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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

[백두대간 2차] 한계령 ~ 망대암산~점봉산~ 박달(단목)령 ~ 북암령~ 조침령


백두대간 2차 종주를 위해 지맥 산행은 뒤로 좀 미뤘습니다.

백두사랑팀에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반면 앞으로 6구간만 더 진행하면 졸업을 하게 될 해밀팀들과는 짧은 시간이나마 더 깊은 교분을 쌓을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고......


오늘 구간은 한계령 ~ 조침령 구간입니다.

그 구간은 설악산 국립공원의 약 26%를 점하고 있는 남설악이라고도 불리는 구간입니다.

일반적으로 령嶺이라 할 때에는 규모 크거나 통행량이 많은 고개를 일컫는 말로 가령 추풍령이나 대관령, 육십령 등 교통의 요지들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고 볼 때 한계령이나 조침령은 예전에는 한양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고개였을 것입니다.

산경표나 옛 지도에는 오색령五色嶺이나 조침령曺沈嶺이라 표기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한계령寒溪嶺이나 鳥寢嶺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화석화化石化된 문화경관을 지명이라고 봤었는데 지금은 집권자나 가진자들의 필요에 의해서도 자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쨌든 옛 오색령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본 경험이 있는 저는 지금도 한계령을 오를 때마다 남아 있는 그 오색령의 흔적에 잠깐이나마 눈길을 주곤 합니다.

10. 26.의 주역 김재규가 3군단장 으로 있을 때 1102야전 공병단을 가동하여 오색령을 확 · 포장하면서 그 이름을 한계령으로 바꾸게 된 것이고....

위 사진은 2009년 6월에 친구들과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으로 진행하면서 친구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한계령 휴게소 옆 계단을 올라 등로로 들어서면 국공파 관리사무소에 들어가기 전 인원 체크기 바로 옆에 '위령비'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내용도 모르는 체 저 위령비가 산악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오색령 확, 포장공사를 할 때 동원되었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1102야전공병단 공병대원 6인의 넋을 위로 하기 위하여 김재규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령비 아래에 김재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박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난 후 누군가에 위하여 쪼아져 지금은 그 이름은 볼 수가 없고 다만 그 흔적만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3군단 예하 3공병여단에서 1983. 6. 10. 착공하여 84. 11. 22. 완공한 것이 방동과 서림을 잇는 21km 구간의 조침령 도로입니다.

물론 이 비포장도로는 얼마 뒤 포장도로를 만들고 터널을 뚫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참 역사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고 돌고도는 것이 역사일 것이니 하나의 사건에서 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예견하고 예측하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방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도 #1 금표암과 금표교


그리고 지금은 동네 이름이 오색리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오가리였던 오색약수 부근에서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길 우측 능선 상에 금표암禁標岩이 있는데 이 금표가 오색령을 넘어가는 보부상이나 백성들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 즉 "이 오색령에는 도둑이 많으니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이 오색령으로 오르지 말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색령으로 오르다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본 관아는 민, 형사 상의 책임이 없음을 알린다."는 취지로 표기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금표암이나 주전골 그리고 망대암산과 한계령 휴게소 바로 다음 골짜기인 도둑바위골 등을 연결하여 생각하면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옛날 도적 때가 많아 관가로부터 금표(錦杓)를 받아야만 통행되었다는 전설이 있었다는 모 잡지의 안내 글은 禁標를 이상한 한자로 오역하여 해석한 결과이니 믿을 바가 못 됩니다.

또한 우리나라 지명에 많이 등장하는 박달령 혹은 박달재가 유독 이곳에서는 단목령檀木嶺으로 지도에 표기되어야만 했던 과정도 일제강점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6. 8. 20. 토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백두대간 (한계령 ~ 망대암산 ~ 점봉산 ~ 박달(단목)~북암령 ~조침령)

4. 산행거리 : 25.02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984.34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한 계 령

 

01:31

 

 

망대암산

5.47km

05:42

252

40분 휴식

점 봉 산

1.36

 06:34

52

10분 휴식

박 달 령

6.36

08:47

133

20분 휴식

북 암 령

2.37

10:28

101

35분 휴식

옛 조침령

7.90

14:04

96

20분 휴식

조침령터널

1.56

14:25

21

10분 휴식

25.02km

12:54

10:39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자, 그러면 오늘 한계령 ~ 조침령 구간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대간꾼들에게 박달령과 한계령 양령지간兩嶺之間 구간은 미시령 구간과 함께 국공파의 단속이 가장 심한 그곳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국공파는 국공파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 조우해보았자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 팀의 출발시간이 좀 당겨집니다.

