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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금북정맥의 기맥, 지맥

석문지맥 1구간(석문봉~옥양봉~서원산~수창봉 ~와우리)

 

 

 

 

이번 설 연휴를 맞아 연휴 중 하루를 택해 '산으로'님과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석문지맥을 가기로 합니다.

석문지맥에 들기에 앞서 지맥의 개념을 정리해 봅니다.

 

지맥(枝脈)이란?

 

주지하시다시피 지맥(枝脈)은 박성태선생님이 '신산경표'라는 책에서 정립한 개념으로 대간 - 정맥 - 기맥(岐脈)의 하위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택리지나 옛 문헌에도 산맥이라는 말이나 지맥이라는 개념도 등장했었으나 이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들의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그것들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의 산맥은  곧 지질구조선이라고 하는 일본인이 만들어 준 개념으로 사실은 예전의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산줄기 개념의 산맥과는 전혀 다른 그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쓰던 산맥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대간이나 정맥, 기맥, 지맥 등 산줄기 개념의 그것들과 가깝습니다.

또한 현재 산맥을 이야기하는 지리학자들 혹은 산줄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이 이야기 하는 지맥은 큰 맥에서 가지를 친 상대적으로 작은 줄기를 이야기 하는 다시말해서 한자어로 지맥(支脈)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지맥(枝脈)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하는 이 지맥(支脈)은 우리 선조들이 말하던 지맥 그리고 우리가 이아기하고자 하는 지맥(枝脈) 바로 그 지맥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산맥과 산줄기는 무엇이 다른가 부터 알아 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산맥이란?

 

참고도 #1 산맥도

 

그럼 산맥이 무엇입니까?

산맥은 같은 시기에(지질 계통), 같은 방법에 의해(조산운동) 생성된 것이라면 지질구조는 물론이고 그 주향도 비슷할 것이니 따라서 주향이 비슷한 산맥은 대체로 지질구조선도 같다고 보고 그 주향에 따라 산맥을 구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산맥이라는 이름은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지어준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이전에 우리 산하를 이야기 할 때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하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잘못 된 말입니다.

 

반면 산줄기는 무엇입니까?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산줄기는 그를 둘러싼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한다.”를 기본원리로 하는 이 개념은 우리 조상들이 물과 산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며 백성들은 그것들에 기대어 살았음을 보여주는 자연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 산줄기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오를 수 있는 그런 대상인 반면 산맥은 선이 아닌 땅 속에 있는 관념적으로 그린 다시 말해서 부피의 개념일 3차원적인 것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2차원적인 선으로 표시한 것이니 이 산맥은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산경표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본질적으로 산맥은 개발의 대상 즉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적인 자연관에서 비롯된 서양 지질학의 반영인 반면 산줄기는 항상 자연이 되고 싶어 하는, 자연을 닮아가고 싶어 하는, 자연을 본받고자 하는 즉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 동양 철학의 반영으로 지형학으로 설명되는 부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산맥이 아닌 이 산자분수령에 터잡아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대륙에서 들어오는 첫 관문에 버티고 있는 백두산을 조종으로 하여 남으로 흘러내려 자리 잡은 곳에 위치한 지리산{예전에 지리산을 백두가 흘러내려 만들어진 산이라고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른 이유}까지 단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고 내려온 줄기가 바로 그 이름도 찬란한 백두대간(1630.1km)아닙니까.

이 백두대간이 아버지 줄기가 되고 우리나라의 모든 산, 모든 산줄기는 여기에서 비롯되며 이 산줄기들의 족보를 책으로 만들어 진 것이 1769년 경 여암 신경준 선생의 저서(이설 있음)로 알려지고 있는 산경표(山經表)’입니다.

이 산경표에는 우리나라의 산줄기에 대간, 정간, 정맥이라는 3가지 개념을 그 위상과 세력에 따라 1대간 1정간 13정맥을 분류되어 있습니다.

즉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그리고 우리나라 10대강을 기준으로 13정맥 등 15개로 분류하였는데 이 분류의 기본원칙은 산자분수령에 있는 것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산경표를 찾아봅니다.

 

산경표(山經表)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도표로 한반도 멧줄기의 발원지와 분포를 강물의 수계를 따져 가계도처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산경표의 가치는 산줄기의 표현을 족보(族譜) 기술식으로 정리하여 어떤 유역들을 거느리며 변형되고 생성해 왔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고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정맥(正脈)을 산경을 바탕으로 옆에 거리(이수(里數))를 부기해서 이를 펼치면 조선의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들을 산줄기와 하천 줄기를 중심으로 모든 구역의 경계가 나오도록 도표화했다는 데에 있다.

참고도 #2 산경표 상의 산경도

 

산경표의 기본 원리

 

1) 위 산경도에서 보듯 산줄기는 하나의 선에 따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지형적 원리에 충실합니다.

2) 10대 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큰 산줄기로 삼습니다.

   산경표의 기본 원리와 작명법은 이 10대 강이 기본이 되어 분류되었습니다.

   따라서 10대 강인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이 10대 강에 포함되어 기본 산줄기의 이름은 위 지도에서 보듯 이 강이름에서 비롯되게 됩니다.

3) 기본 줄기인 대간이나 정맥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입각합니다.

