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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현오의 백두대간 꿰뚫어 보기

지리산에 이런 곳이! (계족산 ~ 천황봉 ~ 둥지리봉 ~ 자래봉 ~ 오산)

 

 

목적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은 "이번에 혹은 다음에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죠.

그만큼 모든 걸 주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루트 선택이니 소요 시간, 접근 방법 등을 나름대로 정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다만 시간과 비용이 문제일 따름이죠.

 

오늘은 혼자 하기에 무난한 루트를 선택합니다.

지리와 인접했으나 지리가 아닌 곳!

하지만 남부와 서부지리의 일정한 구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곳!

더불어 호남정맥의 일정 구간을 눈여겨 볼 수 있는 곳!

섬진강 건너의 계족산과 오산입니다.

그 마루금을 이어보니 원점 회귀는 아니지만 환종주 비슷하게 이어지는군요.

계족산 ~ 국시봉 ~ 천황봉 ~ 둥주리봉 ~ 자래봉 ~ 오산 등의 이음이 그것입니다.

관광 사찰이 된 사성암의 지명도야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으니 접근의 편리함도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영등포에서 22:56에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구럐구역으로 갑니다.

03:10

대기하고 있던 군내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로 이동을 하여 이;른 아침을 먹고 산행을 하려했는데....

문을 열었으리라 생각했던 터미널 앞의 도가니탕 식당의 불은 꺼져 있고....

하는 수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데워 먹습니다.

물 한 통 더 보충하고....

택시들도 영업을 마친 시간이라 그런지 전화도 안 받네요....

 

04:21

카카오 택시에서 한 대가 잡힙니다.

다행이군요.

간전농공단지 입구로 이동을 합니다.

오늘 시야가 확보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8. 6. 17. 일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간전농공단지 ~ 계족산 ~ 국시봉 ~ 매재갈림 ~ 천황봉 ~ 천황치 ~ 둥지리봉 ~ 오산 ~ 죽연마을

4. 산행거리 : 22.53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간전농공단지

 

04:40

 

 

계 족 산

3.43

06:22

102

10분 휴식

국 시 봉

2.51

07:50

88

매재 갈림

2.86

08:55

65

천 황 봉

1.93

09:53

58

15분 휴식

천 황 치

2.30

10:34

41

둥지리봉

1.32

11:40

64

10분 휴식

오 산

5.40

13:28

108

15분 휴식

죽연마을

2.78

14:06

38

 

22.53 km

09:26

08:36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04:35

택시(9,500원)계족산 등산로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있는 간전농공단지 부근에 내려줍니다.

들머리는 861번 도로 바로 옆에 있습니다.

등산안내도도 세워져 있고 표지띠도 몇 장 날리고 있으니 들머리를 찾는 데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04:40

그럼 오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아직 날이 다 밝은 것은 아니지만 랜턴 없이도 그럭저럭 진행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아!

멀리 삼신봉 부근에서 붉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저게 병풍바위의 모습인가요?

좌측의 보이지 않는 면이 병풍바위 일건데....

왕시루봉의 선교사 유적지 관리인인 민선생도 기상을 하셨을라나.....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지리산.....

오늘 아무래도 이런 지리의 모습을 보느라 시간을 다 빼앗길 것만 같습니다.

하긴 그러면 어떻습니까?

사실 그러려고 온 것인데.....

미세 먼진지 개스인지 그런 방행 요소만 없으면 오늘 하루 종일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여명을 느끼며 산을 걷는 즐거움!

꼭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비숫한 기분을 산울림의 김창완은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라고 표현했습니다.

04:50

산행 시작 10분이 지났지만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습니다.

발을 떼지 못하고 지리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 걸음을 떼는 대신 뒤만 돌아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왕시루봉에서 좌특으로 노고단 종석대....

그 종석대 아래로 연기암과 미타암의 불빛까지도 보이는군요.

하긴 절집의 아침은 다른 어느 곳보다 일찍 시작할 테니....

종석대에 있는 우번암의 아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닉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리바라기'로!

 

오늘 같은 열차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신 분들은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지금쯤은 상당한 거리를 움직였겠죠.

그분들의 설레는 감정을 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리의 할매산신은 분명 누구에게나 같은 너그러움을 주실 거니까.....

계족산에서 농공단지 까지의 거리가 3.3km....

구례군은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있는 곳의 지자체인 만큼 공단 행정을 눈여겨 봐서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들었으리라 기대합니다.

