 하는 지역은 산림 내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보호․관리가 필요한 지역인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고시【동부지방산림청 고시 2006-11호(2006. 10. 30)】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또한 산양서식지 및 미기록종 보존을 위하여 일제조사가 필요한 지역으로 산림훼손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성이 있고, 군부대에서도 향로봉 출입통제 지침(12사단 보안행정예규(제108조))에 의거 등산 목적의 산행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향로봉 지역 도로는 군사 작전용 도로로서 개설 당시부터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미확인 지뢰지대가 분포되어 있어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출입 허용 시 전국 모든 단체 및 개인 등과의 형평성 논란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등산 목적의 입산은 통제하여야 함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졸저 전게서 569쪽
도로 사정이 좋아지다 보니 버스가 천천히 운행을 해도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합니다.
02:50
진부령 표지석입니다.
북진하는 분들은 이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약 720km를 걸어오면서 생겼던 별별 일들에 대한 소회일 것입니다.
오늘 첫 출범에 대한 기념 인증샷을 날립니다.
25분 중 23분 만 오늘 산행에 참석을 합니다.
오늘 진행은 고성군 간성읍 안에서 시작합니다.
표지석 우측 변전소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비알을 치고 오르면,
백두대간종주 기념 공원입니다.
개인 혹은 산악회의 종주 기념비를 세워둔 곳입니다.
이제는 공간이 다 차서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좁은 산길과 임도를 번갈이 진행을 하면,
예전에는 농장 지붕까지 올라가 짖어대던 개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농장이 다 폐쇄된 것입니다.
임도를 따라 마을을 크게 싸고 돕니다.
원래 대간길은 좌측으로 올라 구릉을 타고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편의상 혹은 그런 점에 대한 인식없이 그냥 이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번 뫼산 팀들은 이런 것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하며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사진 #1
올바른 루트는 이곳 즉 지도 #1의 '가'에서 사면을 치고 올라 641.8봉에서 4등급삼각점(간성449)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찾는 사람들이 없어 흙속에 파묻혀 있는 삼각점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사진은 2016. 11. 19. 이곳을 답사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 루트가 지도 #1의 보라색 실선입니다.
이후 대간길은 온전하게 그 루트로 진행하지 못합니다.
지도 #1의 '나'의 곳에 군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여 파프리카 농장(비닐 하우스)이 끝나는 곳에서,
좌틀하여 이 계단을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우회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2009년 이곳을 지날때 제 대간 졸업을 축하해 주려는지 비닐하우스의 농부가 틀러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ELO의 Midnight Blue였었는데....
참고 사진 #2
어쨌든 부대 철조망을 지나 지금은 굳게 문이 잠긴 부대앞을 통과한 다음 우틀하여 부대 차량호를 지나,
1번 도로로 접어듭니다.
지도 #1의 '다'의 곳에 있는 흘리령입니다.
이 흘리령이 아주 중요한 고개입니다.
생각없이 그냥 걷겠다고 하면야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대간을 걷기로 작정한 만큼 뭔가를 얻어야겠죠?
이따 화암재 정도에서 뒷사람들 기다리면서 얘기하기로 하죠.
지금 이곳까지 고개 두 개 넘었습니다!
진부령 그리고 흘리령.
03:57
우틀합니다.
오늘 사진.
그리고 같은 위치의 예전 사진입니다.
마산봉을 따릅니다.
지도 #2
아이젠을 해야 할 것도 같은데 우선은 오르막이라 그냥 진행합니다.
04:49
지금은 그저 이런 모습인데 낮에는 어떨까요?
앞 줄이 모두冒頭에서 얘기했던 향로봉 줄기.
좌측 높이 솟아 있는 게 매봉산.
무박 남진이라 억을하시죠?
그럴 필요 없습니다.
북진하시는 분들은 또 다른 곳을 못보니까....
05:14
마산봉 3거리입니다.
대간길은 이 마산봉을 올랐다 다시 내려와 좌틀해야겠죠?
이정표의 병풍바위 방향으로 말입니다.
바로 마산입니다.
