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걸었던 계족산에서 천황봉을 지나 둥지리봉 ~ 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암봉이 주는 시원한 조망감과 걷기에 무리없는 완만한 능선 그러다가 혹시나 산꾼이 지루해 할 걸 염려해서인지 갑자기 눈앞에 벌떡 서 있는 비록 해발 고도는 낮지만 고도편차로 인해 1000고지 넘는 봉우리처럼 느껴질 정도의 위압감을 주던 봉우리들.
거기에 더하여 남서부의 지리를 하나하나 짚어 볼 수 있는 여유로움.
그 모든 것이 지리의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을 저같은 '지리바라기'가 한꺼번에 느끼기에는 너무도 필요충분하였습니다.
그런 줄기에서 가깝게 바라보던 밥봉능선은 사실 제게는 미답지였습니다.
즉 호남정맥에서 가지를 쳐 섬진강으로 잠기는 그 밥봉능선은 가보지도 않았지만 호남정맥을 할 때 스쳤음직도 하건만 기억에는 전혀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호남정맥의 진행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호남의 줄기를 뛰어 다녔습니다.
1년 안에 호남정맥과 낙남정맥 등 두 개의 정맥을 한꺼번에 마치기로 서원을 세웠으니 산행에 밤낮이 없었던 것입니다.
매월 1, 3주에 호남정맥은 '그린 산악회'와 금요무박으로, 낙남정맥은 '코쁠소 산악회'와 토요 무박으로 진행을 하였으니 토요일 사당동으로 귀경을 해서는 바로 잠실로 가서 낙남정맥 행 버스에 올라야 했으니.....
그리고 2, 4주는 홀로 금남정맥과 금북정맥 그리고 한남정맥을 했으니 그 당시 저의 산행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업무에는 충실해야 하였으니 일 때문에 중간 중간에 구간을 빠뜨려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런 구간은 나중에 홀로 땜빵을 해야만 하였으니 그때 드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들머리와 날머리 등 접속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호남정맥의 한 구간 특히 '송치 ~ 성불사 갈림길' 구간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 구간을 업무때문에 놓치게 되자 홀로 땜빵을 하기가 난처해졌습니다.
접속 구간 문제였습니다.
부득이 생각해 낸 게 저 먼저 금요일 저녁에 송치에 도착하여 야간 산행으로 '송치 ~ 성불사 갈림길' 구간을 진행하면 대원들은 토요일 새벽에 도착하여 '성불사 갈림길 ~ 토끼재' 구간을 진행하는 팀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진행하여 그들과 함께 귀경할 수 있고 그러고는 다시 잠실로 가서 낙남정맥 행 버스에 오를수 있고.....
물론 진행한 거리는 부쩍 늘어나게는 됩니다.
호남정맥 44km에 낙남정맥 24km.
68km를 1무1박3일로 걸어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 나간 사람에게 그런 건 안중에도 없기 마련이니 이도 또한 문제될 거 없습니다.
그래서 '송치 ~ 성불사 갈림길' 구간과 그 다음 구간인 '성불사 갈림길 ~ 토끼재' 구간 중 '성불사 갈림길 ~ 한재' 구간은 깜깜이 산행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밥봉라인이 저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나아가 지난 구간 계족산부터 보았던 이 호남정맥 구간 역시 대부분 기억에 없는 구간으로 남게 되었을 수밖에.....
다만 형제봉이니 도솔봉이니 하는 봉우리들에 있는 정상석만 머릿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 나는 등로 정비하는 분들의 텐트와 흐트러진 물통.
그리고 예정에 없던 고슴도치와의 만남.
그곳에서 남부지리와 계족산에서 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을 보고 싶습니다.
깜깜이로 진행했던 호남정맥의 그 구간에서 지리를 보고 싶은 겁니다.
지도를 봅니다.
하천산 부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천산에서 그으면 밥봉을 지나 당연하게도 호남정맥의 도솔산에 접속이 됩니다.
