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즉 '지둘'도 이제는 막바지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한 번 탄력을 받으면 미친듯이 해대는 저의 성격이 '지둘'이라 하여 달라질 건 별반 없는 듯합니다.
2018. 4. 17.
사실 오늘 계획은 그랬습니다.
사무실 일은 목요일로 모두 미뤄놨으니 큰 마음 먹고 첫 날은 하동읍 ~서당(7km)을 거쳐 서당마을 ~ 대축(13.4km), 대축 ~ 원부춘(8.5km), 원부춘 ~ 가탄 (10.6km)를 걷고 이튿 날은 가탄 ~ 송정(10.4km), 목아재 ~ 당재(8.1km), 송정 ~ 오미(10.4km)의 68.4km의 구간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사당마을 ~ 덕산은 하룻거리가 되어 둘레길 전부를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다른 지방과는 달리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동으로 가는 막차는 22:00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다행히 남부순환도로 덕에 택시를 이용할 경우 25분이면 충분하니 늦어도 9시 15분에는 집을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폰 충전기를 빠뜨리고 말았군요.
예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케이블이 가방 한 구석에 있기는 하지만 플러그와 젠더가 없으니....
이틀째 진행이 문제입니다.
낭패로군요.
빵빵하게 채운 폰으로는 사진 촬영하랴, 웨이포인트 찍으랴, 지도 검색하랴,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사실 하룻거리도 충분치 않은데.....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 만물상을 떠올립니다.
만물상에는 당연히 있을테니까 ....
느긋한 마음으로 한숨 자고 일어나니 버스는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갑을 쥐고 화장실 옆에 있는....
아니 그런데 이제 시간이 11시 반 정도 밖에 안 됐는데 문을 꼭꼭 잠가 버렸군요.
24시간 영업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예전의 기억만 가지고 생각했던 것이군요.
차선책으로 피씨방에서 해결할 방법을 모색키로 합니다.
한 번 들러 이용한 바 있는 그 피씨방에는 제 폰에 맞는 젠더가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플러그.
피씨방에는 저희같은 플러그가 아니고 일체형일 건데....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하는 마음으로 하동에 내리니 01;50.
단골 피씨방으로 가서 주인장에게 젠더가 있음을 확인은 하지만 하룻밤을 묵을 민박집에서 같은 형태의 플러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주인장에게 사정을 고하고 일단 젠더를 6,000원에 삽니다.
굳이 마다하는 것을 수고비 1,500원을 더 얹은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쩔 수없이 계획을 수정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구간으로 계획했던 것을 먼저하고 다음에 두 구간을 한 방에 하기로....
그러니 오늘 구간은 자연스럽게 하동읍 ~서당(7km), 서당마을 ~ 삼화실(3.3km), 삼화실 ~ 하동호(9.4km), 하동호 ~ 위태(11.5km), 위태 ~ 덕산(9.7km)가 됩니다.
그렇게해서 덕산 ~ 원지 ~ 남부터미널로 귀가를 하면 되겠군요.
그럴 경우 진행거리가 40.6km가 되는군요.
100리라!
중간에 먹을 곳은 면소재지가 있는 평촌마을.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다 5시가 되어 피씨방을 나옵니다.
하동은 24시 김밥집도 없는 곳이니 하는 수없이 터미널 옆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데워 먹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그래도 밖에 나가서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는 줄 알고 계실 텐데....
한편 오늘 진행할 구간을 봅니다.
하동읍에서 서당마을 까지의 구간은 사실 지리산 둘레길의 모형인 타원형에서 빠져 나간 루트입니다.
참고도 #1 지리산 둘레길 개념도
위 개념도 #1을 보면 이런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바로 '하동읍 ~ 서당마을' 7km 구간과 '목아재 ~ 당재' 8.1km 구간 등이 그것입니다.
이 구간들은 각 제12구간인 '삼화실 ~ 대축'구간과 제15구간인 '가탄 ~ 송정' 구간에서 가지를 쳐 나간 구간들입니다.
그러니 인월 ~ 금계나 수철 ~ 성심원의 지선支線 등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지선들은 어느 곳으로 진행하든 상관없는 곳이지만 '하동읍 ~ 서당마을' 구간 등은 특수한 이유때문에 설치한 것이어서 이를 지선과 동일시하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봅니다.
.
이 노선들 자체가 독자적인 의미가있다는 즉 독립 구간이라는 것이죠.
가령 '하동읍 ~ 서당마을' 구간은 이 둘레길을 기획하고 시행한 '(사) 숲길'의 본부가 있어 둘레꾼들에 대한 기록이나 진행상의 편의들을 총괄적으로 관리하여 주는 상징성과 함께 교통의 요지이므로 들머리 혹은 날머리로 고려한 판단이라 보여집니다.