마산(馬山)의 유래
마산봉을 정면으로 보며 내려간다.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샘물 표시가 되어 있다. 마시기에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물이다.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산 삼거리를 지나 2004년 이설된 2등급삼각점(간성24)이 있고 정상석 두 기가 서 있는 마산1052.0m이다.
마산은 ᄆᆞᆯ산에서 왔다. 말(馬)은 중세 국어에서는 ‘ᄆᆞᆯ’이었다. 그런데 고대국어 체계에서는 뒤에 모음이 있는 경우 두 음절로 말하는 ‘개음절어’ 체계여서 고려시대 이전에는 ‘말’의 경우 ‘ᄆᆞᄅᆞ’로 발음 되었을 거라고 한다. 따라서 이 ‘ᄆᆞᄅᆞ’는 말(馬) 말고도 ‘마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지금의 ‘산마루’와 같이 ‘꼭대기’ 혹은 ‘높은 곳’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의미의 잔재가 馬峴, 馬山, 馬嶺 등이다. 그러니 보통 지명의 유래나 전설 등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말의 형태를 닮았다.’는 등의 동물 말(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 마산도 생김새와는 관계없는 단지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에 불과하다.
- 졸저 전게서 564쪽
이 마산에는 2등급 삼각점과,
예전 정상석이 있습니다.
새 정상석은 2016. 11. 19. 세워졌습니다.
그때 도원리 분들이 이 정상석을 세웠는데 그 날 막걸리 몇 잔 얻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돼지 머릿고기를 반숙으로 가져와서 좀 찝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이곳 삼각점을 보면 '2004 이설'이라고 표기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보통은 재설再設이 많고 복구復舊가 그 뒤를 이으며 이설移設은 사실 흔치 않습니다.
삼각점의 의의
삼각점은 지도를 그리는 기준으로 삼각측량을 해서 점의 위치를 경도와 위도 상으로 정확하게 결정해 놓은 지점이다. 다른 지점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도 기준점의 역할을 한다. 삼각점은 원래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0~1918 일본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토지수탈을 위한 지적도 제작, 기간사업건설 그리고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1:50,000 지도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삼각점은 전국에 2.5km~5km 간격으로 대부분 산 정상에 화강암(일부 동판)으로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에 붙어있는 것 중 지명(설악11, 설악26, 연곡319, 단양425 등)은 1:50,000지형도의 도엽명이다. 우리나라의 고도는 육지에서는 인천만의 평균 해면을, 제주도에서는 제주만의 평균 해면을 기준한 것이다. 이 기준면 설정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인천항의 조위(潮位) 측정을 해서 평균 해수면을 산정하였다. 수준 기점(인천시 중구 항동 1가 2번지)을 결정하여 잠정적으로 국토의 표고 기준치로 이용하고 있는데, 그 후 이 기점을 기준으로 정밀 수준 측량을 하여 표고 원점 26.6871m 를 결정하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원점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 253번지 인하대학교 교정 내에 설치되어 있다. 숫자(11, 26, 319, 425 등)는 삼각점의 등급으로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 301부터 399는 3등삼각점,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 1등 삼각점은 대삼각본점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남한)에 174개, 2등 삼각점은 대삼각보점으로 1,102개, 3등 삼각점은 소삼각1등점으로 3,045개, 4등 삼각점은 소삼각2등점으로 11,753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졸저 전게서 85쪽
정상에서 인증 사진 한 컷하고.....
좌측의 두 분이 우리 팀원 중 가장 나이가 적은 분들이라고 하시는군요.
산에 다니기 쉽지 않은 나이인데 우리나라 산줄기를 다 섭렵하실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줄기를 가장 많이 타신 자하 신경수님 연세가 현재 67세이시니 충분하십니다.
다올대장님께서 대간길이 초행이신 분들을 직접 챙기시느라 일단 제가 선두에 섭니다.
삼거리로 돌아나와 좌틀하여 병풍바위를 향합니다.
여기서 고성군 토성읍을 만나면서 이제부터는 간성읍과 토성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다시 삼거리가 나옵니다.
좌측으로 사면을 따르는 길과 병풍바위로 직진하는 길입니다.
지금 시각 05:42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1시간이 남았습니다.
