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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 3회차

백두대간 : 죽령 ~ ~ 도솔봉 ~ 묘적재 ~ 고항치 ~ 뱀재 ~ 싸리재 ~ 배재 ~ 저수령

 

 

 

소백산이 소백산이라는 자기 이름을 가지게 된 시기는 특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만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역사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이 '삼국유사'의 705년 기사記事라고 하니 대체로 7세기 훨씬 이전부터 불려졌을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 소백산이 품고 있는 고을이 풍기와 영주였으나 대간꾼들에게는 아무래도 풍기가 더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풍기나 영주로 들어가는 관문은 고구려에게는 마군령이었던 마구령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군사적 요충지 그리고 한강 하류라는 지형적인 이점을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죽령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백두대간에 죽령이 열린 때가 서기 158년.

그러니까 신라 아달라 이사금이 하늘재를 연 해가 156년이니 이보다 2년 뒤에 '죽죽'이라는 사람에 의해 열렸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죽죽'은 선덕여왕 때 대야성 전투에서 사망한 동명이인인 '죽죽'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어쨌든 그 죽죽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사료가 없어 더 이상 알 수는 없고 '죽'자 이름을 가진 죽지랑의 사당이 김유신의 그것과 함께 죽령 어딘가에 있었다는 사실은 있으나 이 역시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죽죽때문에 붙여졌을 고개인 죽령.

댓재, 댓고개의 다른 이름인 죽령으로 갑니다.

이제 소백산 구간과도 마지막이겠군요.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1. 04. 토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죽령 ~ 도솔봉 ~ 묘적재 ~ 고항치 ~ 뱀재 ~ 싸리재 ~ 배재 ~ 저수령

4. 산행거리 : 23.17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죽 령

 

02:31

 

 

도 솔 봉

5.36

05:44

193

묘 적 재

2.58

07:00

76

고 항 치

2.05

07:39

39

묘 적 재

2.01

08:36

57

뱀 재

3.48

09:39

63

싸 리 재

3.05

10:54

75

10분 휴식

배 재

0.94

11:17

23

저 수 령

3.70

13:02

163

20분 휴식

23.17 km

10:31

10:01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02:23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일출이 7시 정도라 볼 때 6시 반은 되어야 날이 밝아올 텐데 그렇다면 도솔봉에서의 일출은 이미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안타까움.....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겨울이 다가왔음에도 아직은 몸이 날씨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특전사 장병들이 천리행군의 중간 경유지인 이곳 죽령을 통과하는군요.

백두대간 길을 따라 오늘 구간을 진행한다고 하니....

예전 군대생활을 하던 추억을 잠시 떠올리다가 발길을 옮깁니다.

들머리는 죽령주막 맞은편입니다.

 

그걸 제대로 모르고 들머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주차장 바로 옆에도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 길로 올라간다고 해서 대간길과 합류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숲속을 헤매야 하는 번거로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02:31

그럼 오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후미에서는 월드선 대장님이 책임을 지고 있으시니 알바할 염려만큼은 절대 없는 해밀대원들입니다.

오늘 산행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도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주정골이 어딘지는 모르겠고....

사동리로 내려가는 코스는 여러 개입니다.

진행하다 보니 다른 곳은 다 막아놨고 단 한 군데 묘적재 ~ 사동유원지 구간만 열어놨더군요.

그러니 도솔봉 ~ 갈래골 ~ 사동리 구간이나, 가래골 안부 루트, 흰봉산 루트 등은 다 폐쇄가 되었습니다.

 

대간길이 좁으니 거의 일직선으로 진행을 합니다.

신발끈이 풀어지거나, 땀이 호흡을 거칠게 하는 대원들은 등로가 여유가 있는 곳이 나타나야 겨우 복장을 다시 갖출 수 있을 정도입니다.

03:04

30분 정도 올라왔습니다.

호흡을 고르고....

03:29

1115.4봉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순대대장님의 무전기로 연신 교신하는 내용이 들립니다.