 

신산경표의 등장

 

그런데 2004년 초판이 발행되고 2010년 개정증보판이 발행된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는 산경표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주면서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산경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 보면....

 

1) 정맥은 10대 강을 구획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주행이 하구를 향하여야 하는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바, 가령 금남정맥의 경우 그 끝이 금강 하류로 향하지 않고 내륙에서 끝나며,

 

2)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의 경우에는 겹침 산줄기가 있으며 이 겹침 산줄기가 갈라지는 부분에서 10대강인 청천강과 예성강 등이 발원하게 되며,

 

3)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은 10대강을 구획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으며,

 

4) 백두대간 역시 "대간은 나라의 물줄기를 다시 말해서 국토를 동서로 양분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바다가 아닌 지리산에서 끝이 난다는 문제점 등이 제기 됩니다.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는 1차적으로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산경표를 수정하자는 제의를 하게 됩니다.

이하 석문지맥을 살펴보면서 필요한 내용은 그때그때 알아보기로 합니다.

 

석문지맥 개관

 

1. 석문지맥의 족보 - 호서정맥인가 금북정맥인가.....

 

이 중 오늘은 겸침줄기의 문제가  있는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석문지맥을 답사하는 일정이므로 이 줄기의 뿌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위 산경표에 입각하여 그 줄기를 그린 위 산경도에서 석문지맥은 -----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석문지맥은 박성태 선생님이 지도 상에 그어 명명한 산줄기로서 모든 산과 산줄기가 그러하듯이 이 석문지맥 역시 애초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인 것은 분명하긴 한데 이 석문지맥의 모(母)줄기가 산경표의 산경도로 볼 때에는 금북정맥에 위치해 있지만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에 터잡아 그린 산경도에는 금북(안흥)기맥에서 분기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산경표의 한남금북정맥은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추고 호서정맥이라는 이름이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금북정맥의 끄트머리 부근에 와서는 새롭게 금북정맥 대신에 금북(안흥)기맥이라는 줄기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2. 호서정맥 탄생의 배경

 

그럼 신산경표에서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을 버리고 호서정맥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원산경표에서 북한에 있는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우선 오늘은 우리가 걸으려고 하는 한남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줄기들을 살펴보고자 함이니 남한의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그리고 한남정맥을 먼저 봅니다.

 

참고도 #2의 원산경표 상의 산경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가 맞으면서도 바다나 10대강이 아닌 칠장산 부근에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분기되면서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는 산줄기는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끝난다는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결과가 되어 버립니다.

나아가 정맥은 10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명제와도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이 한남금북정맥이라는 겹침줄기를 해결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또 금북정맥의 끝이 그 이름과 같이 금강의 북쪽 울타리와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이 아닌 안흥진이라는 곳으로 떨어지는 것도 좀 이상합니다.

 

참고도 #3 신산경표의 산경도 - 호서정맥, 금북기맥, 석문지맥

 

원산경표의 위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고자 박성태선생님은 역작 '신산경표'에서 자신이 산경표의 맹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산경표에 대한 불경스러움(?)을 무릅쓰고 이 원산경표에 과감하게 메스mes를 대게 됩니다.

즉 1) 3개의 정맥 중,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반하는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158.8km)을 없애고 한남정맥(177.4km)과 금북정맥(280.2km) 등 두 줄기만을 남기면서 잘라놓은 한남금북정맥을 두 줄기 중 더 긴줄기인 금북정맥에 편입시키게 됩니다.

-이 점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 박성태 선생님은 산경(山經)을 중시하시는 것 같음-

 

 2) 그러고는 기존의 금북정맥의 끝이 그 이름에 걸맞지도 않고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에도 맞지 않게 금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이 아닌 안흥진으로 진행하고 있어 다시 여기에 손을 대게 됩니다.

즉 안흥진으로 향하던 금북정맥의 줄기를 백월산에서 남진시켜 말 그대로 금강과 서해의 합수점에서 이 금북정맥이 물에 잠기게 만듭니다.

다만 이 줄기가 위와 같이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여 이를 금북정맥이라는 이름으로 놔둬야 하겠지만 기존 원산경표의 금북정맥과의 혼돈을 우려해 이 지방 이름인 호서를 따서 호서정맥이라 명명하고 그 줄기의 길이를 378.2km로 확정짓게 됩니다. 

참고도 #4 신산경표 상의 금북기맥

 

3) 그러고 나니 원산경표의 나머지 금북정맥이었던 산줄기 즉 백월산~안흥진의 129.4km의 산줄기 처리가 문제가 됩니다.

