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멍한 상태에서 산행을 한 기분입니다.
약에 취한 듯한......
오늘 구간은 하늘재 ~ 마패봉을 지나 조령3관문까지 진행을 합니다.
포함산, 주흘산, 부봉, 신선봉 등이 멋진 조망을 보여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구간이 중요한 것은 여기서 두 개의 지맥이 분기한다는 것이죠.
신선지맥과 달천지맥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특히 달천지맥의 분기점은 애매하기도 하고 별다른 안내판도 없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 찾아봐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행방식이야 개개인의 취향에 달린만큼 지맥 산행을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맥 산행을 한다고 '잘난 척'하고 다니는 사람들 얘기나 들어주려면 용어 정도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래도 백두대간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산줄기에 입문한 '산줄기 꾼'이잖습니까?
말을 달리하여 일반 산행을 하는 이들에게 "저 대간 하고 있어요!"하는 건 산꾼들 세계에 있어서는 "나 이대 나온 여자야!"보다 더 먹히는 문장 아닙니까?
각설하고.....
저는 그리고 대한산경표는 산줄기를 4개로 구분합니다.
대간, 정맥, 지맥 그리고 단맥입니다.
대간은 백두대간을 이야기하고 정맥은 9정맥 그리고 지맥은 175개로 정리합니다.
그 나머지는 다 단맥으로 보면 되니까 단맥의 경우 여기서는 논외로 합니다.
물론 남한만 상정합니다.
북한 쪽은 김정일과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이 협조해 주지를 않아 부득불 통일 후로 작업을 미룹니다.
1대간 9정맥은 누구나 아실 것이니 지맥만 보기로 하죠.
우선 개념으로 본다면 지맥이라는 용어는 간단합니다.
즉 우리나라 산줄기 중 도상거리 30km를 넘는 산줄기 중 대간과 정맥을 제외한 모든 산줄기를 말합니다.
모든 산줄기?
그래도 명색이 지맥인데 어떤 요건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 요건을 제시해 준 아니 암시해 준 우리나라 지지地誌가 바로 산경표입니다.
“지난번 얘기하다만 산경표 얘기를 해줘. 특히 해제가 중요하다면서? 거기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네.”
조선광문회 발간 산경표 해제(서문)
“우리나라의 지지(地誌)를 가만히 살펴보면 산을 논한 것은 많지만 심히 산만하고 계통이 서 있지 않음을 지적하게 된다. 오직 신경준이 지은 ‘여지고’의 산경(山經)만이 그 줄기[幹]와 갈래[派]의 내력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다. 높이 솟아 어느 산을 이루고, 비껴 달리다가 어느 고개에 이르며, 굽이돌아 어느 고을을 둘러싸는지를 상세히 싣지 않은 것이 없기에, 이야말로 산의 조종(祖宗)을 알려 주는 표라 할 만하다. 산경을 바탕[綱]으로 삼고 옆에 이수(里數)를 조목[目]으로 부기하고 있어, 이를 펼치면 모든 구역의 범위와 경계를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 원전으로 삼은 산경에 금상첨화일 뿐만 아니라 실로 지리가(地理家)의 나침반(指南)이 될 만하다 하겠다.”고 적고 있다.
산경표는 ‘산의 조종(祖宗)’ 즉 산의 족보를 보여주는 표다. 이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백두대간을 아버지 줄기(幹)로 하여 갈래(派)를 친다는 말이다.
가령 ‘조령(鳥嶺)’을 보면 ‘鷄立嶺 - 鳥嶺 延豐 東二十五里 聞慶 西二十七里 - 伊火峴’으로 표기하여 놓았다.
이는 ‘ 조령은 연풍 동쪽 25리에 있고 문경 서쪽 27리에 있다’고 하여 위치와 구간 간의 거리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조령은 계립령 ~ 조령 ~ 이화현으로 순(順)으로 진행한다고 하여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으로 향하는 산이나 고개의 순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조령 옆에는 ‘主屹山 聞慶治在南一里’라고 하여 ‘주흘산 - 문경치소가 남쪽으로 1리 떨어진 곳에 있다.’라고 하여 군현의 관청이 있는 고을 이름까지 나타낸다.
고로 산경표는 백두산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기본 산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요 산이나 고개 사이의 거리, 관청이 있는 주요 지명 그리고 거기서 갈라진 주요 산줄기 등을 산 이름과 고개 이름을 중심으로 표로 일목요연하게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 산의 족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13쪽
이 산경표라는 책 안에 백두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주요 산줄기가 순서대로 차근차근 기재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산줄기 체계입니다.
서양에서 산맥이라는 개념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저로서는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조선시대 중기부터 '산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서양에서 얘기하는 산맥 개념과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산맥이 고토의 작품이라고?
“형. 근데 지질구조선이 산맥이라며? 우리가 배운 태백산맥이니 뭐니 하는 산맥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거야? 원래 산맥이라는 말이 우리가 쓰던 말이었다면서!”
장감독은 제법 언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웠으니 말이다.
“장감독, 아베 노부유키라고 알지?”
“응 . 요새 인터넷을 달구고 있잖아. 지금 수상인 아베신조의 할아버지.”
하긴 그 똑똑한 장감독이 그런 걸 모를 리가 있나.
“그가 한 소위 ‘마지막 총독 아베의 소름끼치는 예언’이라는 것도 알지?”
“알지.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는...”
“바로 그거야. 일본은 우리를 침략하고서는 역사와 지리교육에 각별하게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하잖아.”
고토가 조선 땅에 들어오기 전 예습을 한 것은 조선의 역사뿐이 아니었다. 그가 주목한 책은 ‘조선팔역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인쇄물이었다. ‘택리지’는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지리소지(朝鮮地理小志)’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도 간행된 인문지리서이다. 1881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에는 조선지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조선 사람들은 풍수지리라는 동양 고유의 철학이자 자연관을 신봉했다. 그것은 길흉화복을 담은 어쩌면 과학이라기보다는 미신적인 요소도 있었다. 즉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자연세계와의 조화를 공생으로 보는 이 풍수사상은 서양의 실증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선의 지리학 역시 자연과 조화된 균형 있는 개발을 모토로 인간의 안전과 편리를 도모하는 학문이었다. 이에 반해 서양 지리학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가?
