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점에서 왼편으로 흘러오는 물줄기를 따라 시오 리쯤 올라가면 거림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당시에는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다 쓰러져가는 빈집 한 채가 메밀밭 속에 외따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물줄기는 또 두 갈래로 갈라진다.
우리 환자 트 일행은 그중 오른쪽 물줄기를 따라 다시 오 리쯤 골짜기를 올라가서 숲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물줄기 가까이는 사람 통행이 있을 위험성이 있으니까 계류가 보이지 않는 지형을 고르다 보니 바위 사이에서 10여 명의 용수用水는 될 만한 석간수가 솟고 있어 그 근방에 산죽과 억새를 베어 'ㅅ'자 초막 두 개를 엮었다.
(중략)
그래도 훗날에는 환자 트가 피습되는 일이 종종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환자 트는 거의 안전지대라고 해도 좋았다.
이태의 체험적 소설 남부군 중 저자가 거림을 통해 도장골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대목입니다.
도장골이라...
도장골은 산의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보통명사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즉 중세 국어의 ‘도장’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인 규방閨房이었는데 이는 집에서 은밀하고 안으로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방이라는 의미죠.
그러니 ‘도장골’은 ‘안방처럼 아늑한 골짜기나 마을’로 해석이 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골짜기나 마을이 산줄기로 둘러싸여 안방처럼 아늑할 때 붙는 이름이라는 것이죠.
지리의 가을이 그리워집니다.
산수님 부부가 청학연못의 가을을 보고 싶다고 하시는군요.
가야죠.
못 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루트는 거림에서 도장골로 올라 시루봉을 거쳐 진행하면 되겠군요.
2021. 11. 05. 23:30 버스로 진행합니다.
지리에 든다고 하니 오랜만에 맹이님이 동참하셨습니다.
02:55에 덕산주차장에 도착합니다.
곧 산수님 부부와 고남 형님이 도착하시는군요.
고남 형님이 택배를 해주시기로 하셔서....
거림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한 대가 산악회 한 팀을 내리고 있군요.
대간팀 같습니다.
그들은 거림골로 우리는 도장골로 ......
지리의 계곡 중 한신계곡이 폭포로, 뱀사골이 징담澄潭으로, 칠선계곡이 적요한 원시자연경관을 갖췄다면 이 도장골은 이들을 모두 갖춘 곳입니다.
주계곡의 밀금 폭포나 와룡 폭포 그리고 용소와 윗용소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은 불행히도 야간산행이라 랜턴에 의지하다 보니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좀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와중에 와룡 폭포를 담아봤습니다.
수량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명불허전!
발걸음을 천천히 했는데도 어둠 속에서 와룡 폭포를 보다니....
촛대봉골도 이제는 거의 상단부입니다.
복수천이었던 물이 다시 되살아나고......
좌로 틀어 능선으로 붙습니다.
촛대봉 남릉에 붙기 위함이죠.
남릉의 바위봉에 오르고....
산수 님 사진에서 몇 장 가져왔습니다.
음.....
환호하는 두 여인네.
좌측으로 가짜 삼신봉....
가짜 삼신봉 라인인 백두대간이자 지리 주릉은 일출봉을 지나 천왕봉으로 이어집니다.
천왕봉.
낙남정맥이 지나는 삼신봉은 구름에 덮여있고.....
이내 천왕봉도.....
아침 간식을 먹으며 캔맥주 하나를 땁니다.
그러고는 시루봉으로 오릅니다.
시루봉에서는 좌담회가 열리고 있고....
그리고 시루봉 정상에서는 반야봉부터 왕시루봉까지 그리고 그 앞줄은 화개단맥 라인.
맨 앞줄은 낙남정맥....
그 낙남정맥은 우측으로 그 시작점인 영신봉까지 보여줍니다.
지리의 바람은 지리의 변덕스러움을 보여줍니다.
강진구 기자님.
맹이 님은 건방진 포즈를 취해보고...
다람쥐님은 뭘 관조하시나?
촛대봉.
마천이나 거림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영신봉보다는 시루봉甑峰1703.1m(촛대봉으로 지금의 시루봉1578m이 아님)을 제1봉으로 부르고, 제석봉을 제2봉인 중봉으로 불렀다.
이 촛대봉은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김종직과 하달홍은 이 촛대봉을 중봉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는데 특히 김종직은 증봉甑峰이라고 불렀으며, 남효온은 계족봉鷄足峰, 송병선은 촉봉燭峰 그 외 시루봉, 수리봉, 취봉鷲峰 등 여러 가지 이름들인데 유몽인의 경우 사자봉으로 불렀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47쪽
시루봉1578.0m 정상의 이 고사목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사람 모습입니다.
천왕봉을 가린 구름은 벗겨질 줄 모르고.....
바람이 차갑습니다.
서둘러 오늘의 목적지인 청학연못으로 향합니다.
낙남정맥.
맨 뒤로 왕시루봉과 그 앞줄의 황장산.
청학연못 정경.
언제 누가 이런 고지대에 왜 이런 연못을 만들었을까?