박성태 선생님은 이 나머지 줄기가 원산경표에서는 그래도 형뻘인 '정맥(正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줄기였음을 존중하여 '기맥(岐脈)'이라는 격을 부여해주어 금북기맥 혹은 안흥진의 이름을 따 안흥기맥이라는 이름으로 남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의 겹침줄기인 금남호남정맥도 정리를 하여 이를 호남정맥에 편입을 시켜 남한의 1대간 9정맥이 1대간 7정맥으로 단순화 시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남은 줄기는 금남호남줄기의 줄기도 금남기맥으로 남게 되는데 이는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참고로 기맥이란 용어가 나왔으니 그 용어를 짚어 보자면,

 

기맥(岐脈)이란

 

그러나 아직 공인되지 않은 용어에 대해서 많은 고심을 하여 '신산경표'라는 활자화 된 책까지 펴내신 박성태 선생님께서는 용어만큼은 건드리지 말자는 말씀을 하시면서 "기맥(岐脈)은 정맥이 아닌 산줄기 중에서 일정한 세력을 가진 것 즉 대간이나 정맥에서 분기하는 산줄기로서 ①10대 강 중에 하나인 영산강과 지류이지만 영산강 이상의 유역면적(3,300㎢)인 강을 전부 혹은 일부를 구획하는 산줄기, ②산경표에서 정맥이었던 줄기가 주행이 바뀌면서 가지줄기가 된 산줄기, ③육지의 최북단 혹은 최남단으로 가는 산줄기를 들면서, 남한에서는 ①의 경우에는 영산기맥, 한강기맥 등 2개의 기맥을 ②의 경우에는 금북정맥에서 탈락한 금북기맥과 금남정맥에서 탈락한 금남기맥 ③ 그리고 남해 최남단으로 가는 땅끝기맥과 , 진양기맥  등 2기맥으로 분류하여 남한에는 총 6개의 기맥으로 정리를 하자고 한 것이 박성태 선생님의 제안이셨고, 1대간 9정맥을 마친 산꾼들의 그 다음 행선지는 신산경표의 정리된 용어대로 이 기맥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영산남기맥이라는 이름은 그나마 수경(水經)과 결부시킬 수도 있고 그 격(格) 또한 신산경표와 걸맞게 붙였기 때문에 이해해 줄만도 하지만 탐진기맥이라는 말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영산남기맥이라고 했으면 영산강이라는 강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그 끝이 어디를 향했는 지는 사실 따져봐야 할 것 같아 여기서는 논외로 하기로 합니다.

다만 사자지맥의 전(全) 줄기 명칭을 바꿔 탐진기맥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준다고 하더라도 48km정도 남짓한 줄기 나아가 유역면적도 862.5㎢에 불과해 사실 보잘 것 없는 산줄기를 가지고 기맥이라고 하다니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산줄기의 격이 폼이나 멋가지고 격을 붙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서 참고로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사실 '기맥(岐脈)'이란 용어는 보통명사인 지맥(支脈)과 구별하기 위하여 조석필 선생님이 박성태 선생님에 앞서 제안한 개념입니다.

선생님은 1) 본류를 구획하는 주맥 산줄기로써 그 본류가 10대강이 아니라는 이유로 명명 되지 않은 것들을 거론하면서 이에는 영산북기맥(신산경표의 영산기맥과는 주행 방향의 끝이 조금 다름), 땅끝기맥(구간의 반 이상이 영산강과 관련이 없으므로 '영산남기맥'이라는 이름 대신에 '땅끝'이라는 명칭을 도입하였으며 신산경표와 주행방향이 같음)

         2) 지류를 구획하는 지맥 산줄기로써 세력이 큰 산줄기로 남한에서는 한강기맥, 북한에서는 압록기맥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 조석필 선생님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여 이를 산자분수령의 개념으로 한 발자국 더 발전시킨 것이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라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졸고(拙稿) 2017. 1. 17. 진행한 사자지맥 산행기

 

3. 호서정맥이란 용어는 타당한가?

 

호서(湖西)라는 말은 호수의 서쪽이라는 말이므로 그 호수를 제천의 의림지라고 보아 의림지 서쪽 즉 충청남북·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 얘기(제 1설)도 있고, 김제의 벽골지(벽골제는 제방의 이름이므로)를 호서의 호(湖)로 보는 설(제 2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1설에 의할 경우 그 호수 즉 의림지의 남쪽은 호남지방이 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훨씬 아래에 있는 추풍령 이남을 영남지방이라 부르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는 믿기 어려운 말같고 나아가 원주 일부분도 호서지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볼 것이니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제2설 역시 벽골지의 서쪽이라면 범위가 너무 축소되고 호서지방의 서쪽 지역은 다 바닷물속으로 가라앉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이론이라 이 역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에 맞서 유속이 느린 너른 곳 즉 호수같이 보일만한 곳이 있어 이를 호수 정도로 보았다(제 3설)면 어떨까요?

물론 금강 유역에 지금같이 대청호 같은 큰 호수가 있었으면 다른 가설도 생기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에 물막이 공사를 하여 댐을 만들만한 적당한 곳이 있었다면 그 금강 상류를 호(湖)로 보아 그 호서지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않겠냐 하는 제3설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유가(儒家)의 학파분류를 보면 기호학파는 황해도 남부와 서울 그리고 충청남북도로 한정을 하고 있으며, 호서학파는 충남지방(충북지방은 제외)과 전북서부지방을 포함한다고 볼 때 위 제3설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호서지방의 호서는 대강 금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4. 석문지맥(枝脈)의 주행문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박성태 선생님께서 이름한 지맥이란 무엇입니까.

지맥(枝脈)이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주행거리가 30km이상의 산줄기이되 대간, 정맥, 기맥이 아닌 산줄기를 이르는 개념입니다.