“그렇다! 택리지에 서양지리학을 가미하자.” 그는 1884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접한 택리지 아니 조선팔역지 중 산수(山水)편을 본 첫 감상은 신세계를 본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 작고 미개한 나라에서 이렇듯 과학적인 산줄기 체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과학이 그렇게 발달한 서양에서도 접하지 못한 산줄기 체계. 그것을 이미 1000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걸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 받고 있었다니! 고조선 시대에는 만주벌판을 호령했고 고구려 시대에 와서는 한반도 대부분 지역과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삼성이 다 그들의 지배하에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의 문화는 어떠한가! 금속활자나 측우기 같은 것은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그들의 도자기 굽는 기술이나 화약을 최초로 실용화하고 나침반도 신라시대부터.... 더군다나 그들은 자신들의 글자까지 가지고 있으니...
좋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는 단군과 백두산이렸다! 조선산맥? 백두산부터 흘러내린 조선의 기둥이 조선산맥이라고?
‘곤륜산의 한 가지가 큰 사막의 남쪽으로 오다가 동쪽에 이르러 의무려산이 되고, 이곳으로부터 크게 끊어지어 요동 평야가 된다. 평야를 건너 다시 일어나서 백두산이 되는데, 곧 산해경에서 말하는 불함산(不咸山)이 이것이다. 정기가 북쪽으로 천 리를 뻗치고 두 강을 끼고 남쪽으로 향한 것이 영고탑이 되었다. 등 뒤로 뻗어 나간 한 가지는 조선산맥의 머리가 된다.’
그래! 택리지 아니 조선팔역지의 팔도총론 도입부에 나온 이 조선산맥! 산맥으로 가자!”
택리지를 본 고토는 자신이 조선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짐을 느꼈다. 대일본제국을 위한 일이었다. 천황 메이지를 위한 일이었다.
- 졸저 전게서 157쪽
그러니 우리 조상들은 산맥이라는 산줄기에 대간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우리나라 최고의 산줄기로 상정하였고 그 하위 개념으로 정간과 정맥을 두었던 것입니다.
이 산줄기 체계가 조선시대 - 대한제국 - 대한민국이라는 국체國體로 변경이 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지리교과서에도 자연스럽게 이런 산줄기 체계 올라 있어 당연히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개입이 되면서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미 얘기했듯이 19세기 말 일본은 조선의 지하자원, 토지자원, 산림자원, 수력자원 등을 약탈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의 지질, 지형 등의 조사가 필요했다. 이미 일제는 고체 등 몇 명을 조선에 파견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를 한 일본인의 조사보고서가 필요했다. 고토는 동경제국대학 지질학과 교수였다. 외국 탐사경력도 충분했다. 동방협회 회원이기도 했다. 사상은 황국사관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나이도 한창 때인 40대 중반이다. 이런 고토보다 조선의 지질조사 작업에 안성맞춤인 사람은 절대 없었다.
음흉한 목적을 숨기기 위해 민간기구 차원의 학술조사로 모양새를 갖췄다. 동방협회였다. 고토는 그렇게 동방협회의 지원도 받게 된다. 그는 1900년부터 2차에 걸쳐 조선의 남부와 북부지역을 답사한다. 광산, 지질조사가 주목적이었다. 조선의 전반적인 정세도 정탐하였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그는 조선 북부지방을 조사할 때에는 간도지역의 개발 가능성까지도 조사하였다.
“그럼 지질조사를 어떻게 한 거야? 당시 조선 땅은 인프라infra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든 게 불편했을 텐데.”
“그렇지. 하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온 사람인데 웬만한 불편은 감수했겠지. 조랑말타고 걸어 다니는 수준이었으니 오죽했겠어. 탐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작업한 결과물 중 하나가 이 ‘조선산맥론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이야. 거기에 태백산맥이니 뭐니 하는 산맥이름이 올라간 거고.”
“조선산맥론?”
“그래 ‘조선산맥론’이라는 논문!”
고토의 두 차례 지질조사
군산항으로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은 (주)조선목포영사관 군산분관 영사 주임 아사야마 겐죠(淺山顯藏)였다. 그는 조선인 길 안내원 2명을 소개하고 교통수단이 될 조랑말 4필도 건네준다. 그러고는 그들을 조선인 복장으로 위장시킨다.
이렇게 6명이 약 70일 일정으로 제1차 조선반도 지질탐사대를 구성한다. 탐사책임자는 물론 동경대학 지질학과 제1회 졸업생이며 일본 지질학계의 태두(泰斗)인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였다. 그의 손에는 1894년 발행된 미쯔하시(三橋僊史)의 ‘조선지명안내’ 책자와 일본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한 1:50,000지도가 들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고토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 이중환의 택리지를 독파했다는 데 있다. ‘조선팔역지(朝鮮八域地)라고 일역(日譯)된 이 택리지를 읽고 고토는 조선의 인문지리에 대한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뒤에 자세히 본다.
고토는 지질학자다. 위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독일인 고체(Gottsche)는 그보다 먼저 조선에 들어왔다. 물론 일본정부의 요청을 받고서였다. 고토는 이 고체의 자료를 참고한다. 그는 주로 노두(露頭)를 근거로 지형, 지질일반, 암석학적 분석을 한다. 즉 절벽이나 경사면 등에 노출된 암반이나 돌을 보고 그 일대의 지질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고토의 작업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땅속으로 들어가 보거나 다른 어떤 기계를 가지고 정밀하게 측정을 해본 것도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1900년 8월에 시작한 조사 작업은 1901년 3월 1차 조사를 마치게 된다. 이 결과물을 가지고 고토는 일단 일본으로 돌아간다. 일본에 간 그는 그것들을 토대로 ‘조선남부의 지세’라는 논문을 쓰고 이를 동방협회 회보에 올린다. 그러고는 같은 해 8월에 다시 조선으로 들어온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조선북부를 탐사를 한다. 그렇게 해서 1902년 발표한 논문이 ‘조선북부의 지세’이다.
즉 그는 1900년 8월 ~ 1901년 3월 그리고 1901년 8월 ~ 1902년 3월 두 차례 266일 동안 총6,300km를 다니면서 광물조사 를 하였다. 하루에 평균 23km 정도 걸었다는 얘기다. 당시의 도로 사정과 계절적 요인을 따져보면 상당히 어려운 환경조건이다. 아무리 40대 중반의 고토라도 고개나 강의 절개지 그리고 바닷가를 관찰하면서 걷기가 쉬웠을까?