병풍바위로 올라가봤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뒤에 다시 북진을 할 때 이곳을 놓치시면 안 되므로 일단 냄새나 맡고 가기로 합니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지나 계속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면,
05:49
드디어 병풍바위봉 정상입니다.
1년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향로봉 라인을 봅니다.
우측 끝에 군시설물이 보이는 향로봉1287.4m.
그 좌측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1305봉.
그 좌측으로 둥그스름하게 생긴 봉우리가 둥글봉1276m.
조금 더 좌측으로 군 비상도로가 올라가는 끝지점에 안부 좌측이 칠절봉1172.2m.
좌측 매봉산1271.1m.
그 매봉산 뒤로 양구 소양(도솔)지맥 상의 대암산1309m이 보입니다.
지나온 봉우리.
좌측 신선봉 그 우측이 상봉.
가운데 멀리 황철봉 라인
그 좌측 뾰족봉이 화채봉.
정가운데 뾰족한 삼각형 봉우리가 귀떼기청봉.
그 라인 우측 끝이 안산.
안산과 서북능선 사이의 뒷 라인이 남설악의 가리봉과 이어진 주걱봉1386m 그리고 삼형제봉1232m 라인이 육안으로 뚜렸합니다.
대단한 산의 나라입니다.
조금 우측으로.....
더 우측.
우측 매봉산.
매봉산과 칠절봉으로 이어지는 향로봉 라인.
백두대간의 칠절봉에서 갈라지는 매봉산 ~ 명당산 ~ 새골고개 ~북천을 약 26.3km의 제법 긴 단맥이 됩니다.
반면 향로봉 에서 우틀하여 건봉산 ~ 고황봉 ~ 구선봉으로 가는 줄기는 약 46.1km의 향로지맥이 되지만 들어갈 수 없는 북한 쪽 지맥이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갑니다.
거친 내리막이죠?
아이젠을 찹니다.
삼거리죠?
아까 사면치기를 한다면 여기서 병풍바위 하신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제 저지대를 만나 편한 내리막을 걷습니다.
아!
오랜만이군요.
제가 제작한 건데 '산경표 따르기'의 회원 누군가가 달고 지나가셨군요.
산자분수령이라....
산자분수령이라는 개념은 대동여지도의 발문跋文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본문의 개념과는 달리 지금은 산줄기의 한 명제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간단하게 현대적 의미의 그것을 살펴볼까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그리고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자. 아까 한 얘기 반복해서 얘기할 게. 가만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봐. 하나의 산줄기(A)에서 다른 산줄기(a)가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분명 물줄기(b)가 나오고 그건 분명 계곡을 형성하게 돼. 크든지 작든지 말이야. 그렇지 않아? 산줄기가 분수령이 되는 건 확실하고 그 산줄기에서 내려 온 물들은 다 계곡으로 모이잖아? 그 개울이 모여서 천(川)이 되고 그 천(川)이 모여 조금 더 큰 천(川)이 되고 그러고는 그게 모여서 다시 강(江)이 되고, 그 강(江)들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고... 이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어?”
“그건 알지. 그런데 또 합수점이라는 건 또 뭐야? 산줄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고?”
“합수점(合水點). 말 그대로 물이 모이는 지점이지. 양수리에 가면 ‘두물머리’ 있지? 합수점의 우리말이 두물머리 아니겠어? 양수리의 양수(兩水)가 곧 두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 개의 물줄기 가령 남한강과 다른 하나의 물줄기 가령 북한강이 만나는 곳. 그곳이 두물머리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두물머리가 무수히 많은 셈이지. 그 두물머리를 한자로 쓰면 합수점이고.”
자전거를 타는 장감독이니 두물머리 얘기를 꺼내니 귀가 번쩍 열리는 것 같다.
“양수리. 나도 잘 알지. 자전거 타고 가봤던 곳이니. 그런데 그 합수점이 산줄기와 무슨 상관이야?”
“그럴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야. 조금 전 얘기했어. 이 합수점은 산줄기를 얘기할 때 아주 중요한 개념이야. 나중에 자세히 보겠지만 산경표라는 책은 이 ‘합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론이야. 그 핵심은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고.”
“정말 머리 아프게 만드네. 산자분수령은 또 뭐야!”