문제는 축조 시기와 선인들이 답사한 이 청학연못의 정확한 이름을 밝히는 데 있다. ‘지리 99팀’의 ‘가객’은 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겸암일기의 돌문과 돌샘 즉 '하동의 화개현에 이르러 유숙하고 이른 아침에 떠나 점심 겨를에 등촌에 닿는다. 그곳에서 사흘간 먹을 양식을 마련한 후 노숙을 사흘 동안 하면 커다란 돌문(石門)에 이르고 그 돌문(石門)을 지나 40리가량 가면 1천 섬을 거둘 수 있는 논과 밭이 펼쳐지는데 넓이가 1천 호쯤은 살만하다 했다. 그 골짜기에 돌샘(石泉)이 하나 있는데 고려 때 ‘청련거사’가 20년 동안 속세와 단절하고 이곳에 살았는데 이곳에 살면 병화가 이르지 않아 보신하는데 길지라는 ‘도참’의 글이 새겨져 있다. 대대로 이곳에서만 자라는 청련(靑蓮)을 기르고 살았기에 그를 ‘청련거사’라 불렀다 한다.'는 내용을 들어 1570년경이라고 본다.
반면 도솔산인 이영규는 위 류운룡은 화개동천에서 출발하여 횡천지맥을 거쳐 삼신봉에서 낙남정맥에 들은 다음 세석으로 올랐다고 진행 코스를 설정한다. 그러고는 위 루트 상의 ‘돌문’은 낙남정맥 상의 삼신봉 바로 아래에 있는 지금의 ‘석문’을 이르는 것이고 ‘돌샘’ 역시 지금의 ‘음양수샘’을 말하는 것이니, ‘돌샘’은 이 ‘작은 못’과 전혀 관계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위 송병선에 앞서 이곳을 지났던 하달홍의 1851년 산행기에는 이 ‘작은 못’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못의 축조 시기는 1862년 진주 단성민란 때 피신을 온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에 인공 못을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못의 이름은 불일폭포에 있는 청학연과 구분하여 이곳 세석평전이 예전에는 적석평積石坪이라는 지명을 가졌음에 착안하여 세석연못 혹은 적석연못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생각건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산길을 가장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능선이며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또한 특별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계곡을 건너 마주 보이는 능선을 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니 유운용의 돌문과 돌샘은 지금의 낙남정맥 상의 석문과 음양수샘으로 보는 이영규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성낙건 선생은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다면 세석 이외에는 불가능하다.”는 평소의 소신을 갖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 연못을 청학연못이라 부른 것은 불일폭포의 청학연과 혼동을 하여서 붙인 게 아니라는 점, 지금은 어느 정도 청학연못이라는 이름으로 세인들에게도 정착된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그 이름만큼은 지금의 청학연못으로 놔두는 게 낫지 않을까?
- 졸저 전게서 451쪽
갑자기 시상詩想이 떠오릅니다.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는군요.
시는 술술 나옵니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쓸 쓸 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갯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 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누대를 오르니 왼편에는 누운 바위가 벼랑을 이루고 있고 정면에는 ‘학동임(鶴洞壬)’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근래에 기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짓인 듯하였다. 아래에는 작은 못을 만들었고, 또 그 몇 보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연수정(延壽井)’이라 하였다. 누대의 뒤에는 촛불 같은 촉봉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학동임(鶴洞壬)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숲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웬 중년 남자 한 분이 오셔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으시군요.
덕분에 4명이 한꺼번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30분 이상을 놀았습니다.
촛대봉을 향해 오릅니다.
우측으로는 천왕봉이,
좌측으로는 반야봉이 각 관찰됩니다.
맥 뒤가 덕천 지맥의 달뜨기 능선.
그 앞줄이 황금 능선과 구곡산.
그 앞이 일출봉 능선.
세석평전....
주절주절.....
촛대봉을 향하여....
무슨 형상?
촛대봉 오르는 길에 시루봉을 돌아보고.....
그 뒤로 낙남정맥의 삼신봉과 뒤 우측으로는 백운산과 억불봉 그리고 도솔봉까지....
산수님.
무엇을 보시나이까?
촛대봉에 오면 꼭 봐야 할 모습.
가짜삼신봉 ~ 화장봉1693.6m ~ 연하봉 ~ 일출봉 ~ 제석봉 ~ 천왕봉....
말끔하게 단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세석대피소.
운장바위와 한신바위까지 한방에 봅니다.
세석대피소로 내려가 공단직원으로부터 작업 진척에 관한 설명을 듣습니다.
들려주는 얘기에 의하면 이제 온돌 작업까지 마쳤고 코로나 19가 지금보다 확대만 되지 않는다면 하루 50명 정도의 숙박인원을 받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물론 대상은 코로나 접종을 2회 완료하고 14일이 지난 사람으로 1인 당 1명 본인만 인터넷 신청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군요.
어쨌든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늘은 사실 지리산에 사는 몇몇 분과 함께 양갈비 구이 파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당한 분량의 양갈비를 택배로 고남 형님 댁에 이미 보냈고 하산 후에 고남 형님 댁에서 모인 후 만찬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예정구간은 벽소령을 지나 북부능선으로 진행하여 실상사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니 그럴 경우 맹이 님은 애닐 근무이기 때문에 참석이 어려워지는군요.
뒤풀이 없는 산행은 노가다 산행이라는 지론 때문에 과감하게 여기서 한신계곡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합니다.
단풍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그저 한신계곡의 계곡물만 감상하며 내려옵니다.
고도가 낮추니 간신히 붉은색이 보이긴 합니다.
첫나들이 폭포 상단부.
고남 형님이 이곳까지 마중을 나오셨군요.
형님 집에서 샤워를 하고 단골집으로 가서 준비해온 양갈비로 만찬을 즐깁니다.
지리산 사람들이라서 그런가요?
3 시간이 쏜살같이 금방 지나가는군요.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이렇게 하루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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