필자 같은 산꾼도 매일 23km 걷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에 부친다. 고토는 그걸 다 감수하고 걸었다. 어찌 보면 그런 상황에서 얻은 자료는 얼마나 부실한 것일까. 어쨌든 이렇게 얻은 지질자료를 기초로 두 편의 논문을 정리한 것이 1903년 발표한 조선산맥론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이다.
이 논문은 고토가 지질학자이면서 철저하게 황국사관으로 무장된 침략의 앞잡이 임을 보여준다. 즉 그는 역사학자 못지않은 조선의 고대사와 근대사에 상당한 식견이 있었다. 물론 그 지식은 황국사관의 입장에서 철저히 조작된 사실(史實)이다. 이런 것들이 그가 조선에 온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졸저 전게서 104쪽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산맥을 우리는 그 10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의 산줄기 체계로 잘못 알고 배워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산맥이라는 게 엉터리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백산맥에 태백산은 없다?
“그러니까 태백산 부쇠봉에서 온전하게 강원도로 들어간다는 얘기지? 그런데 예전에 우리가 잠시 백두대간을 몰랐었을 때 그때는 태백산맥이라고 불렀잖아. 그 태백산맥은 이 태백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아니겠어? 그런데 태백산맥은 여기서 어떻게 낙동정맥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야? 분명 낙동강을 건너야 할 텐데.”
“중요한 지적이야. 사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개념은 전혀 다른 거야. 백두대간은 분수계의 개념인 반면 태백산맥은 지질학적 개념이라 볼 수 있지. 땅속에 있던 지질구조선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게 지리학에 편입이 된 건 순전히 지형의 형성 과정 파악에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즉 거의 평평했던 지구에 화산 활동을 동반한 단층이나 습곡작용 같은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구조선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 그러니까 지각변동에 의해서 형성되는 단층, 습곡, 산맥 등을 구조선이라고 하잖아. 산맥 얘기할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어쨌든 그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을 지나면서 침식 ∙ 풍화작용을 거쳐 현재의 형상을 갖춘 게 분수계인 산줄기잖아.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이렇게 정의하면 될 거야. ‘지각변동에 의하여 형성된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통하여 현재의 산줄기가 만들어졌다. 그 산줄기는 분수계 역할을 하는데, 그 중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축으로 하여 한반도를 동서로 양분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가장 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한다. 이 백두대간을 아버지 줄기로 나라의 모든 산과 모든 물이 여기서 흘러나가니 백두산은 그들의 조종(祖宗)이라 불린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나? 그러니 예전엔 학교에서 구조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줄기 개념도 아닌 엉성한 산맥 개념만 가르치고 배웠던 게 우리 기성세대에게는 큰 약점이었어. 당시 지리학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니까.”
“지리 교육이 잘못 됐다는 거 아니야?”
“고토 분지로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 지리교육이 지금껏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지리학계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지. 지금은 사실 학자들이 여기서 벗어나려는 흔적이 많이 보여.”
“그럼 예전에는 태백산맥 종주를 어떻게 한 거야?”
“말은 태백산맥 종주였는데 산맥을 종주한게 아니고 실제는 백두대간 일부와 낙동정맥 일부를 이어서 걸은 것이지
. 백번 양보하여 그 당시 개념으로 얘기하더라도 태백산맥을 걸은 게 아니고 태백산맥의 분수계만 걸었다는 것이지. 산맥 = 분수계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격하게 따지면 산맥은 사람이 걷거나 종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야.”“그래도 명색이 태백산맥인데 태백산은 지나야 했을 거 아니야!”
“결론을 우선 보자면 그들이 걸었던 태백산맥에는 태백산이 없었어. 즉 태백산맥 안에는 태백산이 없었던 거야!”
- 졸저 전게서 328쪽
산맥이라는 개념과 우리 산줄기 개념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결국 산맥이라는 것은 우리 고유의 개념인데 일본의 고토 분지로 가 그것을 도용해서 사용하여 지금은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산맥이 교과서에 올려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 산줄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간과 정맥은 산경표에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고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후손의 입장으로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인 이 소중한 기록을 선용善用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선배님 가령 이우형 선생이나 조석필 선생, 박성태 선생 등은 이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냅니다.
산경표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골머리 아프네. 결국 산경표의 저자는 모른다는 얘기구만. 앞으로 할 얘기는 산경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 그런 거잖아?” 머리에 쥐가 오른다.
“그렇지 아까 얘기했지? 산경표는 그 당시 조선 지리정보의 총아라고! 뭐 다 아는 내용이니까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중요한 건 이것과 뒤에 나올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 비교해 보는 일이야. 이런 건 지금 당장 산행을 하면서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골머리 아플 필요도 없어.”
“형, 그건 그렇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자분수령하는데 그 산자분수령이란 말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혹은 스스로 분수령이다.’ 그 말 맞아? 다른 얘기도 있던데.”
장감독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고 언젠가 해줘야 할 말이었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래. 맞아.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문구는 대동여지도 발문에 나오는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는 나도 그걸 그렇게 이해했었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산경표는 당연히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이다. 그리고 우리는 산경표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이라고 알고 있다. 그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컨대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보면 바로 그 구절이 나온다.
한 번 읽어 보자.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남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연지봉 소백산 설한 등의 재가 되고, 철령의 한 갈래가 동과 남으로 달려 일어나 도봉과 삼각이 되니 한수가 그 가운데를 지난다.
위에서 보다시피 山自分水嶺은 ‘산은 분수령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산자분수령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대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 졸저 전게서 455쪽
그럼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이 무너지는 걸로 끝나야 하나요?
어쨌든 학자들은 산자분수령에 대해서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분노하고 싶은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뒤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우선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산자분수령.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지금도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산줄기에서 다른 하나의 산줄기를 가지 칠 때 분명 그 사이에서는 골이 형성되고 그 골에는 물이 생겨 그 물은 내려오면서 천이 되고 그 천들이 모여 강이 되어 바다로 가지 않는가?
그리고 그 천이 합칠 때 반드시 하나의 크던 작던 산줄기 하나가 그 합수점으로 잠기는 것을 보지 못했던가? 즉 그 산줄기는 천이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을 만나면서 그 맥을 다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두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적어도 5,000만 년 정도는 진리였다. 움직이지 않는 진리.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라는 문장도 진리다. 하지만 앞으로 1억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山自分水嶺은 “분수령으로부터 오는 산은....”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며?
맞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걸 해석할 때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관용구(慣用句)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자분수령을 두 가지로 읽었다고 보면 된다.