선두와 후미와의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하자는 취지의 내용일 것입니다.

선두, 중간, 후미 대장들이 대원들의 안전과 전원 완주를 위하여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여태껏 산악회와는 별로 교류가 없어서 이런 것들은 익숙하지 못한 내용들입니다.

그저 일반 안내 산악회와 같이 '놔 먹이기' 즉 들머리에 내려 놓으면 알아서 진행하,고 정해진 시간에 날머리에서 합류하는 그런 산행이 더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제 산행 방식이지만 초보자나 산행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독약일 수도 있는 산행 방식이라 권할 바는 못 됩니다.

04:00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이정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삼거리의 등로는 어느 곳이나 선명합니다.

직진하여 흰봉산으로 가는 루트는 3년 전 사망사고가 나자 등산로를 폐쇄한 곳이죠.

하지만 얼마 전에도 소백의 맹주 '청&뫼' 공병덕님이 다녀오신 산행기를 보니 사실 그런 염려와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사망하고 조난 당한 것은 모르긴 몰라도 당해 산행을 리딩한 사람의 잘못이 컸으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데 무단출입자를 신고하면 공단직원들이 달려와 그 출입자를 단속할 수 있을까요?

 

참고도 #1

어쨌든 이 이정표 뒤로 들어가면 흰봉산으로 거쳐 사동리로 하산할 수 있는 루트입니다.

04:26

이정표를 지나,

04:41

삼형제봉입니다.

봉우리 대여섯 개 넘어 삼형제봉에 오르지만 이정표나 정상석도 없어 과연 여기가 삼형제봉인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05쪽

등산지도(참고도 #1)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삼형제봉이 표기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뒷길로 진행을 하면 옥녀봉668.8m에 이를 수도 있다고 등산지도의 루트는 말합니다.

 

참고도 #2

 

하지만 오히려 참고도 #2의 보라색 선으로 진행하는 게 옥녀봉으로 이르는 바른 루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등산 지도는 만들어졌을까요?

가보지 않고 대강 능선만 보고 선만 죽 그었다는 겁니다.

이 등산지도를 보고 산행을 했다가는?

옥녀봉으로 가다가 골병들 게 뻔합니다.

04:50

안전시설인 나무 계단을 따라 잠시 고도를 떨어뜨립니다.

05:01

안부를 지나,

05:16

참고도 #2의 'B'의 곳입니다.

이 바위봉이 옥녀봉 갈림길이라는 것입니다.

05:17

다음에 북진을 할 때 다시 이곳을 면밀하게 관찰해야겠습니다.

아니면 내년에 '전 지맥 완주'를 하게 되는 '산으로 박흥섭'님과 이런 곳이나 찾아 다닐까요?

그나저나 일출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시간상 너무 일러 도솔봉으로 오르기가 싫어지는데....

 

지도 #2

05:44

뒷 사람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도솔봉 정상에 오릅니다.

'블야 100명산 단원'들은 인증 촬영에 여념이 없고....

저분들이 명산 단원이라면,

저는 '삼각점파' 회원입니다.

2등급 삼각점(단양22)을 확인하긴 합니다만 조금 흔들렸군요.

그런데 형은 왜 이 삼각점을 중시하는 거야? 측량하는 데 쓰이는 거지 우리가 하는 산행하고는 관계없잖아?”

맞아. 산행하고는 별로 관계없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산행을 하다보면 산봉우리에서 이걸 자주 만나게 되지. 그리고 이게 백두대간 봉우리 같은 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은데 정맥이나 지맥 같은 곳을 다니다 보면 이 삼각점이 아주 긴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삼각점의 의의

 