한계 삼거리의 휴게소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으로 올라갑니다.

한계령휴게소를 지나 양양 방향으로 내려가다 바로 우틀하여 10번 지방도를 타고 필레약수방향을 따르다 보면 좌, 우측으로 국공파들이 설치해 놓은 철조망이 곰 두 마리 안내판과 함께 대간꾼이나 일반 등산객들의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도로들과 국공파의 자연휴식년제 정책에 따라 제아무리 완벽한 대간꾼이라도 이 구간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마루금을 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도 #2 한계령 부근 지도

빨간선 - 오리지널 대간 마루금

파란선 - 일반적으로 걷거나 버스를 이용해 진행하는 대간 마루금


그런데 이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한 지도를 보면 '설악산맥'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 재미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무례하게도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달달 외운 14개 산맥 이외에 설악산맥을 하나 더 추가한 꼴입니다.

하긴 치악산에 가면 치악산맥을, 지리산에 가면 지리산맥을 더 추가했을 정도이니 이쯤되면 국토지리정보원의 만행蠻行에 혀가 찰 정도입니다.

그리고 산맥이라는 훌륭한 개념이 누구나 이름만 갖다붙이면 고유명사화 될 수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고토 분지로나 야쓰 쑈에이의 가벼움에 괜실히 화가 납니다.

각설하고 오리지날 대간 마루금인 고개마루(A)를 지나 필레약수 방향으로 100여 m 정도 더 내려가면 철조망이 끝나는 곳(B).

지도 #1

그 곳 역시 국공파가 설치해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우측을 보면 철조망을 따라 대간꾼들이 다져놓은 길이 보입니다.

소위 비법정탐방로인 그 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어제 비가 왔는지 나뭇잎에는 이슬이 아닌 물기가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공기 중에도 습기가 남아 있어 제대로 사진 촬영이 되지 않습니다.

하긴 이 시간에 뭐 볼거리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01:44

정상적으로 마루금에 접속합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계속 고도를 높입니다.

바닥에 돌들이 자주 보이고 바위를 슬슬 우회하게 될 즈음.

커다란 절벽 앞에 서게 됩니다.

지도 #1의 '나'의 곳으로 이제부터 오늘 구간 중 가장 조심해야 할 소위 암벽 구간에 도착합니다.

예전에는 로프가 하도 단단히 묶여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국공파가 안전시설을 해놓기는커녕 있는 것마저 훼손을 해놓아 이 줄들을 믿고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이 구간 진행은 부득불 조로 나누어 조組 대장들의 책임 하에 여성 대원들을 몇 분씩 묶어 능률적으로 진행하게끔 합니다.

그런데 남성대원들이야 군대를 갔다오셨으니 그럭저럭 오르지만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군요. 

조심조심 오릅니다.

안전 제일!!!

초장에 힘을 다 쏟게끔 만드는 구간입니다.

직벽을 계속 타고 올라 우틀하여 다시 내려가는 구간입니다.

저도 한 분을 도와주고 방향을 잡으려는데 3, 4조 대원들이 이미 아래 계곡쪽으로 내려가는군요.

저 역시 별 생각없이 그들을 뒤따라 내려갑니다.

그런데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라면 보통 바위봉 정도를 우회하는 것이거나 사면치기를 하는 것이어서 그 거리는 보통 두 자리 숫자 안에서 다시 방향을 잡고 오르게 되어 있는데 이건 내려가도 상식에 맞지 않게 한없이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30여 m 내려가다가 함께 맨 뒤에서 가던 유강대장님께 한 마디 거듭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일단 선두를 더 이상 못 내려가게 잡으라."

그러고는 GPS로 현 위치를 파악하고 지도를 보면서 등고선을 따라 진행 방향과 마루금 방향을 살핍니다.

한편으로 무전으로 선두에 가고 계신 봉총대장님께 현 상황을 이야기하니 그 분들과의 대화는 동상이몽식입니다.

일단 저 혼자 아까 내려오면서 방향을 튼 곳으로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아니나다를까 절벽을 타고 내려온 곳에서 좌측으로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좌측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니 국립공원 말뚝도 보이고....

유강대장님께 육성으로 올라오라고 하고 유강대장님은 3, 4조 대원들을 부릅니다.

선두로 내려간 대원들은 한참이나 내려갔었는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군요.

