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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의 지맥

도솔지맥 3구간(공리고개~사명산~문바위~운수현~죽엽산~추곡령~부용산~백치고개)



사명산에서 바라본 수인골 그리고 춘천지맥의 산군.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 엮은 '경기북부와 북한강'편을 보면 양구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춘천에서 양구로 가는 길은 수많은 산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구절양장(腸)이다.

 도솔산을 잇는 대암산맥이 남쪽으로 넘어와 소양호에 닿고, 중앙에는 비봉산맥이, 서쪽에는 백석산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태백산맥의 연봉들이 강원도에서 가장 작은 군 양구를 에워싸고 있다.

동단부는 가칠봉을 비롯한 대우산 · 도솔산을 잇는 대암산맥이 남쪽으로 넘어와 소양호에 닿고, 중앙에는 비봉산맥이, 서쪽에는 백석산 · 사명산을 연결하는 어은산맥이 있어 양구군 전체가 험준한 내륙산간지역을 이룬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그 연봉 계곡을 지나 북한강으로 흘러들며 양구읍을 둘러싸고 있는 소양호와 파로호는 수상교통과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가 관심 있는 대목은 여기까지이므로 더 이상의 인용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답사회'에서 엮은 이 책의 글을 쓰신 분은 주로 기자 생활을 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지리학에 대한 지식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책은 1997년도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니까 우리가 '산맥'이라는 단어에 고유명사가 들어간 이름을 대하거나 혹은 교과서에서 조차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산맥이름이 등장해도 우리가 그것을 그리 낯설어 하거나 글쓴 이의 지리인식에 대한 무지를 탓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산줄기를 걷는 사람으로서, 산줄기를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올바른 그 의미를 전달해줘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위 내용을 좀 수정하여 읽는 이 글을 이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산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심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이 책의 다른 쪽에서 청평사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백두대간이 설악산으로 남진하기 이전 슬쩍 미시령으로 빠져나와 양구의 사명산과 오봉산을 떨구었다.

그 오봉산의 본디 이름은 경운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청평산이다."

라고 쓰고 있음에 미루어 볼 때 작가는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구분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함은 물론 산맥과 산줄기에 대하여 구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더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대암산맥이라든가 비봉산맥 그리고 어은산맥은 도대체 이 작가의 창작물입니까 아니면 고토분지로 나아가 아쓰쇼에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빠뜨린 산맥들을 다시 간추린 것인가요?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산들의 이음 즉 산줄기에 무의식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여기서 학교 교육의 무서움과 역시 교과서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 책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독교인에게는 성경, 불교신자라면 불경, 무슬림에게는 코란?

혹자는 어떤 소설이나 위인전을 들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감명일 수 있을 터, 우리 인간 자체를 만든 것은 결국 교과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최소 12년 동안 우리 대뇌를 강제로 열고 쑤셔넣은 것이 교과서였고 그게 제대로 들어가 있는 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수학능력시험이며 그 결과물인 성적은 서열이 되어 우리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카스트(CASTE)의 기호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답답한 것이 교과서는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는 진리가 아닐진대, 즉 일제강점기의 교과서나 북한의 교과서 그리고 미국의 교과서가 표방하는 것이 분명히 다를 것이어서 왜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교과서 즉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의 신민들을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 땅의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어떤 담론, 어떤 의식을 주입시키려 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나 고찰 없이 무비판적으로 배웠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얘기가 여기에 이를 때면 저는 '교실밖 지리여행'의 저자 노웅희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백두대간을 찾을 기회를 두 번 놓쳤다.

즉 해방이 되어 우리의 것을 다시 돌아 볼 기회가 있을 때가 그때였고 한국 전쟁 때 통일이 되어 남북의 끊어진 백두대간을 이을 수 있었다면 이 땅에 태백산맥은 없었을 것"이라는....