지리산 주릉이나 남쪽의 줄기 어디서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최소 3개의 정맥 봉우리가 있습니다.
백운산과 억불봉 그리고 도솔봉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산행기를 찾아봅니다.
제 글은 어둠 속에서 쓴 것들이라 이 구간들은 들어 볼 필요도 없고....
그런데 따리봉이라는 봉우리가 주체가 되어 이 부근 산행기에 등장합니다.
제 글을 찾아보니 따리봉 정상석 얘기만 나올 뿐!
대부분의 글쓴이들은 도솔봉1153.2m과 따리봉의 구분 없이 그저 이곳에 박아둔 '따리봉' 정상석으로 인해 '따리봉'만 읊조릴 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와 이곳에서 부르는 봉우리 이름에 대한 상위점에 대해 분명히 언급을 했어야 했는데 부끄럽게도 '진혁진 개념도' 등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무시한결과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저 역시 정맥 산행기에서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군요.
아!
후에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내가 다시 보게 될 때 얼마나 부끄러운 내용들이 담겨 있는 걸 확인하게 될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내가 쓴 내용이 사실 관계에 다 부합하는 양 써댔으니 남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양심에 가책을느끼게 되고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이나 자료들을 함부러 퍼온 병폐의 산물입니다.
자신의 공부나 연구 부족의 산물이기도 하고......
가능한 한 인터넷을 뒤지기보다는 책을 통하여 지식을 넓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윤동주의 참회록이 떠오릅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영등포 발 구례구 행 22:54 야간 열차에서 잠자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수원을 지나자마자 가면假眠에 듭니다.
방송 안내 소리는 다 들으면서 가니 이제는 거의 입신 수준에 올라온 것 같군요.
03:09
구례구역에 내려 서 있는 버스에 올라 1,000원을 내고 구례터미널까지 이동합니다.
식당들은 다 문 닫았으니 편의점으로 가서 도시락 하나를 렌지에 데우고....
다시 터미널로 와서 양치를 하고 짐 정리를 끝냅니다.
구례구역에서 15:34 KTX를 예약해 두었으니 효곡에서 15:00 버스를 탄다는 것은 좀 위험합니다.
효곡에서 버스를 타고는 구례 터미널에서 구례구역 가는 버스나 택시를 갈아타야 하는데 그 시간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3:00 버스를 타야 한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효곡에서 택시를 불러 구례구역까지 간다는 것은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을 하지 않고....
예상 거리 약 21km를 8시간 내에 주파하여야 한다는 얘기!
조망이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일단 가보죠.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화개의 남도대교를 건너 하천산 들머리로 이동을 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8. 6. 21. 목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남도대교 ~ 하천산 ~ 밥봉 ~ 도솔봉 ~ (가)도솔봉 ~ 둥주리봉 ~ 형제봉 ~ 월출봉 ~ 갈미봉 ~ 매재
4. 산행거리 : 22.02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남도대교 |
|
04:27 |
|
|
하 천 산 |
3.74 |
05:50 |
83 |
|
밥 봉 |
3.08 |
07:02 |
72 |
|
도 솔 봉 |
4.34 |
08:46 |
104 |
|
(가)도솔봉 |
2.00 |
09:57 |
71 |
20분 휴식 |
형 제 봉 |
3.34 |
11:08 |
71 |
|
월 출 봉 |
3.15 |
12:11 |
63 |
|
매 재 |
2.37 |
12:46 |
35 |
|
계 |
22.02 km |
08:19 |
06:59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남도 대교의 들머리는 전에 눈여겨 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2018. 3. 10. 해밀에서 쫓비산 매화산행을 했을 때 먼저 내려와 악양을 실컷 노닐다가 이곳에서 해밀대원들을 태우고 오는 버스를 기다렸었죠.
버스를 기다리며 보게된 이정표.
그게 바로 하천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였습니다.