관용구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관용적으로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언어 형태. 흔히 비문법적이거나 문법적이더라도 구성 요소의 결합만으로 전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山自分水嶺을 얘기할 때 ‘분수령(分水嶺)’이라는 것을 고유명사로 인식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이해했던 거 아닌가?
또 다른 견해를 보자. 대동여지도 숭실대 본을 보면 ‘東分爲豆滿江 自分水嶺’이 되어 강자분수령이 된다. 위의 다른 대동여지도를 보면 분수령에서 물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분수령이라는 지명이 물을 나누는 산줄기(고개)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므로 이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山自分水嶺은 이따 산맥을 이야기할 때 또 이야기해야 하니 여기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자.
- 졸저 전게서 463쪽
그 선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 이 산자분수령을 현대에 맞게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지형에 맞게 그 하위 개념을 설정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그 작업의 결과물이 곧 활자화 될 '대한산경표'입니다.
'산으로' 박흥섭 님이 맡은 분야의 작업은 거의 끝났는데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일이 바쁘다 보니 제게 맡겨진 부분을 정리하지 못해 아직 출간을 하지 못했지만 내년 중반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대한산경표에 따라 지맥을 보죠.
아까 말씀드렸죠?
지맥은 대간과정맥이 아닌 산줄기 중 도상거리 30km 이상의 그것이라고!
도상 거리!
즉 실거리가 아니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등고선을 이용하여 선을 그었을 때 즉 마루금을 그었을 때의 거리를 얘기합니다.
그 거리가 30km 이상인 산줄기라는 겁니다.
그 나머지 요건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①첫째, 그 산줄기는 반드시 그 산줄기를 싸고 있는 물줄기들의 합수점으로 가는 산줄기여야 합니다.
그 합수점은 결국 본류本流와 지류支流가 만나는 지점을 말합니다.
이를 대한산경표에서는 '합수점형'이라 이름합니다.
대원칙입니다.
이하 참고도는 대한산경표의 산경도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고로 신산경표의 그것을 차용합니다.
참고도 #1
가령 참고도 #1의 가평지맥이나 조종지맥과 같은 경우입니다.
즉 한북정맥의 도마치봉 부근에서 한 줄기('A줄기'라 함)가 가지를 치게 됩니다.
그때 그 A줄기와 한북정맥 사이에서는 물줄기가 하나 발원하기 마련입니다.
- 산자분수령의 제1법칙
그리고 그 물줄기는 가평평야를 적시며 흐르다가 가평읍 읍내리에서 북한강과 만나면서 북한강에 합류하게 되죠.
이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위 A줄기는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
도마치봉 부근에서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이 'A줄기'의 국토지리정보원지도의 도상거리를 측정해보니 42.1km가 되는군요.
그래서 이 A줄기는 지맥의 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이름을 지어야죠?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은 이를 화악지맥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지맥에서 가장 고봉인 화악산의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런데 이 신산경표에서 규정한 산줄기는 이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이죠.
일관성의 결여입니다.
원인은 긴 산줄기 즉 산경山經만을 추구하게 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다시 산줄기를 그은 게 바로 '대한산경표'입니다.
이 대한산경표의 특장特長은 바로 물줄기에 충실하다는 겁니다.
물줄기를 봐야 산줄기가 보인다는 것이죠.
대한산경표의 산줄기를 보는 시각은 위 예에서 보듯 가평천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시작합니다.
그 합수점에서 가라앉는 산줄기를 봅니다.
그 산줄기를 따라 올라갑니다.
그 줄기의 끝은 어디일까요?
보지 않아도 압니다.
백두대간일 수도 있고 정맥일 수도 있으며 지맥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한북정맥과 이어짐을 볼 수있죠.
이렇듯 산줄기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게 더 확실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아래에 있는 산경표의 명지지맥은 부르는 이에 따라 연인지맥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연인지맥 파'는 명지산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줄기의 최고봉은 연인산이 맞다는 것이죠.
반면 '명지지맥 파'는 이 지맥이 명지3봉 옆으로 지나는 것이니 본래의 명지지맥이 맞다고 합니다.
이들이 다툼이 있는 대목입니다.
대한산경표에서는 이런 논쟁을 불식시킵니다.
방법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정맥 갈림봉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인 조종천에 착안합니다.
위와 같이 대한산경표에서는 그 지맥의 이름에 물줄기 이름을 차용하여 붙입니다.
그리하여 A줄기는 가평천의 이름을 따 가평지맥, B지맥은 조종천의 이름을 따서 조종지맥이 되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맥은 이렇게 합수점으로 진행하는 ;'합수점 형' 지맥입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정맥 줄기를 만든 그 원리를 본뜬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 외에 나와는 관련은 없으나 옆에 있는 물줄기로 진행하는 산줄기에 대한 처리 문제입니다.
가령 위 참고도 #1에서 조종지맥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 하나('b 지맥으로 부름)가 조종천이 아닌 인접 가평천으로 가서는 가평천과 북한강의 합수점으로 갈 경우의 처리 문제입니다.
분명 이 b줄기도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가 맞잖습니까?
지맥을 만든 이유는 이 산줄기를 우리 생활에 선용善用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만큼 이를 도외시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b줄기의 유형도 지맥에 편입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② '하천(지류 포함)의 수계 산줄기로 1유형이 아닌 산 줄기'를 한 유형으로 넣습니다.
참고도 #2
참고도 #2는 신산경표에서 영월지맥과 백운지맥 그리고 천등지맥을 보여주기 위한 개념도입니다.
하지만 이 신산경표의 지맥들은 온전하게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지 못함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 영월지맥과 섬강지맥에 관하여 더 자세한 것은 다음 블로그 '산, 산줄기 그리고...'의 산행기 #651 지리산 둘러보기(금대암 ~ 금대산 ~ 삼봉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신산경표의 천등지맥의 경우 자신과 관련된 물줄기와의 합수점으로 가지 못하여 이는 지맥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 예를 하나만 예시하자면 위 참고도 #2의 파란선 같은 경우입니다.
무수히 많은 단맥만 양산할 뿐 불행히도 제천천으로 진행하는 이 천등지맥은 지맥의 자격을 갖추지 못해 탈락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구제 방법으로 제천천의 본류만 보는 게 아니라 지류의 그것도 그 줄기가 30km가 넘을 경우 지맥에 포함시키기로 합니다.