참고도 #1


위 작가의 말대로 세 산맥에 선을 그어보면 우측 분홍색 선이 백암산맥, 청색 선이 어은산맥 그리고 연두색 선이 비봉산맥이 됩니다.

그런데 이도 실은 가짜입니다.

산줄기에 찌들은 제가 그 끝을 강으로 가게끔 그렸기 때문이지 실은 어디로 가는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고토 분지로나 아스쇼에이가 산세를 대강 보고 마구잡이(?)로 산맥을 그려 교과서에 올려놓았듯이, 작가 역시 그냥 지도를 보고 고동색 선을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그은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토가 백두대간을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산맥으로 참절했듯이 이 작가분도 도솔지맥을 잘라 백암산맥을 만들었으며, 어은지맥도 토막을 내어 어은산맥을 만들었음은 물론 이도 모자라 수입천을 건너 월명산, 사명산을 잇게 했고 듣도 보도 못했던 비봉산은 성골지맥에서 빼와 비봉산맥을 만들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조금 글빨이 되고 말빨이 되는 분들은 좀 멋스럽게 자기 의지대로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산맥 몇 개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뭐 그게 이 분들을 탓할 계제나 됩니까.

이럴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이 조정래 선생님 같으신 분이 '백두대간'이 아닌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침략과 그로 인한 우리 민족분단과 의 아픔을 이야기한 대하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도 백두대간을 몰랐었는데 하물며....

참고로 이 작가분이 위 글을 쓸 때에는 도솔지맥이니 어은지맥이니 하는 개념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말을 첨언합니다.

 

도솔지맥 개관


도솔지맥에 관한 설명으로는 범여선배님의 것을 인용합니다.

제가 썼어도 이런 형식으로 썼을 것이니 괜한 노력을 피하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매자봉(1144m)부터 우두산(133m)까지의 거리는 도상거리 124.1km가 되나 돌산령 북족의 36km는  갈 수 없으니  실 산행거리는 88.1km가 된다.
도솔산(1147.8m), 대암산(-1.3km.1304m), 봉화산(874.9m), 사명산(1198.6m), 죽엽산(859.2m), 
 부용산(882m), 오봉산(779m), 수리봉(656m), 우두산(133m)을 지나고 양구군, 인제군, 화천군, 춘천시 등 4개 시군을 지난다.

 

매자봉(1144m)에서 우측으로 가지친 한줄기는 남진하며 매봉(1290.6m),가칠봉(1242.2m), 대우산(1178.5m),도솔산(1147.8m),대암산(-1.3km.1304m)등 1000m이상의 산들을 일구고  봉화산(874.9m)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명산(1198.6m),죽엽산(859.2m),부용산(882m), 오봉산(779m)을 일구고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바꿔 수리봉(656m)을 올린후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우두산(133m)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 124.1km의 산줄기다.

 

산줄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본류로 들고 동쪽으로 흐르는물은 소양강으로 흘러들었다 북한강본류에 합류한다.

도솔지맥(兜率枝脈)의 명칭은 도솔산(1147.8m)에서 따온듯 싶은데 분기봉도 아니고 산줄기중 최고봉도 아니어서  좀 어폐가 있어, 일부에선 소양북기맥으로 표기하고 있기는 하나 이미  도솔지맥이라는  명칭으로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이니 도솔(兜率)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높이로 따지면 대암산(1304m. 1.3km나 떨어져있다), 가칠봉(1242.2m), 사명산(1198.6m)이 있고, 최초 분기점도
아니지만, 아마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시작점인 산이라서 도솔(兜率)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듯 싶다.


 

도솔지맥 지도


거의 4년 만에 도솔지맥에 듭니다.

지난 2012년 5월 도솔지맥을 끝내려 덤벼들었다가 갑작스레 몽골 출장 건이 생기면서 중단했던 지맥 산행입니다.

이 도솔지맥을 백두사랑산악회에서 매월 마지막 주에 토요무박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미답 구간인 공리고개구간부터 잇기로 합니다.

