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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제21구간, 죽령~마구령) 나홀로 산행, 32.43km (포항셀파)

드디어 소백산이다.

그리고 다시 죽령이다.

계립령 그러니까 지금의 하늘재 다음으로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두 번째로 열린 바로 그 고갯길인 죽령이다.

기록에 의하면 AD158년에 신라의 죽죽(竹竹)이 처음 열었다고 하는 그 고갯길인 죽령(689m)을 오늘 다시 찾아간다.

지난 번 불의의 사고로 가지 못했던 그곳을 밟기 위해서다.

죽령은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많이 잃기는 했으나 그 꼬불거리며 올라가는 길의 굴곡은 여전했고 그 마루 정상에 있는 휴게소는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언에 의하면 평일에는 전보다 못하지만 휴일에는 그래도 옛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여전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죽령휴게소에 민박을 쳤었는지 기억에 전혀 없지만 지금은 깨끗한 시설로 단장하여 대간꾼들 혹은 소백산 관광객 등의 이용에 공(供)하고 있었는데, 시설의 청결과 이부자리의 상태 등 그리고 음식까지 조리할 수 있음을 감안해 보면 우리 같은 대간꾼들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한다.

 

 

 

 

 

2009. 6. 27. 04:30.

죽령휴게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콘크리트 도로가 시작되는 표지목 앞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탐방지원센터에는 직원들이 아직 출근했을 리 만무고 다만 닫힌 문에 붙어 있는 '야간 산행 금지'라는 푯말이 나를 맞는다.

그곳을 지나 소백의 품에 안긴다.

 

 

04:41.

여기서부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는 이렇게 지루한 도로가 계속될 것이고, 그 연화봉부터 상월봉까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니면 덕유에 비견할만한 고원평원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보기 위하여 지금의 지루한 콘크리트 도로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다.

오히려 이 도로가 그것을 빨리 만나게끔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만한 불편이나 무미(無味)도 감수할 수 있다.

 

 

벌써 1.9km를 운행했다.

땀도 별로 나지 않는 이곳을 걷는 요령은 다른 게 없을 것이다.

무조건 이 생각이든 저 생각이든 아무 생각을 하면서 그 지루한 시간으로부터 잠시 나를 이탈시키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런데 도로 경계석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멧돼지다.

다른 곳에서 이런 경우를 닥쳤더라면 분명히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라는 표현을 썼을 것인데,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그 녀석은 절대로 이 도로로 올라올 수 없는 곳에 있고, 녀석은 경험에 의하여 이곳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역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이 도로는 자신이 싫어하는 시멘트 냄새가 나는 곳이며, 자신의 기억 속에도 이곳까지 올라온 적이 별로 없었을 것임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무시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이 도로만이 갖는 장점이다.

 

 

나뭇가지 뒤로 옥녀봉과 그 뒤로 펼쳐지는 도솔봉 능선을 바라본다.

 

 

오던 길을 돌아보니 죽령고개는 이미 운해로 파묻혀 있다.

 

  

 

3.2km 표지목에서 연화봉과 천문대를 바라본다.

 

 

천문대 일대의 시설물이 조그마한 점으로 보이는 그곳에서 반대편 도솔봉 쪽을 바라보니 운무가 멋있다.

오늘 하루 산행이 얼마만한 더위 속에서 진행되리라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이제 KT 기지국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도락산 일대의 연봉과 도솔봉 부근을 조망해본다.

 

 

이내 기지국 삼거리다.

 

 

거기서 도솔봉 연봉을 뒤로 놓고 증명사진을 남긴다.

 

 

 

06:10.

1290고지 정도에서 크게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천동계곡과 그 뒤 구봉팔문(九峰八門)의 능선들이 구름에 쌓여 있다.

참으로 멋있고 아름답다.

 

 

 

제2연화봉 전망대에서 천동계곡과 그 뒤로 펼쳐지는 연봉들을 다시 조망한다.

그리고 소백도 바라본다.

 

 

난간을 이용하여 풍광명미를 뒤로 놓고 다시 한 장을 남긴다.

