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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제22구간, 마구령~도래기재) 나홀로 산행, 17.2km

마구령에서 내려와 인근의 민박집을 찾으니 오전약수 부근과 부석사 입구의 사하촌을 추천한다.

오전약수 인근의 민박집은 식당을 겸하는 곳이기 때문에 청결 면에서 약간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봉황산 기슭 부석사 아래 있는 민박집(30,000원)에 숙소를 정하고 내일 산행을 준비한다.

내일 구간은 거리로 보아 25km 정도 구간인 곰넘이재까지로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으나 자료를 찾아보니 3년 전의 그 수해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하산시간이 3시간이나 된다는 정보이고, 그 다음 구간은 태백산까지 탈출로가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좀 짧기는 하지만 도래기재를 하산지로 정하고 운행거리가 짦은만큼 일찍 귀경하기로 결정한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켰으나 너무 추워 그냥 방충망이 설치된 창을 열고 티브이를 보다 일찍 잠을 청한다.

2009. 6. 28.

조금 늦게 일어났다.

마구령에 도착하니 05:30.

어제 야영을 한 청년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그들은 산행을 온 것이 아니라 그저 관광차 왔다고 한다.

차를 돌려보내고 그들과 작별을 한 뒤 힘차게 갈곶산을 찾아 올라간다.

 

 

 

 

10분 정도 올라오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 태양이 안개에 가려 그 형태만 보이고 있으며 멀리 넘어야 할 곳의 스카이라인이 희미하다.

 

 

 

그 곳을 지나자 내리막이 계속되고 0.5km 지난 지점을 05:42에 지나는데 여전히 내리막이다.

잠시 후에 나타날 오르막의 경사도를 예고해 주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오르막에 대해 어느 정도 두려움 혹은 우려감 등을 가지곤 하였으나 이제는 그런 것은 전혀 괘념치 않게 되었다.

 

 

 

어차피 나는 그 곳을 지나야 하는 곳이고 그것을 피해 갈 방법은 전혀 없으며 정 그것을 피하려 한다면 누구로부터 강요받지도 않은 이 대간 산행을 그만 두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달갑게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참나무 숲을 지나다 보니 05:52 늦은목이 4.9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나게 되는데 여전히 발걸음은 가볍다.

 

바로 옆에 박혀 있는 119 구급대의 표지목에 소백 10-2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그렇다면 119에서 관리하는 소백산 관할 지역은 아직까지 10km나 남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실제로 관청이 아닌 민간에서는 소백산과 태백산의 구분선을 고치령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늦은목이로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참 별 쓸 데 없는 생각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魔)의 '산행 시작 1시간'을 견딘다.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서 '산행 시작 1시간'은 정말 힘들다.

아직 몸이 산행에 적응도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도 많이 배설하는 땀은 아직 최소량을 분비하지 않은 상태이고, 조금 전 먹은 밥을 소화시키느라 모든 장(腸)의 기능은 거기에 집중 되어 있는 것 같고, 머릿속은 "괜히 산에 온 거 아니냐."는 불필요한 후회를 하느라 정말로 힘이 드는 것이다.

 

 

06:10

1.5km 지나고 있다는 표지목을 힘겹게 지난다.

그런데 119 구급대의 표지목이 10-21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아까 계산한 그것은 거꾸로 계산한 것이 되기 때문에 위에서 게기한 것과 다르므로 그 숫자가 끝나는 곳에 가서 다시 확인을 해 보아야 할 그것이 되었다.

 

 

06:19

무명봉에 도착하면서 햇빛에 눈이 부시다.

이제 정상적인 마루금이 시작될 것 같다.

즉 어느 곳이 마루금이 아니겠느냐 만은 적어도 오르면 내려가는 높낮이가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그런 길이 시작되리라는 믿음 말이다.

 

 

 

그 뒤로 헬기장이 나온다.

누군가 부처님까지 모셔둔 그 헬기장에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약식으로 삼배를 올린다.

 

 

06:23

2km 지점을 통과한다.

예상대로 무리 없는 마루금은 이내 내 컨디션을 회복하게 만든다.

 

 

2.5km 지점을 06:32에 통과하게 되는데 이 지점부터는 급한 내리막이 시작된다.

햇빛에 눈이 부시고 날씨가 너무 무덥다.

 

 

 

 

06:39

3km 지점을 단축된 시간에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길이다.

 

 

뒤를 돌아본다.

낙엽이 너무도 푹신하게 깔린 이 길을 어차피 조망도 되지 않아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아무 생각이나 하면서 이 길을 걷는 것이다.

오름이 시작된다.

땀으로 이마를 감싼 띠는 축축하게 젖어 벗어 짜보니 물이 떨어진다.

 

 

 

거미줄 때문에 고통스러운 구간을 06:48에 지는데  3.5km 표지목이 서 있다.