사실 이번 주는 개인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한 주였습니다.

토요일 뉴스가 끝난 뒤 노모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배낭을 챙겨서 사당역으로 갑니다.

마침 막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 대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잠에 빠져듭니다.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잠이지만 산에 든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런대로 숙면을 취한 것 같습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6. 02. 28. 일요일

2. 동행한 이 : 백두사랑

3. 산행 구간 : 도솔지맥 3구간(공리고개~월북현~사명산~문바위~운수현~죽엽산~추곡령~부용산~백치고개)

4. 산행거리 : 31.55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140.90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공리고개

 

02:33

 

 

월 북 현

 6.72km

 05:24

171

사 명 산

 3.0

06:46

82

문 바 위

2.99

09:48

182

15촬영, 25조식

운 수 현

3.22

10:19

31

10분 촬영

죽 엽 산

4.6

11:51

92

추 곡 령

3.2

13:15

84

783

1.97

14:31

72

부 용 산

4.27

15:44

73

10분 휴식

백치고개

1.58

17:27

103

 

31.55km

14:54

13:54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지도 #1


공리고개입니다.

항일의병전적비입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마당에 낯간지러운 전시행정의 소산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의병들이 땅속에서 통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일을 하여 자식들 고생이나 시키지 않는 건데...."

지금은 운영되고 있지 않은 사무소의 빛바랜 낡은 간판을 보고 기념 촬영을 마친 후,

포장된 국토개발사무소 길로 들어섬으로서 오늘 구간 산행을 시작합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양구군 양구읍입니다.

포장도로는 이내 임도 수준으로 바뀝니다.

임도는 두 갈레로 갈라지는데 우리는 우측 작은 길로 들어서야 하고 그러면,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탓인지 초입을 제외하고는 관리 상태가 엉망입니다.

좌틀하여 591.4봉으로 올라 3등금삼각점(양구318)을 확인하려 하는데 잠이 떨깨어서인지 괜시리 귀찮아져서 오르려다 그냥 원상복귀하여 마루금을 이어갑니다.

아래로는 공리터널이 지나가서인지 가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이정표는 등로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마을 이정표인지 잘 모르겠군요.

이정표가 산 방향이 아닌 학조리라는 특정지명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학조리를 따릅니다.

군사용 구조물도 보고....

그러고는 구현(鳩峴)을 지납니다.

낙엽에 묻혀 있는 나무 받침 계단이 힘 없이 부스러지는군요.

좌틀하면 호랑이굴로 가는 길이고....

직진합니다.

582.6봉에서 선생님의 신패를 뵙니다.

그 옆에는 '오래오래' 선생님을 모시고 산행을 하겠다며 선생님과 이 도솔지맥을 동반 진행하던 이거종님의 표지띠가 걸려 있습니다.
갑작스레 떠났어도 표지띠는 이렇게 님을 추억하게끔 만들어주는군요.

1대간 9정맥을 10개월 10일만에 주파했던 준족 이거종님.

천상에서는 기맥과 157지맥 다 완주하셨나요?

582.6봉에서 계속 학조리 방향을 따르고.....

634.6봉을 지나고,

지도 #2

그러고는 갈탄리 고개입니다.

대원들은 벌써 한참이나 치고 나갔을 것 같고....

너른 호같은 게 나오고 우측에 가는 쇠봉이 보이는데 깃봉인가요?

바로 옆에 헬기장이 있는 걸 보니 헬기장 보조용 깃봉인 것 같습니다.

686.8봉에서,

4등급 삼각점(양구463)을 확인합니다.

681.6봉에 와서야 학조리가 다 왔다고 하는데 지도 상으로 볼 때의 학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어야 하는데 아마 임도로 내려서는 길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그 이름을 달고 온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학조리 이정표를 버립니다.

뒤로 양구시내 불빛이 훤하게 비칩니다.

지도 #2의 '가'의 곳의 안부로 떨어집니다.