이 등산로 안내판을 보고,
또 이 이정표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이정표를 보면 우선은 등로에 대한 공포는 없어집니다.
제도권 등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지도를 살펴보니 이 들머리가 밥봉 ~ 도솔봉으로 이어져 호남정맥에 접속하는 것을 확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冒頭에서 이야기하였다시피 호남정맥을 할 때 그 구간들의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가 홀로 야간산행을 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오늘은 어떤 모습을 이 줄기가 보여줄까요?
치킨 한 마리 값에 소주 한 병 값을 얹어 택시비로 지불합니다.
04:27
김동리 선생의 '역마'를 머릿속으로 읽으며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옥화를 생각하며 발을 뗍니다.
성기의 그 다음 인생도 궁금하고...
안타까운 것은 작가 김동리 선생이 아니고 그 아들이 약간은 엉뚱한 행태를 보이고 있어 선생의 명성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구례군청에서 등로를 깨끗이 다듬어 놓으셨습니다.
'등로 정비'라고 하죠?
하천리의 중대천을 경계로 광양시와 구례군이 갈리는 만큼 이곳은 엄연히 구례군 간전면 관할입니다.
그러니 광양시가 아닌 구례군 산림소득과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이런 길을 정비되지 않은 숲으로 헤치고 올라가야 했다면?
아마 그냥 포기했을 겁니다.
이런 덩굴 숲을 헤치고 진행하는 그 무시무시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잠시 뒤를 돌아봅니다.
남도대교의 가로등과 좌측으로 지리산의 실루엣이 이 새벽에 홀로산행을 하는 산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04:31
아!
배선생님.
여지없이 다녀가셨군요.
알현 인사를 톡으로 날립니다.
"선생님을 밥봉 능선에서 뵙습니다. 주절주절..."
바로 댓글이 날아오는군요.
"부지러한 우리 현오님........"
오늘이 목요일이군요.
새마포 산악회 산행하는 날입니다.
산행 준비를 하시다가 제 톡을 받으셨습니다.
"토요일 홀대모' 모임 때 뵙기로 하고 산행에 임합니다.
고도가 높아지고 붉은 기운이 더 진하게 퍼지면서 더 먼 곳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04:38
바위들로 축성한 봉수대 같습니다.
온전하게 남아 있군요.
유목민님도 뵙고.....
04:52
안전시설도 완벽하게 되어 있어 된비알이긴 하지만 너무나 편한 등로.
04:54
그러면 이정표와 이동통신탑이 있는 오늘의 첫봉우리인 367봉입니다.
등로는 잠시 임도로 이어집니다.
지리 주릉이 명백하게 다가옵니다.
우측으로 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줄기와 바로 우측 앞의 지리남부능선의 형제봉에서 내려온 무명봉이 엄청 커 보입니다.
그 좌측으로 왕시루봉과 노고단.....
와!
정말 멋집니다.
좀 뿌옇긴 하지만 왕시루봉 뒤로 반야봉을 봅니다.
그 우측의 날라리봉과 토끼봉....
형제봉 우측으로 제석봉 지나 천왕봉....
05:18
어느 정도 고도는 높였으니 이제는 호젓함을 즐길 차례?
05:31
지도 #1의 '가' 하천리 거석마을로 빠지는 거석삼거리를 지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 같고...
05:39
그러고는 백운삼거리입니다.
지도 #1의 '나'의 곳이죠.
백운이라 하면 백운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루트를 따른다면 지난 번 둘레길을 할 때나 왕시루봉 산행을 할 때 보았던 삼능 구례연수원을 볼 수 있겠군요.
지난 번 둘레길을 하면서 이곳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인데 저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연수원입니다.
지추바위가 있는 갈림길이면 얼추 하천산에 다 온 거 같습니다.
05:49
하천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 오르기 바로 전에 잠깐 조망이 트입니다.