삼각점은 지도를 그리는 기준으로 삼각측량을 해서 점의 위치를 경도와 위도 상으로 정확하게 결정해 놓은 지점이다. 다른 지점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도 기준점의 역할을 한다. 삼각점은 원래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0~1918 일본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토지수탈을 위한 지적도 제작, 기간사업건설 그리고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1:50,000 지도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삼각점은 전국에 2.5km~5km 간격으로 대부분 산 정상에 화강암(일부 동판)으로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에 붙어있는 것 중 지명(설악11, 설악26, 연곡319, 단양425 )1:50,000지형도의 도엽명이다. 우리나라의 고도는 육지에서는 인천만의 평균 해면을, 제주도에서는 제주만의 평균 해면을 기준한 것이다. 이 기준면 설정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인천항의 조위(潮位) 측정을 해서 평균 해수면을 산정하였다. 수준 기점(인천시 중구 항동 12번지)을 결정하여 잠정적으로 국토의 표고 기준치로 이용하고 있는데, 그 후 이 기점을 기준으로 정밀 수준 측량을 하여 표고 원점 26.6871m 를 결정하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원점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 253번지 인하대학교 교정 내에 설치되어 있다. 숫자(11, 26, 319, 425 )는 삼각점의 등급으로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 301부터 3993등삼각점,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 1등 삼각점은 대삼각본점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남한)174, 2등 삼각점은 대삼각보점으로 1,102, 3등 삼각점은 소삼각1등점으로 3,045, 4등 삼각점은 소삼각2등점으로 11,753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졸저 전게서 84쪽 이하

도솔봉에서의 진행이 어렵습니다.

예전의 도솔봉과는 달리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어 오랜만에 오르는 분들은 잠시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필히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고는 우측으로 바람에 날리는 표지띠를 주목하여 그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참고도 #3

오늘 분명히 도솔봉에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주변 봉우리를 살피기도 어려울 거 같아 저에게는 차선책으로 준비한 extra route가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백두대간 직할 지맥인 한천지맥입니다.

신산경표에서는 자구지맥이라 하는데 박흥섭 님과 제가 준비하고 있는 대한산경표에 따를 때 한천지맥이라 부르는 루트죠.

 

지맥이 뭐냐고요?

얘기가 길어지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죠.

물론 이전에도 사실 많이 얘기했던 것이기도 하고.....

하긴 우리 해밀 대원들만큼 산줄기 공부 많이 한 분들도 드물 겁니다.

 

한천지맥 루트를 봅니다.

이 루트를 보면 묘적령(재)에서 가지를친 이 줄기는 옥녀봉 ~ 자구산 ~ 매봉산을 거쳐 한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9.8km의 지맥이 됩니다.

이 지맥의 접속 구간을 보면, ①단양으로 들어와 사동리 ~ 묘적재에 이르는 루트, ②지금과 같이 죽령으로 오르는 루트 그리고 ③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2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고항치(재)로 들어와 비록 왕복을 하는 번거로움과 비경제적인 면은 있지만 그래도 거리가 2.1km정도에 불과해 고항치~ 묘적재를 이용하는 루트가 지맥꾼들에게는 가장 선호되고 있는 그것입니다.

 

어차피 대간 들러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부가 되고 나면 지맥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터, 그렇다면 지금 이 접속구간을 미리 해 버리면 다음에 한천지맥을 진행할 때 바로 고항치 ~ 옥녀봉으로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extra-root로 잡은 구간이 바로 묘적재 ~ 고항치 구간이었는데 좁은 등로 사정때문에 앞에 가는 대원들을 추월할 수가 없어 좀처럼 치고 앞으로 나갈 기회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묘적봉이 가까워 오고....

그러다가는 설사 제가 대열을 빠져 나간다고 해도 다시 대원들을 달라붙을 거리를 확보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즉 이 왕복구간이 4km가 넘는 길이어서 시간상 2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미리 총대장님께는 저간의 사정을 고했던 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얖에 가는 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치고 나갑니다.

06:29

홀로 진행합니다.

1187.4봉을 내려오면서 풍기읍에서 봉현면으로 도계가 바끱니다.

날이 밝아오는군요.

나무계단을 오르니,

다시 이런 계단이 나오고.....

06:40

그러고는 단아한 필체로 쓴 정상석이 있는 묘적봉입니다.

