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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 제7구간 (중치 ~ 육십령)

숙소인 백운산장에서 저녁을 먹을 때, 마침 진행 중인 일본과의 WBC 야구를 보던 중 스코어가 치욕적인 점수 차로 벌어지기 시작해 열을 받아 시청을 중단하고 내일 산행 계획을 다시 검토하면서 소주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나는, 다음날 4시반에 기상하여 아침밥을 먹고 산장에서 싸주는 밥을 챙겨서 주인아저씨의 1.4t 반트럭을 타고 중치로 향했다.

 

 

 

중치를 떠나 오르막을 5분 정도 올랐을 때, 땅이 파헤쳐지고 낮은 쪽 사면의 잡목 위로 흙이 뒤 엎어져 있는 곳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는데, 오른쪽 사면은 그 어둠 속에서도 하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산사태가 났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바라보니 묘 3기가 조성 중이었다.

"정신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애매한 길을 버리고 직진을 하여 능선만 바라보고 걷다보니 아직 주위가 완전히 밝아지지는 않았지만 헤드랜턴을 꺼도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사위는 환해지고 있었다.

6:40 중고개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지지리가 나올 것이고 오른쪽은 어젯밤 숙식을 했던 중기리 마을이 나온다.

그런데 이곳 이정표가 내가 중치에서 1.7km 왔으며 백운산까지는 2.9km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중치에서 백운산까지의 거리가 4.6km라는 얘기인데 안내 책자 등에는 모두 3.8km 정도로 표기 되어 있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여하튼 이곳에서부터 백운산(1278.6m)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니 표고차 540m를 감안한다면 그 경사도를 대강 짐작할 수 있겠다.

 

 

 

 

 

충분히 체력을 충전한 시간이니 별로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중고개재를 출발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지지리 마을과 그곳을 통과하는 743번 국도가 아래로는 어느 터널을 통과하고, 오른쪽으로는 무령고개를 넘어 장계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왼쪽을 보니 어제 지나온 월경산, 광대치, 봉화산, 시리봉 등이 가늠되고 그것들이 뭉쳐 잇는 것이 마치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점토로 만들어 보았던 산군(山群), 혹은 군대에서 작전을 위하여 혹은 관광자료로 지형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모조 지형물 혹은 조감도를 보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는 백운산이 위용을 들어내기 시작하며 그 봉우리들은 뒤로 떠오르는 태양을 가로막고 서 있어 백운산의 스카이라인만이 눈에 들어 올 정도다.

 

 

 

그 즈음부터 산죽이 길을 터주고 어제 하루 종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잔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백운산이 역시 높고 깊은 산인 것만은 확실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산을 오를 때 유달리 '생태계복원중'이라는 팻말이 자주 눈에 띄어 약간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우회도로를 이용하여 정상을 향한다.

갑자기 축령산이 생각난다.

축령산은 휴양림 설치를 이유로 2,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꼬박꼬박 징수하면서 나무뿌리나 안전 산행을 위한 조그마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음을 비교해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본다.

 

 

이윽고 백운산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는 중봉, 하봉을 거쳐 백운리로 떨어지고 왼쪽은 내가 가야할 곳으로 이 곳에 다듬어지지 않은 무덤이 한 기가 있다.

쉬기도 할겸 처음으로 카메라 삼각대를 사용하고 셀프서비스를 하여보는데 힘이 들었는지 내 인상이 영 좋지 않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나무를 밀어내며 들어서자 정상석이 보이며 그 뒤로 내가 가야할 영취산과 덕운봉, 깃대봉 그리고 말발굽 모양의 남덕유가 보인다.

장쾌한 스카이라인이다.

 

 

남덕유가 점점 크게 다가오는 능선길을 거침없이 걷다가 조망이 괜찮은 바위가 나오면 그 위로 올라 내가 얼마나 왔음을 남덕유의 크기로 가늠해 본다.

잡목이 많아 사진 찍기가 별로 좋지 않은 이 내리막 능선은 조금은 지리하기만 하다.

 

 

이런 나에게 영취산과 백운산의 중간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이정표는 별로 흥미를 주지는 못한다.