중앙 좌측 황장산에서 촛대봉으로 내려오고 있는 화개단맥 우측으로 반야봉이 서 있으니 그 우측이 날라리봉이군요.
그 우측 맨 뒤로 형제(부자)봉까지 확인이 되고.....
그러고는 하천산입니다.
바로 옆에서는 조망이 되지만 정작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서는 나무들로 조망이 막혀 있습니다.
정상석 뒤의 3등급 삼각점(하동 303)의 관리 상태기 이게 뭔지....
05:54
잠깐 좁게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나뭇잎 바로 위 멀리 천왕봉이......
그 우측으로는 삼신봉을 지나 거사봉으로 내려오는 줄기도 볼 수 있고.....
낙남정맥에 횡천지맥이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06:19
776봉입니다.
지도 #1의 '다'인데 이 봉우리가 연수원을 싸고 있는 봉우리이니 대강 어디쯤인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도 상으로는 북바위 ~ 801.2봉 ~ 518.3봉으로 해서 흥대리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삼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부근에 등로가 많다는 얘기도 됩니다.
이제 등로는 750m 정도를 유지 합니다.
그러니 밥봉까지는 편안하게 등로를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06:31
북바위재입니다.
재岾라고 해봤자 고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니 고개라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지도 #2
06:37
751.4봉은 그저 이런 곳.
계족산 아래 광대바위에서 볼 때 보이던 국사봉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그 방향으로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바위들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구간을 지나고.....
06:43
작은 석문도 지납니다.
06:50
등로 정비가 너무 잘 되어 있어 이슬이 내려도 바지 적실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죽은 조릿대가 안타깝다고 느껴질 지경이니.....
05:59
고도를 높입니다.
필요 없는 안전시설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편한 오름.
07:02
정상석도 없는 밥봉은 조망도 없는 답답한 곳입니다.
예전에는 분명 정상석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정상석은 '밤봉'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산꾼이 구례군 산림과에 전화를 해서 도대체 이 봉우리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고 하죠.
밥봉이냐 밤봉이냐!
도대체 어떤 이름이 맞냐는 거였죠.
담당공무원 曰 : 당연히 밥봉이죠.
산꾼 : 그런데 왜 정상석에는 밤봉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담공 : 그래요? 저희가 업자한테 작업지시를 내릴 때에는 분명 밥봉으로 했는데...
산꾼 : 그럼 확인도 안 하고 정상석을 설치하게 한 겁니까!
담공 : ..... 여하튼 빨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산꾼 :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담공 : 죄송합니다.
(장면을 바꾸어 ....)
담공 : 아니 지난 번에 설치한 정상석 중 밥봉에 설치한 정상석에는 밤봉이라고 되어 있다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업자 : 저희가 모형에 사진 찍어 보앴더니 오케이 하셔서 그대로 만들어 세운 것인데요?
(뒤적 뒤적 서류를 찾아보고는...)
담공 : 어쨌든 다른 건 괜찮은데 이게 잘못 되어서 민원이 들어왔어요. 다시 고치도록 하세요.
업자 : 그럼 견적을 다시 내야.....
이런 일이 있은 후 정상석이 이 밥봉에서 사라졌다는 얘기.
추측건대 열받은 담당공무원이나 혹은 불만인 업자 또는 비분강개한 산꾼들 중 누군가가 이 오기된 정상석을 뽑아 계곡 어딘가로 던져 버렸으니 그 이후로는 이런 민원이 생기지 않았다는 야그......
- 전설따라 삼천리..... 현오 작
07:10
밥봉을 빠져 나오자마자 우측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제가 그리던 모습입니다.
지난 번 지난 길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는 희미하지만 육안으로는 둥지리봉 뒤로 무등산이 명백하고 천황봉 우측으로는 모후산944m도 뾰족하게 보이며 그 정상의 천문대가 햇빛에 반짝입니다.
.................
그리고 그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할 매재가 보입니다.
07:16
이렇게 친절할 수가....