내가 없는 게 오히려 낫다.

 

 

연화봉이 0.6km 남았다는 표지목이 나온다.

 

 

바로 앞이 천문대라는 얘기다

 

 

 

지붕이 좀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천문대에 그 유명한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아 의아함을 준다.

산객과 관광객들로 인하여 그 '개짖는 소리'가 직들의 안면과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어 치운걸까?

아니면 그도 늙어 세상을 떠난 것일까? 

06:36.

그 천문대를 통과한다.

 

 

사진 찍고 조망하느라 시간이 보통 지연된 게 아니다.

 

 

 

06:56.

장거리 산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하여 연화봉 3거리를 출발하여 고무판이 설치되어 있는 나무다리 위로 발을 대딛는다.

장쾌한 초원길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마루금을 밟고자 너무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훼손된 등산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등산로가 이렇게 나무다리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나마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은 그냥 돌과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인데 다른 산에 비해 소백산은 그 비율이 턱없이 낮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하다고 한다.

 

 

비로봉이 이제 3km 남았다.

 

 

 

천동리 쪽과 뒤로 돌아 연화봉 쪽을 바라보았다.

 

 

숲에서 빠져나오자 소백산국립공원 측에서 생태계 복원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였다고 자랑하는 지역이 나온다.

사실 그곳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느 산이 그렇게 훼손되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사실 훼손 정도는 서울 근교의 산들이 이보다 더 하지 않을까?

 

 

그곳에 올라 삼가리 쪽을 바라본다.

멀리 금계호가 보이고 삼가리는 비로계곡과 당골계곡이 만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 금계호 오른쪽이 금계동(金鷄洞)으로 이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 으뜸으로 쳤던 곳인 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런데 십승지라고 하면 전란을 피할 수 있고 각종 질병과 재해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어야 하는데 실제 임진왜란이나 한국 전쟁 때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꼭 풍수지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지나온 곳 길 뒤로 연화봉이 보이고 도솔봉 연봉들은 개스위로 봉우리들만 보인다.

 

 

07:43.

제1연화봉(1394m)에 올라선다.

 

연화봉 쪽으로 천문대가 능선 위에 서있고 이제 앞으로는 비로봉(1439m)이 선명하다.

 

 

그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초원 같은 풀밭을 걷게 되고 그 풀밭 너머로는 구봉팔문 연봉이 구름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07:48

소백산 기도원 갈림길인 1340고지에 도착한다.

 

 

초원지대를 방불케 하는 소백산의 이 초원지대는 봄에는 하얀 눈 위로 푸른 빛의 새싹의 조화를, 가을에는 마치 황소 등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그리고 겨울에는 새찬 북서풍의 바람 속에서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금 내려 온 계단을 돌아본다.

소백은 이런 곳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또 뒤를 돌아본다.

 

 

비로봉 쪽의 조망은 역광인 관계로 제대로 촬영이 되지 않아 최대한 역광을 피하여 찍어본다.

비로봉 정상으로 100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08:02

비로봉 1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난다.

비로봉으로 개미떼 같이 일단의 산객들이 열심히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상고대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을 지나자 이내 주목관리소가 나타난다.

‘홀대모’의 ‘구름나그네’님이 후배와 그렇게도 추위에 떨었다던 그 주목관리소다.

 

 

그 옆의 계단을 따라 눈을 쭉 옮겨보면 비로봉 정상으로 이어지고 그 정상에는 아까 그 인파들로 가득 차있다.

 

 

뒤를 돌아 연화봉과 그 뒤에 있는 고봉준령들을 조망한다.

 

 

 

08:10

천동삼거리에 도착한다.

비로봉을 향해 힘차게 올라간다.

 

 

 

  

사면의 풀밭이 너무나 멋있고 철책 뒤로 조그마하게 뿅긋 솟은 바위덩이가 보이는데 나는 작은 주목을 당겨서 촬영해본다.

 

 

뒤를 돌아서 오던 길을 촬영해 보아도 너무 멋있다.