장감독이 짜증을 낼만도 하다. 사실 천왕봉에 아직 오르지도 못했다. 즉 대간길에 아직 한 발도 내딛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복잡한 얘기를 많이 하는가 하는 불평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래. 간단하게 산자분수령을 보자. 앞으로 계속 나올 얘기니까 미리 간 좀 보자는 거야. 지도 좌측을 보면 가장 굵은 선이 백두대간이야. 그리고 좌측 위로 남덕유산이 보이지? 남강기맥도 보이고. 이게 백두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가지를 쳤다는 걸 보여주는 개념도야. 앞으로 자꾸 애기할 거지만 우리나라 산줄기에는 반드시 계급이 존재해. 위계질서가 명백하다는 것이지. 같은 급이라도 서열이 있게 마련이고. 즉 군대에서 병장이라고 다 같은 병장이 아니잖아? 이게 아주 재미있는 많은 것을 보여주게 돼. 그러니까 그 계급 개념들의 한 가지인 기맥(岐脈)이니 지맥(枝脈)이니 하는 것들은 나중에 보기로 하자. 우선 백두대간(A)에서 남강기맥(a)이 가지를 쳤다는 것만 생각하자고. 자, 봐. 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갈리는 그 사이로 남강(b)이 흘러나오지? 아까 얘기했잖아. 한 가지에서 다른 한 가지를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물줄기가 하나 흐르게 된다는.... 바로 그 원리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를 영어로 표현해보면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정도가 되겠지. 이따 자세히 볼 거니까 우선 개념만 알아둬.”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법적인 해석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산 곧 산줄기는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고 해석하자. 이를 ‘산자분수령의 제1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自’를 스스로란 ‘부사(副詞)’로 본 거다. 고로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까 물을 만나면 그 산줄기는 맥을 다하게 된다. 그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합수점도 그냥 합수점이 아닌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러면 이 남강기맥은 어디서 맥을 다하여야 하나? 그렇다 남강보다 한 등급 위인 강과의 합수점에서. 그 강이 어느 강인가? 낙동강이다.
그러니까 이 남강기맥은 어디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도 이미 나왔다.
당연히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곳에서 끝나야 한다(산자분수령의 제2법칙).
그곳이 바로 합수점이다. 위 산경도의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의 쌍절각 부근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이고 이곳에서 남강기맥은 그 맥을 다 한다.
고로 우리가 남강기맥을 산행코스로 잡아 걷는다면 남덕유산에서 시작하여 금원산 ~ 기백산 ~ 황매산 ~ 한우산을 거쳐 쌍절각이 있는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의 도상거리 약 139.3km의 능선을 걷게 되는데 이를 한 번에 걷기가 힘드니까 각자 혹은 각 팀의 산행능력에 따라 6 ~ 10구간으로 나눠 종주하게 되는 것이다.
졸저 전게서 39쪽 이하
06:32
삼거리를 지나,
06:34
889봉에 오릅니다.
바위봉巖峰인 이곳에서 조망이 트이는데......
육안으로 주위를 살펴보겠다는 욕심은 아직 좀 이릅니다.
다만 아래 대간령(새이령)은 운해가 완전히 덮고 있군요.
동해로 붉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지금부터 대간령까지는 계속 너덜지대입니다.
당연히 감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로 길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겨우 찾느라고 찾아 내려가는데 '등산로 아님' 팻말이 나오고....
갑자기 등로가 좌틀하여 올라가는 모양새.
이건 아닌데...
지금은 진행방향으로 왼쪽을 보고 내려가야 하는데...
급히 오룩스를 살펴보니 벗어나서는 다른 길로 올라가고 있는 중!
대간길에서 알바를 하다니!
저로서는 처음 있는 일.
100m 정도를 되돌아나가 팻말 방향으로 가보니 바로 그 좌측 바위 옆으로....
대원들에게 미안하군요.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좁은 등로 양옆으로는 상고대가....
그런데 색깔이 왜 이런지....
핸드폰 조작을 하다 '전문가용'을 만졌나?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냥 오토로 놔둬야 하는데....
07:12
만지작거리다 보니까 대간령이라고도 불리는 새이령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여기서 인제군 북면을 만나게 됩니다.