산죽까지 이렇게 다 쳐 놓으셨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
07:26
940.4봉을 지나고....
사실 멀리서 볼 때는 이 봉우리가 밥봉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석문을 통과하면서 바위 구간을 잠시 지납니다.
지도 #3
08:02
906.6봉 오르는 길.....
08:11
고도를 높입니다.
1001.5봉으로 갈라지는 곳은 사면치기로 진행을 하고....
좌측으로 떨어져 바위 구간을 통과하면,
08:28
좁은 고개로 빠져나가 좌측으로 바위를 기어오릅니다.
지나온 구간 좀 조망을 하고.....
지리 주릉과 서부능선을 봅니다.
노고단을 중심으로 형제봉 능선과 그 좌측의 차일봉 그리고 희미하지만 간미봉도 봅니다.
우측의 천왕봉이 아주 작게 보이고....
좌측의 저 봉우리가 국토지리정보원지도에는 무명봉으로 나와 있으나 여기서는 도솔봉이라 부르는 봉우리이고....
우측의 천황봉.
바로 아랫마을이 효곡리로군요.
이따 저곳에서 버스를 타야할 텐데....
13:00까지 내려갈 수 있으려나....
문제는 매재에 내려서 저기까지 걸어가는 일입니다.
재수 좋아 히치라도 되면 좋을 텐데....
드디어 하늘이 보이는 걸 보니 다 온 모양입니다.
08:42
드디어 호남정맥에 접속합니다.
남한에서는 두 번째로 긴 정맥입니다.
5년 전 이곳을 04:00정도 지나다 졸음을 못 참고 얼마 정도 자다 내려간 곳입니다.
그때도 지금 이 이정표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벤취는 물론 이렇게 너른 곳도 아니었을 겁니다.
이정표의 따리봉이라는 이름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도솔봉.
여기서는 따리봉이라 부르는 곳을 오르는 길은 이렇게 야자매트를 깔아 놓아 푹신한 쿠숀을 느낄 수 있습니다.
08:46
그러고는 전망대가 있는 도솔봉1153.2m에 오릅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광양시 옥룡면을 만납니다.
'옥룡玉龍'이라고 하니까 번뜩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옥룡기입니다.
도선국사
“형. 그러면 그 산줄기 얘기가 어디에 처음 나와?”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를 얘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인물이 바로 신라시대 도선(827~898) 국사야. 도선은 아마 신라 왕족 출신이라는 것 같지? 그런데 그는 어려서 출가하여 전국을 떠돌며 만행(卍行)을 하였다더군. 전남 광양 백계산에서 옥룡사를 열고 수행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유명한 얘기잖아. 수행 끝에 만들어진 ‘도선비기’는 고려창건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도 하고. 그런데 여기 중요한 얘기가 하나 있지. 나중에 다시 나올 건데 이 도선의 옥룡기에 우리나라 백두대간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는 거야. 바로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마쳤으니 그 형세가 물을 뿌리로, 나무를 줄기로 한 땅인지라...’하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야. 옥룡기의 이 대목은 고려시대에는 우필흥(생몰 미상)이, 조선시대에는 이유원(1814~1888)이 각 인용하기도 했지. 그걸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산줄기 즉 백두대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첫 기록’으로 보는 거야. 고려사에 나오는 대목이지. 즉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는 정립되지 않았지만 그 산줄기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는 얘기야. 나는 이를 태백산 즉 백두산과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결합에서 찾기도 해.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백두대간을 알기 전까지 우리 선조들은 그걸 조선산맥이라고 불렀지.”
“아! 1903년 이전의 산맥 체계!”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8쪽
위에서 얘기한 백계산505.6m은 광양의 진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유청(1095~11784)의 글이냐 아니면 한문준( ? ~ 1190)의 글이냐에 대해 논의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비문을 보면 그의 탄생 설화와 자새ㅔ하게 나옵니다.