이 지맥은 ①대간 가령 도솔지맥이나 문수지맥, ②정맥 가령 낙동정맥에서 분기하는 팔공지맥 혹은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화악지맥, ③기맥 가령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춘천지맥이나 성지지맥, 혹은 ④자신의 형뻘 되는 다른 지맥 가령 수도지맥에서 분기하는 금오지맥이나 양각지맥 등으로 부터 각 분기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이럴 경우 원줄기에서 분기하는 줄기들은 그 원줄기의 세력이 큰 경우 여기서 30km 넘는 줄기가 하나가 아닌 여러 줄기가 분기할 수 있습니다.

신산경표의 분류 기준을 따른다면 가령 낙동정맥에서 분기하는 팔공지맥이나 보현지맥 같은 경우에는 무려 9개의 지맥이 분기하게 되기도 -어느 줄기가 주줄기이냐는 천황지맥이나 팔공지맥을 진행할 때 자세히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부연 설명은 피하기로 함- 합니다.

 

어느 줄기가 주맥(主脈)이냐?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지맥이 자신보다 형뻘 되는 다른 지맥으로부터 분기한다고 하여 반드시 그 형뻘되는 줄기는 분기하는 줄기보다 긴 줄기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줄기가 주줄기고 어느 줄기가 부줄기냐를 따지는 것은 그 길이의 확정으로 인하여 30km의 기준에 드느냐 여부 즉 지맥이 되느냐를 가리는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줄기나 여타 줄기의 주행거리를 확정시키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는 '산자분수령'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므로 이 원칙에 따라 큰 강의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가 주줄기가 되는 것이며 더 작은 천(川)과의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는 부(副)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따져 보았을 때 이 석문지맥은 산경표에 의할 경우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맥, 신산경표를 따를 경우에는 금북기맥에서 분기한 지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산경표의 태도

 

하지만 박성태 선생님은 신산경표를 만드시면서 이런 제안을 하십니다.

즉 1) '산은 물을 가르는 경계'라는 단순한 지형적 원리에 의해서만 산줄기를 잇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지질학적 요소나 생활권 등 인문적인 요소는 모두 배제하게 됩니다.

2) 또한 산줄기의 등급 분류의 기준은 그 산줄기가 구획하는 물줄기의 등급을 따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산줄기의 세력, 길이, 분기 순서 등도 모두 배제하기로 한다고 합니다.

이 2)의 산줄기 등급 분류가 지맥에서 지맥이 갈리는 경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내륙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즉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면 간단한 문제가 되므로 더 이상 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가령 한강기맥에서 보듯 산줄기는 그를 에워싸고 있는 두 개의 물줄기 즉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니 별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맥이 바다로 향할 때에는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즉 에워싸고 있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를 낳아주고 싸고 있던 두 개의 물줄기는 한 합수점에서 만나게 되는 게 아니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바다로 들어가게 되므로 이 산줄기가 두 개의 물줄기 중 어느 물줄기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논의에 오늘 거닐 석문지맥을 대입해 보기로 합니다.

오늘 진행하는 석문지맥의 지도를 봅니다.

 

참고도 #4 지도 - 청색선은 금북정(기)맥, 분홍색선은 석문지맥

위 참고도 #4에서 보시다시피 석문지맥은 금북기맥에서 갈라진 줄기로서 그 좌측 사이에서는 역천이 발원하게 되고 이 역천은 검암천과 강진천을 흡수한 다음 서해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한편 이 석문지맥의 우측에서는 덕산천이 발원하게 되는데 이는 후에 삽교천에 흡수되어 서해로 흘러들어 가게 됩니다. 

출처 : 국토교통부 하천일람

 

여기서 잠시 기억을 되살려 신산경표의 제안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1) '산은 물을 가르는 경계'라는 단순한 지형적 원리에 의해서만 산줄기를 잇자는 것입니다.

2) 또한 산줄기의 등급 분류의 기준은 그 산줄기가 구획하는 물줄기의 등급을 따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석문지맥의 경우와 같이 산줄기를 품고 있는 두 물줄기가 각기 바다로 흘러들어가야 하는 경우에 적용할 해법은 없어 보입니다.

2)의 경우에는 기맥이냐 지맥이냐 혹은 지맥 중에서도 주(主)지맥이냐 부(副)지맥이냐를 결정하는 요소로 보이고....

추측해보건대 박성태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①물줄기의 세력을 따라 가야 하는 것으로 해결하시는 것 같이도 보이고, ②산줄기를 가장 길게 늘릴 경우 즉 산의 세력을 따르는 것으로도 보이기는 합니다.

즉 ①의 경우에는 삽교천은 국가하천이고 역천은 지방하천이기 때문에 그 급이 상대가 안 되고 ②의 경우에는 역천으로 가는 줄기는 37km정도에 불과해 이 역시 삽교천으로 가는 줄기에는 비교도 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석문지맥의 경우에는  석문봉 ~ 옥양봉 ~ 오봉산 ~ 오룡산 ~ 망객산을 지나 삽교천 우측에서 바다와 만나는 47.7km로 확정되는 게 적당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선답자들도 다 그렇게 진행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석문지맥의 이웃집 친구들에게 눈을 돌려 봅니다.

