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산행'을 마음 먹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사실 적지 않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피할 수 없는 새벽 산행 시에 혼자 느껴야 하는 고독과 공포 그리고 '내가 꼭 혼자서 과연 이렇게 하여야만 하는가'라는 자괴심 내지는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 등에 대한 경계.
둘째, 안내 산악회에 비하여 과다하게 지출 될 경비.
셋째, '아무리 산이 좋아도 그렇지 미친 놈 같이 혼자서 산을 휘적거리며 나다니는 꼴이란...'이라는 소리를 남들로부터 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하지만 어떤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서라도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백두대간을 종주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항상 가지고는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하여야 한다면 좀 더 일찍 끝내는 방법을 택해야만 하였었고 그러자면 토, 일요일을 이용하여 1박 2일 산행으로 그 기간을 단축하여야 하고 또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을 것이라면 열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적절히 이용하기 위하여 자료 수집도 충분히 하여야 하고 숙박할 장소나 구간의 시점과 종점에 관한 정보도 완전하게 지득하여야 하므로 그 준비과정도 쏠쏠하게 재미있을 것 같았으며 어차피 동행할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결국 '나홀로 산행'을 결행하게 된 것이다.
그 첫 날인 3. 6. 21:53 영등포역에서 남원행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번 함께 산행을 하였던 OO산악회에서의 6구간 종점 구간인 고남산부터 연결하기 위하여 남원으로 가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운봉읍 권포리로 가기 위함이다.
남원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찜질방으로 가서 잠깐 수면을 취하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잡 생각으로 잠도 오지않아 뜬 눈으로 있다가 4시가 되자 샤워를 하고 터미널로 도보로 이동한 다음 김밥천국에서 순두부 찌개로 아침을 먹었으나 버스는 6시 50분에나 있어 하는 수없이 택시로 이동하기로 마음 먹고 13,000원에 흥정을 하여 권포리로 향하게 되었다.
3. 7. 06:00 권포리에 도착하여 헤드랜턴으로 앞을 밝히면서 고남산 통신기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동네는 개도 키우지 않는지 개소리도 나지 않았으며 초입의 목장의 소들도 아주 조용하다.
약 10분 정도 오르자 이윽고 지난번 하산 지점이었던 큰 고목 대여섯 그루가 있는 지점에 이르러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시멘트 수로를 건너 통안재로 향했다.
이 백두대간은 워낙 길이 좋아 밤에 헤드랜턴을 키고도 운행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길 찾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완만한 능선을 뛰다시피 걷다보니 경운기 길이 나 있는 통안재를 통과한 다음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조그만 억새밭과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지점을 지나자 삼각점(운봉 403, 1981 재설)이 있는 곳에 이르러(06:35) 어느 덧 날이 밝아 헤드랜턴과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맑은 아침 공기 속을 가르며 경쾌한 행보로 운행을 계속했다.
멀리 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 머지않은 곳에 88고속도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무렵 소나무에 걸려 있는 노란 색 플라스틱의 ‘유치재’라는 안내판을 보고 그 곳이 유치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멀리 사치재를 오르는 차량의 모습이 보이면서 운행 시간이 40여분이 넘어서자 나의 운행 속도도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묘지 몇 기와 밭뙈기들을 지나 경운기 도로에 들어서면 안내판이 보이고 곧 매요리 마을에 들어서게 되는데 산행 구간에 그것도 백두대간 구간에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조금은 낯 선 산행(?)을 한다는 것도 이번 구간이 갖는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하겠다.
폐교가 된 운성초등학교 건물을 끼고 ‘매요휴게실’이라는 간판이 선명한 슈퍼를 지나 목재소를 옆길로 들어서면 ‘유치삼거리’라는 이정표를 따라 오르막 산행이 계속된다.
낙엽 밑으로 땅이 아직은 얼어 있어 밟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약간은 푹신하게 발에 다가오는 느낌이 아주 좋은데 이따 오후가 되면 이 땅이 녹아 얼마나 질퍽거릴지 모르겠다.
운행하는 왼쪽으로 드디어 88고속도로가 보이면서 차량의 질주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올 무렵 고속도로에 내려서면서 ‘사치재’라고 쓴 이정표가 보이고 보통은 지하통로로 도로를 건너게 되는데 오고가는 차량도 별로 없어 나는 가드레일을 건너 고속도로를 횡단하였다.
편도 1차로의 고속도로.
웬만한 국도보다도 못하다고 할 고속도로.
어쨌든 그 곳을 지나 10분 정도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다보니 지형에 어울리지 않게 고사목 아닌 고사목 같은 것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불 난 흔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벌거벗고 서 있는 폼이 제석봉의 그것들과는 영 달라 보기에 흉물스러울 정도였다.
그곳을 지나자 바로 헬기장이 나타나고 사치재 아래쪽으로 지리산 휴게소가 보이며 새벽부터 지금까지 운행한 나지막한 대간 능선이 그 뒤로 보인다.
작은 억새 사이로 난 길 뒤로 앞으로 가야할 697고지며 새맥이재 그리고 시리봉이 보인다.
길은 역시 고속도로다.
거침없이 40여분을 운행하니 지나는지도 모르게 새맥이재를 지나쳤고 왼쪽으로 조망이 좋은 시리봉 옆 안부에 오르자 왼쪽으로 멀리 천문대 같은 곳이 보인다.
