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산행을 마지막으로 한 지가 언제였더라?
아마 '현오 TV''에 올릴 동영상 촬영한다고 백두대간길을 걷던 올 초 아니었나?
코로나19가 막 시작할 때...
그때 쯤 일 것입니다.
전라북도 장수의 중고개재 ~ 육십령을 끝으로 산행을 접은 게....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그렇게 화려하게 찍어놓은 대간 영상도 올리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였는데 오히려 지금 생각하니 속이 후련합니다.
각설하고 이런 상황에서 삼각산, 관악산을 다녀온 게 전부고 그러다 보니 산친구들과도 소원해졌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어느 정도 코로나가 불완전 진정국면으로 들어가자 조심스러운 산악회의 움직임도 포착이 됩니다.
해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갑니다.
그렇군요.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대간팀과 명산팀은.....
어라!
그런데 정맥팀은 한북을 마치고 낙동으로 든다고 하는군요.
곁다리로 진행하는 한남은?
지지대고개?
그럼 목감까지?
한남구간 중 우리 동네 바로 옆을 통과하는 구간이로군요.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은 요양보호사님께 노모를 부탁드리고 산행 채비를 갖춥니다.
제가 지지대까지 가서 합류하는 것은 제 여건 상 여럽고 그저 집에서 나와 걸어서 목감단맥을 타고 거꾸로 진행하다 목감방향으로 오는 일행과 합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도 #1
살펴보면 광명에는 4산 종주라하여 도덕산 ~ 구름산 ~가학산 ~ 서독산을 잇는 약 11km짜리의 무난한 코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줄기의 원천은 한남정맥입니다.
즉 백두산에 흘러내려온 줄기가 속리산 천황봉(지금은 천왕봉이라 부르고 있지만 천황봉이 천왕봉이라 불릴 하등의 근거도 없기에 저는 옛이름인 천황봉을 고집합니다.)에 이르러 우측으로 가지 줄기 하나를 내는데 이게 바로 한남금북정맥입니다.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니겠어. 녹색연합은 그때 계룡산 천황봉도 문제 삼았었지. 그런데 1914년 제작해 1928년 수정된 1 : 50,000 지형도를 보면 계룡산에는 ‘연천봉742.9m’만 기록돼 있고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만약 지도가 생긴 1928년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지명이 붙여졌다면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천황봉 이전에는 상봉 및 상제봉으로 불렸기 때문에 일제잔재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공주시와 공주향토문화연구원의 반대의견에 따라 거부되었지. 더욱이 천황봉은 대한민국 정부가 1998년 8월17일자로 새로 고시한 지명이기도 해. 사실 지금도 계룡산 주봉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천황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상황이야.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천황봉 바로 옆 쌀개봉에서 가지를 치는 용수지맥의 첫 봉우리가 천왕봉608.6m인 점도 크게 한 몫을 거들었을 거야.”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그 한남금북정맥은 안성의 칠장산에서 서쪽으로 금북정맥을 내고 북서쪽으로 가지 친 줄기가 바로 한남정맥입니다.
그 한남정맥이 문수봉, 석성산, 광교산, 수리봉을 거쳐 165.3봉에 이르러 자신은 좌틀하여 목감사거리로 내려가면서 직진하는 가지 줄기와의 사이에서 목감천이 발원시킵니다.
그러니 산줄기의 원리에 따라 이 목감천은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하천과 만나는 곳 즉 합수점에서 이 가지 줄기를 만나게 되고 이 가지 줄기는 거기서 맥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위 지도를 보면 목감천은 자신보다 상위 등급인 안양천을 광명시 광명동과 그로구 개봉동 그리고 구로동이 만나는 곳에서 합수하고 당연히 이 가지줄기는 여기서 그 맥을 다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한남정맥의 165.3봉에서 가지를 친 이 줄기는 서독산 ~ 가학산 ~ 구름산 ~ 도덕산을 내려와 현충탑을 지나 이 합수점으로 오는 약 18km의 단맥이 되며 당연히 이 단맥의 이름은 지천인 목감천의 이름을 따 목감단맥이라 이름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광명4산을 종주하는 이들은 산줄기학의 입장에서 보면 목감단맥의 일부 구간을 진행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각설하고.....
산수대장님께 전화를 넣어봅니다.
오늘 확실하게 출발을 하느냐는.....
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연기 내지는 취소가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역시 예정대로 진행하는군요.
