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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 제11구간(궤방령~작점고개) 나 홀로 산행

주인장 내외의 로맨스.

어젯밤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에보가 있었던 터라 두 시 정도  눈을 떠 창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당한 양의 비가 오고 있었다.

다섯시 정도 출발하기 위하여 네시 정도에는 밥을 먹고 출발하려 주인장에게 부탁을 해 놓았기 때문에 출발 시간을 조금 늦추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화장실을 가려 문을 열자 뜻밖에 주인장 내외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즉 새벽 3시 정도의 시간에 주인장 내외는 산장 홀에서 조명을 한껏 낮춰 놓고는 막걸리와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우중 음주를 즐기는 것이었다.

"아니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묻자, "저희는 비가 오면 가끔씩 이러곤 합니다."라는 부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김천 시내에서 친할머니께서 키워 주신다고 하는데 어쨌든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장면이었다.

 

 새벽 4시반 이른 아침 밥(밥은 끼니 당 4,000원)을 먹고 주인장이 마련해 준 도시락을 챙기고 산장을 나선 시간이 5시 10분.

비는 어느 덧 멎고 바람만 세차게 불고 있었다.

 

산장 길 건너편에 난 대간길로 접어든다.

비는 그쳤으나 습기로 인하여 후덥지근한 새벽공기는 이내 등뒤로 땀을 흘러내리게 하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점차 작아짐을 느낀다.

 

 

 

 

땅은 촉촉히 젖어있고 나무들은 내린 비로 이미 몸을 적신 상태였으며 조금씩 날이 밝아와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려 하는데 멀리 고속도로가 보인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상의 남방 바깥 주머니에 꽂아 놓았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볼펜형 녹음기'가 없어진 것이다.

필시 아까 개 짖는 소리 때 녹음을 하고 넣어두었던 것이 잘못 된 것이리라.

불행히도 어둠과 안개 덕분으로 특별히 지형이나 분위기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어서 어제와 같이 자주 녹음기를 만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녹음을 한 지역이 상당히 떨어진 그곳까지 상당한 거리를 발품을 팔아야만 하였다.

여하튼 그 상황이 마지막 일 것이므로 그 부근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또 약 20분 정도를 되돌아 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배낭을 내려놓고 랜턴으로 길 위를 주시하며 다시 되돌아 가기를 약 20분 정도.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녹음기를 발견하고 다시 주워 배낭이 놓여진 곳으로 가서 다시 운행을 시작.

멀리 어제 내려온 여시울산이 앞의 무명봉이 보인다.

 

 

날이 점점 밝아져 마을이 보일 정도가 되자 나는 랜턴을 벗어 배낭에 넣었는데 나의 운행 고도가 높아질 수록 안개가 심한 걸 보니 이 산 전체가 구름으로 뒤덮여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표지띠가 만발한 곳을 지나면서 숨이 차오를 무렵 가성산에 도착했다.

07 :10.

출발한 지 정확하게 두 시간 걸렸다. 40분간의 알바 시간을 고려한다면 습기로 인해 몸은 끈적이긴 하지만 운행에는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발 716m의 가성산에는 어제 궤방령에서 이른 저녁을 하고 출발한 부부가 텐트에서 아직 기상 전임을 보여주고 있어 그들을 지나쳐 왼쪽으로 떨어지는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심하게 경사가 진 내리막을 오른손으로는 스틱, 왼손으로는 나무 가지에 의지하여 몹시도 미끄러운 길을 힘겹게 내려가야만 하는 난코스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듯 갓 피어난 꽃망울이 빗방울을 머금은 장면을 렌즈에 담았으나 생각같이 영롱한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뒤에 생각해보니 노출을 그냥 AUTO로 놓아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노출을 1,000정도로만 하였어도 괜찮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애꿎은 카메라 탓을 하는 나를 반성해 본다.

 

 

 

여전히 조망이 되지 않는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던 중,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 지나치려 하는데 오른쪽으로 뭔가가 나무에 부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뭔가 다시 자세히 쳐다보자 '정군봉'이라는 안내글이 나무에 붙어 있다.

어느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것으로 뒤에 오는 산객들을 위한 배려로 큰 감동을 받았으며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이 장군봉(616m)에서 다시금 해 본다.

 

 

이번 비로 인하여 봄은 한층 더 가까이 우리 앞으로 다가온 듯하다.

어제 산행보다 오늘 산행에서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을 더 자주 발견하게 된다.