하지만 본류인 제천천의 합수점으로 가는 제천지맥에 대하여 이는 제천천의 서쪽으로 합수되는 줄기인만큼 이름은 조금 양보하여 제천서지맥으로 명명하기로 합니다
이게 제2유형으로 이른바 '울타리형' 줄기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문제거리가 있습니다.
바다로 향하는 산줄기나 내륙에서도 호수 등으로 돌출된 산줄기의 처리 문제입니다.
이들을 위 조건에 엄격하게 적용시키면 이런 유형의 줄기들은 토막토막 동강이 나 결국 산줄기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걸 구제하고자 대한산경표에서는 지맥의 조건에 이 제3유형의 산줄기를 하나 더 구분합니다.
이른바 '산줄기형'입니다.
참고도 #3
이런 유형의 지맥이 바로 신선지맥입니다.
그저 산경山經 즉 산줄기의 길이 때문에 지맥에 편입된 경우이므로 즉 물줄기와는 무관하므로 이는 신산경표의 산이름을 그대로 붙이기로 합니다.
그러니 그 예로 신선지맥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타당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산행을 좀 더 아름답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사전 지식을 가지고 오늘 산행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2. 16. 토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백두대간 (하늘재 ~ 탄항산 ~ 주흘산 갈림 ~ 부봉 갈림 ~ 마패봉 ~ 신선봉)
4. 산행거리 : 11.5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하 늘 재 |
|
09:07 |
|
|
탄 항 산 |
1.79 |
09:59 |
52 |
|
주흘산 갈림 |
1.57 |
10:52 |
53 |
|
부봉 갈림 |
0.93 |
11:22 |
30 |
|
마 패 봉 |
3.71 |
13:03 |
101 |
10분 점심 |
신 선 봉 |
1.20 |
14:12 |
69 |
20분 간식 |
고사리 주차장 |
2.30 |
15:07 |
55 |
|
계 |
11.5 km |
06:00 |
05:30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이른 새벽.
반가운 얼글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해밀산악회의 전용버스는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의 하늘재로 향합니다.
고려 현종때 문희聞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문경聞慶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을 듣다."라는 뜻만큼은 변한 것이 없으니 '영남의 청운객靑雲客들이 과거에 급제하는 소리를 조령 너머로 듣는다.'는 유래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하늘재를 중심으로 충주 쪽은 미륵리, 문경 쪽은 관음리라는 지명이 불교 냄새가 솔솔 나게 한다. 곧 관음리가 현세의 관세음보살의 세계라고 한다면 미륵리는 미래의 미륵불의 정토를 떠올리게 한다. 즉 하늘재는 현세와 미래의 경계인 셈이다. 참 교묘하고도 절묘한 지명이다. 마찬가지로 분수령인 이 하늘재의 좌측으로 흐르는 빗방울은 달천이 되어 남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가게 되고 반면 우측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신북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가서는 남해로 가게 되니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물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 졸저 전게서 272쪽
유허비遺墟碑라.
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입니다.
하늘재 소고(小考)
백두대간이 처음 열린 고개가 바로 이 하늘재다. 기록에 의하면 삼국이 제대로 정립이 되기 전인 AD156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이 북진 즉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개척한 고개가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 하늘재가 열린 뒤 2년이 지나 비로소 죽령도 열리게 됐다. 후에 이 하늘재 길을 마의태자가 지났음도 기억하자. 새롭게 깨끗이 정비된 이곳에는 계립령 유허비가 있고 우측으로는 하늘재 산장도 있다. 하늘재는 계립령,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렸다. 계립령은 산경표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에도 계립령이라 표기되어 있다. 대원령(大院嶺)은 불교국가인 고려와 연관을 시켜야 한다. 즉 고려시대에 들어와 미륵중원사지 옆에 큰 원(院)을 두어 오가는 이들의 숙박 시설로 이용하였다. 그러니 대원(大院)이고 이를 한글로 표기하니 한울이었다. 그 한울이 있는 고개이니 한울령 혹은 한울재가 되었고 그 '한울재'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하늘재가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 졸저 전게서 271쪽
신라에 의하여 개척된 이 하늘재는 남진정책을 쓴 고구려 광개토대왕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 됐다. 자연스럽게 백두대간 라인이 삼국의 국경이 된 것이다. 고구려 사람으로는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이 이 하늘재 이야기에 동원이 되며 고려 사람으로는 동화원을 얘기할 때 잠시 언급했듯이 단연 공민왕이다. 1362년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봉화 청량산으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민왕의 흔적은 황장산의 작성(鵲城)에도 나오며 낙동정맥으로 가서는 울진에도 나온다.
- 졸저 전게서 272쪽
이런 얘기와 지금은 조령로에 그 역할을 넘겨줬다는 얘기 등이 나옵니다.
예전 대간꾼들의 휴식처로서 이름이 높았던 하늘재 산장.
요즘은 좀 뜸한 거같습니다.
신선지맥을 진행하기 위하여 대원들에 앞서 저 먼저 출발합니다
포암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죠?
09:07
우린 남진이니까 좌틀합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포암산의 흰 벽 배바위를 봅니다.
배바위가 곧 포암布巖이니 포암산입니다.
예전의 ‘白頭大幹 布巖山(속칭 마골산, 지릅산)’ 정상석은 커다란 ‘포암산 962m’ 정상석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포암산은 멀리서 볼 때 흰 바위산이다. 그래서 이 바위 모습이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골산(麻骨山)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 졸저 전게서 273쪽
하늘재 정상석을 확인하고,
진행 방향 산줄기를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셨군요.
모래산이 뭡니까?
지도에 나오지 않는 이름을 작명하시다니....
이렇듯 지명은 땅과 지역의 특성을 제일 먼저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땅의 생김새와 장소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 지명을 붙인 당시의 사람들의 지리적인 사고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자연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속성도 가미되어 있을 것이고 역사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역사지리적인 성격도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명은 사용하는 그 당시 사회의 주체에 따라 이름이 변화하기도 하며 그 의미와 범위가 달라지기도 할 것입니다.
09:29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삼각점이 두 개 나오죠?
지적삼각점과는 무관한 점입니다.
09:45
집채 바위를 지나,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주흘산을 봅니다.
세분하자면 영봉1108.4m이죠?
그 좌측으로 삐쭉 고개를 내민게 주봉1078m.
그리고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이따 보이겠죠.
우측으로 하나 가지를 친 게 관봉이라 불리는 남봉1039.8m 등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09:59
그러고는 탄항산입니다.