이 대간령이 예전 민초들에게는 중요한 고개였습니다.
새이령과 석파령
비알을 내려가니 새이령이다. 대간령, 샛령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또 조선시대의 지리지에는 소파령(所坡嶺) 혹은 석파령(石破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새이령이란 간령 즉 진부령과 미시령의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 같다. 혹은 현대인의 개념으로 볼 때에는 마산(馬山)과 신선봉 사이의 고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든 그걸 한자어로 표기하니까 간령(間嶺)이 되었고 지나다니던 행인들이 많아 그 간령의 규모가 컸으니 ‘큰 간령’이어서 여기에 '대(大)'를 붙여 대간령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참고도 #1
해동지도의 고성군 부근을 보면 대간령 대신 석파령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지도는 조금 이따 마산봉을 볼 때 흘리령, 마기라산과 관련하여 한 번 더 볼 것이다. 이 새이령에서 인제군을 버리고 고성군 간성읍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고개가 고성군 토성면, 간성읍
한편 이 고개는 인제 용대리와 고성의 도원리를 연결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개였다. 미시령이 워낙 높고 험해 주민들은 그 고개 대신 저항령이나 이 새이령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원리 하니까 무릉도원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긴 도원리 같은 경우에 예전부터 7,000평 정도의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의 동네였다. 일찍이 이중환은 영동 지방이 '땅은 메말라서 종자 한 말을 심어야 십여 말을 거둘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오직 예외인 곳이 통천과 고성이라고 했으니 바로 이 지역을 지목한 것이다.
그러니 북설악의 4개 큰 고개는 늘문령이라고 부르던 저항령, 큰령이라고 부르던 미시령, 대간령이라고 불리던 이 새이령 그리고 진부령 등으로 정리가 된다.
- 졸저 전게서 552쪽 이하
오늘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했죠?
저는 빵을 가져왔으니 빵으로....
날이 추워서 제대로 앉아 있기도 어렵군요.
어쨌든 후미가 올 때까지 좀 인내하고 기다려야죠.
다올대장님도 도착을 하시고...
후미대장님께 연락을 취하니 후미를 챙기시느라 시간이 더뎌진다고 하시는군요.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너무 춥다고 하니 보온을 위해서라도 선두 먼저 출발을 합니다.
다음 봉우리는 신선봉입니다.
대한민국 산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봉우리 신선봉.
대간령에서 30분 정도 머무르다 출발합니다.
이제부터는 간성군 토성면과 인제군 북면의 군계를 따릅니다.
신선봉을 향해 오르다 뒤를 돌아봅니다.
드디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측 봉우리가 암봉인 889봉.
조금 전 고생을 하며 내려온 너덜봉입니다.
진행 방향으로는 신선봉에서 내려오는 줄기가 소간령(작은 새이령)으로 흐르는 모습이 보이고....
지도 #3
조금 더 고도를 높이니 지나온 봉우리들이 한 눈에 잡힙니다.
07:56
거적으로 방커의 거치대 입구를 막아놨군요.
08:12
그러고는 868.4봉입니다.
4등급삼각점(설악415)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신선봉을 봅니다.
신선봉으로 오르기 전 만나는 삼거리 바위봉에서 우틀하여 진행을 해야 무난한데 쌓인 눈이 그 좁은 길을 확인하지 못하게 합니다.
덕분에 고생 좀 했습니다.
이따 다시 보죠.
우측으로 멀리 안산이 보입니다.
멀리 뒤가 매봉산.
우측이 병풍바위봉에서 늘어진 줄기.
병풍바위와 마산.
바위들이 얼었습니다.
어찌보면 소고기의 마블링 같기도 하고....
그렇죠?
등심....
용대리에서 남교리로 가는 도로는 운해로 덮혔고.....
숲길을 숨가쁘게 올려치는데 비박꾼 두 명이 고개를 빼꼼히 내놓고 쳐다보고 있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제 책을 무섭게 독파한 '좌충우동 백두대간'의 멤버로 저를 잘 아는 분이셨습니다.
우리 차에 동승하여 귀경하였습니다.
지나온 헬기장 봉우리도 이제는 많이 멀어졌고....
09:03
삼거리 바위봉을 치고 올라갑니다.
