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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 제12구간(작점고개~지기재, 29.1km) 나 홀로 산행

사무실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좀 일찍 퇴근을 하여 영등포역에서 17 : 18 무궁화호 열차를 탑승하여 20 : 00에 추풍령 역에서 하차.

추풍령 터미널 옆에 있는 추풍령 여관에서 잠을 자려 하였으나 워낙 노후화된 시설에 리모델링도 하지 않아 하는 수없이 지난 번 보았던 즉 추풍령 지하통로 옆에 '백두대간의 정기가 흐르는 곳'이라고 플랭카드를 걸어 놓았던 '카리브모텔'(숙박료 25,000원)에서 숙박하기로 결정하고 저녁은 인근에 있는 '할매갈비'집에서 화로구이 삼겹살과 된장찌개 그리고 소주 1병으로 해결하고는 아침밥을 알아보았으나, 지역이 지역인지라 06:30 이전에는 아침밥을 해주는 곳이 없다고 하여 상당히 난처해 하자 아침에 작점고개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택시기사(016-404-1098)가 "근처에 있는 고속도록 상의 추풍령 휴게소에서 하고 거기서 점심도 준비하라."고 한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04:30 기상하여 대기하고 있던 기사아저씨와 추풍령 휴게소 인근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램프웨이를 통하여 고속도로 휴게소로 걸어 올라가 따로국밥(5,000원)을 시켰으나 워낙 쌀이 좋지 않아 흡사 안남미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하는 수없이 그것으로 끼니를 대강 때운 후, 점심 대용으로 충무김밥(3,000원)을 하나 사서 휴게소를 나와 작점고개로 출발(대기료 3,000원, 구간 택시비 7,000원 등 10,000원).

 

 

 

 05:40.

기사아저씨에게 한 커트 부탁하고 1주일 전 마감했던 곳을 이어 대간산행을 재개한다.

 

 

  

 

 

잡목 숲을 헤치고 20여분을 지나자, 어둠 속에서도 삼각점(452 재설 2811 건설부)을 볼 수 있었고, 그 삼각점이 있는 473. 7 고지를 지나, 헤드랜턴이 밝혀주는 방향에 따라 표지띠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곳을 보며 다시 20여분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옮기자, 내가 ‘갈현(350m)'을 지나고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어느 산객이 나무에 붙여 놓았는지 정말로 친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걷혀지기 시작하고 멀리 보이는 산 능선 위로 붉은 기운이 보일 무렵 용도를 알 수 없는 움막 하나를 지나면서 그 앞에서 헤드랜턴을 끄고 윈드 자켓도 벗어 배낭에 넣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687고지를 지나면서 주위를 조망해 보지만 여전히 잡목으로 시야는 가려져 있고 사진 촬영을 해보아도 나무에 가려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안 가는 상황이다.

내가 가야 할 봉우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발아래로는 여전히 푹신한 낙엽들이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그렇게 오르막이 계속될 때 이제 갓 떠오른 태양이 나의 눈을 부시게 하면서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더 오를 곳이 없다고 한다.

 

 

용문산(710m)이다.

 

 

 

해발 710고지인 이곳에서는 뒤로 묘함산(733.4m)의 통신시설이 보이고 그 아래 위치한 ‘김천노인요양병원’ 역시 선명하게 보이며 국수봉까지는 2,310m 가야한다는 표지목까지 설치되어 있으나 지도상에는 2km로 되어 있어 실측거리와 도상거리 간의 차이가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거의 10m 간격으로 나뭇가지에 붉은 끈이 매어져 있음을 뒤에 계속하여 보게 되는데 아마도 그 끈의 용도가 거리를 실측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정면으로 690고지와 700고지 그리고 국수봉을 바라보고 내리막길을 내려 서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따라오는 노란 예쁜 표지띠가 눈에 띈다.