정상석 뒤로 운무에 쌓인 도솔봉을 봅니다.

도솔봉이 부처님의 세계라고 한다면,

저 도솔봉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묘적봉은 부처님의 신묘한 법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이겠군요.

선인들의 봉우리 이름을 짓는 작명법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우측 봉이 1187.4봉.봉현면과의 경계에 있던 봉우리죠?

묘적령을 따릅니다.

가운데로는 한천지맥 줄기가, 그 뒤로는 서천지맥 줄기가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앞이 묘적재에서 고항치로 내려가는 한천지맥 줄기.

봉현면 두산리 정경.

봉우리를 좌측으로 틀면,

소백산국립공원이 끝나는 안내판이 있고

등산객을 배려한 안내판도 보고,

이정표도 봅니다.

이정표에는 사동리 방향은 적시하고 있지만 반대방향인 '마루금 치유 숲길'에 대한 '손가락'은 없군요.

07:00

묘적재 표지석을 보고 좌틀합니다.

 

지도 #3

저에게는 사부님이신 선생님의 산패가 붙어 있습니다.

 

준희 최남준

금산 정상에는 준희선생의 산패(안내판)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줄기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준희선생이다. 대간에 부착한 이 산패는 많이 훼손되어 제대로 찾아보긴 어렵지만 정맥이나 지맥을 가면 주요 산이나 봉우리 그리고 고개에는 여지없이 준희선생의 이 산패를 볼 수 있다. 산패란 말이 낯선가? 필자는 집 대문 앞에 거는 문패에 착안하여 이를 산패(山牌)’라고 부르고 있다.

 

대간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좀 낯선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정맥꾼이나 지맥꾼들에게는 거의 신화적인 분으로 각인되어 있다. 부산의 유명한 산악회인 건건산악회를 이끌면서 부산 국제신문에 산행 코스를 안내했던 선생은 우리나라 산줄기 능선 곳곳에 샘을 만들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비록 뜻을 같이한 동지의 이른 죽음으로 현재는 손을 놓고 있지만 선생의 바람은 한결같다. 노익장으로 히말라야 트레킹도 마다하지 않은 선생은 성하지 않은 무릎으로 해파랑길과 지맥(枝脈) 산행에 전념하고 있다.

 

정맥이나 지맥을 진행하는 산꾼들은 준희’, ‘희준’, ‘산지킴이등의 이름으로 길을 안내해주는 산패를 봤다면 한 번쯤은 고마움을 표할 일이다. 물론 같은 형식의 다른 이름의 그것을 봤더라도 선생이 제작하여 붙인 산패라 보면 된다. 선생에 관하여는 이미 육십령을 내려오면서 샘터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 졸저 전게서 184쪽

 

주지하다시피 자구지맥은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에서 명명한 이름이지만 이 신산경표는 온전하게 산줄기를 표현해 주지 못하여 산자분수령에 물줄기를 기본으로 새롭게 산줄기 작업을 한 결과물이 대한산경표입니다.

이 대한산경표에서는 지맥 이름을 당연히 물줄기 위주로 편성하였기 때문에 이 지맥의 경우 한천지맥이라 명명하게된 것입니다.

그럼 지맥을 맛보기로 잠깐 진행하고 되돌아 나오겠습니다.

길이 상당히 좋습니다.

사실 대간길을 가다가 남진을 할 경우 우측으로 턴turn하여 진행하는 길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 길을 따라가기 십상입니다.

북진하는 경우도 좌측으로 드는 길보다 정면으로 보이는 이 지맥길을 따르기도 쉬워 보입니다.

이 얘기는 곧 이 루트가 알바하기 쉬운 곳이라는 얘기죠.

'젊은총' 대장님도 구간 설명을 할 때 이 구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힘주어 말한 게 다 이런 이유입니다.

 

날은 밝아 헤드랜턴을 벗어 가방 안에 넣어야 하는데 귀찮습니다.

어차피 이 루트로 올 사람은 이 시간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은 분명할 터!

