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에 도착하자마자 턴 테이블에 올려 놓은 곡은 Black Sabbath의 She's gone.입니다.
구례구 역 플랫홈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던 한 커플을 보자 떠올렸던 곡이기 때문입니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폰에 들어 있는 그 음악을 들어보려 했지만 이어폰이 없어서 이내 포기한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랫속의 gone은 떠난 것.
곧 자살을 의미하는 듯 싶습니다.
그러니 저렇게 애절하게 들릴 수밖에.....
어쩌면 김성동의 '꿈'에서 반야가 떠난다 했던 곳도 파리가 아닌 다른 세계가 아닐까요?
김선진(1775 ~ ?)의 두류전지는 지리산에 관한 문화 · 역사 · 지리 등을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편찬한 조선 제일의 지리서입니다.
이 책의 지리地理편을 보면 산줄기는 물론 물줄기 역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물줄기도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 뿐만 아니라 지리산을 감고 도는 가령 섬진강이나 남강 그리고 이들의 샛강도 상세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구분하고 정리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지리산의 북쪽은 백운산1278.9m 혹은 봉화산919.7m 아니면 더 나아가 육십령이라고 까지 보는 데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북한의 '과학원 지리원연구소'에서 구분한 우리의 백두대간 격인 '백두대산줄기'에서 지리산의 영역을 백운산 ~ 구재봉'으로 본 것이나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육십치를 넘으면 지리산"이라고 한 점도 수긍이 갑니다.
그러니 이를 세분화한 산경표가 여원치를 지나면 지리산으로 본 것도 다 이렇게 물줄기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큰 물줄기를 다 오르내리고 나라의 해안선을 따라 고성에서 시작하여 김포까지 걸은 희대의 기인 'J3 클럽 ' 방장 배명만 님의 지금의 행보는 휴전선을 따라 걷는 것인데 그 다음 탐사는 어디일까요?
본인의 말로는 다시 물줄기를 걷겠다고 하던데 ......
'지리산의 샛강 탐사'는 제가 먼저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 김선신의 두류전지에 나오는 샛강은 지금의 천川 이름과 상위한 게 많아 이를 그대로 적기엔 독해하기 힘든 것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지금의 천 이름으로 서쪽부터 나열해 보면,
백두대간에서 서시지맥이 갈라져 나가는 서시천이 먼저입니다.
서시천의 원류를 이루고 있는 게 대두천과 수락천 그리고 용추천과 무동천이니 적어도 이 네 개의 물줄기가 구례군 산동면을 이룹니다.
그 다음물이 천은천입니다.
이 물줄기가 가르는 산줄기가 바로 지난 번 답사한 간미봉 능선이니 이를 산경학의 입장에서는 천은단맥이라 이름할 만합니다.
바로 백두대간의 작은 종석대 부근에서 가지치는 산줄기입니다.
거기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바로 마산천이니 그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산줄기의 원류인 종석대 ~ 차일봉 능선은 끝이 미미하기만 합니다.
구례들녘 때문이죠.
그 다음 물줄기가 토지천인데 이 물줄기와 관련된 노고단 ~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역시 그 끝이 미미합니다.
문수리와 오미리의 너른 들녘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한천이나 이는 섬진강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너무 짧으니 바톤을 그 다음 물줄기인 내서천으로 넘겨주는 게 맞습니다.
내서천은 용수골로 거슬러 올라가 피아골을 이루는 원천이 되니 그 산줄기는 역시 반야봉에서 발원하는 주 줄기로군요.
그럴 경우 그 줄기의 중심에 왕시루봉이 있습니다.
그 다음 물줄기인 화개천과 화개단맥 그리고 횡천지맥과 횡천강에 대해서는 이미 봤으므로 오늘은 지리의 주릉에서 가지를 치는 왕시루봉 능선입니다.
왕시루봉 능선은 거리가 좀 짧다보니 ‘산으로’님에게 동행을 하자는 청을 넣기도 애매합니다.
그런데 마침 이번 주말 ‘산으로’님은 회사 직원들과 함께 설악산 여행을 떠나신다 하는군요.
탐사가 아니라 간단한 답사 산행이라 하시니 그렇다면 저는 항상 눈여겨보고 있던 왕시루봉입니다.
2018 6. 2. 22:00
어머님이 주무시는 걸 보고 집을 나섭니다.
전철 역 옆 빵집에서 소보루빵 두 개를 챙기고 물도 500ml 두 통을 삽니다.
22:56
8번 플랫홈으로 들어오는 구례구행 무궁화호 열차에 오릅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오늘은 앞 차량인데 분위기가 너무 아늑하군요.
소음도 적고....
안대도 필요 없습니다.
바로 잠이 드는군요.
깨다 자다를 반복하고.....
그러고는 구례구역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성삼재행 버스를 타고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로 향합니다.