진주 ‘三賢女子高校 산사랑모임’이라고 명조체로 깨끗하게 적힌 그 띠는 생활한복을 교복으로 입는다는 이미지와 멋들어지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오늘 하루 아니 진부령까지도 저 띠와 함께 할 지도 모른다.

 

 

 

웅부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는데 오른쪽에 잡목 사이로 ‘용문산 기도원’이 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는 그 기도원의 규모는 내가 상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라 한 마을 정도의 대규모 단지였다.

 

 

 

690 고지를 숨 가쁘게 넘자 용문산기도원과 중웅으로 가는 사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이제 국수봉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에 이르니 이제 국수봉이 650m 남았다는 표지목이 나온다.

700고지다.

 

 

약간 왼쪽으로 굽은 길을 따라 오르자 숨이 가빠질 무렵 표지목과 정상석이 보인다.

 

 

 

 

해발 795m의 이곳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이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기도 하는 곳이란다.

배낭을 삼각대로 하여 셀프 촬영을 한 커트하고 주위를 조망해 본다.

 

 

 

아름다운 산하다.

 

 

 

아직 채 움도 트지 않은 흐드러져 있는 철쭉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솔길을 장쾌하게 걷게 되는데 너무도 조망이 좋아 뛰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끔 하는 곳이다.

 

 

 

 

선답자들에 의하면, 오늘과 내일 내가 가고 있고 또 갈 코스가 백두대간 중 가장 손 쉬운 구간이라고 한다.

물론 구간이 마을과 인접되어 있고 민가를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어서 종종 길을 잃을 염려가 있어서 그렇지 우선은 고도가 낮은 곳이라 그만큼 힘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각점(406 재설 1978. 11. 건설부)이 설치되어 있는 683.5 고지에서 조망을 해보면 상주시 모동면의 신곡리 마을과 공성면의 도곡리 마을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도가 점점 낮아짐을 느끼게 되자 이내 밭이 나오고 전봇대가 서 있어 마을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와 같이 홀로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메시아’ 같은 역할을 해주는 곳일 법한 ‘산장 안내표지판’을 지나 찻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도로가 나온다.

 

 

 

큰재다.

이곳부터 '중화지구대'라는 단층 작용에 의하여 생긴 낮은 지대가 신의터재까지 계속될 것이다.

 

 

해발 320m에 위치한 이곳에는 1997. 3. 1. 폐교되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옥산초교 인성분교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폐가 한 채가 있는바, 이 폐가에 대하여 몇 가지 얘기가 떠돈다고 한다.

즉 이 폐가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었는데 대간꾼들이 새벽이고 밤이고 관광버스가 도착해서 승하차하는 소리에 할머니의 안면을 방해하기 일쑤였는데, 그들이 그렇게 내려서는 함부로 이 집에 들어와 임의로 물을 떠가고 심지어는 샤워까지 하는 사람이 있어 할머니는 결국 물을 한 번 씩 떠가는데 1,000원의 돈을 받기로 하였고 그 방법으로 수도를 틀기 위해서는 전기스위치를 작동하여야 하게끔 장치까지 만들어서 산꾼들로부터 ‘악랄한 할머니’라는 오명을 듣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바로 옆 양옥집에 사는 할머니의 손자는 인터넷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는 할머니의 그런 행동을 만류하였지만 이미 한 번 틀어진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손자는 물론 자식들의 노력도 무위로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찾은 그 폐가에는 그 할머니는 물론 그 스위치도 없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얘기다.

 

 

 

 

폐교(1967. 8. 20. 준공) 옆을 따라가자 왼쪽으로는 폐관사, 오른쪽으로는 교사가 있는데 ‘탁구실’이라는 간판이 아직 남아있어 한참이나 뛰어 놀았을 아이들이 그려진다.

 

 

30분 정도 오르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그곳을 따라 2분 정도 걸으니 회룡목장이 나온다.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듯한 이 목장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소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를 만들 정도였는데 내가 걷고 있는 이 대간길이 이 목장을 안고 도는 형국이다.