멋진 상고대.
노루궁둥이 버섯 같기도 하고...
도저히 삼거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곳인데....
눈 때문입니다.
어쩔 수없이 헬기장 너머 바윗길로 진행해야겠군요.
길도 안 좋을 텐데.....
저렇게 깨진 돌들이 집중적으로 풍화작용을 받아 흘러내리면 그 곳이 바로 너덜지대가 되겠군요.
신선봉으로 오릅니다.
09:20
드디어 신선봉입니다.
이곳에 오르면 정말 신선이 된 느낌이 옵니다.
저 646.7봉을 선인대라고도 하는데 아마 저 바위봉이 울산바위 촬영하기에는 최적의 전망대라고 하죠?
앞이 상봉 그 뒤 좌측봉이 오늘의 마지막 봉이 될 무명봉으로 지도 #4의 '마'의 곳입니다.
그 너머가 샘물 이른바 '백두대간 샘터'가 있고 화암사로 내려갈 수 있는 능선이 빠지는 길이죠.
그 상봉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능선은 창암으로 흘러내려가고.....
사실 저 상봉과 무명봉은 기억에 없는 봉우리들입니다.
매번 새벽에 진행을 했었으니...
북진하는 대간꾼들의 공통된 현상입니다.
용대리에서 남교리로 진행하는 46번 도로는 운해에 잠겼습니다.
신선봉 아래 삼거리 바위봉.
새이령은 구름에 덮혔고.....
지나온 줄기를 돌아보고....
운해가 끼니 아까와는 또 다른 모양새고 분위기입니다.
중앙 아래 암봉 뒤줄 좌측 병풍바위봉 그리고 그 우측이 마산봉.
그러니 당연히 보여야 할 그 뒷줄의 향로봉 라인과 그 뒤의 금강산 비로봉 라인이 아쉽기만 합니다.
제가 새벽서부터 호들갑을 떨었던 지라 대원들은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그래도 대청봉을 볼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예전 사진을 빌려오면...
마산 뒤 오른쪽의 경사진 봉우리가 향로봉이고 사진에는 흐릿하지만 그 뒤 한 줄로 늘어선 줄기가 금강산입니다.
육안으로는 명백합니다.
마산봉 우측 줄기.
우측으로 뚝 떨어졌다가 솟구친 봉이 죽변산680.3m.
그 아래로는 임도가 보이죠?
그 임도는 마산봉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임도입니다.
아까 본 마산봉의 새 정상석을 도원리 주민들이 저 루트를 이용하여 1.4톤 반트럭에 실어 운반한 것입니다.
도원저수지.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벼농사가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택리지의 이중환을 떠올립니다.
원래는 삼거리 바위봉으로 다시 돌아나가 진행을 하여야 하는데 아까올라오다 보니 그 루트를 찾는 게 용이하지 않습니다.
하는 수없이 그냥 헬기장으로 나가 바위 뒤로 진행을 하여 너덜을 타고 나갑니다.
군용 pp선도 함께 진행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난해한 코스입니다.
삼거리로 나가 좌틀하여 진행하는 게 훨씬 쉬울 것입니다.
09:51
그러고는 화암재입니다.
좌틀하면 편하게 화암사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두冒頭에서 얘기한 고개들을 정리해 보기로 합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본다면 진부령 ~ 흘리령 ~ 새이령 ~ 화암재 ~ 미시령 순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산경표를 본다.
산경표에는 금강산을 넘은 대간 줄기가 회전령을 지나 진부령(珍富嶺) ~ 마기라산(馬耆羅山) ~ 흘리령(屹里嶺) ~ 미시파령(彌時坡嶺) ~ 설악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산경표에는 진부령 다음에 마기라산이 그리고 그 다음 고개가 흘리령으로 각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지명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데 대간령 혹은 새이령의 옛이름은 분명 흘리령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파령 혹은 석파령이라는 이명(異名)이 있음을 조금 전 알아봤었다. 그러니 해동지도에서 보듯 이 석파령과 흘리령은 전혀 다른 고개다.
흘리령과 석파령은?