지도에는 854.4봉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탄항산炭項山.
炭은 숯을 이야기 하는 것이니 이는 '검다'는 의미로 漆이나 玄과 같이 사용했습니다.
이 '검'의 의미는 우리 옛말의 '신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외에 '크다', '많다', '뒤쪽' 등의 다양한 의미도 있고....
이 계열이 한자어가 金, 甘, 劍, 儉, 거문, 감물 등 여러 파생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탄항산도 검목뫼 정도의 우리말로 신성한 봉우리라는 의미이지 여기에서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던 곳'을 유추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한검 대장님은 '한'이 '크다', '넓다'는 뜻의 고유어이니 크고 신성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10:17
지도 #1의 '다'의 곳을 지나면서 크게 좌틀합니다.
10:27
그러면 지도 #1의 '라'의 곳의 안부인 평천치를 지나게 됩니다.
미륵리와 월항마을을 이어주던 고개였습니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10:48
지루하게 계단을 오르면,
10:52
961.1봉입니다.
포암산이 제법 멀어졌습니다.
조금 오른쪽으로 이동을 하니 만수봉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여기서 좌틀하면 주흘산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하늘재 ~ 조령3관문 구간은 거리가 짧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흘산이나 부봉을 다녀오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눈이 쌓여 있고 얼어 있는 구간이 많아 피하는 게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처음 해밀에 온 '산타나'님이 따라 오셨군요.
산타나라....
그 닉이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산을 타는 사람'이라는 ''山탄兒'.
다른 하나는 음악을 좋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멕시코의 천재적인 음악가인 Carlos Santana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제가 좋아하는 그 산타나의 음악을 듣습니다.
산타나님 덕분에 오랜만에 그의 히트 곡 'Black magic woman'을 들어보게 되는군요.
Got a black magic woman.
I got a black magic woman
...............................
Don't turn your back on me baby
Don't turn your back on me baby
.......
팝뮤직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금방 눈치채실 겁니다.
발음 문제죠.
지도 #2
11:12
가는 길에 부봉 방향을 보고 한 장 남깁니다.
부봉 좌측으로 조령산이 보이는군요.
조금 당겨볼까요.
조령산 대간 길 뒤로 이만봉이 서 있습니다.
지금 이 대간길은 '∽' 모양으로 진행이 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러니 백화산보다는 이만봉이나 희양산이 더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는 속리산의 천황(왕)봉도 보인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연히 진행방향 뒤로도 포암산보다도 월악산 영봉이 더 가깝게 보일 것이고....
11:22
산타나님은 부봉을 잠깐 들렀다 오신다 하고....
저는 그냥 천천히 가고 있겠다며 홀로 진행합니다.
눈이 제법 깊어졌습니다.
반대 방향에서 두 팀의 대간꾼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행선지는 마찬가지로 하늘재.
나중에 알고보니 산타나님이 다니던 산악회의 회원들이라고 하는군요.
11:26
예전 성터 흔적입니다.
진행방향 좌특으로 마패봉(마폐봉, 마역봉)이 보이는군요.
11:31
지도 #2의 '마'의 곳에 있는 동암문을 지납니다.
암문暗門이란 비공식적으로 출입하는 문이죠.
이렇게 훌륭한 천연의 요새를 버리고 탄금대라 가서 싸우려고 했다니....
기마병과인 신립을 그런 곳으로 보낸 선조가 잘못이겠죠.
좌측으로는 낙엽송이 멋지게 줄을 서있고.....
11:40
지도 #2의 '바'의 곳에 있는 이정표를 지납니다.
우측으로 월악 릿지와 좌측끝에 월악 영봉이 보입니다.
저 월악릿지 능선은 정말이지 가보고 싶은 곳인데 기회가 닿지를 않는군요.
공단 직원이 바로 앞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11:58
762.3봉을 지나고,
12:11
이 언덕을 오르면 달천지맥으로 갈라지는 루트가 나올 것이니 주의를 기울입니다.
우측으로는 워낙 경사가 급하여 진행하기가 쉬울 것 같지도 않군요.
12:19
달천지맥 갈림길입니다.
아무런 표시가 없군요.
예전에 제가 지나면서 표지띠를 달았었는데 공단에서 제거를 했군요.
다시 하나를 더 달아 지맥 갈림길 표시를 해둡니다.
달천지맥은 바로 여기서 가지를 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지맥입니다.
그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36.4km가 되니 지맥枝脈이라는 계급을 가지게 된 것이고, 달천을 끼고 있는 줄기이니까 달천이라는 물줄기의 이름을 따서 달천지맥이라는 고유명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달천지맥은 지맥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합수점'으로 가는 것이니'제1유형'에 해당됩니다.
달천지맥은 약간 좌측으로 틀어서 내려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가지고 온 김밥을 먹으려는데 얼음이 조금씩 씹힙니다.
이거 원...
빨치산도 아니고......
쌀은 괜찮은데 단무지와 소로 넣은 고기가 조금 얼은 것 같습니다.
대강 먹고 자리를 텁니다.
12:33
조령으로 빠지는 사거리를 지나는데 산타나님이 따라오시는군요.
부봉을 맛만 보고 오셨답니다.
함께 진행합니다.
13:01
사문리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납니다.
이 길은 탐방루트이고 조금 전 달천지맥으로 진행하는 루트는 비탐 구간입니다.
지릅재로 가기는 거의 같은 방향인데....
삼거리를 오르자마자 우측으로 월악을 볼 수 있는 조망터가 나옵니다.
즐겨보던 그림입니다.
제일 뒤가 월악산 능선이고 그 앞 좌측 암봉이 말뫼산686.3m.
그리고 바로 앞이 북바위산714m.
바로 앞줄기가 조금 전 지나쳐 온 달천지맥 분기점에서 가지를 쳐 진행하는 달천지맥입니다.
그러니 이 북바위산은 달천지맥 상에 있는 봉우리이고 저 말뫼산은 지맥의 망대봉에서 가지를 쳐서 저 북바위산 뒤로 보이는 수리봉760.8m 조금 못 미처에 있는 759.3봉에서 가지를 친 줄기죠.
말뫼산은 여기서봐도 상당한 암봉입니다.
진행방향 우측으로 신선봉이 보입니다.
13:03
그러고는 이내 마패봉입니다.
마패봉이라는 이름은 참 복잡합니다.