우측으로 진행하면 안대리로 가는 길인데 조금전의 학조리 이정표나 이 안대리 이정표나 중복이긴 마찬가지 같습니다.

나무 계단을 오릅니다.

646.2봉을 지납니다.

그러면 우측으로 특용작물 재배지 경계임을 녹색그물로 알 수 있고....

그 그물망을 한참이나 따라 올라가니 806.1봉의 헬기장입니다.

선생님의 산패 우측에는 문정남 선생님과 함께 우리나라 '봉따먹기'의 양대산맥(산줄기?) 심용보님의 표지띠가 걸려있고 그 좌측에는 우리나라 지맥 산행의 대표 선수 '백두사랑산악회'의 표지띠가 걸려 있군요.

10여년간 백두사랑산악회는 정맥을 시작하여 기맥, 지맥 등 꾸준하게 산줄기를 진행한 결과 이제 50km대로 접어들었으니 산줄기 산행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야간 산행만을 고집하다 보니 이를 기피하는 이들로부터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가는 산행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기본이 25km대이면 우리같은 사람은 체력적으로..."라는 등의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상당한 거리를 버스를 타고 운행하여야 하는 지맥 산행을 당일치기로 하기에는 이동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와 꾸준하게 산줄기 산행을 한다면 그 정도의 거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군요.

얼마 전 온 눈으로 북쪽 사면을 오를 때면 눈이 보이는군요.

펑퍼짐한 월북현을 지납니다.

선생님의 산패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군요.

사명산 들머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임도로 오릅니다.

아!

그런데 여기에 산패가 달려 있군요.

굳이 따지자면 이 아래에 있는 월북현이 예전에 월명리와 웅진리를 잇는 역할을 하였던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역할을 임도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 그 고개 이름을 여기다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이정표의 '사명산'을 따라 오릅니다.

지도 #3

이내 양구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제작한 안내판이 나오고,

쉼터도 나옵니다.

지도 #3의 '나'에서 웅진리 갈림길을 지나고,

지도 #3의 '다'ㅇ; 곳인 폐헬기장 같은 곳에서 우틀하여 조금 치고 올라가면,

894.4봉입니다.

바로 이정표를 지나면서 꾸준하게 고도를 높입니다.

오늘 구간은 up-down 즉 오르내림이 심하여 체력 소모가 많습니다.

아마 여름이었다면 아무리 강건하신 분이라도 무리한 계획을 잡았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그런 구간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사실 오늘 최악의 컨디션이어서 오늘 완주가 가능할 지도 의문시 되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간신히 끈까지 진행한 것을 보면 산줄기 산행으로 다져진 하드웨어가 보통은 넘어선 것 같습니다.

1031.2고지를 지납니다.

이제 1000고지를 엄어섰습니다.

새벽 바람이 조금 강해짐을 느낍니다.

지난 주 남도에서 맞는 새벽 바람은 이 정도가 아니었었는데 아무래도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고 산 높이도 1000고지를 넘었으니 체감온도는 뚝 떨어졌을 밖에....

선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만납니다.

정규등로입니다.

예전에는 웅진리에서 내려 포장도로를 따라 선정사까지 이동하여 용수암에서 우틀하여 오르면 만나는 능선이 바로 이 도솔지맥이었습니다.

그걸 모르고 다녔으니....

이제 사위는 어느 정도 밝아졌는데 사명산 정상에서 선두 대원들 몇몇이 이쪽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랜턴 불빛이 왔다갔다 하고....

1182.9봉에서 좌틀합니다.

여기서 화천군 간동면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틀하여 화천군과 양구군의 군계를 따라 걸으면 월명봉으로 이르게 되고....

월명리와 선정사로 내려가는 사거리에서 된비알을 치고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사명산입니다.

대원들이 발발 떨면서 저를 위시한 중간대원들을 기다리고 계셨군요.

추워서 식사준비도 할 수 없었겠고....