등로 한 가운데 벗어놓고 돌아올 때 회수하기로 합니다.

이런 이쁘장한 안내판도 세워 놓았군요.

그러니까 고항치까지 2.1km가 조금 넘겠군요.

왕복 4.2km.

대원들이 아침 간식을 먹고 또 후에 점심을 먹는 시간까지 고려하더라도 2시간을 따라잡는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좀 서둘러야겠습니다.

다시 봐도 깔끔합니다.

이러니 등로 사정은 하나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07:19

갈림길에서는 무조건 직진.

묘적봉과 도솔봉이 아주 멀어졌습니다.

조금 당겨봤습니다.

07:25

이 이정표를 지나 고항치가 0.5km남은 지점을 지납니다. 

07:31

812.5봉은 우측으로 '사면치기'하고....

여기서 대원들의 현위치가 궁금해집니다.

이번 백두대간 5기의 여주인 쿨 총무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지금 현재 위치는?"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묘적령으로 가고 있는데 거기서 단체 사진을 찍을 예정입니다. 어디세요?"

아직 묘적재를 지나지 않았군요.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예. 나는 좀 나와 있으니 단체사진(찍는데 나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마시고 잘 진행하고 계십시오. 이따 보죠."

이제부터는 된비알입니다.

07:33

깨끗하게 단장된 담양전씨 음택을 지나,

호젓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07:39

고항치 고개에 동물이동통로를 겸한 터널 위로 등로는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옥녀봉 가는 길이죠.

아래로는 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고,

차도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섭니다.

묘적재가 1017.9m이고 이 고항치가 671m이니 고도차가 무려 340m나 되는군요.

2.1km 내려오는데 38분 정도 소요됐는데 올라가는데 힘 좀 써야겠습니다..

오던 길을 거꾸로......

이번에는 뒤로 돌아서서 한천지맥의 2번 지방도 건너편을 봅니다.

우선 좌측의 우뚝 솟은 게 옥녀봉890.6m.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간에 소목재를지나 그 우측으로 자구산757.5m이 보이는군요.

08:36

다시 묘적재입니다.

1시간 40분만에 돌아온 곳입니다.

그런데 오다보니 길 가운데 놓아두었던 랜턴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대원 누군가가 분실물로 오인하여 가져간 것 같습니다.

이따 만나면 누군가 돌려주겠죠.

다시 대간길로 복귀하는데  생뚱맞은 이정표가 보이는군요. 

지도를 살펴보니 고항치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고개인데 그 고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예전 팻말인데 어서 '고항재(치)'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고도를 낮춰 모래재, 사치재(砂峙岾)라고도 불리는 사현(砂峴)을 지난다. 예전에는 토끼굴로 지나야 했던 88고속도로를 이제는 터널 위로 지날 수 있게 됐다. 생태계복원작업 덕분이다.

산길에 웬 모래? 모래가 많이 나서 모래재인가? 옛날에도 이 섬진강에서 모래 채취 작업을 했나?”

모래 사()자를 쓰긴 했지만 이것도 역시 우리말을 억지로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사()를 동원한 것에 불과해. 이것도 의 전 단계 형태였고 모래재++의 형태로 보는 게 맞아. 여기서 는 조사 일 것이니 결국 모래재는 산에 있는 고개라는 단순한 뜻을 가진 단어에 불과한 거야.”

 

- 졸저 전게서 100쪽

다스림이라.....

'해밀스럽다'라는 정도의 멋진 신조어군요.

08:48

지도 #3의 '나'1026봉의 나무 버팀목 계단을 오릅니다.

갈색 톤의 대간길.

부스럭 소리를 내면서 혼자 걷는 맛을 즐깁니다.

늘 그러하듯이.....

반대방향에서 몇 분이 열심히 속도를 내시며 오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산인사를 건네며,

"앞에 가는 분들 저와 얼마나 떨어졌죠?"