고도를 높이니 사진 우측으로 호남정맥의 도솔봉에서 가지를 친 밥봉 줄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진상으로 볼 때 좌측 중앙 방향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니 바로 앞으로는 간문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간문천이 호남정맥 북쪽 그 중에서도 밧내재 옆 597.3봉 ~ 마재 ~ 월출봉 ~ 도솔봉 ~ 밥봉에서 발원하는 물들을 모아 섬진강으로 배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은 이 간문천을 품고 있는 곳이 됩니다.

위 능선을 잇는 환종주도 고려해 봄직합니다.

참고도 #1

 

간전면은 구례군의 간방艮方 즉 남쪽에 있다고 하여 간전艮田이 된 것이라 하고.... 

원래는 문척면과 합면 된 상태였는데 1948년 분면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 면계가 바로 이 길이기도 하고.....

그 밥봉 줄기입니다.

05:00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지도 #1의 '가'의 곳인데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등로로 진입하게 되는군요.

예상과는 달리 등로 상태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잡풀들이 등로를 덮고 있으니.....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초입만 그렇지 바로 양호한 등로가 펼쳐집니다.

서서히 고도를 높입니다.

05:14

지도 #1의 '나'의 곳인 중평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우측 사면으로 진행을 하여,

05:18

우측으로 화정마을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지도 #의 '다'의 곳인 화정삼거리입니다.

널널한 길을 유유자적하게 걷습니다.

간문리 옆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섬진강(蟾津江)은 고운 모래가 많아 예전에는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다가 섬진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그 유래를 들어보면....

고려 때 왜구가 광양으로 침입하자 다압면 꽃나루에서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몰려나와 진을 치고 우는 바람에 왜구들이 도망쳤는데 이때부터 강 이름에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잘 못 전해진 말이죠?

 

우리말의 '달'은 '높다, 크다, 넓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達이 쓰이게 되었고 高가되었으며 달이라 하였으니 한자 月을 쓰게 된 것이죠.

그렇게 크고 넓은 곳에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城이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고.....

고구려 말의 달홀達忽이 그 예로 곧 達=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남금북정맥에서 발원하는 달천達川도 속리산이라는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는 뜻이니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고.....

 

한편 '달'을 발음이 비슷한 '닭'으로 받아 이를 한자 '鷄'로 쓴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예가 바로 계룡산이죠.

공주시에서는 '산의 능선이 닭의 볏을 쓴 용의 모양'이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우길 수 있는 이유가 됐습니다.

또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를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죠.

바로 태조가 도읍을 정하여 무학대사와 함께 신도안을 둘러 볼 때 이 산을 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에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즉 금닭이 알을 품고 있고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태라고 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도 하거니와 또 같은 맥락에서 풍수지리학에서는 산山을 용龍이라 보니 계룡산이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설說이 많다는 것은 다 그르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鷄'는 우리말 '달'을 나타낸 글자로 국어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섬진강을 보면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위 두꺼비와 관련해서 입니다.

저야 두꺼비하면 진로 소주를 생각해지만 예전 어른들은 두꺼비를 섬진강과 연관시키셨습니다.

위의 두꺼비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두치강豆恥江이 섬진강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죠.

그런데 두꺼비 蟾을 옥편에서 찾아보면 ①두꺼비라는 뜻 외에, 달月이라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달을 다른 말로 섬궁蟾宮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섬토蟾兎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 옥토끼와 금토끼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도교에서 토끼가 달에서 불사약을 만든다는 얘기도 하고, 게다가 토끼는 수컷이 없어도 달을 보면 새끼를 가질 수도 있고 그 새끼를 입으로 토吐해서 낳는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兎와 吐가 같은 발음이라는 것이죠.

이런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도 달(月, 蟾)나루(津)라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月보다는 蟾을 썼습니다.

원래 이름이 두치강豆恥江이었으니 豆는 頭이고 恥는 峙였을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곧 '높은 곳에 있는 고개'였으니 지리산이라는 높고 깊은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는 얘기죠.

이것을 한자가 들어오면서 月을 쓰다보니 蟾을 쓰게 되어 섬진강蟾津江이 되었고 이를 거꾸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두꺼비가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각설하고 지리를 봅니다.

중앙의 낙남정맥의 삼신봉 뒤로 해가 떠오르려나 봅니다.

그 좌측으로는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으로 국사봉과 밥봉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측으로는 호남정맥의 도솔봉(현지에서는 따리봉, 똬리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

05:41

그러다 보니 지도 #1의 '라'의 곳에서 중상봉이라는 이정표를 지납니다.

중상봉?

누가 지은 이름입니까?

구례군청 산림소득과 직원이 임의로 지은 겁니까?