뿌리가 같은 한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서봉지맥의 경우부터 석문지맥까지 내려와 보면 이들 지맥들은 한결같이 그를 품고 있는 하천의 좌측으로 향하여 그 맥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서봉지맥은 진위천 좌측, 쌍령지맥은 안성천 좌측, 영인지맥은 곡교천 좌측, 봉수지맥은 삽교천 좌측 그렇다면 그 다음 줄기인 석문지맥은 삽교천이 아닌 역천 좌측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즉 수경의 세력이나 산경의 세력은 여기서 고려하지 않고 다만 바다로 가는 산줄기의 경우에는 이웃집 친구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일관성 있게 왼쪽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을 향하여 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이 석문지맥이 끝나는 지점은, 

참고도 #5

 

금북정(기)맥과 석문지맥이 갈리는 곳에서 발원하는 역천이 다른 지천을 흡수하여 석문호에서 서해로 들어가게 되는 곳 즉 석문지맥은 역천의 울타리가 되어 이 위 참고도 #5의 백석천까지 아우르는 산줄기가 역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인 두물머리에서 이 석문지맥이 마감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웃집 친구들과의 형평성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며 한남정맥이나 호서정맥(금북정맥)에서 분기하는 바닷가로 가는 물줄기의 문제를 일관성 있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해도 여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후망지맥 지도

 

가령 후망지맥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이 후망지맥을 품고 있는 물줄기들은 사실 보잘 것 없어 결국 후망지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줄기를 탐구하는 게 아니고 산줄기를 찾는 것이며 다만 물줄기는 산줄기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둘을 하나로 보고 따지는 것이지 후망지맥과 같은 특수한 지형 형태 즉 반도-쓰기 싫은 용어이지만- 혹은 곶(串)으로 향하는 산줄기의 경우에는 산경을 중시하여 신산경표에서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박성태 선생님께서 가장 고민하셨던 부분이 바로 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선생님의 뜻을 미천하나마 헤아려 보게 됩니다.

각설하고 이런 논의를 가능케 해 준 박성태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6. 2. 9. 화요일

2. 동행한 이 : 산으로님

3. 산행 구간 : 석문지맥 1구간(남원군묘~석문봉~옥양봉~서원산~수창봉~와우리)

4. 산행거리 : 19.5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82.37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남원군묘

 

09:14

 

 

석 문 봉

  2.98km

 10:26

72

옥 양 봉

1.16

11:01

35

서 원 산

3.92

13:32

141

60분 점심

수 창 봉

4.0

14:45

72

와 우 리

7.44

17:07

142

19.5m

07:53

06:53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설 연휴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산으로'님은 용산역에서 저는 안양역에서 기차에 탑승합니다.

산에 드는 날이면 왜 이리 잠이 오지 않는지....

1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따뜻한 열차에 오르니 잠이 쏟아집니다.

 

지도 #1

삽교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10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오니 그걸 이용하기로 합니다.

덕산농협 옆의 개인택시 차부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남원군 묘 앞에서 하차합니다.

1866년 프랑스의 로즈가 이끄는 군인들이 강화도를 박살내고, 1868년 미국 셰난도호는 대동강으로 출격하는 등 어수선한 시절에...

2년 전 조선연해를 측량하고 돌아갔던 오페르트가 다시 한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는 페롱 등 두 명의 신부와 함께 공주사람 최선일 등을 길잡이로 하여 충남 덕산에 있는 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탐지하게 됩니다.

장사꾼인 오페르트와 선교사인 페롱이 의기 투합을 하여 국왕의 할아버지 시신을 미끼로 통상 조건과 천주교  선교의 자유 등을 흥정하려 하였다가 실패한 이 사건의 현장입니다.

저 릉 위에 남원군의 묘가 있습니다.

덕산면 가야동에 위치한 남원군의 묘.

그 위로 올라가 봅니다.

좌측으로는 가야산 가운데 옥양봉 그리고 우측에 서원산이 에워싸고 있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제가 보더라도 천하의 명당 같습니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부터 내려온 이름이겠고 이곳 가야동의 동(洞)은 동천(洞天)의 줄인 말로 깊은 산중의 계곡에 신선이 사는 곳(神仙之居處)을 뜻하는 용어라고 하니 이 일대가 얼마나 아름답고 옛 사대부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겼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기야 천하 명당에 자리한 곳에 항상 유명 사찰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터 와신상담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이곳 가야사 절을 강제로 폐사(廢寺)시키고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묘를 이곳까지 이장을 했을 정도라면 더욱이....

어쨌든 그 이장은 성공하여 그 아들이 왕위까지 올랐을 정도니 묘를 잘 쓰긴 잘 써야 하는가 봅니다.

좌측 아래 한 칸짜리 가옥은 창고의 용도인데 예전 남원군 묘를 이장할 때 사용하였던 상여가 똑같은 모형을 한 상여를 전시해 놓은 곳이고....

좌측 상가저수지 뒤로 가야산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 우측으로 석문봉.

바위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음.......

아직도 눈이....

뒤를 돌아보니 서원봉이 가야산과 마주하고 있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릅니다.

오늘 산행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서 시작합니다.

아까 본 상여 창고.

석문봉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레입니다.

하나는 상가저수지 방향으로 오르는 방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원군 묘 우측으로 올라 석문봉 우측으로 오르는 방법 등이 그것입니다.

우측보다는 이 루트가 우회하기는 하나 경사도가 우측의 그것에 비해 덜 할 것 같군요.