그래도 그만 하길 다행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진행했더라면 오늘 구간 처음 시작한 곳 부근으로 떨어졌을 것이니 오늘 산행은 완전히 망치는 결과가 될 뻔 했습니다.

대원들이 다 마루금으로 합류하고 다시 제대로 된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이후 마루금은 아까와 비슷한 절벽과 계곡으로 잠시 내려갔다 올라가는 길을 두어 번 반복합니다.

아까 봉대장님과의 무전 교신 내용이 이해가 갑니다.

그나저나 대간길을 걷기전 비탐방 구간이 아니었을 때인 1980년 중반 대에 두 번 , 대간 길로 한 번 걸었던 이 길이지만 밤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생경스럽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3, 4조가 걱정이 되었는지 younggun님이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대간 5기는 '젊은총' 대장님이 총 지휘를 하신다구요?

능력이 있으신 분이니 활발하게 잘 이끄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124.1봉을 지나니 이제 암벽구간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결국 지금 이 구간이 진행방향 좌측의 흘림골 상단부와 연결이 되는 그러니까 통틀어 만물상이라 불리는 곳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널널한 대간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는 지도 #1의 '다'의 곳에 닿습니다.

추억의 삼거리입니다.

예전에는 이 길로 들어서서 십이담계곡으로 내려선 다음 등선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주전골로 내려갔었는데....

언젠가 큰 홍수로 십이담계곡이 작살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닫힌 문이 지금껏 열릴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이 계곡으로 출입금지라...

그런데 이 출입금지 팻말은 다른 오해를 불러 올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이 팻말을 근거로 반대로 해석하면 지금 이 길은 법정탐방로인데 십이담계곡 쪽으로는 출입이 불가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로 들립니다.

안심하고 진행해도 된다는 얘긴가?

1158봉은 좌측으로 사면치기로 진행을 하게 길이 나 있습니다.

이 봉에 있는 3등급삼각점(설악314)을 확인해야겠죠?

산죽을 헤집고 3분 정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정상을 덮고 풀속에 숨은 삼각점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찾다 찾다 못 찾고 사진만 한 장 찍고 나오는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3분 정도 나가면 되는데...

GPS 지도는 이상스럽게 확대가 안 되고....

같은 곳을 빙빙 돕니다.

이른바 링반더룽Ringwanderung현상.

유강대장님에게 육성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현장을 빠져 나옵니다.

그러고는 별 특징 없는 길들을 걸어,

키가 커진 산죽밭을 헤치면서 지납니다.

말라 있는 것을 보니 이제 꽃을 피운 다음 열매를 맺은 산죽입니다.

산죽은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하죠?

지도 #2

지도 #2의 '라'의 곳 3거리를 지나,

계속 숲길을 답답하게 진행합니다.

그때 좌측으로 붉은 기운이 보이며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측으로는 점봉산도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좌측의 가리봉산1518.5m, 그 뒤 우측으로 설악 서북능선의 끝 안산1430.4m의 치마바위와 고양이바위가 선명한 윤곽을 보여주고,

가운데 우뚝 솟은 귀떼기청봉1576.4m.

그리고 그 우측으로 끝청1609.6m과 중청1664.5m의 탁구공 두 알이 보이고 그 우측은 대청봉1708.1m입니다.

대원들은 망대암산 1246.7m 정상으로 향하고,

저는 조망터에서 주위를 더 살펴봅니다.

점봉산 1426m.

그리고 멀리 오대산 두로봉에서 가지를 친 한강기맥을 조망합니다.

가운데 볼록 솟은 게 운무산978.5m 아닌가요?

바로 앞에 조금 전 헤맸던 1158봉을 보고는 망대암산을 내려와,

점봉산을 향합니다.

이젠 고도를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전형적인 육산을 걷습니다.

점봉산 올라가는 길에 기린면 방향을 보고....

드디어 점봉산입니다.

7년만에 보는 점봉산입니다.

우선 이정표를 보고...

우틀하면 눌미기골을 지나 귀둔초등학교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고,

직진하면 작은 점봉산을 지나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곰배령으로 가게 되고...

그러니 대간 마루금은 당연히 좌틀이겠죠?

주위를 좀 돌어봐야죠.

바로 앞이 작은점봉산1295.5m.

그 좌측 움푹 파인 곳이 곰배령.

작은점봉산 뒷 봉우리가 가칠봉1165m.

동해 쪽도 보고....

바로 앞 좌측 줄기가 백두대간 마루금이고 가운데 제일 높은 봉이 1132.2봉.