이 경우는 다른겠지만 공무원 한 사람이 글자나 획수 하나 잘 못 놀리면 그걸로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국가에서 했다는 공신력 때문이죠.

그 파급력이란 일반인의 행위와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국사 교과서가 국정교과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어쨌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이름이 부르는 이에 따라 중상봉으로 호창呼唱될까 하는 염려됩니다.

함부로 지으면 곤란하죠.

국가지명위원회가 괜히 있는 겁니까?

호젓한 숲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화정재입니다.

구례군에서는 친절하게 이정표도 많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리산과 연관시켜 계족산을 홍보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느낌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05:53

별로 봉우리 같지도 않은 522.1봉울 지나니 좌측으로 바위가 보입니다.

훌륭한 조망터입니다.

아!

안타깝습니다.

중앙 좌측 밥봉.

그 밥봉은 그 원천인 우측의 호남정맥으로 갑니다.

국립지리정보원 발행의 지도와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이 차이가 있는 곳이죠?

호남정맥을 할 때 저 부근을 야간에 진행했기 때문에 주위를 살펴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상석은 고스란히 제 블로그에 남아 있습니다.

호남정맥의 저 도솔봉1153.2m을 이곳에서는 따리봉이라고 하여 그렇게 정상석을 박아 놓았으며 광양시 봉강면과 옥룡면 그리고 구례군 간전면의 삼면봉 역할을 하는 저 무명봉에는 도솔봉이라는 정상석이 박혀 있습니다.

위 참고도 #1의 '가'와 '나'의 곳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구별없이 현지의 정상석만 보고 부르는 이름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이름과는 분명히 구분하여 사용해야겠습니다.

이렇듯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의 직원 한명의 손끝이 이런 불편함을 야기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닌 지명에.....

 

그런 그렇고 이게 뭡니까!

잔뜩 기대를 했건만.....

좌측 하단의 흰 것은 논에 물을 대놓은 것!

우측 계족산을 넘어가면 호남정맥의 더 많은 것을 볼수 있겠죠.

계족산 정상의 모습입니다.

06:22

그 계족산을 오릅니다.

3.3km의 거리를 거의 두 시간이 걸렸군요.

구간의 난이도보다는 주위 조망을 살피느라 시간을 다 보낸 격입니다.

정말 멋진 구간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미세먼지.

지리산 둘레길을 할 때 오미 마을을 지나면서 이 부근을 찍은 사진입니다.

블로그에서 옮겨봅니다.

 

 그러고는 계족산.

한자로 鷄足山이라고 쓰니 말들이 많습니다.

닭발같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거나 혹은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 지네를 없애기 위해 닭을 풀어놨다 하여 계족산이라 불렸다고도 합니다.

 

송정마을 출발 후 2.9km에 닿았을 때 기둥하나로 세워진 오두막과 통나무벤치시설을 만난다. 섬진강 건너 유명사찰 사성암을 품고 있는 오산과 주변 산을 조망할 수 있다.

 

저 섬진강을 남원에서는 순자강鶉子江,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江,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江,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는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가까이 섬진강을 건너는 간전교가 보이고 강 건너 간문천이 섬진강으로 합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이 광양시 간전면이고 우측이 문척면이며 그 면계에 종긋 튀어나온 산. 계족산702.8m이다. 살펴보면 "구례의 옛 이름은 봉성이었다. 지금의 구례군지에 해당하는 봉섭읍지를 보면 계족산은 문척면과 간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서 석벽의 모습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 좌우로 나뉜 줄기가 닭의 발과 같은 고로 이름이 생겨났다.”고 적고 있다.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 계족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몇 있다. 아무래도 계족산이라고 하면 우리가 갑천(식장)지맥을 하면서 지났던 대전의 계족산424m이 대표적이다. 이 계족산의 유래를 보면 대전광역시 동쪽에 있으며,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 하여 계족산이라는 말도 있고, “지네가 많아 이를 퇴치하고자 닭을 풀어놨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들린다. 뭔가 꺼림칙하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리니까 말이다.

 

여기서 평소 필자가 존경하는 '도솔산인' 이영규 님으로부터 계족산 얘기를 들어보자.