상가저수지를 지나,

우측 도로를 따르면,

민속 신앙과 관련한 시설물 한 동이 자리하고 있고,

우선은 석문봉, 가야산이 한꺼번에 표기된 이정표만 따릅니다.

상가저수지와 서원산.

노선 안내도라....

제작하신 담당자가 교통과에 근무하다가 산림과로 오셨나?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가야산.

직진합니다.

수량도 적당한 덕산천 원류입니다.

상당한 된비알에 안전시설물도 잘 설치해 놓았습니다.

드디어 안부로 올라섰습니다.

여기서 서산시 해미면을 만나 서산시와 예산군의 시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그 시계는 곧 정맥길이기도 하고....

물론 신산경표에 의할 경우에는 금북기맥이겠고.

남원군묘에서 1시간이 조금 덜 걸리는군요.

이제부터 잠시 정맥길을 걷습니다.

추억의 금북정맥.

와!!!

경치가 끝내줍니다.

한서대 뒤로 연암산 줄기가 펼쳐집니다.

그 좌측의 삼준산....

우측으로 바다가 보이며 그 뒤로 연봉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

안면도겠죠?

그 이음선이 바로 안면지맥 즉 안면산줄기이겠고.....

안면지맥이냐 안면산줄기냐는 문제는 기회있을 때 다뤄보기로 하고....

음...

간월호 너머 볼록 솟아 있는 너는?

도비산이로군요.

'산으로'님과 함께 산행을 하면 좋은 점 하나!

제가 손품을 그만큼 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양손에 스틱을 쥐고 산행을 하는데 비해 '산으로'님의 손에는 스틱 대신 지도가 쥐어져 있습니다.

A3용지 크기의 지도 몇 장을 둘둘 말아 진행을 하면서 수시로 펴서 지형을 확인하니까 저는 일일이 배낭을 내려 그 안에 있는 지도를 꺼내는 수고로움을 덜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즘 산으로님과 산행을 할 때 산군(山群)을 복사한 종이 한 장으로 대체하고 다니니 그만큼 산행이 쉬워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쉬워지니까 버르장머리가 나빠진 것도 같고....

열심히 내 노력으로 찾아보고 하여야 하는데....

가야산.

그리고 좌측의 원효봉.

정맥은 가야산에 우측으로 휘어지고....

조금 더 진행하다 다시 한서대 방향을 보고....

석문봉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선 안내도?

다시 한 번 피식 웃습니다.

뭐라고 썼어야 했을까요?

루트 안내도?

영어로 쓰면 좀 그렇고.

그냥 등산길 안내도....

아니면 산길 안내도?

산으로님.

멋지십니다.

올라온 상가리 일대.

앞의 상가저수지.

뒤의 큰 게 옥계저수지.

좌측의 서원산에서 그 옥계저수지까지 산길도 잘 나 있는 것 같았고....

좌측 옥양봉 우측 서원산.

옥양봉.

아쉬워 돌아 본 가야산.

앞의 사자바위 뒤로 드디어 석문봉이 고개를 내밉니다.

태극기 좌측으로 케른 한 기도 보이고....

눈도 있고 입도 있고...

아마 숫사자 같습니다.

갈기까지 있는 걸 보니....

석문봉에 오릅니다.

여기서 해미면을 버리고 운산면을 만납니다.

정상석을 보고,

해미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 기념으로 만든 케른입니다.

대원들이 십시일반 뜻을 합쳐 만든 기념물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아름다워 보입니다.

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제부터 정맥에서 벗어나 오늘의 석문지맥 산행을 시작합니다.

서산시 운산면과 예산군 덕산면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 것이죠.

우틀합니다.

이곳이 지도 #1의 '나'의 곳으로 남원군 묘의 우측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이 안내도의 표현에 의하면 '노선'입니다.

옥양봉이 한결 가까워졌습니다.

지도 #1의 '다'의 곳을 지납니다.

이곳도 남원군 묘 우측에서 올라오는 길.....

음......

좌측 서원산 줄기 우측 가야산 줄기....

상가리.

조금 이따 진행할 서원산.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예당평야.

가운데 바다 건너 몰록 튀어나온 봉우리는?

예.

그렇군요.

영인지맥의 맹주 영인산이겠군요.

일락산 뒤로 서산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아직 고산지맥이 갈리는 은봉산은 보이질 않는군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621.2봉으로 표기된 곳을 오릅니다.

바위봉으로 조망 또한 끝내줍니다.

지도에는 593.4봉 혹은 515.5봉이 옥양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곳을 옥양봉으로 인식합니다.

현장에 가보면 이 곳이 593.4봉이고,

이곳이 옥양봉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도립공원에서 설치해 놓은 안내판이나 영진지도, 동아지도에도 모두 아까 본 621.2봉이 옥양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망 또한 좋은 암산이므로 아무래도 그곳을 옥양봉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도 #1의 '라'의 곳에서의 진행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약 3.3km 직진을 하면 이따가 눈으로만 구경을 하게 될 수정봉으로 진행하여 마애삼존불로 가는 길이 되고....

석문지맥 마루금은 현장에 임해서 보면 그냥 이 바위 좌측으로 돌아,

이 길을 따라 내려가도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또 그 길이 맞아 보입니다.

그런데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던 '산으로'님이 능선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시고는 아무래도 이 루트는 흐름 상 좌측의 물을 건너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군요.