그런데 운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보이기 시작한 산객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즉 어제 녹은 땅에 간밤에 다시 얼어붙어 약간 융기된 흙을 밟고 간 흔적 아직 나보다 더 일찍 지나간 듯한 산객의 발자국이 보여 이것이 어제 지나간 사람의 그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나보다 앞서간 사람의 그것인지 자꾸만 궁금해졌다.
천문대 같은 곳이 보이는 조망 좋은 그곳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멀리 ‘복성이재’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봉긋 솟아 있는 ‘봉화산’이 보인다.
가야할 곳이다.
그곳에서 드디어 그 발자국의 주인을 만났을 있었던 바, 부산에서 왔다는 산객은 약 50kg에 가까운 배낭을 매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두 달을 휴업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오늘이 3박째로 물때문에 아주 고생이 많았다고 하면서 배낭 무게로 아주 힘들어했다.
야막성터를 지나자 이른바 ‘높은복성이재’에는 15km 정도를 운행하였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을 지나자 왕복 2차로의 복성이재가 나오고 이곳에서 오른쪽에 있는 상성마을이 흥부가 살았다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매점이 민박을 겸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안내판이 친절하게 서 있는데 사실 이곳이 내가 참여하였던 OO산악회의 오늘 운행 종점 구간이었는데 나는 그곳을 11시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였으니 ‘나홀로 산행’의 이점을 다시 한 번 되뇌게 되는 이유였다.
복성이재에서 오르막길을 올라 매봉(고도계 700m) 정상에 오르는데 기온이 올라가자 땅은 녹아서 질펀하게 되었고 나는 땅을 피하여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디뎌야 할 정도였는데 이윽고 정상에 오르자 탁 트인 억새풀 뒤로 봉화산(919.8m)이, 왼쪽으로는 노단리 마을과 저수지, 오른쪽으로는 아영면과 일대저수지가 보였다.
뒤를 돌아다 보니 멀리 오늘 출발한 고남산(846.4m)의 통신탑이 뚜렷하게 보인다.
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사치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고 하는 안산산악회 일행 중 2명이 올라와 그 분들에게 사진을 부탁하여 드디어 인물 사진 한 커트를 찍을 수 있었다.
-이 일행들은 오늘 계속해서 몇 번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억새 사이로 들어서자 이내 철쭉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치재를 지나게 되었고 그 터널을 따라 계속 걷는데 앞으로 두 달 정도만 있으면 이 일대는 완전히 붉은 모습으로 장관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 오르막의 힘을 덜게 만든다.
꼬부랑재를 지나면서 봉화산의 통신탑은 점점 더 커졌으며 지금 가르고 있는 곳이 억새풀이 지천이며 봉화산의 색깔도 같은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억새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어쩌면 포천의 명성산의 그것보다 이곳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쉽게 느끼면서 다시금 ‘화왕산 사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되짚어 보게 된다.
이정표가 있는 다리재를 지나 질퍽거리는 길을 힘들게 올라 가뿐 숨을 몰아쉬자 봉화산의 정상석이 나를 맞아주고 안산산악회 회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들 뒤로 산불감시초소와 헬기장이 있고 아영면 구상리 일대가 눈에 잡힌다.
드디어 진행 방향 왼쪽 그러니까 북북동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내일 아침에 오를 백운산(1,278m)가 멀리 보인다.
이들을 지나쳐 억새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운행하는 양 옆으로 시멘트 포장이 된 임도가 잘 닦여 있는데 이것이 방화선의 용도인지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싸가지고 온 찰떡과 시루떡으로 점심을 갈음키로 하였는데 영 맛도 없는 것 같았는데 물이 모자랄 것 같아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백두대간 안내지도 뒤로 난 질퍽한 길로 들어서자 오르막이 다시 시작하는데 ‘연리지맥분기점’이라는 표지기를 지나 오르고 내려가기를 몇 번 반복하자 어느 덧 봉화산에서 2.5km운행하였다는 이정표가 나오고 안산산악회 회원 4명이 나를 앞서간다.
길은 너무나 명백하여 엉뚱한 곳으로 절대 빠질 리가 없는 이 백두대간의 능선길이 점점 힘에 부쳐오는데 500ml로 두 개를 준비한 물은 약 10cm정도의 높이만 남아 있어 나의 피로를 더 부채질 하고 있었다.
다행히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백전면 일대가 조망이 되어 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무렵 광대치가 9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자 바로 광대치가 나온다.
광대치를 지나 양지바른 사면을 미끄러지면서 힘들게 오르자 사유지라서 그런지 아니면 특별한 다른 용도에서 인지 설치되어 있는 철책을 지나자 어느 덧 중치가 코 앞에 와있음을 알리고 바로 옆길로 잠깐만 빠져오르면 월경산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떨어진 이정표 앞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서 중치까지는 1.9km남았는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중치에서 한 시간 정도 더 운행하면 중고개재가 나오고 그곳이 오늘의 운행 마감 예정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물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즉 오늘은 물도 부족하니 대강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내일 좀 더 일찍 일어나 그 시간을 따라잡으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역시 유혹의 마력은 강력하여 미리 예약해 놓은 백운산장에 전화를 하여 중고개재가 아닌 중치에서 내려 갈 것 임을 얘기하여 그곳까지 차량이 와 줄 것을 부탁하였다.
오능 운행 거리 24km, 운행시간 9시간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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