그리고 '목아재 ~ 당재' 구간은 지리 남부와 호남정맥의 힘찬 산줄기의 흐름 등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바뜨리기가 너무 아쉬워서 부득불 포함시킨 것이고.
이런 이유로 이들 구간을 지선으로 보거나 간선으로 보기에는 그 역할이 본구간 못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의의를 가지고 있는 두 구간을 지선과 구별하여 기선岐線이라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독립적인 구간 번호 가령 12구간 다음이니 13 구간이라는 별도 구간 번호를 부여하기에는 연속성을 갖는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럴 경우 구간 번호는 12-A 혹은 12-가 구간 정도로 붙이는 게 얼떨까 생각합니다.
지도 #1
그 구간의 들머리를 찾아가야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악양 방향으로 우체국을 지나 좌측에 '빠리바게트"가 보이면 바로 그 다음 우측 편의점 골목입니다.
05:35
이른 새벽이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우측으로 두 번째 건물에 낯익은 글씨가 슬쩍보이는군요.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저기가 (사) 숲길의 본부 건물이군요.
지리산 줄레길에는 총 8개의 탐방안내센터나 안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이 지리산둘레길을 찾는 이들에게 구간지도 제공, 지역정보 제공, 체험 프로그램 소개와 더불어 다양한 주제를 담은 전시도 진행하는 총광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곳이죠.
이곳은 또한 지역교류의 장이자 지리산둘레길을 찾는 이들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지역센터도 마찬가지죠.
꾼들이 지리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지리산길 여정에 안전하고 든든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직진하여,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너른 동네길을 따라갑니다.
교회를 지나,
우틀하여 산기슭이 보이는 곳으로 가다 산책 나온 부지런한 주민들과 인사도 나눕니다.
정면 우측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그런데 저 우측 끝의 봉우리 공군기지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이는군요.
금오산875.1m이군요.
금오산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그러고 보니 이곳이 경남에서도 한참이나 아래에 있는 하동이군요.
저 금오산이 우리나라 산줄기에서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산입니다.
족보를 땨져 볼까요?
이런 얘기해주는 사람 대한민국에 별로 없습니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있는 곳도 제 글밖에 없을 것이고.....
하기야 산에 내 맛대로 가는데 이런 게 다 무슨 사설辭說!
그래도 알고 가야 더 재미있게 즐기죠!
대저 백두대간이라 함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지리산에서 끝을 맺는 아버지 산줄기를 얘기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들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고 그 산줄기에 모든 산들이 다 있으니 이 산줄기 즉 백두대간을 아버지 산줄기라 부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산줄기의 계통을 정리한 책이 18세기 초에 발간된 '산경표'였습니다.
산경표는 그 계통을 알기 쉽게 정리한 표表이자 책冊인 것입니다.
1910년 육당 최남선은 우리의 고전이나 인문지리서적이 일제에 의하여 날조되고 파괴되는 것을 보고 택리지를 시작으로 이러한 책들의 영인판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세 번째 작업이 산경표의 활자화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이고.....
그러나 나라가 합병이 되고 우리나라의 지리에 서양지리학이 가미되면서 산경표는 우리 지리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대신 '산맥' 개념이 등장하고 이런 산줄기 인식 쳬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중간인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인사동의 한 고서적 서점에서 우연히 이 조선광문회본 산경표를 습득하면서 일대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는 산맥 즉 태백산맥이 아니고 산줄기 즉 백두대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전국의 산꾼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박성태라는 세무공무원 출신의 산꾼이었습니다.
선생은 산경표를 꿰뚫고 그 책에 흐르는 흐름을 읽었습니다.
흐름이라는 것은 간단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끝은 합수점으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양수리 두물머리로 인해 인식하고 있던 우리말 두물머리는 곧 한자어 합수점이었던 겁니다.
정맥에서 착안했을 겁니다.
산경표에서 제시한 우리나라 13개 정맥의 대부분이 합수점으로 가는 걸 원칙으로 그어진 것을 찾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암시는 '태백산맥은 없다'의 조석필이었습니다.
어쨌든 선생은 우리나라의 13개 정맥의 끝을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으로 진행하게끔 새롭게 산줄기판을 짰고 그 판을 '신산경표'라고 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 참고로 선생의 남한 7정맥을 제가 월간 산에 해설을 하여 였는데 2014년 5월호 부터 2014년 12월호 까지 실려 있습니다.