 

계족산은 인도 동북부 비하르Bihar주에 있는 꿋꾸따빠다산屈屈晫播陁山Kukkutapada-giri을 당나라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서 계족산으로 번역을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계족산은 마하존자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받은 가사를 미래에 오실 미륵불에 전하기 위해 이 산의 바위틈에 들어가 선을 행하면서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산이다.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그러니 계족산의 닭발 모양을 닮은 것이라는 뜻은 원래의 말과 무관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위와 같은 뜻을 알고는 사용하여야 할 것 같다. 즉 우리나라의 계족산은 이런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 반드시 산의 생김새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참고로 범어梵語로 우리말의 ''giri '지리'란 발음이라는 것이 좀 심상치 않다. 가야국 시절 칠불사의 허황후의 설화나 범왕리라는 지명이 불교남방전래설과 맞물려 남의 얘기로 들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졸고 '현오와 걷는 지리산 둘레길' 초고 중에서

 

그런데 실제 지리라는 말은 ............

백두대간의 시작은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1915m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은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 등이라고도 했다. 이들 중 두류산(頭流山)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해석해 보면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산이라는 뜻이다. 즉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이 지리산까지의 이음이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이 두류산이라는 이름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이해했다. 사실 지리산을 이 산을 타다보면 지루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억지 얘기도 가끔은 등장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라는 의미이다.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 의 형태였던 것이다. 두르두류로 변천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갖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두르드르드리디리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갖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지루한 산’, ‘지혜로워 지는 산이라는 말은 삼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2 쪽

 

이렇듯 지명은 땅과 지역의 특성을 제일 먼저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이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땅의 생김새와 장소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 지명을 붙인 당시의 사람들의 지리적 사고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당연히 자연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속성도 가미되어 있을 것이고, 역사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역사지리적인 성격도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명은 사용하는 그 당시 사회의 주체에 따라 이름이 변화하기도 하며 그 의미와 범위가 달라지기도 할 것입니다.

 

지리산智異山知異山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을까요?

그 유래를 찾기 위해서는 지리산 쌍계사로 가야 합니다.

그러고는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진감선사 대공탑비를 눈여겨 봐야하죠.

 

이 비는 광계3년인 8877월에 세워진 것으로 고운孤雲 최치원(857 ~ ? )이 글을 썼고 승환영이 각자刻字했습니다.

 

국보 제47호인 이 비에는 "(진감)선사는 처음 상주 노악산 장백사에 가서 주석하였다. 명의의 집에 환자가 많듯,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절간이 넓었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좁게 여겼다. 드디어 걸어서 강주康州의 지리산知異山에 이르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지리산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와 리를 따서 지리산이 되었다가 지금의 한자어에 따라 지리산智異山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억지로 만든 얘기라 보인다.

 

한편 책에 나온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가 처음이다. 사기의 통일신라 흥덕왕조에 '828년 당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사신 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오니 왕이 지리산地理山에 심게 하였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를 보면 삼국사기나 기타 문서의 기사에도 한자어는 地理山으로 되어 있어 발음은 같으나 한자어 표기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 이르러서야 智異山으로 오늘날과 같이 표기되게 된다. 그러니 지리산이라는 발음만큼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불렸으니 그때부터 지금의 지리산으로 불렸다고 보면 될 것이다.

 

  - 졸고 '현오와 걷는 지리산 둘레길' 초고 중에서

 

그러니 지리산을 지혜로워지는 산이니 뭐니 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을 그냥 무심코 따라하는 경솔함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계족산에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무덤 한 기가 있지만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진행은 직진하여 가파른 등로를 내려옵니다.

그러면 안부를 지나,

좌측으로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며 호남정맥이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좌측이 도솔봉이고 우측이 삼면봉.

여기서 부르는 이름으로는 각 따리봉과 도솔봉이죠.

참 힘듭니다.

똑 같은 이름으로 두 번 이야기를 하여야 하니.....

그 우측으로 봉은 밋밋하게 이어져 등주리봉896.8m으로 이어집니다.

그 정맥길은 형제봉을 지나 월출봉766.2m 부근에서 이 줄기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사실 597.3봉을 지나 매재로 가서 갈미봉 ~ 월출봉을 밟고 되돌아 나와야 정상적인 산행입니다.

하지만 혼자이기도 하거니와 일찍 귀가하여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노모와의 약속 때문에 이런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구례구역에 예매를 해 놓은 16:36 기차 시간 때문에 제게는 역부족이어서 수정했습니다.

따라서 다음에 진행할 매재 ~ 갈미봉 ~ 월출봉 ~ 호남정맥 ~ 도솔봉 ~ 밥봉 잇는 구간은 매재에서 597.3봉을 꼭 들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으므로 부득이 예전에 눈여겨 보아두었던 남도대교에서 올라 하천산 ~ 밥봉을 이어 매재를 날머리로 하여 17:00에 간전면 금산리에서 출발하는 군내버스를 타고 구례로 돌아와 귀가를 하면 딱 맞겠군요.