"약 1km 조금 더 될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하고 그분들과 헤어지려고 하는데,

"형님. 여기는 웬일이세요?"

 

09:03

'홀대모'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홀로산꾼 최상배님입니다.

지인 대간 땜빵을 하는데 도와주려 오셨군요.

한 10분 정도의 대화로 오랜만의 해후邂逅에 대한 회포를 풉니다.

09:07

모시골 마을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

건너편 옥녀봉을 보며 걸으면,

 

지도 #4

09:22

4등급 삼각점(단양460)과,

정상 안내판이 있는 1100.6봉입니다.

이 솔봉은 공식적인 명칭은 아닙니다.

그리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표기와 고도 표시도 다릅니다.

영진지도에도 1103m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산악회는 도대체 뭘 보고 이런 무책임한 표지판을 부착해 놓았는지.....

그리고 이름은 어디서 근거하여 붙여놓았는지....

일찍이 점필재 김종직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이 봉우리들은 상봉(천왕봉)과 서로 다툴 만한데도 명칭이 없었다.

유극기(유호인, 극기는 자, 1445~1494)가 말하기를 "선생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면 좋겠습니다."하였다.

내가 이를기를 "증거가 될 만한 것도 없는데 어찌 이름을 함부로 붙일 수 있겠는가." 하였다.

 

- 점필재집  유두류록 중에서.

선인들도 산 이름을 짓는데 이렇게 신중하였는데 이렇게 함부로 지으면 안 되죠.

09:32

1061.6봉을 지나,

09:39

뱀재를 지납니다.

이곳을 달리 '헬기장'으로 부르는데 헬기장은 잡목만 가득하여 거의 용도폐기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이름 작명가'하면 바로 이분입니다.

대단한 분이시죠.

특히 지맥꾼들로부터는 지탄의 대상 1호입니다.

당신의 산에 대한 욕심을 '산사랑'으로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09:52

우측으로 815.3봉을 가지를 치는 972.8봉을 지납니다.

09:56

송전철탑을 지나고,

09:59

997.8봉을 지나 드디어 대원들과 합류를 합니다.

벌써 점심?

이 정도 왔으니 어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야 하산식을 할 때 그나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배려?

저는 나눠준 약밥을 먹으면서 오다보니 별로 입맛도 내키지 않아 '정닉'님이 주시는 빵 한 조각으로 해결.

자!

어서 일어납시다.

총대장님이 준비해 놓으셨다는 해물순두부와 대강 막걸리 먹으러 가야죠.

10:25

흙목정상이라고 표기된 1035.1봉에 오릅니다.

여기도 엉터리 표시.

다만 정상에서 3등급 삼각점(단양315)만은 확실하게 확인합니다.

10:38

기온이 살살 오릅니다.

아침에는 거의 영하 수준이었는데 이제 제법 땀도 나고.....

10:54

그러고는 싸리재입니다.

 

수리봉 소고(小考)

 

. 이 수리봉이 지난 번 백수리봉의 수리봉과 같은 뜻인가?”

수리봉하면 그 뜻이 무엇인가? 백수리봉을 지나면서 수리봉이란 그 주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라 했고 그 말의 어원은 고구려 말에서 왔다고 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수리'란 말은 우리나라 곳곳의 땅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 이름을 보면 산림청에 등록된 이름 중 랭킹 1위가 국사봉이고 2위가 바로 이 수리봉인 것이다. '높은 곳', '맨 꼭대기'를 뜻하는 순 우리말인 것이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이 수리봉이 한자로 '守理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나친 억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예로 단옷날(端午)의 순 우리말이 수릿날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즉 추석이 달의 축제였다면 단오는 태양의 축제인 바, 태양이 높은 하늘의 한가운데 떠 있는 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수리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정수리가 된다. 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의 어원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이 녀석이 높은 곳을 날아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봉우리'라는 말을 많이들 쓴다. 이것도 산봉수리에서 ''이 탈락하여 산봉우리가 된 것이다. 이 말의 파생어가 '사라', '서리' '수레' '수락' '싸리'등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서울에 있는 수락산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의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맥을 할 때 많이 나오는 지명이 있다. 바로 '수레너미'고개라는 곳이다. '싸리재'도 마찬가지다. 수레가 지나갈 만한 크기의 고개라거나 싸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이런 고개들은 우리 옛 선조들이 보기에는 그저 '높은 고개'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지역마다 달리 부른 것이고 그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운변화가 일어나서 변형이 된 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졸저 전게서 298쪽

호반님 명의로 부착.