 

 

해가 들지 않는 이곳 사면은 아직도 눈과 얼음이 자주 등장해 조심은 하여야 하였지만 거의 뛰다시피 걸을 수 있어 백운산을 떠난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무령고개와 영취산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토사의 유실을 방비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듯한 나무 계단에 들어서자 키가 큰 산죽들이 길 양 옆으로 늘어서 있으며 숨을 몇 번 고르자 이내 영취산 정상석이 나를 반긴다.

 

 

 

 

캐언이 1기 있는 정상에는 안내 표지판이 영취산의 존재적 의미를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삼각점이 현 위치를 나타내 주고 있었고, 그 뒤로 한층 커진 남덕유가 계속하여 얼굴을 내 밀고 있었다.

즉 이 영취산은 지리산 영신봉에서의 백두대간이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 역할을 여기서 끝내고 금남호남정맥 상 섬진강의 수계 역할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는 다시 속리산 천황봉의 한남금북정맥을 잇는 백두대간 상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임을 각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덕운봉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고 논개 생가 갈림길을 지나자 조그마한 봉우리 위로 오르는 길과 오른쪽으로 산죽을 쳐 새로 길을 낸 듯한 길로 갈라지는데,

 

 

 

 

 

산죽 길이 워낙 색깔이 좋아 그 길로 들어서자 사람키를 훌쩍 넘는 그 길에는 잘라진 산죽이 퇴색된 채 썩어가고 있으며 그 잘려진 밑둥 옆에는 다시 산죽의 어린 새싹이 이제 나무 모양을 갖추는 등 이들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977고지 암봉에 올라 젖은 옷을 벗고 신발 끈을 다시 매는 등 정비를 하고 있을 때 반대방향에서 한 산객이 다가와 자신은 중치까지 간다고 하면서 소요 시간 등을 문의하고 나는 그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다시 민령을 향해 출발한다.  

그 산객과의 우문현답.

"왜 혼자 오세요?"라고 묻자 그 산객 왈, "그러면 선생님은 왜 혼자세요?"

 

 

 

이제 민령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한데 펑퍼짐한 억새풀밭과 철쭉나무 숲을 지나자 이내 아래로는 대진고속도로의 터널이 있는 민령이다.

 

 

차량이 달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곳 민령의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5명의 일행의 권유에 나도 그 옆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의자를 펴고 밥을 꺼내어 제 시간에 밥을 먹는다.

12:00.

대전에서 왔다는 아저씨 일행들은 산을 많이도 다닌 것 같았다.

60이 넘은 나이에 비록 구간 산행이기는 하지만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 간다는 것도 장난은 아니지 않겠는가?

 

밥을 먹고 있는데 출발하려는 아저씨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였다. 

 

 

 

배낭늘 다시 꾸리고 그들이 간 길을 바라본다.

키 작은 억새출 밭 뒤로 완만한 능선이 깃대봉 정상으로 안내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확연하게 들어난 길로 한 일행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깃대봉을 오르다 뒤로 전망이 괜찮은 바위에 올라 뒤를 바라보니 멀리 백운산 능선이 희미하게 보이니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윽고 깃대봉 정상에 오른다.

아래는 대진고속도로가 보이며 정상에는 정상석과 깃발은 없는 깃대만 서 있는 깃대봉이다. 원래 이름은 구시봉이었던 듯 구시봉이라고 써있으며 다만 깃대 옆에만 깃대봉이라 써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제 남덕유가 바로 지척인 걸 보니 이제 저 아래가 육십령이다.

 

 

봄철 하산길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겨울철의 빙판길이나 눈길은 아이젠과 스패츠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지만 해빙기의 하산길의 질퍽거림 그로 인하여 온 신경을 발 딛는 곳마다 써야 하는 산객들의 고초는 그 경사도가 심할수록 더 하다 하겠다.

등산화가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된 후에야 육십령 휴게소에 내려 시원한 맥주로 목마름을 달랠 수 있었다.

13:20. 종주 거리 17,5km. 소요시간 휴식시간, 점심시간 포함 7시간 20분.

14:20 장계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장게에서 무주 경유 서울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승차.

몸이 나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