즉 어려서 불경을에 통달하여 15세에 머리를 깎고 화엄사로 출가한 이야기며 문성왕 8년 그러니까 그가 20세가 되던 해 동리산에 5교9산의 동리산파를 연 혜철의 제자가 되어 수계를 받은 후, 태백산 등 여러 곳을 떠돌며 수행을 하다 이곳 즉 백계산의 옥룡사에 이르러 당우 등을 수리한 후 이곳에 머물렀다는 ....
그러다 72세로 입적할 때 까지 수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그 옥룡사는 고종 때 폐사가 되었다가 개인 문중으로 넘어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하는....
당시 국사가 비보를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 숲은 지금도 그 아름다움을 비할 데 없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도선이 찾아간 혜철국사의 동리산은 지금의 봉두산753.8m으로 봉두산의 태안사에는 지금도 '동리산 태안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바로 이 봉두산이 구례구역의 뒷산이고 도선국사가 처음 머리를 깎고 들어간 곳이 화엄사이며 그가 마지막 머무른 곳도 지리산이 바라 보이는 이 도솔봉 바로 아래의 백계산이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나아가 그가 머물며 수행했던 사성암도 바로 지난 주 진행한 오산에 있는 절이며 그가 연곡사의 세 연기조사 중의 하나라는 점도 관심을 끕니다.
어느 모로 보나 확실히 지리산이 문수보살의 성지인 것 만큼은 분명해집니다.
아까 미뤄뒀던 화엄사 얘기나 하죠.
말씀드린 대로 이 화엄사는 연곡사, 법계사와 같이 연기조사가 544년에 창건한 사찰입니다.
그런데 이 창건연대와 창건주 등과 관련하여 이론異論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544년 경에는 당시 화엄사가 있는 곳이 백제땅 구례현이었으니 관련 사적기에 신라 연호(가령 진흥왕 5년)를 쓸 수가 없다는 점, 백제의 승려보다 신라의 승려 가령 자장, 원효, 의상 등이 더 많이 거론된다는 점, 1978년 발견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에 '연기는 황룡사의 승려로서 754년 8월부터 화엄사경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시켰다.'는 내용 등을 들어 754년 설說(경덕왕13년)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544년 說은 중관대사 해안(1567 ~ ? )이 1636년에 쓴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이나 경암의 화엄사기 등 여러 사적기에 나온 기록에 근거한 사실입니다. 구례속지에도 '544년에 천축국 승려인 緣起祖師가 세웠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논거로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국가 시책에 따라 백제연호를 무시하고 모든 걸 신라 연호를 사용토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백제의 화엄사상은 신라의 그것보다 근 100년이나 앞섰으니 그 화엄사상을 흠모하다 백제의 화엄사상을 배우러 온 승려 가령 원효나 의상 등을 굳이 내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견으로는 여기에 몇 가지 사건을 더 보태봅니다. 즉 원효(617~686)가 화랑 장교 출신으로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추성楸城'이나 '성안城內의 말달린 평전'과 관련시켜야 하고 이는 지리동부능선의 영랑대와 소년대와도 관련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 원효가 화랑시절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노고단까지 왔었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효와는 여닯 살 연하이기는 하나 의상(625~702)은 그에게는 결의형제였습니다. 그런 의상이 당나라에서 화엄을 배우고는 부석사를 창건한 뒤 절친인 원효를 만났으나 유학파도 아닌 그가 이미 화엄에 대해서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원효가 화엄사에서 화엄을 배웠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강추强推로 의상도 화엄사로 와서는 실상을 파악하고는 장육전을 짓고 그 주위를 석각의 화엄경을 둘렀다고 봉성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상은 화엄사를 중창까지 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의상은 연기조사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깊게 들어왔으니 이것도 기회가 되면 다시 보기로 합니다. * 영랑永郞은 화랑의 우두머리
여기서 좀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기라는 법명을 가진 조사祖師가 세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鷰起와 緣起 그리고 煙起가 그들입니다. 보통 연기조사하면 緣起祖師라는 한자로 표기 됨을 알 수 있습니다. 鷰起 祖師와 緣起 祖師를 혼용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화엄사에 얽힌 설화를 들여다 봅니다. 연기조사는 인도에서 '鷰'을 타고 와서는 비구니가 된 어머니는 연곡사鷰谷寺에 모셔두고 자신은 화엄동천에 화엄사를 개창하였다는 겁니다.