오늘은 의외로 화엄사에서 여러 분들이 내리는군요.
가방이 묵직한 게 화대종주를 할 분들도 아닌 거 같은데....
화엄사를 지난 버스는 천은사 매표소를 지나고....
야간이어서 통행료 2,000원을 벌었다 생각하는데 어둠 속에서 여자 두 분이 손을 흔드는군요.
버스를 탄 게 아니고 승용차를 가지고 올라가다 만났으면 순간적으로 정차 여부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새벽 3시 50분 지리산 도로에서 묘령의 두 여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고라니를 만난 것보다 더 놀랐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각설하고 성삼재에 오르니 04:10.
예의 성삼재 상가 식당으로 들어가 라면 하나를 시킵니다.
눈썰미 좋은 주방장 아주머니는 "또 오셨수? 오늘이 몇 째 주유?"
"예, 4주 짼가 그렇습니다."
행간의 의미를 읽습니다.
"원 별 미친 놈 다 봤네. 그렇게할 일도 없나! 뭘 그렇게 볼 게 있다고..."
04:40
가방의 무게 때문에 일부러 랜턴도 챙겨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양치하고 볼일 보며 미적거리다 출발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8. 6. 3. 일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지리산 왕시루봉능선 (성삼재 ~ 노고단 ~ 왕실봉 ~ 질매재 ~ 질등 ~ 문바우등 ~ 느진목재 ~ 왕시루봉 ~ 19번 도로)
4. 산행거리 : 20.80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성 삼 재 |
|
04:40 |
|
|
노 고 단 |
3.30 |
05:46 |
66 |
|
왕 실 봉 |
2.70 |
06:46 |
60 |
|
문바우등 |
3.00 |
08:03 |
77 |
|
느진목재 |
1.39 |
08:55 |
52 |
10분 휴식 |
왕시루봉 |
1.44 |
09:52 |
47 |
|
19번 도로 |
8.97 |
12:49 |
177 |
57분 휴식 |
계 |
20.8 km |
08:09 |
07:02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먼저 도착해 이른 아침을 먹고 있던 산악회 두어 군데서 뒷정리를 하느라 소란스럽군요.
작은고리봉 그리고 우측의 삼봉산 줄기 뒤로 붉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
반야봉.
슬슬 올라갈까요?
지리산이 동네 뒷산이 된 느낌입니다.
그만큼 친숙해졌다고나 할까요?
오늘은 나무 계단으로 오르는 빠른 길보다 천천히 도로를 따라 오르려 합니다.
우번암 스님이 계신가도 보고,
사실은 이렇게 화엄사 골짜기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구례벌과 멀리 좌측의 오산鰲山 그리고 우측의 봉성산도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서 발원하는 이 마산천의 화엄골을 따라 그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헉헉거리며 올라오던 청년시절의 현오와 그 친구를 봅니다.
한 번 쉴 때마다 독주 작은 한 잔씩 먹으며 올라오던 호기롭던 녀석들 중 한 명이 소프트 개발 연구원으로 미국으로 이민가더니 소식이 끊겼었습니다.
한 녀석의 집요한 추적으로 최근 David Lee란 이름으로 카톡방에 나타났습니다.
30년 만의 만남입니다.
녀석은 지리와 설악을 그렇게도 그리워하는데 아마 3년 정도 뒤면 예전에 올라오던 화엄사골로 올라와 이런 정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좌측으로 노고단의 KBS 송신소 안테나도 보고....
왕시루봉 능선에 어떻게 진입할까?
①저 송신소 우측 철책을 넘어 문수대를 경유하는 코스를 따를까?
아니면 ②노고단 정상에서 동쪽 길로 택하여 오리지널 능선길을 따를까?
아니면 ③, ④번 루트로?
노고단 대피소입니다.
노고단하면 이 산보다는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해밀산악회'의 비박 대장님이신 '노고단'님이십니다.
노고단이 출생지는 아닐 것이고...
지리 그것도 노고단의 잊지 못할 추억 때문에 혹은 노고단의 운해를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닉nick을 지으셨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마고할머니의 영靈이 씌워서?
지리산의 상징적인 의미를 노고단에서 찾고 싶어서?
매사에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노고단님이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만들어 주신 부적.
그 부적을 새로 바꾼 가방에 달고 왔어야 하는데.....
항상 덤벙대기만 하는 저는.....
오늘 지리산행의 테마theme는 기독교입니다.
문수신앙의 보고이자 시작인 지리산 그것도 노고단이나 반야봉이 지근인 여기서 기독교라니요?
바로 이 건물 때문이죠.