산뜻하고 깨끗하게 잘 부착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답사 코스 중 1085.2봉을 지나 대간길 외에 있는 1059.9봉이 눈에 거슬립니다.

대갈길에서 약 400m 정도 떨어져 있는 봉우리인데 거기에 4등급 삼각점(단양 456)이 매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도 오늘 저의 답사 코스에 넣었으므로 총대장님께 고하고 먼저 출발합니다.

1059.9봉이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11:10

무명봉을지나,

11:17

배재를 지납니다.

왜 배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용두리 야목마을로 빠지는 삼거리입니다.

 

지도 #5

좌측으로 낙엽송 숲을 지나.....

오늘 이 구간 중 우측으로 노란 숲이 보이는데 이게 다 낙엽송 숲이라고요?

좋은 거 배웠습니다.

11:33

1085.2봉을 지나,

11:52

삼각점봉 갈림봉을 향해 고도를 좀 높입니다.

11:58

시루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군요.

시루란 말도 수리의 아류亞類죠?

영진지도에는 여기가 투구봉으로 되어 있고....

이러니 부른 이들마다 이름이 틀려 큰 혼란을 치르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군요.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지리에서 했지만 여긴 그보다는 좀 양호하지만 좀 곤욕을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갔다 나올 때도 또 마찬가지일 것 같고....

과감하게 포기하고 선두 대원들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20여 분 기다리니 대원들이 도착을 하는군요.

12:26

1101.3봉은 투구봉이라는 이름을 가졌군요.

이 봉우리가 투구를 닮았나요?

그 옆 바위로 가서 주위를 조망해 봅니다.

지나온 봉우리들을 봅니다.

바로 좌측이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곳이고.....

차례대로 흙목정상 그리고 솔봉이겠군요.

우측 뒤로 한천지맥이 고도를 낮추고 있고....

바로 앞의 754.9봉은 용두리로 내려가고 있고,

이어지는 한천지맥은 자구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촛대봉 하나 남았나요?

12:38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1080.7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에서 2등급 삼각점(단양  26)을 봅니다.

이정표와,

깨어진 정상석은 여전합니다.

이 구간의 이정표와 봉우리 이름이 대간길 중 가장 혼란스럽습니다.

 

저수치를 지나 투구봉1081m이라는 표지판을 지난다. 예전에 있던 소백산 투구봉이라는 안내판은 치워진 듯하다. 이 구간은 봉마다 산 이름을 지어서 붙여놓았다. 그리고 그 봉의 표고(標高)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고 일반 등산지도를 보고 표기한 것이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모든 대간꾼들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만 보고 다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잠깐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표기

지어진 봉 이름

정상석(표지판) 표기

비 고 (지도 상)

1080.7m

촛 대 봉 1081m

촛대봉 1080m

1101.3m

투 구 봉 1080m

투구봉 1081m

1115.6m

시 루 봉 1110m

시루봉 1110m

1035.1m

흙목정상 1034m

흙목산 1070m, 1033.5m

낙동산악회

1100.6m

솔 봉 1103m

솔 봉 1021m

1017.9m,묘적재

묘 적 령 1015m

묘적령 1020m

묘적재

무 명 봉

삼형제봉 1261m

없 음

삼형제봉

 

 