 

 

 

작은 안부를 지나 숲길을 지나는데 무슨 나무인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남들은 꽃 이름도 잘들 아는데 도대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는 핑계로 나는 저들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하여간 오름이 시작되는 곳을 06:57에 지나는 데 그 비탈길에 4km 표지목이 서있다.

지금 오르고 있는 곳에서 하늘과 맞닿은 곳을 바라본다.

아마도 저 곳을 오르면 그 뒤에 또 봉우리가 하나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하도 많이 속아봐서 저 곳이 이 지점에서의 제일 높은 곳일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또한 그 정도 일 것이라면 너무도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것에 일조한다.

 

 

07:05

4.5km 표지목을 통과한다.

이제 갈곶산(966m)도 멀지 않았다.

오르막을 한참이나 오르자 드디어 갈곶산이다.

예전에는 각곳산이라 불렀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갈곶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생각건대 똑똑하신 분들이 각곳산을 억지로 한자어로 표시하다 보니 '곳'이라는 간단한 한자어가 없자 산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곶(串)'이라는 단어까지 차용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오늘의 날머리 부근의 옥돌봉(1242m)을 굳이 玉石峰으로 표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아예 한국형 한자를 빌러 玉乭峰으로 표기하면 더욱 쉬웠을 것을...

어쨌든 이 갈곶산에서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이 갈린다.

의상대사가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찰인 이 부석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이미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바, 이 무량수전의 현판을 고려 공민왕이 썼다하니 참으로 명찰은 명찰인가 보다.

위치 또한 도솔봉의 바로 위쪽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넘는 천연성벽인 죽령으로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절에는 이 부근이 신라의 변경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금 전 넘어온 마구령 너머 충북 영춘에는 고구려 온달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는 온달성을 비롯하여 많은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여 부석사는 이곳을 발판으로 북쪽을 경영하려는 통일의 의지를 심기에 충분한 곳으로,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선달'이란 '부석'의 뜻을 풀어 한글로 적은 '선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을 추측된다.

어쨌든 부석사의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로 씌어져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태백산 사고'도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각화산의 각화사를 이야기함을 볼 때 이곳은 소백이 아닌 태백의 영향을 받는 곳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왼쪽으로 난 대간길로 내려선다.

 

 

07:25

내리막이 계속된다.

 

 

 

 

이제 늦은목이도 0.5km 남았다는 표지목이 나오고 너른 공터도 나오며 어떤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것을 제거 하였는지 쇠파이프를 박아 놓은 곳을 지난다.

 

 

 

07:33

늦은목이재(800m)이다.

 

 

팻말을 보니 여기까지 그렇게 잘 정돈된 소백산국립공원의 관할 구역이 끝나는 것 같다.

행정구역도 재미있는 것이 여기서부터는 봉화군 물야면의 관할 구역으로 조금전의 영주시 부석면과는 이제 작별을 고하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른쪽 큰 소나무가 서 있는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물야면 오전리로 가는 곳으로 오전리에는 그 유명한 '오전약수'가 있으며 오전약수 부근의 식당에서는 모든 음식 특히 백숙을 갖은 약초를 넣은 뒤 이 약숫물로 조리를 하여 준다고 한다.

 

 

왼쪽 부석면 남대리로 가는 길은 이제 많이 희미해지기는 하였지만 예전에는 이곳을 통하여 봉화장을 보러갔음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게 나 있다.

 

 

잠시 쉬다 가운데로 난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07:45

진입금지 표지막이 있는 곳을 지난다.

국립공원을 벗어난 이곳은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즉 산림청에서 관할하는 넉넉한 태백산 줄기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역시나 소백산국립공원 관리 지역을 벗어나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안내해주던 표지목이 없어 한편으로는 너무 거리에 신경을 쓰는 버릇이 없어져 산행에만 전념하여 좋은 점도 있지만 체력 안배를 위해서는 그래도 있는 게 낫다는 생각에 무게를 두게 된다.

이런 우려를 119 구급대 표지목이 대신하여 준다.

 

 

 

잡목들 사이를 뚫고 큰 소나무가 서 있는 이 길은 이 정도의 나무로 가려진 곳이니 조망을 하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그저 이 정도의 길을 지나면서 가끔씩 나무 사이로 비취는 햇살이나 보는 정도로 만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08:03

오랜만에 만나는 표지목이다.

선달산이 0.9km 남았단다.

 

 

그 표지목 뒤로도 선명한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은 보통 우회하는 길 내지는 지름길로 인식이 되어 그 길로 진입하였을 시 선달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리라는 생각을 갖기가 쉬운데, 다시 말해서 대간에는 그런 구간이 몇 번 있었는데 선달산은 오른쪽 방향으로 대간 길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길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으니 요령은 절대 금물이다.

 

  

벌써 몇 m를 오르막을 계속 오르는지 모르겠다.