올라가는 길에 만났던 10살 아이에게 몇 시에 일어났냐고 묻자 5시 30분에 일어나서 아빠 따라왔단다.

천동리 코스가 가깝긴 가깝나 보다.

 

 

08:21

비로봉 정상이다.

어느 단체에서 왔는지 100여명이나 되는 남녀 산객들이 극기 훈련을 왔는지 산이 따나가라고 구호를 외친다.

 

 

 

내가 지나온 능선을 보고 삼가리와 배점리 방향의 고산준령을 조망하는데 멀리 송림지까지 보인다.

 

 

 

가야할 국망봉과 신성봉 그리고 형제봉까지 조망한다.

너무 시끄러워 위와 같이 간단하게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뜬다.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와 아까 뿅긋 솟아있던 작은 봉우리에서 주목관리소를 조망하고 국망봉을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니 비로봉에서는 아까 그 산객들이 ‘아침이슬’과 ‘사랑으로’를 합창한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지금과 같은 초원길이 아니라 숲속을 지나야만 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멀리 표지판이 보인다.

 

 

 

국망봉이 2.7km 남았다.

여기가 어의곡 삼거리로 이곳만 지나면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08:41

숲길로만 약 400여m를 진행하면 잠시 뻥 뚫린 길이 나오고 국망봉까지 2.2.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나게 된다.

 

 

그 표지목을 지나면 곧 숲속으로 다시 진입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역시 계속 터널이다.

 

 

 

그런 곳은 거미줄, 파리, 나방들 때문에 영 시달려야 하는 곳이 아니다.

 

  

08:54

1.5km 남았다는 표지판을 지난다.

 

 

썬크림을 바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을 계속 진행해 나가자 잠시 꽃밭을 볼 수 있고 그곳을 지나자 이처럼 예쁜 길도 나온다.

 

 

 

뒤를 돌아 비로봉과 지나온 터널 같은 숲길을 바라본다.

 

 

 

또 화단 같은 곳이 나타나면서 국망봉에 다 왔음을 짐작케 한다.

 

 

 

 

09:23

바위가 보이고 표지판이 보이면 이내 국망봉 삼거리이다.

 

 

뒤로 배점리로 내려가는 죽계구곡이고 그 위에 초암사가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죽계구곡 쪽을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아도 여전히 아름답다.

 

 

 

 

국망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09:30

국망봉에 도착하여 간식으로 빵과 오이로 간식을 먹는다.

 

 

 

뒤를 바라보니 아까 바위 덩어리가 보이고 멀리 도솔봉까지 조망된다.

 

 

 

 

 

 

진행방향은 역시 초원지대이다.

저 봉우리만 넘으면 이 환상 지대가 끝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09:52

드디어 고치령이 표지목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늦은맥이재가 1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나면 밋밋한 길이 계속되는데 여기는 멧돼지가 떼를 지어 사는지 숲을 온통 헤집어놓았다.

 

 

10:11

상월봉(1394m)을 지나 을전삼거리를 통과한다.

 

 

 

곧 늦은맥이재가 나오면서 길은 갈린다.

 

 

왼쪽은 신성봉(1389m), 민봉(1362m)을 지나 여생이골을 거쳐 구인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고개로 올라가는 길이 대간 마루금이다.

구인사.

태고종의 본산인 구인사(救仁寺).

천태종의 중흥조(中始祖)인 상월(上月)스님이 1946년 '소백산이 중생을 제도하는 곳'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구봉팔문(세밭문봉, 배골문봉, 귀기문봉 등) 기슭에 구인사를 세워 천태종을 되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종파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구인사에 가보면 대웅전보다 높은 곳에 석가모니 부처님 정도의 크기로 이 상월스님을 불상 같이 모셔 놓은 것을 보고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해탈을 하였으니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격이라는 취지에서인가?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이 넘었는데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이런 길을 계속 내려간다.

 

10:43

폐헬기장이 나온다.

10:46

고치령 7.1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날 때 반대방향에서 홀로 산행을 하는 산객을 만난다.