그리고 우측의 흰색이 양양양수발전소의 상부댐인 진동호의 축대인데 아주 흉물스럽게 보이는군요.

이른바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입니다.

야간의 유휴전력을 이용하여 하부댐의 물을 끌어올린 다음 이 물을 낮에 다시 흘려보내 그 위치에너지를 이용하여 발전을 한다는...


지난 번 닭목재에서 대관령으로 진행을 할 때에는 이와 비숫한 댐을 지났습니다.

바로 도암댐으로 이게 강릉수력발전소와 연결이 된 것인데 그 연결관인 지하터널이 고루포기산 아래를 지나갔고....

이를 우리 대간꾼 입장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경사의 완급이 아니라 표고차

바로 백두대간이 남진을 하다 소황병산1329m에 이르러 가지를 하나 치게 되는데 이 가지가 황병지맥으로 이 황병지맥과 대간 사이에는 송천이 발원을 하게 되며(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 황병지맥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하여 송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는데 그 길이가 약49.7km가 된다고 합니다. -신산경표, 박성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이 송천의 물 즉 한강 유역의 물을 백두대간의 동해안 쪽으로 보내 그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한 유역의 물을 다른 유역 쪽으로 보낸다는 것이 유역변경流域變更 아닙니까?

이 유역변경이라는 개념이 지질구조선을 근간으로 하는 산맥 개념에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저 태백산맥의 완만한 경사를 흐르는 물을 경사가 급한 동해안 쪽으로 보내는 '경사의 차이'로만 설명을 할 수 밖에...

하지만 유역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고 산줄기 개념을 이야기하는 마루금파들에게는 이런 경사의 개념이 아니라 유역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합니다.

즉 속리산 이전까지는 대간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한강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한북정맥 남쪽, 그리고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 북쪽은 모두 한강유역이 됩니다.

고로 이 한강유역의 물을 대간 동쪽으로 보내 즉 유역을 변경하여 그 물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는 발전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발전소는 유역을 변경하였고 그 유역을 변경하려면 반드시 터널이 필요하니 그 터널을 뚫어 그 터널로 물을 보내면 될 것입니다.

경사의 완급이 아니라 표고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표고차만 있다면 경사의 완급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맥은 경사의 완급으로만 이야기하니 같은 형식의 운암호의 섬진강물과 동진강물과의 관계, 주암호의 문제 등은 설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각설하고 이 무지막대한 돈을 들여서 만든 강릉수력발전소는 환경문제 즉 도암호로 흘러내려오는 물들이 모두 축산농가의 배설물들과 고랭지 채소밭의 비료가 녹아 들은 물 등 오염된 그것들을 강릉남대천으로 흘려보내는 격이 되어 버렸으니 괜히 앉아서 폭탄을 맞아버린 강릉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남사모(남대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고 환경보호단체들이 나서서 연어의 회귀 등에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면서 이 강릉수력발전소는 제대로 가동도 하지 못한 채 15년이 넘게 방치되고 있는 게 강릉수력발전소의 현실입니다.

주먹구구식 행정의 한 단면입니다.

인천 월미도의 은하철도는 439억인가를 투자하고는 한 번도 가동을 못하고 사업을 접는다고요?


황병지맥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금 해밀에서 걷고 있는 지맥에 관한 이야기도 더 하고 싶지만 본말이 전도되는 거 같아 다음 구간(대관령~진고개)으로 미룹니다.

점봉산에서 2등급삼각점(설악26)도 확인하고,

정상석도 찍으니 15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예상치 않게 알바도 하느라 시간도 걸렸으니 09:00경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한다는 박달령(단목령)에서 국공파를 만나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진행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대원들에 앞서 적진(박달령 국공파 초소)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젊은총대장님이 척후병 역할을 자임하여 먼저 길을 떠납니다.

119 구조목을 봅니다.

점봉산부터 박혀 있는 이 119구조목은 정확하게 매500m 간격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뒤의 이정표에는 단목령 표기 옆에 박달령을 괄호 안으로 써 넣어 혼란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국공파가 설치한 것은 아니고 이 구간이 비탐방구간으로 지정되기 이전에 양양군 혹은 산림청에서 설치한 것 같습니다.

고목도 보고....

지도 #2의 '마'부분인데 예전에 홍포수막터라고 불렸고 이 부근에 샘물이 있었고 텐트를 칠만한 장소도 있었는데 이거 뭐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멧선생이라는 멧선생들이 다 모여서 무슨 궐기대회를 했는지 아니면 '멧선생 쟁기질 대회' 를치뤘는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다 파해쳐 놓았습니다.