노고단 부근이 훼손되기 시작한 건 1922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총독부는 천연 보고인 지리산을 학술 목적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를 임의로 동경제국대학의 '지리산 연습림'이라는 이름으로 관리권을 넘깁니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개명을 하듯, 두류산이 지리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1905년 '가스라 - 태프트 밀약' 등을 거치면서 한층 가까워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일본은 선교 활동차 한국에 들어온 특히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미국인 선교사(미국 남장로 교회)들로부터 한국의 풍토병을 피하기 위한 휴양촌 조성을 부탁받습니다.
그들이 길지로 선정한 곳이 지리산의 노고단 부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중일전쟁의 시작 특히 신사참배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1940년경까지 약 15년 동안 호텔과 주택, 수영장, 스키장 그리고 9홀 규모의 골프장 등 56동의 건축물이 지었으며 여기에는 한국인 직원 50여 명이 상주하며 관리하였습니다.
이 건축 자재들은 지리산 일대에서 채취하고 벌채한 돌과 나무였음은 물론입니다.
기타 재료들은 조선인 인부들이 지어 날랐겠고.....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철수하고 해방이 되었으나 주민들이 내부시설물들을 떼어가기도 했고 1948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설물에 대한 소각 등으로 인근 삼림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습니다.
전투기의 폭격과 군시설물의 설치, 불법 도벌 등으로 훼손은 더 심해졌으나 1967년 12월 29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복원과 보존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대피소 옆 야영장도 폐쇄가 되었으며 군부대도 철수하였고 이제는 KBS 송신소의 구조물만 마지막 과제로 남은 상황이군요.
한편 왕시루봉에도 1960년 경부터 위 남장로회에서 1차 때와 같은 이유로 장소를 바꿔 휴양지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오늘 구간을 마무리할 이 왕시루봉 유적지를 2차 유적지라 이름하여 1차 유적지와 이 2차 유적지를 연결하여 살펴보는 것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선교 트레일mission - trail이라 불릴만 합니다.
노고단 대피소 옆으로 노고단 고개를 오릅니다.
몇 분이 들머리를 찾지 못하시는군요.
잠깐 가이드 역할을 해드립니다.
그분들의 오늘 행선지는 뱀사골을 통하여 반선으로 내려가시는 길이군요.
영험함이 깃든 곳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잘만 수행을 하면 반 신선이 되는 곳이죠.
그래서 半仙입니다.
반야봉을 꼭 오를 것을 당부하고 먼저 떠나려는데 그분들 소속이 '강북드림산악회'라고 하시면서 꼭 한 번 함산하자고 청을 하시는군요.
"산꾼이란 다 산에서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을 굳이 인연을 억지로 만들 필요 있겠습니까?"라며 제법 도인같은 답을 드립니다.
05:30
노고단 고개에 오르니 일출을 찍으려고 출사를 나오셨군요.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그렇군요.
설악.
북부 설악 신선봉이었습니다.
해밀 대간 졸업식 때 신선봉 정상에 올라 저런 모습으로 일출을 보던 대원들이 있었죠?
그런데 노고단 정상으로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변경되었군요.
세 차례 가능한데 05:00부터 탐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게 웬 떡?
공단직원에게 "여차 여차...이러쿵 저러쿵.....예약을 못했지만 .... 부탁합니다."
이때 마침 예약을 했다며 김XX라는 두 여자 분이 예약자 이름을 대시는군요.
1 + 9.
1명이 예약을 했으면 9명까지 동행이 가능하다는....
그 팀에 묻어 들어갑니다.
이제는 많은 탐방객들로 인해 나무 데크마저 삭아져 가고 있는 통로를 따라 조망처로 오릅니다.
아!
왕시루봉!
시루봉도 모자라 '王'이라는 접두사을 하나 더 붙였습니다.
절집에서 하는 얘기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바로 이 노고단에서 설법을 하게 되면 대중들이 법문을 듣는 곳이 바로 저 왕시루봉이라고 합니다.
저 왕시루봉에 부딪쳐서 떨어지는 법문을 듣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로 그 아래 절집이 있는 것이고 그 이름이 문수사라고 하는....
조금 이따 걸을 능선을 따라 눈길을 줍니다.
좌측 갈라진 질매재 ~ 질등1147.4m ~ 문바우등1198m 그리고 뚝 떨어진 느진목재 그러고는 왕시루봉1240.2m입니다.
그 뒤로 호남정맥의 백운산1228m!
좌측의 억불봉1007.5m과 우측의 도솔봉1153.2m은 그저 서비스 게임!
바로 앞에는 토지천 물이 발원하고 그 물은 이 문수골을 따라 '왕의 강'인 섬진강을 향하고....
바로 앞이 그 왕시루봉의 시작인 왕실봉1263.2m.
그 뒷줄기가 불무장등 ~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화개단맥.
그 뒤가 남부능선인 낙남정맥 + 횡천지맥.