 

 

이 목장을 감아 돌다보니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20m 아래 옹달샘이 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그 곳을 보기로 하였다.

 

 

 

'광골'로 이어지는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길로 예전에 그 분들이 이용하던 샘을 산꾼들이 다시 복원하였다는 것으로, 그 날은 낙엽이 덮이고 먼지가 쌓여 있어 정수기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식용으로는 부적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산길을 오르고 산등성이를 지나며 언덕을 내려서자 이내 회룡재(340m)다.

 

 

 

그런데 표지목을 보면 이곳에서 큰재까지는 3.9km로 소요시간이 두 시간으로 되어 있으나 누군가가 그 옆에 “한 시간이면 충분”이라고 부기(附記)를 해 놓았는데, 물론 나도 50분 정도가 걸렸으니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겠지만 사람마다 운행 능력이 틀린 것이니 다만 도상 거리는 3.6km인데 비해 실측거리가 3.9km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용역을 받은 업체에서 설치하였을 법한 그 표지목을 그 정도에서 애교로 봐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룡재를 지나자 고도는 더욱 낮아진 것 같고 이제는 아예 대간길이 밭을 옆에 두고 운행을 하게끔 되어 있을 무렵 추풍령에서 4시에 출발했다는 ‘산악마라토너’가 옆을 지난다.

 

 

 

간단한 산인사로 서로의 안전산행을 기원한 두 산객은 이내 헤어지고 오른쪽으로 마을이 보이고 경운기 길이 나타나니 이곳이 개텃재(해발 380m, 왕실재)이다.

10 :30.

작점고개를 출발한지 4시간 50분 동안 산행을 하였는데, 아까 추풍령 휴게소에서 따로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여서 그런지 배가 고파 하는 수없이 이른 점심을 먹기로 결정하고 접이식 의자를 꺼내려 하는데 배낭 측면에 있어야 할 그것이 없는 거 아닌가.

필경 아까 나무뿌리에 넘어질 때 측면 주머니에서 빠졌을 것이고 그곳은 여기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을 것이니 또 20여분을 알바를 하여야만 하였다.

역시 그 자리에 있는 의자를 주워 다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11시에 윗왕실고개를 향해서 출발.

 

 

 

 

잡목들로 인해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 이 구간은 그저 왼쪽으로 간간이 보이는 곳은' 효곡리'라는 곳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은 '소상리'라는 곳이라는 것만 구분을 할 정도다.

그러니 대간길이 이곳에서만큼은 도(道)나, 시(市), 군(郡) 심지어는 읍(邑)이나 면(面)의 경계 역할도 하지 못할 정도로 구분이 없는 유일한 구간이 이 구간인 것이다.

따라서 길도 마루금이나 야산 모퉁이 정도로 난 푹신하고 아늑함의 연속이라 발에 닿는 대지의 감촉이 너무나 좋다.

 

 

 

갑자기 눈 앞으로 너른 광장이 나오고 그 위로 '에코 브리지' 같은 통로가 나오며 익숙지 않은 철제 난간이 보이고 그 난간에 표지띠가 휘날린다.

윗왕실재(400m)다.

1995년도에 축조하고 개설되었다는 이 도로는 소상리와 효곡리를 잇는다.

이 길은 효곡리로 내려갔다가 대포리에서 그리고 다시 개머리재로 올라 나를 다시 만나게끔 되어 있다.

 

 

잡목 사이로 멀리 상판저수지만 보일 뿐 다른 어느 곳도 조망이 안 되는 이 구간은 앞에 보이는 높은 곳이 '백학산이겠구나.'하는 정도의 인식만 갖게할 정도로 그저 안이한 산행만 즐기게 한다.