그 모든 비용은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왔고 그 일련의 엄청난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선생은 해낸 것입니다.
여기서 그 모든 이야기를 하기에는 제약이 되어 있으니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신산경표가 제시하고 있는 많은 내용 중 큰 것 하나가 신백두대간입니다.
정맥이나 지맥도 합수점으로 가는데 아버지 줄기라고 하는 백두대간이 합수점이 아닌 지리산 천왕봉에서 마무리 짓다니!
뭐하고 밑 안 닦은 느낌입니다.
박성태의 신산경표
누구든 쉽게 의심을 품고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색이 백두대간인데 남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그래서 산경표의 이런 오류를 해결하고자 박성태 선생은 고민 끝에 신산경표를 발표한다. 신산경표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간 줄기를 이 영신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 줄기를 남해안 노량까지 진행하게 한다. 그렇게
하고 보니 백두산 ~ 노고단 ~ 영신봉 ~ 노량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 박성태 선생은 그 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을 붙인다.
즉 좌측 지도의 백두산에서 내려와 노고단 ~ 영신봉 ~ 천왕봉으로 가던 줄기를 영신봉에서 우회전시켜 삼신봉을 거쳐 금오산 ~ 연대봉 ~ 노량으로 이어지게끔 마루금(빨간선)을 그렸다. 그렇게 한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산경표의 백두대간에 대응하여 ‘신백두대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신산경표에서 신백두대간을 고안해 낸 이유는 무엇일까? 괜히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산경표는 그 취지를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이므로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말을,
⓵정맥도 10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데 하물며 아버지 격인 대간이 바다도 아닌 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
⓶대간이 바다로 가야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동서를 양분한다는 기본정신에 합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을 ‘영신봉 ~ 천왕봉’에서 남해 방향으로 틀어 ‘영신봉 ~ 노량’으로 향하게 했고, 그 이름을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럼 끝난 것일까?
그러니 이 금오산이 결국 이 신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것입니다.
신백두대간에서 볼 때 이 금오산은 굉장히 의미있는 봉우리인 셈입니다.
“그게 신백두대간이야? 그 방향으로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신선하군.”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
첫째, 산경표 교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던 산경표에 감히 손을 댔다는 거지.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정 필요하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 해야지 왜 대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만들고 또 산경표의 정맥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냐는 거야.
둘째, 그러면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 ~ 웅석봉 ~ 백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 분기점을 영신봉이 아닌 천왕봉으로 그대로 놔둔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거야. 이 점이 오히려 신산경표의 약점이 된 거지. 즉 이는 신산경표가 북한의 청북정맥이나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에서 중간의 겹침줄기를 없애면서 이를 정맥에 포함시켰던 과감한 시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가 돼 버렸어. 곧 천왕봉에 와서는 꼬리를 내렸고 이는 일관성의 결여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것이지.”
처음 듣는 용어에 정맥까지 동원되니 이해가 갈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지도를 펴가며 열심히 찾아본다.
“어려운 대목이야. 나중에 다시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거야.”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은데... 하지만 형. 이른바 신산경표의 태도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대간이 동서를 구분한다는 얘기는 맞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사실 문제는 있네. 영신봉 ~ 천왕봉 ~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지맥(枝脈)의 한 구간으로 봐야 한다면 결국 ‘천왕봉’이 지맥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걸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백두대간에서 천왕봉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신산경표는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했어?”
“그렇지. 어려운 얘기야. 어쨌든 신산경표는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어. 사실 산경표에서도 그런 애매한 구간이 있을 때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었거든.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그랬던 거지. 그런데 그런 걸 해소하겠다고 한 신산경표가 다시 이런 애매한 구간을 ‘무명줄기’로 놔두겠다고 했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 모양새가 된 거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산경표의 편제에 따른다면 이 웅석지맥은 천왕지맥으로 그 이름도 바뀌어야 해. 그렇게 되면 지리산 = 천왕봉이라는 인식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게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거 아니겠어? 그 점이 신산경표는 싫었던 거야.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뭐야?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큰 줄기라는 것 아니야? 신백두대간이 굳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점을 강조하여 영신봉 ~ 삼신봉 ~ 노량 코스로 맥을 돌리겠다면 그 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빼라는 거지. ‘신(新)’자도 넣을 필요 없이 그냥 백노(白露)대간 혹은 백지(白智)대간‘으로 부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왜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빈 공간으로 놔뒀냐고 비난을 퍼붓는 거야.”