그 뒤 윤곽만 보이는 게 횡천지맥의 끝 구재봉.
바로 우측이 이 노고단에서 갈리는 형제봉 능선이니 그 끝은 섬진강 건너 오산.
희미하지만 섬진강과 구례벌.
그리고 그 뒤의 서시지맥.
중앙 우측으로는 화엄사가 명백하니 연기조사가 저 화엄사를 절터로 낙점한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송신탑 우측으로 종석대와 작은 종석대.
그리고 그 뒤로 구례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서시지맥.
우측 아래 노고단 대피소.
중앙에 삼신봉.
가운데 섬진강과 우측 왕시루봉.
.................
우측 아래 노고단 대피소.
만복대와 지리서부능선.
노고단에서 기념 촬영 중인 산객.
1등 대삼각점(운봉12)을 보고,
천왕봉입니다.
우측으로 촛대봉이 명확하고 그 우측으로는 낙남정맥이 늘어집니다.
반야봉과 천왕봉.
지리의 양 축軸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넣자면 바로 이 노고단.
그리고 바로 아래 보이는 길이 바로 왕시루봉으로 가는 제2 루트.
감시 카메라가 지키고 있습니다.
반야봉 우측 토끼봉 위로 해가 올랐습니다.
바로 앞 내소골은 심원골로 이어져 달궁계곡이 되어 산내로 내려갈 것이고 ...
그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로 만수천입니다.
지금의 산내면 원천리와 삼화리, 입석리 일대의 옛 지명은 만수동 또는 내원동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수천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고, 지리산 일만 골짝의 물길이 모였다고 하여 만수천이라 부른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 만수천의 옛이름은 황계黃谿였습니다.
황계의 자세한 의미는 모르지만 이 이름은 유몽인(1559 ~ 1623)의 유두류산록에도 나옵니다.
한편 내소골의 내소란 內沼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沼는 저연猪淵.일 테고....
지리 주릉에 돼지령이나 돼지평전이 있게 된 근거를 제시해 준 물의 원천입니다.
중앙의 바래봉과 덕두산을 봅니다.
그 뒤의 백운산이나 덕유산은 사진으로는 관측 불가!
좌측 하단의 노고단 고개의 케른.
그리고 그 뒤가 아까는 그렇게 높게 보였던 작은고리봉1248m.
하긴 만복대1433.4m도 저 정도이니....
노고단 케른과 반야봉.
반야봉!
반야......
능현能玄은 반야를 파리로 보내면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을 듣습니다.
구례로 내려와서는 대강 요기를 하고는 막소주 한 잔을 마신 후 반야가 그려주고 간 초상화 아래 누웠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고는 가위를 꺼내어 화선지를 네 토막을 오린 후, 볼펜을 잡고 '꿈'이라 쓰고는 '꿈결처럼 만났다가 꿈결처럼 헤어진 여대생과의 꿈결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합니다.
그이의 이름은 승려 능현이었고 정아무개라는 여대생은 반야였습니다.
작가 김성동의 '꿈'이라는 소설입니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꿈은 물거품이라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반야라는 여인네를 다시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잠시 인연을 맺은 분들을 뒤로 하고 먼저 내려옵니다.
25분 정도 꿈속을 거닐었습니다.
지리 주릉으로 들어섭니다.
06:15
그러고는 왕시루봉으로 드는 제3루트를 봅니다.
지난 번 잠깐 지형정찰을 해보니 길이 너무 묵어서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06:16
그 바로 아래인 돼지령 루트.
이 길을 택하기로 합니다.
문수대로 갔다가 나올 때 이용했던 길이기 때문에 낯이 익기도 하고....
이 루트의 특징은 길에 변便이 좀 많다는 것과 곰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길도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나 있고....
간혹 돌 구간이 나와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긴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합니다.
길 흔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돌이 닳은 흔적을 볼 수 있고 그 건너의 나뭇가지를 보면 낡은 표지띠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실 이런 곳의 장애물은 오히려 썩은 나무들입니다.
벼락을 맞은 지 오래 되어 만지기만해도 으스러지는 나무는 가지나 몸통 심지어 그루터기조차도 스치고 지나가기가 버겁습니다.
이런 녀석들은 꼭 길에 가로질러 누워 있습니다.
높이도 딱 어른 허리 정도이고.....
뛰어넘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우회하기에는 잡목들을 뚫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다리를 올려 엉덩이를 나무에 앉힌 다음 허리를 최대한 끌어내리고 다리를 뻗어 땅에 닿은 감촉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착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인데 늘 그렇게 하다보니 발끝이 땅에 닿기도 전에 휙 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또 그렇게 했습니다.
까분 것이죠.
순간 미끄러지면서 뾰족한 돌에 옆구리와 허리 중간 부분이 찧었습니다.
정확하게 배낭을 피한 부분입니다.