그럼 저는 역으로 진행을 할 테니 수암봉 부근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전하고...
2020. 6. 7. 08:38
집을 나섭니다.
단지團地 바깥으로 봉우리 하나가 살짝 보입니다.
서독산이라고 불리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서 표기한 곳과는 다르죠.
오리 이원익 기념관을 지나 가압장 좌측의 들머리를 이용합니다.
오리 이원익이라....
황희 정승과 더불어 조선의 청렴한 정승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죠.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무능한 선조시대를 이끈 분이기도 하고.....
녹음이 짙은 숲속은 햇볕도 들지 않아 모자 없이 걸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눈에 익숙한 산길.......
그러고는 지도 #1의 214.4봉 전위봉으로 오릅니다.
다음 블로그가 새롭게 장식을 했다고 하는데 무지 불편하군요.
속도는 느려지고 기능은 축소되고....
어쨌든 안양산악회에서 이곳이 서독산이라고 팻말을 달아놨는데 높이는 물론 위치도 틀렸습니다.
곧 이정목이 세워질 것 같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안양 부근의 정경은?
뿌옇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군요.
도고내 고개 5거리를 지나면서 드디어 목감단맥에 접속합니다.
우측으로 가면 가학산 ~ 구름산으로 진행하게 될 겁니다.
서독산 활공장을 지나,
206.7봉에서 예전 그러니까 2016. 5. 광명시에 이사온 걸 기념하면서 오늘 걸을 그 길을 수리산에서 부터 걸으면서 달아놓았던 표지띠가 그대로 남아 있군요.
이는 대부분의 산꾼들은 이 오리지널 단맥길로는 다니지 않는다는 얘기죠.
광명KTX 역사 뒤로 한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모락산385.8m이 보이고....
09:29
우측 산본지구 오른쪽으로 수리산 정상이 살짝 보이는군요.
우리 멤버들은 어디를 오고 계실까?
벌써 당정역을 통과했군요.
빠르기도 하셔라.
우측으로는 광명동굴 진입로가 보이고 그 뒤로 낮게 깔려 흐르는 줄기가 바로 한남정맥이죠.
그러니까 저 한남정맥과 이 줄기 사이로 흐르는 하천이 바로 목감천이라는 말씀!
광명시 외곽을 싸고 흐르는 물줄기라는 얘기죠.
09:34
이곳이 바로 서독산180m 정상.
적어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의할 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저 초소 우측으로 철책을 따라 진행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여름이라 저 곳을 뚫고가기가 조금 힘들 거 같아 일반 등로를 따릅니다.
광명시 가학동 안서초등학교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반등로는 목감단맥 우측으로 이렇게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금 전 광명 이주 기념 단맥 산행을 할 때에는 이 길을 모르고 능선을 고집한다는 생각으로 철책을 따라 진행하며 힘들었던 기억이....
이렇게 운치있는 길은,
소위 약수터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다시 능선을 따라야 합니다.
09:53
그러면 아까 지나쳤던 단맥길에 다시 합류합니다.
우측 철책을 따라 진행하면 초소가 있는 아까 그 서독산 정상으로 진행하게 되고....
전에는 그렇게 진행을 했었고 좌측으로 선명한 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우틀하여,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 있는 안서초등학교를 지나,
시흥과 안양을 잇는 도로를 건너,
서해안 고속도로 하부를 통과하여,
10:10
서독산을 마주 보는 곳으로 올라섭니다.
군부대와 고속도로로 인해 훼손된 단맥에 다시 접속하는 것이죠.
이 단맥길은 거의 정신 나간 사람들만 다니는 곳이라 인적의 흔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능선이 그렇듯 예전 나무하러 다니는 사람들이나 목감에서 산본으로 가는 이들이 지름길로 사용했을 곳이 이 루트였을 것이니 어차피 그 길의 흔적은 이렇게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뜻하지 않은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군요.
건교부가 아닌 경기도에서 설치한 것이로군요.
기준점 번호는 경기126입니다.
삼각점이 있다는 표시를 하나 해두고...
10:34
사진을 회전시키는 기능도 없어지고....
그러고는 455.1봉을 만나면서 다시 군시설과 만나게 됩니다.
이제부터 지루한 철책길 옆을 따라가는데 문제는 100m 정도마다 울려대는 경고음입니다.