 

 

 

숨가쁘게 오르자 백학산(615m)이고, 그 힘들었던 고통과는 달리 정상임에도 조망조차 되지 않은 이 곳은, 그나마 나무의자가 놓여져 있어 거기에 걸터앉아 사과를 하나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는 그 나무의자 위에 카메라를 잘 거치하여 셀프로 인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백학산에서의 하산길은 상당히 가파른 급경사이다.

진한 녹색의 소나무 뒤로 윗왕실재에서 만났던 농로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며 이내 그 농로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 지점이 대포리이고 표고가 400m인점은 이해가 가나 지기재가 2.8km, 백학산이 3.6km라는 안내판은 용역회사에서 잘못 표시해 놓은 것으로 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농로를 따라가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봉우리로 달라붙으면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백학산이 보인다.

 

 

 

푹신한 오솔길을 넘으면 논이 보이는데 이 지역은 논농사가 가능할 정도의 낮은 지역이라는 말이다.

 

 

 

14:37.

여전히 잡목이 계속 되는데 조그만 언덕을 내려서자 보리인 듯한 파란 싹이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오른쪽으로는 논도 보인다.

 

 

그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이번 산행에서 절대로 잊지 못할 장면이 연출됐다.

올해 첫 나비를 본 것이다.

순간 첫 나비를 보았을 때 소원을 빌게 되면 그 해의 운수는 그렇게 간다는 속설이 떠 올라 얼른 소원을 빌고 그 나비를 카메라에 담았다.

재수할 때인가 보았던 강태기, 명현숙 주연의 '나비소녀'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자칭 한국의 Bob Dylan이라던 가수 이필원의 '추억', '소녀', '고독' 등 주옥 같은 노래가 영화 전편에 깔려 있었던 그 영화는 정말이지 그 어린 시절의 나의 성향을 더욱 더 센티하게 만들었던 한 편의 그것이었었다.

 

 

14:58.

오른쪽으로 포도밭 농사준비가 한창인 곳을 지나 편도 1차로의 포장도로인 개머지래(295m)에 도착.

원래 오늘은 여기서 구간을 마무리 짓기로 계획을 세워놓았었는데 아직까지 체력이 더 남아 있어 지기재까지 그 구간을 연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고 그러한 나의 의지를 지기재산장의 대장님께 전하자 그 분은 아예 신의터까지 더 운행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내일 운행하고 다음 접속 구간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지기재까지 더 운행하기로 결정하고 개머리재를 떠난다.

 

 

 

묘지 두 기가 있는 곳을 지나 뚜렷하게 나 있는 대간길은 더 없이 편하고 안락하다. 

 

 

 

잡목으로 조망이 어려운 푹신한 오솔길이 계속되고 왼쪽으로 소정리 마을만이 간간이 보일뿐 계속 잡목 숲이다.

이 때 지기재 산장의 안내문이 붙어 있는 나무가 보인다.

이런 안내문은 나 같이 '나홀로산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낙엽송 숲을 지나는데 안동산림항공관리소에서 걸어 놓은 플랭카드가 보이고 이내 키 높이의 숲을 니자게 되면서 지기재다.

 

 

 

15:34.

포도밭 너머로 지기재(261m) 임을 알리는 표시판이 보이며 도로에는 갓길 시멘트 포장공사가 한창이며 이 곳이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라고 한다.  

오늘 운행을 여기서 마감하기로 하고 한 모금 남은 마지막 물통을 비우는 데 지기재 산장의 대장님 차가 도착한다.

 

오늘 운행구간 29.1km.

소요시간 9시간 54분(알바시간 20분과 점심시간 15분 포함).

 

 

오늘 운행에 적이 만족을 하며 지기재 산장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 입고 인근 식당으로 가서 돼지갈비로 소주1병과 맥주 1병을 섞어 마시면서 요기를 하고 귀가하여 대장님과 호두와 흑미로 만든 가래떡을 안주로 소주를 조금 더 마시다가 오디주를 속풀이로 마시고 일찍 취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