한편 한국지명유래집을 보면 지금의 향로봉1287.4m이 신라시대에는 가라리봉이라고도 불렸던 마기라산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간성 서쪽 30리’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 이는 산경표의 표기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분명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는 두 개의 고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세 개의 고개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오자면 흘리령 ~ 사이령 ~ 화암재 등이 그것이다. 사이령은 명백하니 결국 ①흘리령과 ②석파령의 위치와 존재 여부다
①먼저 흘리령을 보자. 분명 진부령이나 미시령이 열리기 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고개가 지도에 나와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 그렇게 볼 때 흘리령은 고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음은 분명하다. 고성의 옛 지명이 달홀(達忽)이었으니, 달(達)은 고(高), 월(月) 등 높은 곳을 말하고 홀(忽)은 마을을 말하니 고성 자체가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그리고 흘(屹)은 홀(忽)보다 더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이니 곧 흘리(屹里)는 고원에 있는 동네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흘리령은 흘리에서 중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름이니 불과 40년 전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이 흘리령을 요긴하게 이용하던 고개로 기억하고 있다. 흘리령의 존재와 위치가 명백해진 만큼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산경표의 표기가 잘못된 것으로 ‘마기라산 ~ 진부령 ~ 흘리령’ 순으로 표기됐어야 했다. 흘리령의 존재는 이따 현장에서 확인해보자.
이렇게 하면 마기라산(향로봉) ~ 진부령 ~ 흘리령 ~ 새이령(대간령) ~ 석파령(화암재) ~ 미시령으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대동여지도의 견해는 어떨까?
마기라산(향로봉) ~ 진부령 ~ 흘리령 ~ 연수파령(미시령)으로 되어 있으니 이 결론과도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견해에 불과하다.
- 졸저 전게서 564쪽 이하
화암재에서 후미를 기다리느라 약 30분 정도 추위에 떱니다.
뒤에서 '루이'님이 좀 처지시는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간길이 초행이시니....
두어 번 더 고생하시면 다리에 대간 근육이 생기실 겁니다.
그때까지 조금 더 고생하시고 시간 되시면 다음 구간에 대비해서 좀 긴 산행을 하시면 됩니다.
상봉으로 오릅니다.
이제 신선봉도 멀어졌고.....
그 좌측으로 병풍바위봉과 마산봉도....
10:48
지도 #3의 '마'의 곳입니다.
눈에 줄이 덮혀서 보이지가 않더군요.
분명히 있던 곳이었는데....
무조건 바위를 잡고 오르다 마지막 바위 두 곳은 손이 닿질 않습니다.
아래 대원들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때 좌측 바위 옆으로 뭔가가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눈에 덮혀 있는 로프입니다.
이게 없었으면 우회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을 겁니다.
대원들 한 분 한 분 차례대로 올라옵니다.
지나온 줄기....
10분 정도 걸려서 선두 그룹 15명 무사히 첫 번째 관문을 돌파합니다.
순간 병풍바위 쪽이 다 가려지면서 눈이 휘날리기 시작합니다.
좌측으로 통성면 신평리 방향.
화암사禾巖寺도 내려다 보이는군요.
11:00
이제 상봉도 지척입니다.
두 번째 절벽 구간도 로프를 이용하여 무사히 오릅니다.
오늘 구간 중 위험 지역은 다 꿑났습니다.
이제 상봉을 오른 다음 너덜 한 군데만 더 통과하면 될 것입니다.
11:12
상봉입니다.
지도에는 1242.6봉으로 표기되어 있고....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후미를 기다리기 위하여 상봉 지나자마자 나오는 곳에서 바람을 피합니다.
46분이나 기다리는데 다올대장님과 후미 그룹은 아직도 위험 구간을 통과하지 않으셨군요.
차량은 눈때문에 미시령을 올라오지 못 한다는 연락을 받고 더 기다리기에는 저체온증의 염려도 있어 다올대장님과 통화를 한 후 출발하기로 합니다.
12:00
상봉 바로 아래 바람막이 터를 출발합니다.
지도 #4
저 무명봉을 넘으면 되는데 장갑이 이미 얼었으므로 장갑을 교체합니다.
얄아서 그런지 손이 시려옵니다.
저 무명봉을 넘어,
12:29
너덜 지대를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면 샘터입니다.