날은 다 밝았고 구름이 약간은 걷힌듯한 오르막을 가볍게 오르는데 분명 자연림인 이 곳은, 누군가 일부러 조림한 것 같이 나무가 너무도 일정하게 꼿꼿히 서 있는 모습이 바닥의 갈색 낙엽과 너무도 그럴싸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사진을 찍고 나서도 나로 하여금 이 분위기는 어느 달력에서 본 장면과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운행을 하는 나의 오늘 산행은 전혀 힘에 부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분위기를 배가 시켜 주듯 두기의 무덤이 나의 발걸음을 다시 붙잡는다.

마치 갈색 모포를 덮고 누워 있는 듯한 두 분의 무덤은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현자(賢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다시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그런데 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지저분한 곳을 지나게 됐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떡갈나무 같이 큰 낙엽이 바람에 뉘어져 있는 모습 즉 그 낙엽의 이면이었던 것으로 우연칞게 껍질이 까진 나무의 옆에 누워 있어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지 않는 운행을 하는데 헬기장이 나온다.

그 헬기장의 바로 뒤 그러니까 3m 정도 뒤에 또 헬기장이 있는데 그 뒤로 제단같은 모습의 마루가 보이는데 올라가서 보니 눌의산(743.3m)이다.

삼각점이 있는 이 곳에서 배낭을 삼각대 삼아 다시 셀프서비스 형식으로 한 커트 촬영을 하였는데 스틱을 든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다시 촬영을 시도하였으나  배낭이 자꾸 넘어지고 바람이 심해 그만 두었다.

책자에 의하면 이곳 눌의산에서는 사방이 시원하게 틔여 있어 조망이 좋은 곳으로 기록되 있었고 특히 추풍령 일대를 내려다 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라 하였는데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구름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최근의 가뭄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을 탓할 것만도 아니다.

 

 

눌의산을 넘어서자 바로 기존 삼각형 헬기장과는 다른 원형 헬기장이 나오며 그 뒤로 바로 다시 삼각형 헬기장이 나온다.

 

 

 

해발 700m  정도의 고지를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며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점차 시야가 확보된다.

잡목이 그 시야를 가로막아 정확한 지점과 형태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을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을 때,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가 큰 기념탑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이번 산행에서 진달래가 핀 것을 본 것 또한 수확이라고 하면 수확이라 할 것인데 지독한 내리막 길에서도 진달래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선명한 길이 눈에 들어오는데 표지띠는 정면으로 붙어 있는데 아마도 지난 주 산행을 한 듯한 'OO산악회'의 안내지는 왼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왼쪽 길도 맞는 것은 같지만 그래도 많은 선행자들이 간 곳인 듯한 정면 길을 택하고 진행을 계속한다.                                                                               

 

 

                                                                             

이 길은 경운기 정도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넓은 길로 마을을 향하고 있었는데 오른쪽 콘크리트 포장 길옆에 볼록 솟아 있는 조그만 동산 위에 묘기만 한 기 달랑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이채롭다.

 

 

 

 

과수원 옆길로 난 표지띠를 따라가는데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나뭇가지로 길을 막은 듯한 곳을 지나자 깨끗하게 단장된 묘지 한 군(群)이 나온다.

 

 

 

 

그 묘지군을 내려서자 경운기 길이 나오고 다시 호화판 묘지를 지나 좌회전하자 고속도로가 보이며 지하통로도 보인다.

09:20.

궤방령에서 05:10에 출발하여 알바를 한 시간 40분 정도를 제하니 도상거리 9.1km에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였다.

바람이 세게 불기는 하였으나 기후 조건이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아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고 운행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지하터널을 통과하여 포도밭을 끼고 좌회전 하는데 민가 쪽에서 진흙탕을 어렵게 빠져나오는 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띠동갑의 어른이었는데 혼자 산행을 하는 게 편하다고 하시면서 사진을 한 장씩 나눠 찍고는 그 분은 궤방령으로 나는 작점고개로 각기 향한다.

그런데 전에는 기찻길을 건너서 횡단을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포도밭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지하차도로 건너 4번 국도를 만나 다시 김천방향을 타고 약 200m를 이동하여 모텔을 끼고 좌회전하면 표지판이 나온다.

 

 

 

그 표지판은 차도 옆으로 차단막까지 해 놓았고 주택 안에서 비스듬히 기운 나뭇가지에 표지띠가 있어 찾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는 이내 오르막이다.