“그럼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신산경표의 생각도 참신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 하지만 우리가 산경표를 생각할 때에는 우리의 잣대로 산경표를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봐. 분명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생각할 때 등산을 하기 위한 능선 산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어 놓은 것이 아니었거든. 10대강을 위주로 생활권을 크게 구분하고 있는 것. 그걸 파악했던 것이지. 그래서 산줄기의 끝이 강의 크기나 길이 등에 관계없이 부, 목, 군, 현의 치소(治所)로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산경표는 그냥 산경표야.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자고. 그대로 둔 다음에 거기에 우리 현대인의 생각을 가미하고 변형시키자고. 이럴 때 분명히 용어의 정립의 필요할 거야. 신산경표에서 정맥을 합치고, 없애고 대간의 무명줄기도 정맥에 편입시키는 등 변형을 줬거든. 난 이런 점이 불만이야.
가령 이 신백두대간만 해도 그래. 굳이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 다음 ‘백두산 ~ 노량’이라고 구간을 설정해 놓으면 천왕봉이 애매해지잖아. 물론 영신봉이나 천왕봉이 다 지리산이니 ‘백두산 ~ 지리산 ~ 노량’으로 봐야 하고 지리산 안에 천왕봉이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고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대간길을 걸을 수도 있어. 하지만 웅석지맥이 문제가 된다니까. 대간 거리의 확정도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특징이자 자랑이 뭐야? 나라의 산줄기 길이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한편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은 백두대간을 ‘백두대산줄기’라 이름하였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 삼신봉1289m에 이른 다음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돌려 구재봉773.7m에서 마치게 그렸다.
낙남정맥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 점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낙남정맥을 몰랐었다. 아니 이런 문제 때문에 낙남정맥을 억지로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환이 보통 사람인가!
어쨌든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이곳이 낙남정맥이 갈리는 영신봉이라는 점과 낙남정맥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에 나오는 우리나라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하나의 정맥으로 글자 그대로 낙동강 남쪽을 받쳐주는 정맥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이런 저의 신산경표에 대한 평가는 사실 푸념 혹은 아쉬움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위대하고 불멸의 업적인 신산경표가 어떻게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
어쨌든 신산경표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아무리 찬사를 늘어놔도 잔소리에 불과할 것이니 여기서는 이만 하고....
이에 대하여 산경표는 산경표대로 의미있는 체계이니 백두대간 만큼은 그냥 놔두자는 유력한 견해가 있습니다.
즉 이 경우 낙남정맥은 그대로 놔두고 옥산분기점에서 분기하는 줄기를 황토재 ~ 금오산 ~ 용산151.1m ~ 두우산193.2을 지나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게끔 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산경표의 정신인 '산자분수령'에도 충실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이 지맥의 이름은 섬진동지맥이 될 것입니다.
대한산경표 박흥섭의 주장입니다.
금오산은 이 정도로 정리합니다.
빌라를 지나 고갯마루에 예쁘장한 집이 보입니다.
그 좌측으로 오릅니다.
그 집 뒤로 바로 큰 바윗덩어리 두 개가 나오고 그 좌측으로 표지띠가 붙어있습니다.
좌측으로 들죠.
과수원 안으로 들어서서 낮은 나무들 사이로 꾸불꾸불 지나는데,
좌측으로 한라봉 꼭지 같이 생긴 봉우리가 "나 여기 있소!"하는군요.
아무럼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를 안 보고 어찌 가리요!
억불봉1007.5m이죠.
호남정맥을 하다보면 사실 백운산1216.3m에서 그냥 억불봉으로 막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던 곳입니다.
그리고 지리남부에 오면 백운산보다 먼저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이 모양 때문에....
05:57
지도 #1의 '가'에서 고개를 하나 지납니다.
이정표에서 분지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분지봉이라...
조금 이따 다시 보죠.
오밀조밀 바위를 모아놓은 곳 같습니다
06:09
고개 하나를 넘고...
06:19
남서쪽으로 드디어 백운산1216.3m과 매봉866.9m이 보이는군요.
그러니 그 호남정맥에서 이어지는 산이 갈미봉과 쫓비산입니다.
06:26
그러고는 지도 #1의 '다'의 곳입니다.
아까 보았던 분지봉이 여기서 또 나옵니다.
하지만 같은 분지봉을 가리키는 이정표지만 아까 그곳과 이곳이 주는 이정표의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물론 이 이정표를 제작한 분은 이 이정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그저 '등산로'라는 의미로 제작을 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저같은 산꾼들은 아까 분지봉 이정표는 일반적인 등산로 분지봉 그리고 이 이정표는 횡천지맥의 분지봉을 가리키는 걸로 이해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구간이지만 이런 걸 이해하고 지나는 게 산행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횡천지맥이 나왔습니다.