지도 #4의 '바'의 곳이죠.
작년 이맘때 지날 때도 저 폴대만 세워져 있었죠?
샘터를 나와 조망이 트이는 곳으로 빠져나오니 드디어 미시령 건너 설악의 저편이 보이는군요.
1103.2봉에서 왼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울산바위로 진행하게되죠?
이른바 설태 즉 설악태극종주 루트입니다.
현재 우리 팀에는 저 설태를 한 대원이 두 명이 있더군요.
대단한 기량입니다.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북능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시령 도로에는 개미새끼 하나 안 보이고....
하산지점을 겨냥합니다.
바로 저 곡선 계곡으로 내려가면 될 것입니다.
12:58
울산바위에게 작별을 고하고....
사실 울산바위의 옛 이름은 천후산(天吼山)이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천후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바위에 부딪쳐 소용돌이를 치면서 마치 하늘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울음(鳴)산이 울산이 되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중요한 이름이 이산(籬山)인데 생김새가 울타리(籬)를 쳐놓은 것 같다고 ‘울타리 籬’를 썼던 것이다. 실제로 울산바위는 아래서 보건 혹은 위에서 보건 바위로 둘러친 큰 울타리 같이 보이기는 한다. 이런 이유로 생긴 울산바위가 지역이름인 울산(蔚山)으로 와전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졸저 전게서 540쪽
'아'의 곳을 겨냥하고는 지도 #4의 '사의 곳에서 우틀하여 사면을 치고 내려갑니다.
사면에는 어느 정도 식별 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나 있습니다.
많이 다닌 길이라는 것입니다.
공단 측과 대간꾼들의 끊임 없는 싸움.
공단 직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가야만 하는 대간꾼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쨌든 훼손은 최소한으로.....
적발되었을 경우는 과태료를 납부하여야 하죠?
그 절차를 알아볼까요?
“형. 여기서 만약 공단직원들에게 적발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자연공원법 규정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지.”
과태료 부과
국립공원 안에서의 위법행위는 자연공원법 규정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자연공원법은 자연공원의 지정·보전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자연생태계와 자연 및 문화경관 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법제28조에는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 등 자연공원의 보호를 위한 경우 사람이나 차량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 제34조에 의하여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있는 공단 직원은 위반자를 적발할 수 있고 제86조 2항 2호의 규정에 따라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적발한 공단직원은 시행령 제47조에 의거 그 위반행위가 발생한 장소를 관할하는 시장, 구청장, 군수에게 그 인적사항 및 사진 · 비디오테이프나 그 밖의 영상기록매체 또는 무인단속장비에 의하여 촬영한 사진 등의 자료와 위반 장소 · 위반내용 등을 기재한 서류를 갖추어 이를 통보하여야 하고, 이 통보를 받은 시장 등은 법 제86조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 · 징수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이 통보를 받은 지자체에서는 위반자에게 ‘과태료 처분 사전 통지’를 하게 되는데 이 ‘사전 통지’를 받은 위반자는 과태료를 소정의 기간 내에 ⓵납부할 수도 있고 또는 ⓶의견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⓵자진 납부할 경우 20% 감경 받을 수 있으며 ⓶의견서를 제출할 경우 지자체에서는 의견을 청취한 후 ⓶-1이유가 있을 경우 부과를 하지 않고, ⓶-2이유 없다고 판단 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위반자는 ⓶-2-1처분 받은 과태료를 납부하거나 ⓶-2-2이의 신청을 할 수 있고, 이 이의 신청에 따라 법원에서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과태료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적발 되었을 경우 공단직원은 적발보고서를 작성하겠지. 그리고 장감독은 거기에 서명을 하게 될 것이고. 만약 아까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거기에 찍힌 사진이 증거자료가 되겠지.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이곳이 속초시이므로 속초시장에게 과태료 처분 대상자 적발 통보를 하겠지. 그럼 속초시장은 장감독에게 사전통지를 하겠고. 내기 싫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견을 진술하고....뭐 그런 절차야.”
- 졸저 전게서 548쪽 이하
오늘 눈이 왔다고 하여 이렇게 미시령 구도로는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죠?
다음 구간 때는 한층 쉬울 것입니다.
다음에 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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