통증이 몰려옵니다.
허리가 작살 난 것 같지는 않고.....
일어나는데 고통이 느껴집니다.
허리를 돌려보니 잘 돌아가고 숨을 몰아 내쉬어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이제 까불지 말아야지...."
걷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으나 아무래도 내일 일찍 주치의에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06:33
지도 #1의 '다'의 곳에 다다릅니다.
이 삼거리가 노고단 방향과 돼지령 방향이 갈리는 곳입니다.
우측이 제가 지금 나온 지도 #1의 '나'의 곳인 돼지령 방향입니다.
좌측이 노고단으로 진행을 하여 능선에 올라 좌틀하면 노고단 케른이 있는 곳이 나오고 우틀하면 진입금지 안내판이 있는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삼거리에서 1분도 채 걷지 않으면 등로 좌측에 이런 안내판이 떨어져 있습니다.
예전에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 세워져 있던 이정표였습니다.
돼지령 부근을 임걸령으로 표기하였고 직진하는 방향으로는 '노고단'으로 확실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XX산악회에서 설치 하였었습니다.
06:35
그러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나무에는 동물이동탐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순기능 역할.
여기서 우틀하면 문수대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이렇게 진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들렀던 문수대 정경.
06:46
왕실봉1263.2m을 지납니다.
오를 수 없는 바위봉입니다.
산죽이 죽어가고.....
좀 너른 곳도 나오는군요.
다시 능선으로 달라붙습니다.
07:00
그러고는 질매재입니다.
좌측으로 들어가면 피아골 대피소로 떨어져 서산대나 연곡사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우측으로는 문수리로 가는 길인데 들어오지 말랍니다.
이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나?
고로쇠액 채취꾼들 이외에는 가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07:09
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질등1147.4m도 바위구간이라 우회하여 지납니다.
바위 위에는 나무들도 많아 조망 역시 불가능합니다.
07:16
다시 능선으로 붙습니다.
바위 능선 구간이라 계속 우회합니다.
그러느라 1128.6봉도 오르지 못하고.....
지도 #2
이번에는 산죽.
키높이만한 산죽밭을 그냥 앉은뱅이가 되어서 걷습니다.
07:39
처음 보는 표지띠.....
'오케이 아웃도어'에 자주 나오시는 분.
07:50
지도 #2의 '라'의 곳에 우측으로 바위봉이 보이는군요.
올라가보니 조망이 좀 될 것 같습니다.
좌측으로 반야봉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우측 뾰족한 게 널라리봉.
여기서 좀 더 진행을 하자. 그러면 이름도 재미있는 ‘날라리봉’1501m이다. 어감이 좀 좋지 않았나? 공원관리공단에서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 삼 개 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1990년대 초 삼도봉으로 ‘개명’을 했다. 실은 이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낫날봉’이었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되었던 것인데 애꿎게 이름만 나무란 꼴이다.
여기서 팁 하나 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세 개의 삼도봉이 있다. 그 셋 중 하나가 이 삼도봉이며 다른 하나는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등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초점산1249.1m이라는 이명을 가진 봉우리이고, 마지막 하나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바로 옆의 삼도봉1177.7m이다.
이 삼도봉에서 남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원스럽게 뻗은 줄기에 불무장등 능선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반야봉이 지척이므로 수고스럽지만 잠시 반야봉1732.1m으로 오른다. 왕복 2km 정도의 거리이므로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다. 반야낙조는 또 지리10경 중 하나다. 여기서 지리의 낙조를 바라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자랑거리다.
- 졸저 전게서 64쪽
그 우측이 칠불사로 내려가는 토끼봉.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중앙에 천왕봉과 촛대봉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종석대와 중앙의 노고단.
멀리 횡천지맥과 가까이는 불무장등 능선..
앞줄 가운데 움푹 들어간 것이 당재.
이 조망바위부터 또 우회구간이 시작됩니다.
08:03
바위를 내려와 편하게 걷습니다.
그러고는 문바위등으로 올라섭니다.
정면으로 드디어 왕시루봉이 보이는군요.
그 우측으로 멀리 섬진강이 보이고 그 뒤가 오산입니다.
우측으로는 형제봉 능선이 내려오고 있고.....
바로 앞이 복호등1026.4m.
그 뒷줄이 형제봉 능선의 밤재와 형제봉907.6m.
그 아래 뾰족한 월령봉819.5m도 확실합니다.
우측의 종석대와 좌측의 원사봉이 뾰족합니다.
종석대와 노고단.
노고단과 반야봉.
반야봉과 날라리봉은 아까 본 그림과 거의 같고.....
멀리 지리 남부능선과 삼신봉을 보는 시야는 고작....
여기서 빵 한 쪽 먹고 가려는데 말벌이 계속 주위를 맴돕니다.