다음 구간이 정해졌습니다.

이제 730.7봉에 있는 삼각점을 보러 가야죠?

06:48

삼각점봉은 등로 좌측 바위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기서 반가운 분을 만납니다.

사진을 찍어 잽싸게 도요새님의 카톡으로 날립니다.

홍천에서 산행 중인 도요새님 역시 제 표지띠를 촬영하여 화답을 해주시는군요.

조금 전에 본 분위기.....

그런데 좌측으로 지리 남부능선의 형제봉과 신선봉이 보이는군요.

음...

대단합니다.

그 좌측으로 조금 더 움직이니 낙남정맥의 삼신봉이......

3등급 삼각점(하동309)을 확인합니다.

진행할 방향으로 ...

현지의 삽재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그것과 다른곳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진은 현지 이정표를 따랐습니다.

좌측으로 형제봉을 지나 갈미봉과 월출봉으로 이어지고....

그 앞쪽으로는 잠시 후 진행할 국시봉 등.....

또 그 좌측으로 도솔봉 등.....

밥봉능선.....

삼신봉과 지리남부능선.

앞은 밥봉 줄기.

아!

가운데 천왕봉이.....

서부지리의 모습.

삼각점봉을 내려와 급경사를 통과하는데 좌측 숲속으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납니다.

우측 사면을 치고 진행을 하니,

거대한 바위 옆으로 나옵니다.

이게 광대바위 입니다.

이따 멀리서 이 바위의 모습을 확인할수 있겠지만 이 광대는

 1.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

2.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

3.탈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탈.

이 아니라,

[명사] ‘얼굴1’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인 거 같습니다.

그것도 옆면을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그 커다란 바위의 조망터에서 주위를 봅니다.

좌측 도솔봉이나 밥봉 줄기는 이미 많이 봤으므로....

고도를 떨어뜨려 터골재와 국시봉490.3m(현지 이름)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봅니다.

곧 밟을 줄기들입니다.

오늘 일찍 내려가기는 틀린 거 같습니다.

이렇게 발목잡기를 해대는 데는 영 방법이 없습니다.

배바위 뒤로 봉우리 끝만 보이는 게 무등산 같습니다.

우측 오산도 머리 끝만 살짝 보이고.....

광대바위에서 내려가는 길은 된비알입니다.

구례군에서는 이렇게 안전시설을 해놓았지만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또 조망처가 나옵니다.

이곳이 바로 광대바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군요.

물론 건너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

이하 사진은 거의 같으므로 더 이상 올리진 않겠지만 실컷 감상합니다.

바위지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조망터가 넘쳐 흐릅니다.

둥지리봉.

이번에는 그 우측으로 솔봉 지나 자래봉까지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아까 삼각점봉인 730.7봉에서 중산리로 흘러내리는 능선.

07:26

그러다가 거의 삭아진 로프가 계속 나오면 주의를 요합니다.

지도 #1의 '마'의 곳에서 로프가 없는 곳으로 직진하는 길은 바로 알바입니다.

좌측으로 표지띠가 걸려 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표지띠를 따라 좌틀하여야 합니다.

만연히 직진했다가 20여 m 알바 합니다.

이후 된비알입니다.

그렇게 10여 분 내려와야 등로가 순해집니다.

07:41

그러고는 삼산리로 빠지는 삼산리 삼거리입니다.

지도 #1의 '바'의 곳입니다.

지도에 나오는 삼산재는 아마 이곳을 두고 하는 얘기 같습니다.

지도 #2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죠.

광대바위를 보고....

뒷 줄기의 우측으로는 오산 등.....

둥지리봉 등.....

천황치와 중산리 마을.....

07:50

지도의 490.8봉을 여기서는 국시봉이라고 적었습니다.

국사봉에서 실수로 '획' 하나 빠뜨린 거 아닌가요?

국시봉이라 특별하게 이름지을 이유가 없었던 거 같은데.....

07:59

그러고는 터골재가 나오며 바로 임도입니다.

터골재에서 본 둥지리봉.

08:14

잠시 녹음 짙은 숲으로 들어가 잡목에 시달리면 이내 등로는 다시 양호해 집니다.

430.9봉을 지나,

08:23

깊은 낙엽 속을 걸어,

08:28

497.3봉으로 오릅니다.

아주 편안한 길입니다. 

08:38

지도 #2의 '사'의 곳인 무명봉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도솔봉과 형제봉 등 호남정맥 라인을 봅니다.

밥봉.

08:48

밧내재를 통과하고.....