계속 고도를 낮춥니다.

구조목은 정확하게 500m마다 박혀 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는데 멧선생들 탓도 좀 하셔야겠습니다.

지도 #2의 '사'의 곳에서는 우틀합니다.

이 봉우리가 예전에 오색리 민박촌에서 올라오는 루트로 이 등산로가 폐쇄되어 버리는 바람에 민박촌 영업도 그걸로 끝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통이 지금보다 좋지 않고 설악의 모든 등로가 개방되어 있을 때 남설악 베이스캠프는 바로 이 민박촌이었고 오색 약수의 수량도 어진간하여서 음식점 등이 호황을 누렸었는데...

그 당시 남설악하면 주전골과 십이담계곡 그리고 점봉산으로 대표되었었는데....

어쨌든 이 길을 통하여 점봉산을 쉽게 오를 수 있었죠?

칠성장어가 생각나는군요.

아마 지금은 멸종되었겠죠? 

이 이정표 하나가 많은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지도 #3

자칫 무미건조해 질 법도 한 산줄기입니다.

다행히 그 평범한 줄기에 가속도를 붙여 진행 속도는 좀 빨라지고....

지도 #3의 '아'의 곳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여기서 우틀하면 너른이 계곡으로 떨어져 박달령(단목령)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여 설피밭으로 내려가게 되겠지요.

설피밭 삼거리를 지나 963.5봉으로 오르는 길에 우측에 삼각점 기둥 같은 게 박혀 있군요.

무엇에 쓰는 것인지....

963.5봉은 참 볼품 없는 그것입니다.

그냥 패스.

지도 #3의 '자''의 곳에서는 크게 우틀.

921.7봉은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고....

그러고는 842.8봉에서 4등급삼각점(설악458)을 확인하고는.

고도를 낮춰 박달령 국공파 초소로 향합니다.

오늘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박달령 국공파 초소의 정황을 살펴보기 위하여 젊은총대장님을 척후병斥候兵으로 파견된 것은 이미 말씀드렸고.....

만약 우리가 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여 국공파와 원치 않는 조우를 할 수도 있을 경우,

대원들은 여기서 우틀하여 박달령~설피삼거리 길을 만난 다음 직진을 하는 방법으로 우회를 하여 진행을 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국공초소를 09:00 이전에 통과하게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이 박달령에서 좌틀하면 오색초등학교로 떨어지게 되고 우틀하면 삼거리를 지나 설피밭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박달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朴達로 쓰는데 이는 한자를 빌려 쓴 借字에 불과하고 원래 'ᄇᆞᆰ明 + ᄃᆞᆯ高, 山의 구조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고는 만나는 계곡.

지도 #3의 '차'의 곳입니다.

이렇게 대간길 바로 옆에서 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두타, 청옥을 지나 이기령 지나 원방재 좌측에서 수량이 풍부한 계곡물에 들어가 알탕을 하고 지나던 기억 이외에는 글쎄요....

우선 발부터 씻고 물에 발을 담근 채 점심을 먹습니다.

막걸리 한 통을 뜯고 '홀'대장님이 주시는 캔도 하나 따고.... 

원래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느긋하게 쉬다 가려고 했으나 이곳 특유의 파리 때문에 보따리를 싸야만 하였습니다.

사실 파리도 파리이지만 가지고 온 주류도 다 떨어져서....

참 대간길이 부드럽다는 생각 밖에...

그런데 이 파리들...

참 집요합니다.

그래도 인간이 지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자리를 떴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그만 괴롭혀야만 하거늘 이 녀석들은 인간과 무슨 철천지 원수가 졌는지 계속 따라오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하긴 이것들이 아까 그 패거리들인지 아니면 이동하는 곳들이 다른 녀석들의 '구역'인지 하여간 계속 따라오면서 대원들을 못 살게 굽니다.

쉬지를 못 하니 덕분에 속도는 빨라집니다.

그렇게 871봉을 지납니다.

지도 #3의 '타'의 곳에서 크게 우틀합니다.

그러고는 만나는 북암령.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곳이 북암령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진동리 사람들이 북암리를 통하여 서림으로 장을 보러 갈 때 이용했다고 하여 북암령인데 이곳은 보시다시피 고개가 아니고 봉입니다.

고개란 것은 봉과 봉을 이어주는 안부 아닙니까?