지기재 산장 주인장이 붙여 놓았을 표지판에는 작점고개까지는 8.7km 남았으며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란다.

지금 시간이 09:50.

그렇다면 작점고개에는 오후 1시 정도에 도착할 수 있고 그러면 택시를 불러 다시 추풍령으로 온 다음 30분 간격으로 있다는 버스를 타고 김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16:32 기차를 타고 상경하면 충분할 것이라는 어림 계산이 나온다.

 

 

 

오르막길을 타고 오르자 채석장 쪽으로는 길을 막아 놓았고 그 위험지역을 우회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길은 결국 채석장 옆으로 지나되 추락사고의 방지를 위하여 안전로프까지 만들어 놓아 책자에서 알려주는 듯한 그런 위험성은 이제 전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 사진 촬영은 전혀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우의를 다시 꺼내 입고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뒤가 시끄럽다.

OO산악회에서 이번 주 구간을 잇는 산행대원들인가 보다.

 

 

산인사도 무시하는 일부 대원들을 보노라니 그저 기가 막히다는 생각만 든다.

‘학생해주오공위치남지묘’라는 비석이 서 있는 깨끗이 단장된 묘 앞을 지나는데 ‘학생’이란 단어와 ‘공’이라는 단어를 같이 쓸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아무 것도 조망할 수 없어 사진 찍기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특이한 이정표도 확인할 수 없어 그저 앞만 보고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조그만 봉우리에 올랐는데 마침 뒤 따라오는 위 산악회의 대원이 있어 사진촬영을 부탁하여 인물사진을 한 장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편안하게 운행을 하자 차가 한 대 정도는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아래쪽 방향은 나무로 막아 놓아 나는 윗길을 따라 오른다.

 

 

 

2분 정도 올라 그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서는데 오른쪽 도랑을 건너자 나무에 ‘사기점 고개’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11:54.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고 남은 구간의 소요시간이 1시간 정도라고 볼 때 천천히 운행을 하여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안개비가 오는 으슬으슬 떨리는 상황에서 밥을 먹고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넘어진 폐전붓대가 보이며 바로 도로로 올라선다.

이 도로가 통신시설이 있는 난함산(733.4m)으로 오르는 포장도로 일 것인데 도무지 조망이 되지 않는 고로 나는 다시 그 도로를 버리고 바로 아래 있는 대간길로 올라선다.

 

 

 

 

대간 능선으로 올라 한참을 가자 다시 아까 그 도로로 떨어진다.

그 도로의 아랫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니 도로 난간 시설물 뒤로 대간 길이 나 있었고, 그 뒤를 넘어 곧 다시 그 도로와 합류한 뒤, 도로는 조그마한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능치리로 나가는 길로 나뉜다.

 

 

 

 

능치리 길로 조금 내려오자 왼쪽으로 표지띠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그 길 오른쪽으로는 도립김천노인전문병원이 화려한 시설을 보여 주었다.

대간 길로 들어서자 이내 잘 정리된 묘지 3기가 있었고, 그 뒤로 넘어가자 육각정이 보이며 진흙탕이다.

 

 

 

 

 

간신히 길을 내려서자 육각정 맞은편으로 병원이 다시 보이고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표지판과 기념물 그리고 백두대간 안내도와 작점고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3:10.

추풍령부터의 도상거리는 8km.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점심시간 포함).

따라서 궤방령부터 작점고개까지의 제11구간은 도상거리 17.1km, 소요시간은 알바시간 40분을 제하면 점심시간 포함 7시간 20분이다.

10분 정도 있으니 택시가 도착한다.

택시(7,000원)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4:00 직행버스는 김천터미널로 직행하는 것이고 14:10 시내버스는 김천역까지 간다고 하면서 14:10분 버스를 권유한다.

 

 

슈퍼를 겸하고 있는 터미널에 도착하여 맥주를 한 통 시원하게 마시고 버스를 타고 김천역에 도착한다.

역 근처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 피로를 한꺼번에 털어버리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김천역에 도착하자 아까 추풍령까지 태워 준 기사로부터 전화(016-404-1098)가 왔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자 “김천역에 도착하여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느냐. 불편한 점은 없으셨느냐.”는 안부 전화였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어차피 다음 산행은 추풍령에서 작점고개까지 갈 때 그 택시를 이용하여야 하니 또 한 번의 만남의 기회는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