정상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서둘러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대원들은 이동을 합니다.

희미하고 개스가 끼인 상태이지만 사명산이 어디입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도솔지맥의 중간부에서는 나름대로 제 구실을 하는 산인데.....

일설에 의하면 사명산이 그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여기서 이제군, 양구군, 화천군, 그리고 춘천 등 4개의 고을을 바라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소양호 넘어 홍천까지 보이니 오봉산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이따 만날 오봉산?

그 산은 청평산이었으니까 혹은 경운산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으니 사실 최근에 이름지어진 오봉산이라는 이름은 별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2등급삼각점(양구26)을 보고,

선생님의 산패도 봅니다.

혼자 사명산 정상에 있으니 시간적 여유도 있겠다 배낭에서 DSLR 카메라를 꺼네 주변을 둘러 봅니다.

진행할 줄기들을 우선 보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뾰족하게 보이는 게 바로 죽엽산이로군요

그 좌측으로 보이는 게 811.5봉.

그 뒤로 간벌지 좌측이 부용산....

휴...

저기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그 부용산 우측이 오봉산 즉 청평산이겠고....

죽엽산 우측으로 흐르는 줄기가 설안재봉으로 흘러 파로호로 들어가는 줄기겠고, 그 뒤로 서있는 산이 병풍산.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우뚝 선 산이 화악산.

그러니까 거기서 좌측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화악지맥이 되겠군요.

음....

파로호.

서울이라는 이름이 자칫 잘못하였으면 우남시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도 있었듯이 지명에 관한 한 두려움이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군과 중공군을 격파한 기념으로 이름지은 파로호.

역사를 되돌이킬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화천호로 불러야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 화천호 우측 뒤로 안산이 보이고 또 재안산이 보입니다.

그 우측으로 명월봉이 부끄러운 듯 살포시 머리만 내밀고....

하지만 문제는 서쪽 방향이 아닙니다.

지나온 마루금을 보고...

그 뒤로 보이는 좌측의 가칠봉 부근부터 도솔봉, 우측의 대암산 방향으로 찍긴 찍었는데 이상하네....

우측에 높게 솟은 봉우리가?

봉화산이겠죠?

그 봉화산 우측의 소양호.

그 우측으로 가리산이나 대룡산을 보는데 육안으로는 들어오는데 파인더안으로는 별로 들어오는 게 없군요.

아쉽습니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앞서간 분들을 따라 가려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자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는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그럴듯한 조찬 회동이 벌어집니다. 

날씨가 추우니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한회장님이 집안일 때문에 참석을 못하셔서 반주도 없고...

25분 정도 아침을 먹고 자리를 텁니다.

1179.8봉을 지나,

죽엽산을 보며 걷는데 날씨는 시시각각 '흐림'으로 변합니다.

음 ...

소양강이 보입니다.

부드러운 소등쌀 같은 곳을 좌측으로 지나,

지도 #4

119 구조목과,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 있는 1004.6봉입니다.

1004.6봉에서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작은 봉우리(속칭 문바위봉) 하나를 두고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등로는 웅진리 방향이 훨씬 진행하기 좋습니다.

또 그 방향이 직진 코스이기도 합니다.

이 루트는 803.7봉으로 진행을 하여 웅진터널 방향으로 가는 길이 되겠고....

마루금은 과감하게 추곡터널을 택하여 문바위봉 우측 사면의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등로는 이내 가파른 내리막 길로 변하면서....

해주최씨 묘지를 지나,

칠성탑이 있는 문바위입니다.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큰카메라를 꺼냅니다.

바로 앞의 줄기부터 봅니다.

지맥의 817.2봉에서  가라져 736.5봉을 지나 수인터널 위로 진행하는 줄기....

그 뒤로 죽엽산 좌측으로 진행하여 우측의 부용산이 보이고...

부용산 좌측의 봉우리가 오봉산에서 진행하는 지맥외의 마적산 같고...