녀석과 싸워봤자 이득될 것 없고....
현장을 벗어나기로 합니다.
15분 정도 머무르다 정상 바로 아래를 돌아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로프도 없거니와 있어도 아까 다친 부위 때문에 힘도 주지 못할 것이니 바위틈과 나뭇가지들을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08:29
지도 #2의 '마'의 곳입니다.
등로는 직진을 하는 길과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 등으로 나뉩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직진하는 길은 능선을 따라 가는 마루금길.
그리고 우측 길은 우회하는 길이긴 한데 직진하는 오리지널 마루금길과는 달리 왜 그쪽으로 표지띠가 걸려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
암봉 바위 구간을 우회하는 것도 아닌데....
혹시?
능선 길을 버리고 우횟길을 따릅니다.
초입은 이렇게 괜찮지만 이내 산죽이 덮혀 있고 길도 희미합니다.
"다시 돌아갈까?"
그러기엔 너무 많이 왔고...
길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내 표지띠는 언젠가 없어졌고....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합니다.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능선 방향인 좌측길을 찾습니다.
08:39
그런데 갑자기 물길이 보이더니!
혹시나 했었는데 ...
바로 싸리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야영을 즐기시던 분들이 찾던 곳으로 사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샘이었습니다.
호스까지 설치되어 있는 걸 보면.....
그런데 선답자의 글을 보면 여기서 주릉을 찾지 못해 알바를 하였다고 하던데....
그냥 흐름따라 바로 숲을 뚫고 나가니 바로 길이 보입니다.
08:44
그걸고는 다시 주릉에 붙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아무 것도 볼 게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한 장 찰칵.
08:55
그러고는 느진목재입니다.
우측 멀리 왕시루봉 전위봉이 고개를 삐쭉 내밀고.....
우측 문수사로 내려가는 길이 아주 명백합니다.
그러니 이 왕시루봉 능선에서 문수사로 가는 길은 이 느진목재 루트와 조금 이따 만날 왕시루봉 전위봉 루트 두 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왕시루봉 올라가는 길에 존경하는 배창랑 선생님을 뵙습니다.
너무 소원했습니다.
뵌 김에 메시지 하나 날립니다.
이제 왕시루봉까지 계속 오르막입니다.
09:17
1065.6봉은 그저 지도에 표기된 봉우리라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한 봉우리에서 다른 한 봉우리로 가려면 반드시 안부를 지나야 하는데 이 봉우리에서 왕시루봉으로 오르는 길은 밋밋해서 안부가 있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밋밋한 길을 바위 옆으로도 오르고....
그렇게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봉우리 하나가 보입니다.
진행은 좌측이지만 잠깐 올라갑니다.
09:45
지도 #2의 '사'봉입니다.
아!
지나온 길이 한눈에....
좌측이 종석대 가운데가 노고단 그리고 우측이 반야봉.
그러니 앞으로 달려오는 줄기가 왕실봉 ~ 질등 ~ 문바위등 ~ 느진목재 갈림봉 등이 차례로 보입니다.
그 우측으로는 불무장등, 날라리봉 그리고 토끼봉이....
그 우측으로 부자(형제)봉이니 벽소령, 영신봉이 명확한데 사진으로는.....
그 우측으로는 천왕봉까지.....
여기서 다시 삼거리로 내려오자면 우측의로 이렇게 명백한 길이 나옵니다.
아까 얘기했던 문수사 루트입니다.
이 방향으로 내려가거나 올라올수있는 길입니다.
지도 #3
09:52
삼거리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케른 한 기가 서 있고 표지띠 두어 장이 걸려 있습니다.
이곳이 이 부근에서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최고봉인 왕시루봉1240.2m입니다.
변변한 정상석은 물론 하다 못해 코팅된 안내판 하나 없습니다.
비탐구간이 겪어야 하는 수모受侮입니다.
문수보살의 법문을 받아들이고 그 가피력을 막아주는 신성스러운 봉우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니....
공단에서는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만큼은 재고해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단 직원들의 노고와 고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왕시루봉 능선 만큼은 위험한 곳도 없고 손 볼 곳도 그리 많지 않으므로 대승적 차원에서 길을 열어주심이...
더욱이 혹시나 반달곰과의 조우를 걱정하실 법도 하지만 녀석들과는 잘 합의가 되었으므로 그 걱정 또한 기우에 불과할 것입니다.
왕시루봉에서 직진하여,
잘 나 있는 초록색의 등로를 따르다 보면 우측 봉긋 솟은 무덤 같은 곳(1231.1m) 위에 3등급 삼각점(하동302)이 박혀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기준점 조서를 보면 이곳이 왕시리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라고 나와 있군요.
지금 지도와는 다른 게 불만입니다.