즉 이 길로 진행하게 될 경우 우리가 내려가게 될 참고도의 빨간선을 제시하십니다. 

꼼꼼하고 대단하신 산으로님....

참고도 #1

쓸 데 없이....

그냥 가도 어차피 살짝 물만 건너면 될 것을....

어쨌든 다시 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옵니다.

참고로 이 바위 위에 '맥'산악회 표지띠 한 장이 걸려 있지만 이를 무시하셔야 합니다.

이는 지맥 방향을 알려주는 의미로 걸어 놓은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되돌아나가 '덕산하산방향'이라는 쓰러진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틀하여 아까 그 암봉을 싸고 내려가는 루트를 이용하여야 합니다.

주의하여야 할 곳입니다.

그러면 일반등로를 따르다 덕산 하산 길에서 좌틀하여 편안한 길을 따르게 됩니다.

좌측으로 참고도 #1의 빨간선이 멀어졌다가 이내 바로 옆으로 다가오는데 아무래도 그 루트가 여기보다 더 높아 그 길이 마루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아직도 갖게 됩니다.

그러고는 임도에서 원효깨달음길을 만납니다.

저 위에서 내려오던 능선은 이 우측으로 들어가 골짜기로 들어가 버리게 되는군요.

일단 지도 #1의 '마'의 곳에서 만나는 임도는 '원효 깨달음길'로서 일종의 둘레길 같습니다.

원효봉도 있고 원효길도 있는데 이게 원효대사와 무슨 관련이 있다?

내용인즉슨 원효대사가 원효봉 아래에 있는 원효암터에서 수행 중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깨닫고 득도를 했다라는 것인데....

그런데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중도에 득도를 하여 유학을 포기하고 즉 원효는 유학을 가는 코스를 한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서봉지맥의 부(副)지맥인 태행지맥을 택하여 이를 따라 가다가 -남양 고포리가 당나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으므로- 송산 사강 정도에 이르러 묘지에서 잠을 자다가 해골물을 마시고는 오버이트를 한 끝에'일체유심조'를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는 되돌아 왔다는 이아기인데....

뭐 갖다가 쓰면 자기 것이 되나 봅니다.

이쯤에 이르러서는 화성시도 빨리 원효 혹은 의상대사 유학길을 태행지맥을 따라 만들면 멋진 관광자원이 되지 않을까요.

공장들로 인한 환경 피해도 줄이고.....

기대해 보십시오.

오두지맥을 할 때 만난 화성시청 직원들에게 권유를 해볼 테니까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이쯤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저는 아까 막걸리 한 통을 3,000원이나 주고 사왔는데 산으로님은 대추주를 가지고 오셨군요.

대추를 몇 번이고 삶고 말려서 만든 귀한 술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술이 엑기스화 한 느낌이 옵니다.

혓끝에 감기는 그 맛이란....

1시간 점심을 먹고 일어납니다.'

가장 싫은 시간.

그냥 여기서 술이나 마시고 놀다 가면 제일 좋을 건데...

어쨌든 아까 내려올 때 좀 높은 좌측 능선은 좌측으로 감기면서 계곡으로 그 맥을 가라앉히고...

상대적으로 낮았던 우리 줄기 즉 마루금은 조금 낮게 흐르다,

이정표에서 최저점을 찍더니,

다시 산길로 흐름을 이어갑니다.

절묘합니다.

지도로 어떻게 이 루트를 찾았는지 다시금 '신산경표'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냥 아까 그 좌측의 루트를 찾아 내려오면서 어영부영....

파평윤씨 묘소를 지나,

이제는 한층 멀어진 예산의 진산 가야산을 봅니다.

생각건대 산의 존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의 본성처럼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산은 우리들에게 하늘과 땅 혹은 주재자(主宰者)적 하늘과 거의 동일시 되어 우리 삶의 준거가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우리의 시조 신화에는 하늘과 산을 통하여 기술이 되고 특히 천산(天山)을 태양의 밝은 기운이 스민 산이라 하여 백산(白山)이라고도 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신화의 시조들은 죽어서 다시 산으로 돌아가 산신이 되어 나라와 마을을 수호한다고 하였으니 고려시대부터 수도를 비롯하여 각 군현에 진산(鎭山)을 지정하고 고을의 수호신격인 성황지신을 제사를 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진산은 풍수지리 개념의 주산과도 거의 일치한다고 하니 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것이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품고 의지하며 함께 살아갈 경외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산에 케이블 카를 놓겠다거나 관광호텔을 짓겠다고 설쳐대는 꼴들이란....

줄기는 끊어져서는 안 되고 생기로 가득찬 그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맥脈)이기 때문입니다.

우측의 석문봉.

그 우측의 옥양봉과 바위봉에서 내려온 마루금....

지도 #1의 '바'의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루금은 좌틀하여야 할 것이나 이곳이나 조금 더 진행한 473.2봉 모두 서원산에 속한 것일 것이니 직진하여 그곳을 다녀와야겠죠?

음...

자하 신경수님의 표지띠를 알현합니다.

11분 정도 오르니 서원산 정상입니다.

계속 직진하면 옥계저수지로 내려가게 되고....