그 우측으로 불뚝 솟은 죽엽산이 그 부근의 대장산 같이 보입니다.

그 죽엽산 뒤로 화악지맥의 줄기가 뻗어있고,

좌측 가리산, 우측 대룡산....

날씨만 좋았다면 춘천지맥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었을텐데....

송주봉 형님이 포즈를 잡으시고.....

10분 넘게 혼자 놀다가 칠성탑의 유래를 본 후,

이제는 철거가 되어 없어진 조금은 아쉬운 출렁다리의 흔적을 문바위에서 봅니다.

우츨합니다.

좌틀하는 좋은 길은 흥덕사를 거쳐 수인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길이 좀 거칠어집니다.

828.9봉을 우회하여 817.2봉으로 한껏 고도를 낮춥니다.

선생님의 산패를 봅니다.

여기서 춘천시 북산면을 만나 양구군과 헤어져 화천군 간동면과 춘천시 북산면의 군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길은 좀 부드러워지긴 합니다.

우측으로 사명산을 봅니다.

지도 #4의 '다'의 곳 헬기장에서,

족보에도 없는 삼각점을 만납니다.

양구457인 4등급 삼각점이라...

국토지리정보원에 알아봅니다.

2007년에 재설된 삼각점인데 국가기준점 정보 시스템에 찾아봐도 이 번호는 안 나오는군요.

멸실된 것도 아닌데....

그러고는 운수현입니다.

화천과 춘천을 잇는 고개로 이 고개도 峴이라는 명칭에 붙었군요.

우측에는 장승이 한 기 서 있고 ....

길도 없어서 좌측으로 무조건 치고 올라갑니다.

우측의 사명산....

651.1고지로 오릅니다.

간식을 좀 얻어먹고 저 먼저 오릅니다.

잠시 안부로 떨어졌다가,

지도 #5

지루한 오름이 계속됩니다.

죽엽산까지 똑 같은 길입니다.

조망도 없고 단순하고 묵묵하게 그냥 오르기만 합니다.

석봉이라고도 불리는 지도 #5의 '라'의 곳에 힘들게 오릅니다.

잠시 좌측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중간에 철탑이 보이는 곳 아래로 추곡터널이 위치해 있고, 그 바로 뒤가 557.9봉.

그 좌측이 607.5봉.

그 뒤가 지맥 외의 811.5봉.

지맥은 그 811.5봉 앞에서 우틀하여 우측 오목한 곳의 임도로 떨어진 다음 계속 오르게 되는군요.

그런 다음 사진 좌측 부용산으로 올라 그 뒤로 떨어진 다음 백치고개를 넘어 우측의 오봉산으로 진행하게 되는군요.

오봉산 너머 아스란히 용문산까지 보이던데 사진으로는 희미하군요.

어쨌든 오늘 마무리는 백치고개.

언제 저기까지 가나....

힘들게 안부를 올라 능선에 닿은 다음 우틀하여,

3등급삼각점(양구315)만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죽엽산에 오릅니다.

정상 뒤로 진행하면 설안재봉을 지나 화천호로 가는 길이 되겠군요.

다시 되돌아나와 조금 더 진행을 하면,


서봉이라고도 불리는 뾰족봉입니다.

박건석 선생님의 코팅지가 붙어 있군요.

이 서봉이라는 이름은 박건석 선생님의 작품인 아니고 등산지도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김형수님의 '한국555산행기'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이름 짓기의 대표적인 분이시고 한현우님과도 쌍벽을 이루는 분이시죠.