정말 힘들다.

벌써 08:17.

돌계단 위로 하늘과 맞닿은 곳이 보이는데 과연 저 곳이 선달산일까?

 

 

이때 홀대모의 산사랑방님과 꼭지님 부부의 표지띠가 나를 맞는다.

정말 반갑다.

표지띠 혹은 표지리본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본다.

북한산 심지어는 관악산을 다니면서 널려 있는 산악회나 개인이 매어 놓은 표지띠를 많이 볼 수 있다.

나아가 계룡산 정도만을 가더라도 어느 코스에서건 쉽게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산악회의 위세 혹은 개인의 과시 혹은 기념물 정도로 매달려 있는 그것을 볼 때 그것은 분명 공해이고 미관을 해치는 추잡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할 것이다.

그런데 대간을 운행하다보면 분명히 명백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내리막길을 아무런 형식의 표지띠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나는 금방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과연 이 길이 맞나? 이거 알바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도를 꺼내서 다시 확인하고 그러고는 "분명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려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거 마을로 가는 길 같은데.."하다가 혹여 물소리 내지는 계곡 비슷한 곳을 보기라도 하면 놀라서 다시 그 곳을 허겁지겁 되돌아 간 경험이 적어도 한두 번은 있었을 건인데 그러다가 만나는 표지띠는 나의 이런 우려를 모두 불식시켜주는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필요 없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표지띠와 이것은 분명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표지띠는 길 안내를 해주는 이정표의 역할 외에 이 길이 대간길이 맞다는 그런 확신을 심어 주는 친구 역할을 하여 준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간이나 기맥을 하는 산객들에게 있어 그것이 주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산악회에서 안내를 받아 가는 산행이라면 이런 것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안내산악회의 역기능-여러 행태를 굳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그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새로 제작한 표지띠를 나는 '이곳이 맞는 길인가'하는 의심을 가질만한 곳, 이제 낡아서 교체가 필요할 만한 곳 그런 곳에 최소량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다진다.

다시 말하지만 표지띠는 과시용이나 전시용이 아닌 대간꾼들에게 이정표나 친구 역할을 하는 그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한다.

 

 

 

아까 아래서 보이던 곳은 작은 안부로서 여기서 살짝 왼쪽으로 틀면서 잠시 평평한 길을 걷더니 다시 돌계단이 나오고 나는 또 오름을 계속 탄다.

너무 덥고 힘이 든다.

03:30에 도래기재에서 출발하였다는 산악회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까지 5시간을 걸었다는 얘긴데 무지 시간이 걸렸다는 말이다.

나도 그 시간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그 팀들 일행이 선달산 바로 못 미친 곳에서 쉬고 있다.

그런데 쉬고 있는 행태가 참 보기 싫다.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지를 않나 한 쪽에서는 작은 나무 풀 위에 배낭을 벗어 놓아 그 풀들이 다 그것에 깔려 있지를 않나....

그런 사람들은 특히 산인사도 나누지를 않는다.

 

 

 

08:40

힘겹게 선달산에 도착한다.

先達山이라고 하는데 고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부석사가 善達寺로 표기되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먼저 깨닫다.'는 의미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부석사가 위치하여 있는 산 즉 크게는 태백산 부석사이므로 善達山이라 표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예습을 하느라 관련 책자들을 보다보면 여러 가지 해설이 정확한 근거 없이 해설 되어 있는 거 같아 나 나름대로 근거를 찾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각설하고 선달산(1236m) 표지석 앞에 선다.

또 다른 대간 팀들이 촬영을 하고 있어 그들의 단체사진을 찍어 준 대가로 남긴 증명사진이다.

삼각점이 있는 이 선달산은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곳이다.

즉 알지 못하는 이유로 그러니까 여태까지의 경험과는 달리 유달리 마당치를 지난 곳부터 고치령, 마구령을 지난 대간은 이곳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역할 즉 도계(道界)가 되는 것이다.

즉 영주시의 마락리와 남대리는 대간 개념에서 볼 때는 낙동강의 수원(水源)이 아닌 한강의 수원(水源)이 되므로 충청북도 단양군이나 강원도 영월군에 속하여야 하는데 이곳은 그 예외지역이었는데 선달산에 이르러 드디어 대간이 도계(道界) 즉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의 도계(道界)가 되는 것이다.

 

 

 

 

길가에 옛 표지판이 떨어져 있고 그곳을 지나면 평평한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식사나 야영을 하기 안성맞춤이다.

그곳에서 쉬며 간식을 먹는다.

08:55 접이의자를 접어 배낭에 넣고 자리를 일어난다.

 

 

나무 위로 멀리 봉우리가 하나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그게 어느 봉우리인지 알 리 없다.

선달산으로 오르느라 힘이 들었으니 또 내려가야 정상일 것이다.