고치령에서 출발을 했단다.

 

 

'탐방로 아님'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우로 크게 돌아간다.

흐름상은 직진인데 대간 마루금은 오른쪽이므로 친절하게 안내판을 부착해 놓은 것이다.

 

 

10:57

완전히 썩은 고사목.

앞에서 볼 때는 평범한 고사목으로 보았는데 뒤로 돌아가 보니 안에 흙으로 채워도 보았는데 결국은 생명을 이어가지는 못했나보다.

 

 

 

11:02

연화동 삼거리 도착.

바로 뒤에 폐헬기장이 있다.

 

 

 

11:15

고치령이 5.8km 남았다는 표지목에 도착.

내리막이 계속되고 이제 400m 더 왔다.

 

 

 

하여간 이 길은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 정말로 답답한 길이다.

 

 

11:49

이제 고치령도 3.4km 남았다.

 

 

 

앞에 국망봉에서 볼 때 상월봉을 넘어가던 부부가 간다.

오랜만에 조망이 되어 봉우리를 바라보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다.

 

 

길은 여전히 좋다.

 

 

12:06

마당치다.

머리 위의 나뭇잎이 햇볕을 가려주어 더위를 그만큼 적게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보지만 어쩌면 그 나뭇잎이 온실 효과를 나타내주어 공기가 통하지 않아 찜통 더위를 느끼게 해준다.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이곳을 조금 지나면 형제봉 갈림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우회전을 크게 하게 되는데 여기부터 선달산까지는 대간의 마루금이 군계(郡界)나 도계(道界)를 구분하는 분수령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면계(面界)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지역이다.

즉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에 비가 내리면 그 비는 경상도의 낙동강 수원(水源)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한강의 수원이 되는데 이는 같은 면 남대리의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12:30

배가 고파 온다.

고치령까지는 이제 1.9km 남았다.

 

12:49

헬기장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구간은 너무도 표지띠가 없다.

그래서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정말로 주의를 요한다.

 

 

 

0.9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난다.

싸리나무 비슷한 것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난다.

 

 

고사목이 즐비하다.

 

 

13:10

드디어 고치령(古峙嶺, 770m)이다.

옛고개라는 뜻의 고치령은 영주의 순흥과 단양의 영춘을 잇는 고갯길로 문경과 영주를 잇는 죽령, 영월 하동과 영주 부석을 잇는 마구령과 더불어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다.

 

 

 

소백지장, 태백천장이라는 장승이 서있다.

이제 소백을 넘어 태백으로 진입한다는 말이다.

차량이 몇 대 서 있는데 아직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이 길은 차가 지날 때마다 먼지를 피우는데 30여년전 시골의 신작로를 다니던 완행버스를 연상 시킨다.

 

 

샘물은 고치령에서 영춘면 마락리 방향으로 약 100m 정도 내려가면 길 바로 옆에 있다.

텐트 한 동 정도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닦아 놓은 샘물 옆에서 점심을 먹는다.

물은 냉장고에서 꺼낸 물보다 더 차다.

 

 

덤프 트럭이 마락리 쪽으로 내려가면서 먼지를 일으킨다.

마락리(馬落里).

'순흥과 영월을 오가는 보부상의 말들이 마지바위라 불리는 곳에서 자주 떨어져 죽었다.'하여 불리는 지명으로 이곳 주민들은 영월이나 영춘으로 나가는 대신 이곳을 지나 부석장이나 순흥장을 다녔다고 한다.

 

 

 

고치령 산신각에는 금성대군과 단종을 모셔 놓았는데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은 세조의 잘못을 간하다 순흥으로 유배 되었던 바, 이때 순흥에서 영월로 유배된 단종에게 밀사를 보내 단종복위 운동을 꾀하게 되었다.

그 밀사가 다니던 길인 이 고치령은 단순한 고갯길이 아니라 '의리의 통로'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백지간(兩白之間)인 이곳에 산신각을 세워 금성대군은 소백산 신령으로 단종은 태백산 신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태백산 천제단 바로 아래에 있던 단종의 비각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게 되었다.