혹자는 이 두 분이 짓는 산이름을 각 지역의 지역지에서 일일이 찾아서 정성껏 부착하고 있다는 평을 하시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 분들은 그 근거를 분명히 적시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위치와 고도 표시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맞춰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 게 아닌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렇게 비닐 코팅지를 사용하여 임시 방편으로 부착하는 것은 산꾼들이 표방하는 자연보호에도 역행하는 처사가 아닌지도 되새겨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준희선생님은 일찍이 나무로 만든 산패를 산줄기 곳곳에 부착하여 지나는 산꾼들에게 올바른 현장 정보를 전달하시기 시작하셨고 '백두사랑산악회'에서도 이런 선생님의 취지와 보조를 맞춰 선생님의 그것들과 중복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대원들의 뜻을 모아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뒤로 넘어서면 그 유명한 병풍산으로 진행하는 등로가 되고....

마루금은 아주 가파른 남쪽 방향입니다.

등로가 아주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된비알을 내려서서  만나는 588.4봉은 봉우리로 전혀 인식이 되지 않는 곳이고, 

오히려 그 588.4봉에서 지척에 있는 회곡령을 지나면서 제 위치를 파악하는 게 더 편리하더군요.

지도 #5의 '라-1'의 곳의 폐헬기장을 지나고,

지도 #5릐 '마'의 곳에서,

추곡령의 철탑을 보고 그 뒤에 뾰족하게 서 있는 지맥 외의 811.5봉 전위봉을 봅니다.

저 전위봉에서 우틀하는 길이 지맥길이겠고....

한국전파기지국에서 관리하는 철탑을 지나면 비로 춘천mbc의 중계소를 지나게 되는데,

이 중계탑이 서 있는 곳이 556.2봉이며, 여기에 4등급삼각점(양구454)이 박혀 있습니다.

지척 거리에서 두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빛나는 갑장 산들바람님과 달궁님이 산들바람님의 컨디션 난조로 선두대열에서 이탈하여 조금 뒤로 처지셨군요.

추곡터널을 지나 임도로 떨어지는 곳은 길이 없습니다.

절개지를 그냥 치고 내려오는 수밖에....

여기서 수크령님과 벙글님이 합류하여 5명이 중간 그룹을 형성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추곡령에서 추억의 도로 안내판을 봅니다.

이 고개 아래를 관통하는 국도 46호선 도로는 부천부터 오는 도로인데 이 도로가 확포장하여 새로 개통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 임도도 '비포장 도로'라는 이름으로 춘천~화천 오음리~양구를 잇는 교통량의 한 축을 담당했을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즉 춘천에서 양구를 가려고 하면 배후령을 돌아 북산을 거쳐서 가느라 빙빙 돌아가거나 오음리에서 양구로 가는 사람들은 비포장이라 불편하기는해도 지름길인 이 도로를 이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 표지판이 그 증거물이고 흔적입니다.

'춘천군'이라는 지명 이름이....

오죽하면 서울에서 이 양구를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루트보다는 인제의 신남 루트를 이용하여 양구로 진입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허기가 지는군요.

가지고 온 도너츠를 먹는데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하는군요.

지도 #6

607.5봉을 오르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811.5봉 전위봉의 갈림길은 왜 그리 먼지 모르겠습니다.

추곡터널 상부의 557.9부터 약 250m 정도의 고도를 올리는데 5개 정도의 작은 봉우리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같습니다. 

컨디션 난조에 체력 저하?

드디어 다 왔습니다.

783봉인데 사실 여기서 300여 m 더 진행하면 종류산이라고도 불리우는 811.5봉이고 거기에는 3등급삼각점(양구316)도 있어 지맥꾼이라고 하면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지만....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는 점, 조망이 별로인 봉우리라는 점,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 상황에서 무리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 내가 좀 늦으면 기라리고 있는 대원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점 등 4불가지론을 생ㄱ가하며 여기서 바로 우틀합니다.

낙엽 아래로는 살짝 얼어 있는 땅이고 그 위에 눈이 덮어지니 반들반들해지는군요.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간벌해 놓은 지역을 내려가면서 대원들과 다시 합류를 하여 5명이 무리를 이루어 진행합니다.

신발에 눈이 덮히면서 곧 발이 젖어들 거라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저를 압박하기 시작하고...