그리고 문경시의 너무 과감한 결단에 오히려 당혹감을 가지게 되는군요.
마패봉이 박문수와 관계가 있다고?
이정목의 ‘마패봉’을 따른다. 이곳에서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기 쉬운 ‘마패봉’으로 굳힌 모양새다.
그 마패봉으로 가는 길은 무조건 오르막이다. 로프가 나타나고 예전의 ‘마역봉927m 충청북도 괴산군’ 정상석은 없어지고 ‘마패봉 920m’라고 쓰인 정상석이 대간꾼을 반긴다. 마역봉, 마폐봉, 마패봉. 글쎄 어떤 이름이 맞을까? 우선 이곳이 충주시 수안보면과 괴산군 연풍면 그리고 문경시 문경읍이 만나는 삼군봉(三郡峰)임을 상기하자. 국토지리정보원 고시를 보면 충주시와 괴산군에서는 마역봉(馬驛峰)으로 고시하였고, 문경시에서는 2000. 12. 30. 마폐봉(馬閉峰)으로 고시하였다. 이유인즉슨 원래 이름인 마역봉의 ‘역’자 자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어려운 한자인 문(門)변에 ‘역(力)’자를 쓰는 ‘역’자였다. 그런데 이 역이 ‘남근(男根)’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좀 외설스러운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 ‘역’자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폐(閉)’자를 써서 마폐봉으로 지형도에 올렸고 또 그렇게 해서 그 한자어를 가지게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점잖게 마역봉(馬驛峰)이라 하여 역참 혹은 역마와 연관시켰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 갑자기 어사 박문수(1691~1756)가 등장한다. 즉 어사 박문수가 이 봉우리에 올라 마패를 걸고 쉬어갔다는 것이다. 그런 기록이 있는가? 어쨌든 그래서 마패봉이 되었다고 하면서 문경시는 과감하게 마역봉이라는 정상석을 뽑고 그 자리에 마패봉(馬牌峰, 920m)이라는 정상석을 세웠다. 요즘 지자체가 상당히 과감해진 듯하다.
- 졸저 전게서 269쪽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아직도 마역봉 혹은 마폐봉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도에 이름을 올리는 절차
산 이름도 ‘지명’의 일부인 만큼 일정한 절차를 밟아 지도에 오를 수 있게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국토의 효율적 관리와 산 이름이 주는 혼란을 피하기 위한 당연한 조처(措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봉따먹기’를 하는 일부 산꾼들을 보면 임의로 봉우리 이름을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즉 백두대간이나 일부 정맥, 지맥 등을 다니다 보면 비닐 코팅지에 산이나 봉우리 이름이 씌어져 나무에 부착되어 있거나 쓰레기가 되어 등로에 떨어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개개인의 ‘봉에 오른 횟수’를 늘리려는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참고로 지명의 제정, 변경, 폐지에 관한 사항은 「지방자치법」이나 그 밖의 다른 법령에서 정한 지명 이외에는 「공간정보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91조(지명의 결정)를 따르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절차를 보면,
1. 해당 시·군·구 지방지명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여 관할 시·도 지방지명위원회에 보고하면,
2. 시·도 지방지명위원회에서 이를 심의. 의결하여 국가지명위원회에 보고하고,
3.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심의. 의결하여 결정하면,
4.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시하도록 되어있다.
- 졸저 전게서 205쪽
그런데 아직도 이런 절차를 밟지않은 체 정상석만 바꿔치기 한 거 같습니다.
조령3관문 너머 대간 줄기를 봅니다.
앞이 삼각점봉인 812.7봉
그 뒤로 신선암봉 ~조령산.
그리고 제일 좌측이 백화산.
조령산 우측으로 사다리꼴 모양을 한 희양산.
백두사랑에서 얼마 전 신선지맥을 하면서 달아놓은 산패입니다.
제가 해밀에서 대간을 다시 하게 되면서 이 club과 함께 하던 지맥 산행을 멈췄기 때문에 저를 많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 '대한산경표'를 집필 중에 있었숩니다.
잠시 그 작업을 멈추고 대간을 하면서 바람이나 쐬고 온다는 게 그냥 눌러 앉아 버렸으니....
그 기회가 오히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작업을 하게끔 제목을 정해주신 것도 우리 해밀의 홀가분 대장님이시니....
해밀에 고마을 따름입니다.
백두사랑에는 죄송스럽고....
그래서 2월경부터는 격주로 지맥산행에 참여하려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써달라고 하시는군요.
막막합니다.
덕분에 다음부터는 '지리산 둘레길' 탐사 작업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봉을 봅니다.
부봉(釜峰)이라는 이름
경사진 신선암봉에서 부봉을 바라보며 맞는 바람은 역시 최고다. 좌측으로 부봉(釜峰) 라인이 선명하고 우측으로는 주흘산 라인이 계속 따라온다. 주흘산 뒤로는 역시 영강지맥이 선명하고 지나온 조령산도 이제는 볼록한 게 제법 멀어졌다.
“저 부봉(釜峰)도 지난번 부항령에서 살펴 본 곰>ᄀᆞᆷ의 ‘신성하다’라는 뜻인가? 그러니까 부봉의 원래 이름은 ‘ᄀᆞᆷ뫼’였었군, 즉 ᄀᆞᆷ뫼의 ᄀᆞᆷ>가마가 되었으니 이 가마가 한자 부(釜)의 훈이니까 아무 관계없는 ‘釜’를 써서 부봉이 되었다는."
- 졸저 전게서 265쪽
그 뒤로 주흘산이 영봉 ~ 주봉 ~ 남봉 순서로 서있고...
그 좌측으로 포암산 그리고 대미산과 그 대미산에서 흘러내리는 영강지맥을 봅니다.
그 영강지맥은 1040.4봉을 지나 여우목고개 ~ 국사봉 ~ 마전령까지만 보이는군요.
만수봉 좌측으로는 하설산1035m가 고개를 살짝 들고 있고....
너무 노는 바람에 신선지맥으로 진행을 하여 소조령으로 가기는 이미 틀린 거 같습니다.
쿨하니 총무님께 전화를 하니 마패봉 약 1km 지점에 있다는군요.
그냥 신선봉으로 해서 바로 매표소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마패봉에서 20분 정도 놀다가 신선지맥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도 #3 빨간선은 신선지맥 루트.
13:37
바위봉들을 지나면서 지나온 마패봉을 봅니다.
소나무가 멋진 그림을 잡아주고....