08:51

지도의 597.3봉을 여기서는 밧내재봉이라 이름 붙여 놓았습니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지만 편의상 이렇게 붙여놓은 겁니다.

그러나 이 봉우리보다는,

08:55

이 매재능선 삼거리(지도 #2의 '아'의 곳)가 더 중요한 곳이죠.

사실 일행만 있거나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으면 여기서 좌틀하여 매재 ~갈미봉656.4m ~ 월출봉766.2m으로 진행을 하여 월출재에서 호남정맥을 터치하고 왔을 겁니다.

아니 적어도 매재까지는 갔다왔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 마칠 시간이 불확실하여 그냥 지나친 게 몹시 아쉽습니다.

다음에 밥봉 종주할 때 다시 들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순천시 황전면을 만나게 되니 이제부터는 순천시 황전면과 구례군 문척면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09:04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이곳을 삽재라고 표기하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조금 더 진행하여야 삽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좌측으로 채석장 같은 곳이 살짝 보입니다.

09:13

532.9봉을 지납니다.

등로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집니다.

잡목의 성가심이 심해진다는 얘기죠.

09:19

#134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바로 고개 하나가 나옵니다.

지도 #2의 '차'의 곳인데 이곳에서는 여기를 삽재라 표기하여 놓았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597.3봉 부근의 고개를 삽재라고 하였는데.....

어쨌든 나무 의자가 있는 이곳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가기로 합니다.

산에서 먹는 빵은 정말이지 맛이 없습니다.

얼려온 물로 꾸역꾸역 먹고 15분 만에 일어납니다.

된비알을 치고 올라갑니다.

잡목 사이로 난 길을 찾아 힘들게 올라갑니다.

09:49

그러면 천황봉 정상석과 함께 안내글이 쓰인 봉우리에 오릅니다.

그런데 분명 삼각점이 있는 650.7봉이 천황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만큼 정상석이 엉뚱한 데 박혀 있다는 논란을 피하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09:53

구례군 이정표는 천황봉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삽재와 천황재 위주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이 천왕봉을 회룡 삼거리로 부르고 있군요.

정상석을 봅니다.

그런데 천황봉은 뭐고 천왕봉은 뭡니까?

천황봉이 일제 잔재라는데......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2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8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24권 기() 세심당기(洗心堂記)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12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니겠어. 녹색연합은 그때 계룡산 천황봉도 문제 삼았었지. 그런데 1914년 제작해 1928년 수정된 1 : 50,000 지형도를 보면 계룡산에는 연천봉742.9m’만 기록돼 있고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만약 지도가 생긴 1928년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지명이 붙여졌다면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천황봉 이전에는 상봉 및 상제봉으로 불렸기 때문에 일제잔재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공주시와 공주향토문화연구원의 반대의견에 따라 거부되었지. 더욱이 천황봉은 대한민국 정부가 1998817일자로 새로 고시한 지명이기도 해. 사실 지금도 계룡산 주봉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천황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상황이야.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천황봉 바로 옆 쌀개봉에서 가지를 치는 용수지맥의 첫 봉우리가 천왕봉608.6m인 점도 크게 한 몫을 거들었을 거야.”

.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행정구역상으로는 형제봉에서 충청북도를 만난다. 이제야 대간길이 도계역할을 하게 된다. 천왕봉에 이르는 대간길이 너무 뚜렷하다. 40분 정도 걸려 피앗재 삼거리를 지나게 된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고도가 갑자기 높아진다. 1시간 정도 더 고도를 높이면 대목리로 빠지는 삼거리가 나오며 공단에서 세워놓은 탐방로 안내판도 보인다. 한남금북정맥을 하는 대부분의 정맥꾼들이 이용하는 루트다. 대목리 천황사에서 여기까지는 약 2.7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제부터는 조릿대 군락지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른다. 그러다보면 좌측으로 목책이 보이고 출입금지 팻말이 보인다. 남한의 9정맥 중 하나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치는 현장이다. 산경표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 졸저 전게서 218쪽

 

바로 옆에 있는 바위 옆에서 3등급삼각점(하동 310)을 확인합니다.

우측으로 광대바위와 계족산이 보이고 그 뒤로 노고단과 성삼재 그리고 종석대 등이 명백합니다.

문척면 중산리의 골이 중산천을 따라 아주 길게 뻗어 있고.....

좌측으로는 전망대봉과 둥지리봉 그리고 솔봉에서 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명백하고.....

10:03

림선 삼거리를 지나,

10:09

케른 한 기가 서 있는 571.4봉입니다.

아주 주의를 요하는 곳이죠.