홀로 하는 산행.

무작정 산행을 하여 다리품을 파는 노동이 아니라 예습과 실전 그리고 복습을 통하여 지리 뿐만 아니라 지나온 역사를 확인하며 미래를 여는 작업인 것이다.

14:20

1시간 1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실컷 쉬고 고치령을 출발한다.

 

 

 

오르자마자 헬기장이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가 보인다.

 

 

 

500m 왔다.

11분 걸렸다.

길은 명백하다.

조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고치령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많이 남아 마구령까지 가는 것인데 괜히 연장을 하였다는 후회가 든다.

 

 

1km 오는데 23분 걸렸다.

이 구간은 0.5km마다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운행 속도를 어느 정도 감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남아 있는 구간을 생각하면서 가야만 하는 지루함이 있다.

 

 

소나무가 무슨 병이 걸렸는지 색깔이 주위의 그것들과 너무 다르다.

 

 

 

14:53

1.5km 지점을 지나는데 바닥은 낙엽이 너무도 두껍게 깔려 있어 너무 푹신하다.

그런데 어제 잠을 많이 자지 못해서인지 너무 졸립다.

 

 

 

15:04

2km지점을 지난다.

길은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15:23

2.5km 지점을 통과한다.

아까 잠깐 졸다보니 시간을 많이 지체한다.

 

 

15:32

3km 지점을 통과한다.

 

 

조망도 되지 않는 길을 그저 표지목만 지나치면서 그 지루한 길을 졸면서 걷는다.

 

 

15:37

미내치를 통과한다.

이 길은 마락리 도화동 주민들이 부석장을 보거나 부석사의 부처님을 뵈러 갈 때 지나던 길인데 지금은 통행량이 거의 없어 길이 많이 희미해졌다.

 

 

 

이 길들의 양 옆은 낭떠러지 같은 급경사 지역이고 이 길은 그 가운데로 난 오리지널 마루금 같은 길이다.

 

 

 

15:45

3.5km 지점 통과한다.

길은 역시 푹신하고 밋밋한 그런 길이다.

 

 

조금 오르다 봉우리(910m) 인 듯한 곳에 오르지만 역시나 그냥 평평한 곳에 불과해 아무런 이름도 없는 무명봉에 불과하다.

 

 

16:02

폐헬기장을 지난다.

 

 

16:06.

4.5km 표지목 옆에 커다란 참나무가 있어 이를 배경을 한 커트.

 

 

16:18

이제 3km 남았다.

시간상으로 한 시간 정도는 더 운행하여야 한다.

 

 

 

16:25

폐헬기장을 지나는데 이 구간이 아마도 오늘 구간 중에서는 가장 힘이 드는 것 같다.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계속 간다.

 

 

16:30

이제 2.5km 남았다.

오르막이라 몹시 힘이 들다.

 

 

희한하게 생긴 나무를 본다.

 

 

 

16:48

이제 2km 남았다.

낙엽송 숲을 지난다.

 

 

 

16:54

헬기장이다.

삼각점이 있는 이곳을 오르느라 거의 탈진상태로 가기 일보직전이다.

 

 

 

16:59

1.5km 남았다.

내리막이다.

숲이 터널을 이뤄 사진을 찍으니 플래쉬가 자동으로 발광한다.

 

 

이상하게 생긴 소나무를 지난다.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다.

 

 

17:12

마지막 500m다.

날이 저무는 것 같다.

 

 

17:20

드디어 마구령(馬駒嶺, 820m)이다.

영월과 단양을 오가던 고개인 마구령은 원래는 '마아령'이었는데 현지 주민들은 '메기재'로 발음을 한다고 한다.

'메기'는 '길목'이라 할 때 쓰는 '목'의 사투리라고 한다.

이곳에서 남대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주막거리'라는 곳이 잇었는데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영업을 하는 주막이 여러 곳 있었다고 한다.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하는 청년들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하고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오늘 운행 거리 : 32.4km

운행 소요 시간 : 12시간 39분(휴식시간, 점심 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