13:48
조령 관리사무소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
.
13:54
마패봉을 보니 대원들의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이는군요.
14:12
신선봉 전위봉에 오릅니다.
몇 년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신선봉치고 제 이름값 못하는 봉우리 못 봤습니다.
하긴 북설악의 신선봉 만큼 감흥을 주는 곳이 드물긴 하지만 이 신선봉도 거기에 못지 않은 곳입니다.
과연 일망무제.
신선암봉과 조령산을 보니 그 좌측 뒤로 아까는 안 보이던 영강지맥의 맹주 운달산1103.2m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조령산 우측으로는 희양산.
그 우측으로 대야산까지 보이고....
사실 미세 먼지만 없으면 속리산까지다 보이는데.....
좀 더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앙에 맨 뒤에 군자산이 우뚝 솟아 있군요.
바로 앞 원풍저수지 우측으로는 소조령을 지나면서 가라앉았던 지맥이 701.8봉을 지나면서 그 기세를 한껏 올린 모양새입니다.
그러고는 박달산을 지나 성불산을 거쳐 군자산 바로 앞의 달천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신선봉에서 이 지맥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재미있군요.
우측 뒤로 가섭산709.6m이 홀로 외롭고....
이제 마지막 남은 신선봉입니다.
신선봉으로 가면 어떤 모습이 또 펼쳐질까요?
뻔할 겁니다.
사람을 뻥 가게 만드는 ....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까지의 힘듦을 한 방에 날려보내고...
그러고는 또 다음 산행지로 유혹하겠죠.
산이 갖는 마력입니다.
산타나 님 덕분에 들었던 Black magic woman보다 더 강한 마법을 부리는 게 바로 산이죠.
우리는 내심 그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14:07
드디어 신선봉으로 오릅니다.
우선 월악의 영봉을 봐야죠.
재미있군요.
북바위산과 말뫼산 그리고 영봉이 일렬로 서 있습니다.
그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앞줄의 달천지맥이 지릅재에서 고개를 들어 북바위산을 거친 다음 망대봉730.6m에서 좌틀하여 대미산 방향으로 진행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만 그 망대봉에 우틀한 가지 줄기는 계속 직진하여 수리봉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리봉 전에 다시 우측으로 내민 가지 줄기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말뫼산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죠.
그 진행을 빼먹으면 재미가 반감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더 확실해지죠?
북바위산과 말뫼산 그리고 월악 영봉을 일렬로 세운 그림입니다.
이 위치에서 조금 더 눈여겨 본다면 북바위산은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 우측으로 도솔봉이 보이는데 소백산은 안 보입니다.
미세 먼지 때문입니다.
포암산과 대미산.
이번에 대간 줄기를 봅니다.
중앙에 뒤 봉우리가 마패봉이니 마패봉 뒤에 일렬로 서 있는 6개의 봉우리가 부봉.
그 맨 뒤 왼쪽에 불룩 나온 게 주흘산 영봉.
영봉 좌측 볼록 나온 게 주봉.
영봉 좌측 솟아 오른 게 영강지맥의 맹주 운달산.
그러니까 좌측으로는 포암산부터 대미산까지가 대간길인 셈이죠.
우측으로 고개를 좀 돌리죠.
가운데 조령관문이 이어지는 계곡이 보이죠.
저 길로 왜놈들이 들어오게 성을 다 비우고 탄금대로 부대를 옮겼다는 신립장군.
오른쪽 맨 뒤가 백화산.
신선암봉 ~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선명합니다.
조령산 좌측의 백화산.
그리고 우측의 희양산 특유의 모습도 명백합니다.
우측의 3번 국도는 저 연풍에서 좌틀하여 조령산을 넘어 문경쪽으로 진행을 하겠죠.
중앙 좌측에 희양산을 보고 주위를 판단하면 될 것입니다.
희양산이 보이니 그 앞이 은티마을 일 것이고 구왕봉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속리산 천황봉 부근입니다.
그러니 그 우측으로 비슷한 높이의 두 봉우리는 장성봉과 대야산이고....
우측 끝은 아까 본 군자산.
아까 본 그대로......
산타나 님도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얘기하며 ....
참 좋은 파트너입니다.
오늘은 제가 머리가 멍한 게 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많은 얘기 못해준 것이 미안하군요.
산을 다니더라도 뭘 물어보는 분들이 저는 제일 좋더군요.
일단 왔으면 뭐 하나라도 건져가야지.......
저는 혼자 다니며 산을 익혔기 때문에 누구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마음은 더욱 절실합니다.
눈에 덮혔는지 삼각점을 보이질 않고.....
품앗이 한 번 합니다.
요새 여행사 CM송을 듣고 배운 폼.
엄지척입니다.
14:22
신선봉 삼거리입니다.
지맥길은 계속 직진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좌틀하여 매표소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너덜 정도는 아니더라도 바위가 많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돌로 여러 분들이 이쁘장한 케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전 기억이 소록소록 나고......
매표소이자 통제소 입구입니다.
이 운영위원님께서 여기까지 마중을 나오셨군요.
함께 내려가면서 이얘기 저 얘기 많이 나눕니다.
대원들 기다리시느라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셨을까.....
15:00
예전에 대간을 할 때 하루 묵었던 식당 겸 민박집이 있었는데 ...
이 길 위인가?
15:09
우측이 조금 전 내려온 신선봉.
가까이서 보니 볼품이 없습니다.
그저 산이라는 것은 멀리 두고봐야지.....
일찌감치 산행을 마쳤으니 오늘 송년회 장소로 이동을 하여 푸짐하게 뒤풀이를 합니다.
신선한 삼겹살이 아주 맛있습니다.
국화주 때문인가요?
뒤끝도 없고....
결국 2차까지 끌려가고야 말고....
노래 한 곡 부르는 조건으로 조기 석방(?)이 되어 노모를 안심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무탈하게 산행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집행부가 너무들 수고를 많이 하셔서 이번에도 또 받기만 하였습니다.
일하시는 분들 따로 있고 저같이 놀고, 먹고, 즐기기만 하는 사람 따로 있으니....
너무 황송스럽기만 합니다.
무탈하게 송년 산행들 하시고 내년에는 더욱 더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아직도 송년회의 여흥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밖에 눈이 많이 오고 있군요.
노래방에서 불렀던 전원석의 '떠나지마'를 들으며 산행기를 마무리합니다.
길고 허접한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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