그래도 높이로 보나 봉우리로서의 위상으로 보나 1240.2봉을 왕시루봉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멋진 길입니다.
좌측으로 희미한 기길이 하나 보입니다.
10:05
아!
감탄사 연발입니다.
섬진강입니다.
바로 앞 좌측으로 1020.8봉으로 진행하여 봉애산611.7m으로 가서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목아재로 가는 능선이고......
그리고 가운데 줄이 화개단맥으로 중기마을 뒤로 촛대봉과 삼신고개 그리고 그 우측으로 법하마을로 넘어가는 작은재가 보입니다.
그러니 그 뒷줄이 지리남부능선으로 시루봉부터 시작하는 악양단맥이기도 하고....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형제봉과 신선봉을 찾을 수 있겠군요.
그러니 섬진강과 산줄기가 만나는 끝이 구재봉에서 내려가는 횡천지맥의 끝입니다.
그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천왕봉과 촛대봉.....
발목 높이의 초록색 풀위로 소나무며 전나무.....
10:14
그나저나 오늘의 클라이막스인 외국인선교사 마을은 어딥니까!
다행히 우측으로 선명하게 길이 하나 나오는군요.
지도를 드려다 보니 여기서 우틀해야 하는군요.
외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10:18
드디어 사진에서 보던 그 건물입니다.
교회로 쓰이던 건물이라죠?
이 집 우측으로는,
풀장이 있고......
안내글을 봅니다.
서구식 건물인데 북유럽에서도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에 건축학사적으로 상당히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랍니다.
그런데 사실 노고단과 이 왕시루봉의 기독교 유적지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죠.
순전히 환경문제 때문입니다.
제가 정리한 글에서 발췌해 봅니다.
지리산에는 외국인 선교사 휴양촌이 두 군데 있다. 하나가 노고단 대피소 바로 옆에 있는 것이고 두 번째가 왕시루봉1240.2m에 있는 것이다. 1961년 순천, 전주 등에서 활동을 하던 선교사들이 황폐화된 노고단의 휴양촌 대신에 이 왕시루봉에 휴양촌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풀장과 주거 시설 등 12동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에서 관리하고 있다. 왕시루봉은 이렇게 이 루트로 진행하거나 노고단 하부로 진행하는 방법 혹은 왕시루봉 옛길(KBS 송신소 옆)을 통과하여 10대 중 하나인 문수대를 지나 진행하는 방법 등이 있다.
노고단을 한 번 볼까? 노고단의 랜드마크는 아무래도 KBS 송신소 철탑이다. 예전에는 그 옆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그 훼손이 극심했다. 노고단 부근이 훼손되기 시작한 건 1922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총독부는 천연 보고인 지리산을 학술 목적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를 임의로 동경제국대학의 '지리산 연습림'이라는 이름으로 관리권을 넘긴다. 1905년 '가스라 - 태프트 밀약' 등을 거치면서 한층 가까워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일본은 선교 활동차 한국에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미국 남장로 교회)들로부터 한국의 풍토병을 피하기 위한 휴양촌 조성을 부탁받는다.
그들이 길지吉地로 선정한 곳이 지리산의 노고단 부근이었고 그들은 그때부터 중일전쟁의 시작과 신사참배와 기독교 교리의 충돌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1940년경까지 약 15년 동안 호텔과 주택, 수영장, 스키장 그리고 9홀 규모의 골프장 등 56동의 건축물이 지어졌으며 여기에는 한국인 직원 50여 명이 상주하며 관리하였다.
물론 이 건축 자재들은 지리산 일대에서 채취하고 벌채한 돌과 나무였음은 물론이다.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철수하고 해방이 되었으나 주민들이 내부시설물들을 떼어가기도 했고 1948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설물에 대한 소각 등으로 인근 삼림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다. 전투기의 폭격과 군시설물의 설치, 불법 도벌 등으로 훼손은 더 심해졌으나 1967년 12월 29일에 이르러서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복원과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건물들을 문화재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상당한 반발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지리산 왕시루봉은 1300m 정상부에 넓은 초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정상에서 전망하는 수려한 경관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2007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출입금지구간으로 지리산 반달곰의 중요서식지로 확인되어 있으며, 여러 희귀생물들이 분포되어 있는 지리산의 핵심 보존지역이다.
화엄사측은 “이미 2008년에 순천 성시화운동본부에서 왕시루봉 유적을 성역화해 기념박물관과 성지순례 등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비난여론으로 실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이번 문화재 지정 등을 통해 향후 성역화를 위한 기반으로 삼을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 지정이 되면 관리를 위해 상시 출입이 진행되고, 주변정비와 함께 향후 유적지 방문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출입하게 되면 지리산 생태계의 훼손은 심해 질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반면 찬성하는 입장인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보존연합 오정희 상임이사는,
이에 대해 화엄사 측은 “이미 성역화사업을 추진했던 기독교계의 전례로 보아 이를 믿을 수 없으며, 왕시루봉은 기독교 성역화를 넘어 인요한씨 개인의 가계(家系)의 성역화 사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별장’은 1962년 휴 린튼(한국명 인휴, 1926∼84) 선교사에 의해 건립, 현재 집 10채와 교회 1채, 창고 1채 등 총 12채가 남아 있다. 휴 린튼 선교사는 문화재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인요한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이사장의 아버지이다.