여기서는 이 봉우리를 찍고 다시 10m 정도를 되돌아 내려와야 합니다.

즉 571.4봉을 오르기 전 우측으로 진입을 하여야 하는 표지띠 등을 확인하고 올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렇지 않고 만연히 진행할 경우 대치리 건천마을로 떨어지는 대형 알바입니다.

천황치로 내려가는 초입은 좀 거칩니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 곧 이렇게 부드러운 등로가 지친 이를 안아줍니다.

중앙 맨 뒤 광대바위.

우리나라에서 산줄기 마일리지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자하 신경수님을 만납니다.

오늘은 또 어느 단맥에 들으셨는지.... 

10:34

천황치 바로 우측 아래에 민가가 있군요.

위급할 때에는 여기서 물 보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황치입니다.

산치마을과 황전의 대치리를 잇는 고개입니다.

여기서 된비알을 올라야 하는 만큼 한방에 오르기 위해 숨을 고릅니다. 

역시 초입부터 바로 로프가 나오는군요.

각오를 했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지나온 봉우리 즉 광대방위와 우측의 국시봉을 봅니다.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되니 이것도 별로 힘들게 없군요.

그저 열심히 오르다보니,

나무 계단이 나오는군요.

경사도 때문인가요?

곋나의 한 단 한 단의 높이가 상당합니다.

손으로 난간을 잡고 오릅니다.

이런 계단이 있을 경우 뒤로 펼쳐지는 풍광이 궁금합니다.

잠깐 뒤를 돌아봅니다.

역시나 대단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전 지난 온 천황봉과 우측의 571.4봉.

그 뒤로 갓거리봉 연봉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호남정맥을 한 번 더 해야 할 듯......

좌측으로 순천시 황전면 대치리의 정경입니다.

멀리 순천 - 완주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우측으로는 중앙에 천왕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앞줄의 왕시루봉과 그 좌측 뒤로 반야봉이 명백합니다.

11:29

일단 670봉으로 올라섭니다.

우측 앞으로 순천 ~ 완주 고속도로의 황전휴게소가 보이니 그 뒤가 별봉산614.4m입니다.

그 뒤의 연봉이 봉두산753.8m이고 그 뒤에 태안사가 있겠죠?

태안사하면 9산 선문의 동리산파인 혜철국사가 떠오릅니다.

그러고는 바로 백두대간을 그린 도선의 옥룡기를 떠올려야겠죠?

이 도선은 후에 연기라는 법명을 갖게 되는데 이에 대한 얘기와 우리나라의 고승에는 연기조사가 세 명 있다는 얘기 등은 다음에.........

바로 계곡 하나 건너 둥지리봉의 전망대가 보입니다.

그 우측으로 지리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낙남정맥과 지리남부능선.

그리고............

11:37

어서 가야죠.

차 시간 때문에....

지도 #2의 '자'입니다.

용서능선 삼거리라...

어쨌든 좌틀하면 용서마을이 나오긴 하겠군요.

바위 구간을 또 치고 올라갑니다.

사면을 돌아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는 둥지리봉입니다.

11:40

여기서 진행은 우측인데 어쨌든 올라가 봐야죠.

부부인지 연인인지 두 분이 지쳤는지 누워서 꼼짝을 안 합니다.

그건 그분들 사정이고 저는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봅니다.

참 대단한 곳입니다.

이런 곳을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이지 계족산 ~ 천황봉 ~ 둥지리봉 ~ 오산 루트는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강추할 수 있는 그런 구간이군요.

단 한 번도 제가 실망을 하는 시 · 공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군요.

뒤로 밥봉 능선과 호남정맥 구간.

뭐라 형용할 수 없습니다.

뵈도 봐도 싫증이 나지않고 오히려 감탄사만 연발하게 되니.....

.................

섬진강을 보다 이제는 보성강을 봅니다.

호남정맥의 한 구석에 있는 사자산 쪽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입니다.

철쭉으로 유명한 일림산과 제암산.....

전화를 받고 2등급삼각점(구례24)와 정상석을 보는 등 주위를 살피고 15분 정도 머무르다 자리를 뜹니다.

오늘 산행의 끝 오산이 보이고 그 사면에 있는 사성암도 봅니다.

좌측으로는 섬진강.

유목민 대장님 안녕하시죠?

가는 곳마다 계시는군요.

전망대를 돌아 솔봉을 향합니다.

터널을 지나,

좌측으로 구례구역이 보입니다.