습설이라 발바닥에 떡이 되어 눈과 흙 그리고 낙엽이 달라붙으니 아이젠도 별무소용....

지도 #6의 '사'의 임도에 다다르자 아무도 지나지 않은 백설의 눈밭이 전개됩니다.

이때 동심으로 돌아간 산들바람님이 바로 Love Story의 알리 맥그로우가 되는군요.

Snow play가 바로 나오는 듯하고....

유명한 대사죠?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에릭 시걸의 소설을 영화한 것인데 제 기억으로는 그 소설책에 두 번인가 이 대화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군시절 이 원문장을 찾아 예전 첫사랑의 여자에게 써 먹으려고 그 원어로된 책을 뒤지던 시절이 생각 나는군요.

포우의 시 '애너벨리'도 ...

갑자기 눈을 보자 센티해지는군요.

대원들과 기념 촬영을 합니다.

'찍사'님께서 웃으라고 합니다.

행복한 함박웃음을....

하지만 지금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578.7고지를 지나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됩니다.

벌써 발목까지 빠지는 눈위를 걸으면서,

망 안쪽으로 들어가 건천령은 그저 망밖으로 힐끗보며 지납니다.

지루합니다.

그저 걸으면서 수크령님이 주는 빤 반조각을 얻어 먹고 물 한 모금으로 입을 행구고는 그저 또 진행.

700고지 정도를 지나면서 간척리 방향에서 올라오는 능선을 만납니다.

곧 나타날 것 같은 부용산은 그 꽃모양을 둘글게 감싸고 있는지 휘돌아 올라가는 흐름인데 그 흐름은 끝을 보이지 않는군요.

하긴 320고지 정도를 극복하여야 하는 고도였으니 지루할 만도 했습니다.

어쨌든 드디어 부용산입니다.

여기서 3등급삼각점(내평302)을 확인해야 하는데 일찌감치 포기합니다.

직진하면 봉화산으로 진행을 한 다음 선착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코스를 춘천 해강아파트 옆 윗샘밭버스종점을 기점으로 마적산~오봉산~부용산~봉화산 혹은 부용산~청펑사 선착장으로 ㅈ니행하는 코스가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그렇거나 말거나 부용산~백치고개 루트는 당연히 이어가야 할 루트이면서 이 루트가 지맥길입니다.

문제는 이 루트가 상당한 된비알이라는 점입니다.

부용산이 880.3m인데 백치고개가 571.3m이니 310m를 약 1km라는 거리로 내려와야 하므로 tan1000분지 310 어쩌구 저쩌구...

여하튼 내려오면서 3번 엉덩방아를 찧고 스틱은 마지막 마디가 부러지는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힌 하산길이었습니다.

아까는 들리던 찻소리도 들리지 않은 걸 보아 우리 버스도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즉 눈 오기 전에 미리 올라와서 대기하고 있었으면 가능할텐데 눈 온다음에 올라오려 했다면 눈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마지막 묘를 보고,

안내판을 보면서,

백치고개에서 다음 들머리를 보고 오늘 힘들었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보시다시피 바량 바큇자국만 있지 오고가는 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버스는 차를 돌리려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가 눈때문에 통제되는 바람에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여 본듯한 대장님은 춘천시와 양구군으로 전화를 하여 결국 30분 정도 후에 제설차가 도착을 하여 무사히 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에프소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본듯한 대장님이 대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많은 노고를 기울였음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우연찮게 들른 닭갈비집의 음식맛도 그런대로 별 3개 수준의 집이어서 가지고 간 소주로 대원들의 땀을 씻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늘어지게 한숨 때리고 나니 벌써 잠실.

지난 번 사자지맥이 활홍감에 젖어 정신없는 산행이었다면 오늘 산행은 올해 처음으로 맞는 눈과 함께 심한 오르내림으로 결코 쉽지 않은 구간으로 기억될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