뭐 그런 경고음이야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 많이 만나봤고 들어봤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으나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10:45
165.3봉을 향해 열심히 오릅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는군요.
10:50
드디어 한남정맥 길에 접속합니다.
정맥길은 165.3봉을 못 미친 여기서 우회전하여 서해안고속도로 하부를 이용하여 목감3교로 진행한 다음 도로를 따라 목감거리로 가면 될 겁니다.
물론 수암봉에서 오는 정맥꾼들이라면 당연히 165.3봉을 지나 좌틀해야겠죠.
그런데 이 부대 때문이기도 하고 또 중간에 사격장이 있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철조망을 많이 설치하여 진행에 애를 먹게 됩니다.
물론 지뢰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정으로 처음 이 길을 진행하는 정맥꾼들이 이 길 즉 오리지널 정맥길을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오히려 이따 만나게 될 222.5봉에서 그냥 남사박 마을로 떨어진 다음 도로를 따라 목감4거리로 진행을 하죠.
10:54
165.3봉으로 오릅니다.
여기서 진행방향이 좀 어렵습니다.
부대 철조망은 여기서 끝나고 우리는 직진을 하여 173.4봉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군인들이 가지치기 작업을 하면서 그나마 희미하게 있던 길들의 흔적을 없애버렸군요.
방향을 제대로 잡아 진행을 하니,
11:23
4넌 전만 해도 없던 윤형철조망이 새로 생겼습니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통과하니,
사격장 운운하면서 부대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팻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여기서 나물과 오디를 찹는 꾼들을 만나 오디의 실체를 확실히 파악합니다.
11:38
173.4봉 가는 길에 또 철조망이 나오고....
11:42
정맥길이라는 얘기....
11:44
부산에서 한남정맥을 하러 온 반가운 산새팀들의 흔적을 봅니다.
그나저나 삼돌이님은 잘 계신가 모르겠습니다.
11:53
잠겨진 부대 후문....
우측에 보이는 붉은색 장치가 센서기로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그렇더라도 진행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해밀팀들을 만나기 위해 직진합니다.
팀들은 수암봉에서 막걸리 한 통씩 까고 오나봅니다.
이제 500m 정도만 더 올라가면 될 듯.
12:19
드디어 다 왔습니다.
이 222.5봉이 한남정맥의 이 구간을 약식으로 진행하는 분들에게는 분기점이 되는 봉우리입니다.
제가 오면서 계속 경보음을 울려서 그런가요.
부대에서 장교 1명과 사변 3명이 순찰을 나왔다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철책을 사이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12:37
팀원들과 마실 막걸리 세 통 중 한 통을 꺼내 마시고는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13:09
저 삼각점봉인 334.7봉에서 이리로 내려오고 있을 것인데....
우측으로 수암봉397.9m도 보고....
13:19
딱 1시간 기다리니 드디어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몇 달 만인가요?
정말 반갑더군요.
남사박 마을을 지납니다.
노인정.
모든 노인정이나 도서관은 다 폐쇄되었고....
이 코로나만 없었더라도 노인네들이 집안에 갇혀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을 텐데.....
14:00
수인산업도로인 42번 도로 앞에서 허이파이브를 하면서 산행을 마감합니다.
저는 그냥 하산길만 같이 걸은 셈.
산수대장님은 이제 지태종주는 되도록이면 삼가하신다고요?
잘 생각했다고 하니 그 다음 얘기가 삼백종주?
그러지 마세요.
뒷풀이는 설악추어탕집에서....
그래도 제 관할구역에 오셨으니....
저는 오리탕집으로 모실려고 했는데 이미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해서....
15:30
일행들은 온 곳으로 가시고 저는 다시 목감사거리에서 제3경인고속도로 하부를 지나,
앞에 보이는 서독산을 넘어 오던 길을 되돌아 가기로 합니다.
6km 정도 될 것이니 소화도 시킬겸....
15:41
서해안 고속도로 하부에서 좌틀하여,
부대와,
안서초교를 지나,
호젓한 산기을 걷습니다.
..........
단맥 갈림길.
이정목도 다시 보고,
서독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초소.
초소 우측으로 수리산과 수암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광명 TG.
16:43
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오늘 정말 날씨가 덥군요.
17:12
아주 개운하게 산행 한 번 잘했습니다.
요양보호사님과 임무 교대하고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잔 곁들이고는 노모께서 잠들기를 기다립니다.
해밀 정맥 팀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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