 

 

그래서 돌계단을 내려간다.

 

 

 

다시 조금 오르자 박달령이 두 시간 남았다는 옛 표지목을 지난다.

그곳이 1246고지이다.

 

 

09:12.

150m 내려가면 옹달샘이 있다는 표지목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선답자에 의하면 '정수기'가 필요한 곳이라고 하여 시원한 물맛이 간절하기는 하였으나 물도 충분하여 그냥 통과한다.

힘들지 않는 길을 걷는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나타나더니 나를 보더니 다시 돌아간다.

야생견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인가?

그런데 야생견이라 보기에는 너무 작다.

이윽고 부부산객들이 모습을 보이며 "아저씨에게 인사는 했냐."는 말을 개에게 하며 나와는 산인사를 나눈다.

"저 녀석도 대간을 타는 중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잘 따라 오네요."

아직 대간을 완주했다는 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최소한 이 개가 종주를 한다면 대간 남진한 개로는 최초가 될 듯도 싶다.

 

 

산허리를 왼쪽으로 감아 돈다.

 

 

 

박달재가 한 시간 정도 남았다는 표지목과 벤치가 있는 쉼터에 도착한다.

09:38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를 뻗고는 눈을 감아본다.

편한 것은 같은 데 등산화로 인하여 발이 무겁다.

인기척이 나 몸을 일으키자 벤치에 물기가 선명하다.

박달령에서 출발한 당일치기 산악회이다.

09:46

그들과 산인사를 나누면서 그곳을 떠난다.

 

 

 

1220고지에 119 구급대 표지목 4-4가 박혀 있는 곳 옆에 큰 참나무가 서 있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10:11

박달령이 1.4km 남았단다.

 

 

 

 

이 구간의 길은 무난하다.

산행에 탄력을 받은 면도 사실은 있다.

내리막길이다.

멧돼지 소리 같은 것이 나 헛기침을 연실 해본다.

 

 

오른쪽으로 나무를 하나 하나 붙여 놓은 것 같은 것이 보여 가까이 가 보니 바위 덩어리이다.

 

 

평이한 내리막이다.

 

 

찻소리가 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흰 것이 보인다.

 

 

박달령이다.

10:34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간이 화장실도 있으며 그 옆으로 50m 아래 샘터 표시가 되어 있어 내려가 본다.

 

 

 

고여 있는 것 같아 찝찝하기는 했으나 물을 한 모금 먹어본다.

시원하다.

그런데 그때 개구기라 튀어 나온다.

김샜다.

그냥 올라간다.

 

 

 

박달령 산신각 옆에 아주 좋은 쉼터가 있다.

그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빵으로 간식도 먹는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산신각 뒤로 난 길로 산행을 재개한다.

그런데 이 대간길도 아까 선달산 이전의 그것과 같이 대간은 도계(道界)나 군계(郡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경계만 될 뿐이다.

희한한 곳이다.

지독한 오름이 계속된다.

 

 

 

 

 

 

이곳은 나무 이름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인다.

겨우 하나 구분할 수 있는 게 물푸레나무 정도이지 참나무나 신갈 나무는 그게 그것인 것 같다.

 

 

저 끝을 오르면 어떤 봉우리 정도가 나타날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더운 날씨라 온 몸에 땀으로 범벅이다.

 

 

1140고지 뒤에 보이는 저 봉우리.

저 정도가 옥돌산이 아닐까.

 

 

로프가 쳐 있는 길을 계속 오른다.

급경사인 이곳을 오르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스틱을 짧게 내 뻗고 다리 하나를 옮긴 다음 팔운동 하는 것 같이 힘을 주고 다른 다리를 옮기는 방법으로 쉬지 않고 땀을 흘리는 것.

그러다보면 안부이고 봉우리이다.

걸음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산은 항상 거기 있으니까....

 

 

12:10

옥돌봉 삼거리(1200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문수산을 지나 보문산으로 가는 문수지맥이 시작되는 곳이다.

 

 

12:23

옥돌봉(1242m)이다.

사방으로 조망이 된다는 곳이나 여름철은 잡목으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도래기재가 2.68km 남았다고 하는데 길 왼쪽으로 헬기장이 있고 계속 내리막이다.

 

 

옛 표지판이 떨어져 있는 길을 지난다.

 

 

 

진달래 터널이 약 100여m 계속된다.

두 달 전에만 왔더라도 장관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터널을 지나자 찻소리가 나며 철책 사이로 난 길을 내려가자 너른 공터가 나오며 고무판을 깐 다리를 내려오니 여기가 도래기재이다.

 

 

 

 

 

13:02

도래기재의 유래를 읽어보며 마지막으로 증명사진을 남기며 다음 구간의 입구를 확인해 둔다.

오늘 운행 구간 : 17.3km

운행 시간 : 7시간 32분(휴식 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