겨울에 이 소백산 구간을 지나는 대간꾼들은 칼바람과 많은 양의 눈은 각오를 하여야 한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한 구간이다. 예전에는 이정표의 거리 표시가 잘못된 부분이 많았었는데 새롭게 정비를 해놓아 많이 정확해졌다. 멧돼지들이 파헤쳐 놓은 흔적을 여러 곳 발견하면서 지나다 보면 폐헬기장도 볼 수 있다. 잣나무 조림지 구간을 지나 ‘1084봉 돌산악회비닐코팅지가 있는 1085.2봉을 지나면 배재다. 여기서 왼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남조리로 진행할 수 있으며 우측으로는 야목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이정표가 있다. 그러니 예전에는 이 배재를 이용하여 예천 사람들과 단양 사람들이 교류를 했었다는 얘기다. 전에 보았던 유두봉 표지판이 없어진 1059.6봉을 지나면 싸리재를 만난다. 그러니까 예천의 원용두 마을에서는 이 싸리재로, 내동이나 야목 사람들은 배재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한편 주지하다시피 싸리재는 수리에서 온 말이니 얼마나 높은 고개인지 짐작이 간다. 삼각점(단양315)이 있는 1035.1봉에서 좌측으로 튼다. 1035.1봉 역시 흙목정상이라는 지명이 쓰인 이정표와 흙목산이라는 표지판이 대간꾼들을 헷갈리게 한다.

 

송전철탑을 보고 15분 정도 걸으면 헬기장을 지나게 된다. 이 헬기장 ~ 묘적재까지의 구간을 여름에 지난다면 유난히 많은 파리에게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뱀재의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단양460)과 이정표가 있는 1100.6(솔봉 1021m)에 오른다. 나무벤치가 연이어 나오고 산딸기, 취나물 안내판을 지나면 마루금 치유 숲길간판을 볼 수 있다.

 

졸저 전게서 302쪽

 

이제 다 왔습니다.

 

12:58

어니언스의 노래 '돌에 핀 꼿'은 들어봤어도 '돌에 핀 나무'는 처음 봅니다.

따뜻한 초겨울 아니 늦가을의 온기를 느끼며 약간 졸음을 느낍니다.

전화기를 눌러 조덕배의 '꿈에'를 들으며 내려옵니다.

꿈속에서 걸었던 하루가 또 아쉽게 지나가는꾼요.

저 봉우리 우측으로 가면 수리봉 ~황정산 루트를 따라 도락산으로 이어지겠죠?

언제나 그 꿈속을 또 거닐 게 될까요?

행복했습니다.

참 선한 해밀 대간꾼들.

어쩌면 다 해밀스럽게들 생기셨는지....

하이파이브를 하고, 악수를 하고 서로 안아 주며 격려해 주고.....

13:02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예천군과,

단양군에서 설치한 저수령 표지석을 봅니다.

 

저수령의 유래

 

저수령의 유래에 얽힌 내력이 적힌 표지석을 본다. 이 저수령이 소백산군에서는 낮은 축에 끼는 고개라 하여 저수령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사실 이 저수령(低首嶺)은 우리말로 '낮은머리고개'라는 의미다. 하지만 해발 850m나 되는 고개이니 결코 낮지가 않다. 물론 우리나라 고개 중 가장 높다고 하는 태백의 만항재1330m나 두문동재1268m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의 날머리인 죽령이 그렇게 높게 보여도 고작 689m 밖에 되지 않으니 이 유래는 합당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에 새겨 놓았듯 이 고개를 넘는 왜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은 우리 민초들의 어쩌면 가련한 희망사항을 보는 듯하다. 차라리 이곳을 지나는 백성들이나 상인 혹은 괴나리봇짐을 진 예천의 선비들이 이 높은 곳을 오르느라 고개를 숙이며 힘들게 오르느라 고개를 숙였다는 설()이 우리 같은 대간꾼들에게는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 졸저 전게서 301쪽

 

오늘부터 산방기간이라고 합니다.

코스를 선택할 때 이걸 또 감안해야 하겠군요.

다음 구간은 황장산 구간을 못 가고 대신 조령 ~ 이화령이라!

멋진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구간입니다.

다음 구간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