지난 번 덕천지멕을 봤으니 한 번 더 볼까요?
이 횡천지맥의 분기점은 낙남정맥상의 삼신봉입니다.
- 아까 잠깐 살펴본 바와 같이 신백두대간을 주창하는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 견해에 따를 경우에는 '신백두대간'상의.
백두대간 지리산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이 내려오다 삼신봉에서 가지줄기를 하나 내놓으면서 그 사이에서는 횡천강이 발원을 합니다.
그 횡천강은 하동호를 지나면서 청암과 적량 들판을 적시며 흐르다가 하동읍과 고전면의 경계인 목도리 부근에 이르러 섬진강에 흡수되게 됩니다.
강과 강이 만나는 곳.
참고도 #2 횡천지맥 부근의 산줄기들
이를 '두물머리'라고 부르며 한자어로는 合水點이라 씁니다.
이 합수점에서 가지줄기가 잠기게 되는 것이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가 30km가 넘으니 枝脈의 요건을 갖췄고 그 지맥의 이름은 강이름인 횡천강의 이름을 따서 횡천지맥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횡천지맥은 삼신봉 ~ 거사봉 ~시루봉 ~ 칠성봉 ~ 구재봉 ~ 분지봉 ~ 하동장례식장 옆을 거쳐 합수점으로 진행하는 도상거리 약31.9km의 지맥이 됩니다.
한편 주시하다시피 신산경표에서는 가장 높거나 유명한 산 이름을 딴다고 했는데 그래서 삼신지맥이라 부릅니다.
이 정도로 횡천지맥을 정리하고....
횡천지맥을 만나면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적량면을 만납니다.
그런 중요한 산줄기를 잠시 면계와 함께 진행합니다.
아주 평범한 지맥길입니다.
그러니 둘레길로 선정된 것이기도 하죠.
06:31
겨우 5분입니다.
아쉽게 5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둘레길을 진행하면서 계속 지맥을 관찰할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쉬워만 할 것도 아닙니다
지맥길은 분지봉으로, 우리는 적량 밤골 즉 율동栗洞으로 갑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하동읍을 버리고 온전하게 적량면 관리로 들어갑니다.
우틀하여,
고개를 내려가면서 율동과 적량 동산리 너머 횡천강 뒤의 정안산447.6m 줄기를 봅니다.
우측 제일 뒤의 봉긋한 봉우리가 아까 살펴본 금오산.
06:48
꼬불꼬불한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율동마을로 들어서게 됩니다.
마을 회관 벽을 주민이 직접 그리셨다고요?
천왕봉도 있고 구재봉도 있군요.
칠성봉도 아시고...
확실히 그 지방의 산의 이름은 그 지방 분들이 제일 잘 아십니다.
마을 회관을 지나면서 좌측 길을 따릅니다.
저 정안봉 줄기는 섬진동지맥에서 가지 친 줄기입니다
좌틀하면서 이제는 관동마을입니다.
마을이 너무 깨끗해서...
07:00
마을회관에서 우틀하고,
지도 #2
좁은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키 큰 서어나무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상우마을입니다.
학교가는 차시간을 맞추기 위함인 듯 뛰어가는 학생과 지나칩니다.,
개울 하나를 건너면 수령이 350년이나 된 마을 밖 당산나무입니다.
수종은 아팝나무리고 하는군요.
정면 산 방향으로는 우계저수지 뚝이 보이고....
07:28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거리이고 이 도로가 7번 도로입니다.
지도 #2의 '마'의 곳입니다.
버스도 다니는 길이군요.
이곳이 예전에 서당이 있었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지도에는 서당이 아니고 '서동'이라 표기하였군요.
영진지도에도 서동이라 표기하였는데....
그럼에도 주민들은 서당으로 부른다?
필경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마을 회관 우측으로 보면,
예전에 마을회관이었던 것을 개조해 무인 쉼터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먹거나 마시고 가면서 알아서 계산을 하도록 한 시스템입니다.
이름하여 주막 갤러리입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우계저수지를 넘어 신촌마을 ~ 먹점재 ~ 대축마을로 이어가게 되고 이 골목길로 올라가면 버디재 ~ 이정마을 을 지나 삼화실로 연결이 됩니다.
이 구간이 바로 지둘 제12구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서당마을 ~ 하동읍 구간은 12구간에 나뉜 독자적인 구간이기에 기선岐線이라 부르자 했던 것입니다.
일단 기선인 12-A 구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본선인 제12구간 중 서당 마을 ~ 삼화실 구간을 바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12-A구간을 마무리하고 다음 구간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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