교회 건물 뒤로 돌아가니 관리인인 듯한 한 분이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인사를 하고 이 주변을 둘러 볼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물으니, "여기는 비탐 구간이니 들어올 수 없는데 어떻게 왔느냐? 안 된다."라는 대답입니다.
"어렵게 올라왔다. 혼자 왔으니 잠깐 둘러 보게 해달라. 이곳 보기 위해서 일부러 온 것이다."라고 하니 혼자 왔다는 말에 코스를 알려 줍니다.
그 관리인이 일러 준 대로 좁은 소로를 따라 올라 좌틀하니 숲속에서 한 채 한 채가 빗장을 풀듯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런 건물이 숨어 있더니.....
이런 것도 보이고......
건물 뒤로 가서 살펴보기도 합니다.
안에는 주방기구며 탁자 같은 게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문에는 시건장치와 관리인 명패도 붙어 있습니다.
건물들을 오가는 나무 다리는 썩은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듯 하지만,
그래도 외관은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깨어진 창문 안으로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북유럽식....
음.....
아홉 채 정도를 살피고 나가니 그 관리인께서는 이것 저것 얘기를 물어옵니다.
그러더니 아예 자신이 나서서 다시 안내를 하십니다.
깨끗이 정리된 교회 안도 보여 주시고.....
이 가옥 안에는,
철제 좌변기와 세면기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침대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물도 나오고.....
창문을 통하여 구례들녘과 오산까지 그대로 조망이 되고.....
그러니 가지고 있던 풍토병이니 뭐니가 안 나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문제는 이곳의 난방 구조입니다.
대부분 입식으로 되어있어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구조였었는데 화제의 위험성이 농후해 보였고 그 기름을 지어나르는 포터 역할을 하는 분들의 고단함이었습니다.
물론 세 달 일하면 삼 년 먹고 살 돈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이 집은 구들과 벽난로 겸용이었던 것이 신기하더군요.
사람이 그리웠던 이 관리인에게 제가 온 것은 어쩌면 말 상대로서 상당히 편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발목을 붙들린 격이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며 아쉬워 하는 그 분을 두고 혼자 내려간다는 게 좀 죄송스럽더군요.
제가 야영을 즐기는 사람같았으면 꼭 박배낭을 지고 올라갈 것 같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그곳에서단 하루라도 자고 싶은 마음 간절하던데....
좋은 친구 한 명 사귀었습니다.
꼭 왕시루봉을 다시 한 번 찾겠노라고 약속을 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11:11
정확하게 57분 동안 역사의 한 장을 더듬고 나왔습니다.
11:14
지도 #3의 '자'의 곳에 뽑혀진 정상석.
물론 제 자리도 아닌 곳에 박혀 있는 게 불만이라서 그랬나요?
마음 같아서는 이 정상석을 지고 올라가 제자리에 놓고도 싶었었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지나온 곳을 더듬어 봅니다.
11:17
서울대에서는 이렇게 환영해 주는데....
머지 않아 공단에서도 이런 안내판을 세워주시길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꼭꼭 닫아 놓았으니....
11:29
이곳이군요.
지도 #3의 '자'의 곳인데 직진을 하면 832.4봉을 경유하여 구례요양병원으로 내려가는 평범한 길인데 우틀하면 좀 더 색다른 정경을 볼 수 있다면서 적극 추천해 준 길이...
주저할 것 없이 우틀합니다.
이 길 역시 좋습니다.
공단 직원들의 노고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드디어 구례 시가지가 보이고.....
12:19
임도로 떨어집니다.
구례구역에서 출발하는 12:59 기차를 탈까하고 카카오 택시를 불러보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가고....
포기합니다.
12:23
낯 익은 마을.
여기서 지리산 둘레길에 접속합니다.
전에 이곳을 지나면서 왕시루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맞군요.
정말 살고 싶은 마을.....
12:38
구산제를 지납니다.
이 예쁜 꽃의 정체는?
보리밭인가요?
왕시루봉을 올려다 보고.....
12:49
19번 도로를 만납니다.
구례로 가는 버스도 이 시간대에는 없고...
토지면사무소 옆 슈퍼에서 포카리 스웨트 두 통을 한꺼번에 마십니다.
그래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군요.
캔 맥주 한 통을 더 들이부으니 조금 나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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