그러니 다리 우측이 견두지맥(대한산경표에서는 이 지맥을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신산경표가 산경을 중시하여 그 지맥의 끝을 깃대봉 ~ 병방산으로 보는 게 아니고 물줄기를 중시하여 요강바위산 부근에서 구례의 진산인 봉성산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이 다 하게 한다는 점이 상이합니다.)이겠고.....

가운데 멀리 요천지맥의 고리봉이 보이고....

저 고리봉이 풍수지리상 남원을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하는 봉우리죠?

간벌작업을 한 솔봉.

그리고 구례읍과 그 뒤로는 광의면.

희미하지만 맨 뒤가 만복대 정도가 되겠군요.

천왕봉을 당겨보고......

중앙 왕시루봉. 

지도 #3

12:15

배바위 전망대는 그냥 통과합니다.

지도 #3 '차'의 배바위 삼거리를 지나는데 울산에서 오신 두 분이 일행을 잃어버리고 사성암 방향이 아닌 둥지리봉 방향으로 움직이시는군요.

얼른 방향을 제대로 잡아드리려 잠깐 함께 진행합니다.

12:30

임도를 따르다 솔봉으로 올라가는 곳까지 안내한 다음 저 먼저 떠납니다.

솔봉으로 오르는 길은 막혀 있고 따라서 사면치기로 진행하게 됩니다.

이제 왕시루봉이 바로 정면으로 보입니다.

좌측이 문수사가 있는 문수리로 오르는 곳.

파도리와 송정리가 명백하군요.

우측으로 구례요양원도 확인이 되고.....

왕시루봉 올라가는 곳 가운데 하연 데가 전원주택 짓는 곳.

거기서 지리산 둘레길을 만나게 되는데 지난 번 왕시루봉에서 하산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지리를 둘러보느라 정말 숨이 찹니다.

물론 탄사와 감탄 그리고 영탄의 숨가쁨입니다.

12:52

자래봉에는 '선바위 구름다리2'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13:01

오산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성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삼거리를 지나,

13:13

지도 #3의 '카'의 매봉을 오릅니다.

13:18

533.5봉에서 4등급 삼각점(구례422)을 확인하고,

오산 전망대가 수리 중이라 그 옆에서 조망을 합니다.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을 보며 서시지맥이 마무리되는 것도 관찰합니다.

월령봉과 형제봉 뒤로 노고단이 보이고 그 우측은 반야봉 좌측은 종석대입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오산 ~ 계족산 라인입니다!

왕시루봉과 우측 뒤로 삼신봉.

섬진강은 화개 쪽으로 흐르고.....

뒤를 돌아 솔봉과 우측의 둥지리봉도 보고.....

13:28

오산 정상석을 확인한 다음 하산 모드로 접어듭니다.

좌측으로 사성암에서 내려가는 도로가 보이고.....

구례읍내와 봉성산.

의상굴.

소원바위.

사성암도 공사중.

지리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지금 이 부근의 정경...

 

원 이름은 오산암鰲山庵이었다는 이 사성암은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인의 고승이 수행을 한 수도처라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고 합니다.

통일신라 후기 이래 고려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다고 전해집니다.

거기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불도를 닦고 있을 때 어머니가 병환으로 눕게되자 효성이 지극한 원효대사는 온갖 약을 다 구해드렸지만 별 차도가 없자 밤낮으로 부처님께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오고, 그 부처님은 원효에게 천국에 있는 복숭아를 구해드려야 한다.”고 하자 원효는 그길로 연곡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동생 혜공대사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혜공은 천도를 구해와 결국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해드렸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후 섬진강의 물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기가 어렵자 무슨 물소리가 이렇게 시끄럽냐.”고 하자 부처님께 불공을 올려 불력으로 물소리를 잔잔하게 만들어서 그때부터 섬진강을 잔수潺水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관광객들.....

여기서 죽연마을 까지 버스비를 3,000원 받는다고 하는군요.

중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요즘은 절집에서 돈을 더 밝히는 거 같습니다.

사이비 불자인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3,0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당연히 걸어내려 가야죠.

죽연마을을 따르고.....

설물도 보고.....

너덜겅의 돌로 만든 케른도 봅니다.

이제 거의 다 왔군요.

구례시가지를 보고,

14:06

등로 입구로 나오게 되면서 오늘 산행을 다 마무리 짓습니다.

구례구역으로 나가 단골이 된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 한 그릇 시켜놓고 깨끗하게 씻고는 옷을 갈아 입습니다.

짜장에 소주를 반주로 산행의 피로를 날립니다.

아름다운 산행이 폰으로 들려오는 잡음에 기분이 잡치기는 하지만  언제나 산이 있기에 새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것이겠죠.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