이정표 바로 우측에 오늘 유일한 삼각점(홍성303)을 봅니다.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지도 #2

마루금은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아닌 멧선생과 고선생 발자국으로 아주 잘 나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녀석들은 어떻게 그렇게 마루금만 따라 다니는지....

그런데 이 녀석은 왜 길바닥에 이렇게 누워있게 된 것인지....

살이 그렇게 마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지도 #2의 '사'의 곳에 이르러 덕산면을 버리고 온전하게 봉산면을 만나게 되는군요.

이제부터는 운산면과 봉산면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준희선생님의 격려 산패도 만납니다.

항상 고개를 지나 치고 올라가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그것인데 오늘은 맨발사부님 명의로 걸려 있군요.

사실 두 분 다 살아 있는 전설이십니다.

지나온 서원산.

예당평야 너머로 보이는 산줄기가 정맥 줄기겠고....

387.9봉을 지납니다.

지도 #2의 '아'의 곳에서 좌틀하고,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351.8봉에 오릅니다.

지도 #2의 '자'의 곳 좌측으로 #8 철탑이 자리하고 있고,

매헌로(梅軒路)라는 의미 있는 표지띠를 대합니다.

예산 = 윤봉길 의사이니....

그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진행 방향 정면으로 산불감시카메라가 보이는 수정봉입니다.

아까 옥양봉에서 직진을 하면 이어지는 봉우리이고....

부드러운 임도를 만나,

묘지를 지나니,

수창봉입니다.

수창하니까 엘지 투수였던 심수창이 생각이 나는군요.

제주지검장이셨던 분도....

김수창이시던가?

수창봉에서의 진행은 우측 반남박씨 묘소 방향으로 내려와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숲으로 진행을 하면 보조삼각점 같은 건 발견할 수 있지만 잡목 등으로 진행은 불가능합니다.

이내 지도 #2의 '차'의 곳에서 임도를 만나게 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창조건축'이 있는 #618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고개에서 아이젠을 풀고 마루금을 이어갑니다.

이정표 옆으로 오르면 묘지가 나오고,

이내 쉬운 길로 이어지는데 노모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이러니 저러니... 언제 올거냐?"

그러다 보니 직진을 하고 산으로님은 마루금을 타고 없어지시고....

알바입니다.

저 혼자 전화를 하면서 모촌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동네가 바라보이는 묘지 앞에서 알아차리게 됩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지도를 보면서 마루금을 살펴보니,

지도 #2의 '카'의 곳에서 우틀했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면 잠시 잡목 숲에서 임도를 만나게 되고,

그 임도는 밭과 묘지가 모여 있는 산등성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도 #2의 '타'의 곳에서 유대장님을 만납니다.

잘 계시죠?

여전히 산행을 잘 이어가시고....

그러고는 241.4봉에 올라 크게 좌틀합니다.

봉 바로 좌측에서 #3 철탑도 확인하고...

이 근처에 변전소가 있어 유난히 송전철탑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좌측 임도가 유혹을 하지만 우측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사실 여기도 이 마루금보다는 우측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일관성 있게 진행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 밭 한 가운데로 진행하는 곳이 우측의 뚝 떨어지는 능선에 비해 높으니 이곳이 마루금 맞습니다.

밭을 가로질러 바로 좌측의 올무를 지나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좌측은 뚝 떨어지는 능선.

숲에서 밭으로 나오는 루트가 마루금 맞습니다.

밭을 지나 우측으로 들어서면 임도가 나오고 무덤을 지나니,

더 큰 임도를 만납니다.

지도 #3의 '파'의 곳입니다.

지도 #3

임도를 따라 오르다 지도 #의 '하'의 곳에 이르러 좌측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임도 우측으로 널널하게 걷고.....

216.8봉을 찌고서는 바로 좌틀함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정상에는 맨발 사부님 표지띠 하나가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앞에 제 표지띠도 하나 걸어둡니다.

좌틀하는 길은 이내 구시울이라는 이름의 동네에 있는 민가로 떨어지고 좌측으로 움직이면 '와우 단군성전'으로 가는 길이겠고....

머루금은 잠시 우틀하여 도로를 따르다가,

전붓대 우측으로 다시 산길로 듭니다.

잠시 잡목의 저항을 받습니다.

요즘같은 겨울이 아니고서는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

신평이씨 가족묘를 지나고,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서,

해는 옥양봉 너머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군요.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69 철탑을 지나고,

무덤 우측 표지띠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지도 #4

기도원이 나오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온통 진흙밭이라 진행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돌아,

좌측으로 마루금이 진행하고 있으니 가운대 철탑을 보고 오르기로 합니다.

좌측 262.3봉 보다 우측 바위봉이 더 멋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그 봉은 마루금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으니....

기도 없는 곳을 치고 올라 262.3봉을 찍습니다.

선생님의 산패를 알현하고.... 

널널하게 진행을 하면,

300년 된 느티나무를 만납니다.

노모가 기다리시기 때문에 오늘 목표지점인 면쳔면 소재지까지 가지 못하고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운산택시를 불러 신례원으로 가서 아산 ~ 천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산으로님은 아산에서 남주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저는 천안아산역으로 가서 06:52 열차를 타고 집에 오니 7시 반이군요.

산으로님 덕분에 난해한 산줄기 편하게 잘 마무리하고 왔으니 다음 구간 진행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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