그런데 주변보다 높은 곳이 고개라니....

참고도 #3

그렇다고 하여 사람이 못 지나다닐만한 곳은 아닙니다.

참고도 #3과 같이 빨간색의 마루금을 이용하여 가다가 계곡으로 떨어져 가면 바로 북암리이니...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바보는 아닐테고...

거기보다는 1019.5봉을 지나 이정표도 설치되어 있는 지도 #3의 '파'의 곳을 북암령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정표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사실 오류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 북암령에서 10여 분 쉬다가 파리에 쫓겨 또 다시 길을 뜹니다.

지도 #4

1132.2봉을 지나,

1136.7봉에 숨어 있는 2등급삼각점(속초24)을 확인합니다.

시원하던 날씨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습해진 공기가 열을 받는지 습식사우나를 연상케 합니다.

가끔 조망은 터져주기는 하지만 그냥 이런 상태고....

우측으로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진동호가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잡목때문에....

예.

안 들어갑니다.

거길 할 일 없이 접근해서 무엇에 쓰겄소.

순찰로 들어가는 길도 보이지 않아 그냥 통과하겠습니다.

972.8봉을 지나,

1015.5봉을 오르느라 땀 좀 흘리지만 워낙 등로 사정이 좋아서...

이젠 안전시설까지....

지도 #4의 '하'의 곳에서 크게 우틀하고,

포토 존ptoto zone에서,

56번 도로 건너 멀리 만월지맥의 끝자락을 봅니다.

바로 아래 하부댐인 영덕호가 보이고 그 뒤로 응복산1360m에서 가지를 쳐 내려온 정족산869.1m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901봉을 지나,

마루금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자리한,

900.2봉에서 3등급삼각점(속초302)를 확인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군요.

머릿속을 빙빙 도는 것은 오직 알탕 뿐이고....

이제 이 봉에서 잠시 군계를 벗어나 인제군 기린면 안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진행합니다.

로프를 따르고,

야생화도 감상하며 진행하노라면,

좌측으로 조망도 터지고....

그러고는 낯익은 팔각 쉼터로 떨어집니다.

신발에 들어간 돌도 털어내고 마지막 남은 물을 목마른 이들을 위하여 나누어도 주십니다.

저는 대간 1차 진행은 거의 전 구간을 홀로진행을 했었는데 이 구룡령 ~ 조침령 구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구간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구룡령을 떠나 연가리골 삼거리를 지날 무렵 앞에 가는 홀로산객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분은 한전에 다니시면서 정년 퇴직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다 드디어(?) 그날이 되자 배낭에 1인용 텐트를 넣고서는 그 길로 바로 대간길에 오르십니다.

5일 운행에 하루 휴식을 하는 일정으로 진부령을 향하고 계신데 이날이 61일 째 운행을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그분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당신께서는 배낭 무게때문에 누룽지와 라면 이외에는 지고 다니시는 게 없어서 식당에서 싸가지고 온 밥을 그 분드리고 저는 그 분의 라면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군것질을 별로 안 하기 때문에 겨우 가지고 온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거의 한 시간 가량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명함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분의 저녁 야영장으로는 바로 이곳을 추천해드리고 저 먼저 출발을 하여 조침령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제 배낭에는 물 500ml 한 통이 남았고 먹지도 않고 그대로 가지고 온 초코파이와 영양갱 등 간식거리도 생각이 나 조침령 나무 계단에 그걸 가지런이 내려 놓고 혹시나 오해하실 것 같아 제 표지띠를 깔아놓고 온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의 이야기를 저는 두 줄로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노산객께서는 오늘 밤 많지는 않지만 나의 조그마한 정성을 맛보시며 푹 주무시리라.

내려오는 길에 오늘 산행의 시점인 구룡령을 바라본다.

빨리 내려가서 알탕해야지요!

오늘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그 노산객(김영식님)에게 조그마한 정성을 남겨 드린 데크에서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침을 서로 확인하는 하이 파이브를 합니다.

좌측은 대간길 데크이고 우측은 3군단 공병여단이 땀을 흘린 도로인데 지금은 아래 조침령 터널로 인하여 다니는 이 없는 도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침령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습니다.

새 정상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예전 정상석에서 고운산님께서 기념 촬영을 하십니다.

네 번 정도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 조침령터널 서쪽 출구로 나와 오늘 산행을 마감합니다.

1.56km정도의 접속 구간은 길이 워낙 좋으니 힘든줄 전혀 모르는 구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