참고 사진 연곡사 연기조사탑(동승탑)비 이때 이 '鷰'은 우리가 읽을 때 보통 '제비 연'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러니까 강희자전에 따르면 "남방에 사는 동물로 흡사 거북같고 이마에 외뿔이 달렸으며 날개가 있어 능히 날기도 하며 육지와 바다에서 서식한다."고 되어 있어 일반적인 제비와는 사뭇 다른 동물. 그러니까 거의 '상상 속의 동물'로 보여집니다. 이 동물은 현재 귀부龜趺만 남겨져 있는 연곡사鷰谷寺의 연기조사탑을 보면 거북과는 다른 즉 위에서 묘사한 생김새의 '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스님이 천축국에서 '鷰'을 타고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하여 '鷰起 祖師'라 부른다는 겁니다. 이 스님이 화엄사를 창건한 해에 이 법계사를 함께 지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緣起는 의상대사(625~702)를 말하며 煙起는 백두대간 얘기를 할 때 나오는 옥룡기의 도선국사(827~898)의 별호를 말합니다. 그러니 이 화엄사나 법계사의 건립 연대에 비추어 볼 때 의상대사 즉 緣起祖師가 이들 사찰을 건립하였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緣起祖師를 고집하는 분들은 이러한 연유로 화엄사의 창건 연대를 7세기로 봐야한다고 우기기까지 한다고 하는군요.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우리가 일부러 우리 역사를 폄훼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연기조사煙起祖師'가 창건했다고 씌어져 있기는 하지만 '當更考 즉 '다시 고찰해야 한다.'고 부기하였습니다. 어쨌든 이 鷰起 祖師는 천축국天竺國(인도)인이라는 얘기가 되며 그렇다면 이것이 불교남방전래설의 한 근거가 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불교남방전래설은 하동의 칠불사에 얽힌 허황후와 일곱 왕자의 설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 졸고 '현오와 걷는 지리산 둘레길' 초고 중에서
참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지리산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문제를 하나 풀어야겠습니다.
따리봉과 도솔봉 문제입니다.
도대체 이 따리봉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따리봉의 '따리'가 뱃길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라고 하는데 이 봉우리가 이 따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산 이름을 얘기할 때 제가 가장 경계하는 내용이 바로 " ~을 닮아서 ~라 이름했다."라는 겁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백운산 바로 좌측에 도솔봉이 위치하고 있고 이 도솔봉 아래 백계산과 옥룡사가 나와 있을 정도로 도솔산(봉)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산인 것입니다.
부근의 대장산이라는 것이 별 거 있겠습니까?
수려하고 큰 산이면 대장이죠.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을 만큼 큰 산이라면 이 부근의 대장산인데 도솔봉은 나와 있지만 따리봉이란 이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선의 군현지도를 중심으로 새로 측량한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를 봅니다.
1930년 대 이전에 제작된 이 지도에도 한재 좌측에 분명히 이 봉우리가 도솔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고는 중간에 다른 이름으로 바꾼 어떤 사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따리봉이라니.....
아까 구례군청 '밥봉사건'은 사실 이런 무모함에 비하면 애교 정도로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영진지도에도 도솔봉으로 나와 있는 이 도솔봉을 유감스럽게도 '사람과 산' 호남정맥 종주 지도에는 따리봉으로 표기되어 있고 '김형수 산행기 555'와 동아지도에는 '또아리봉'으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누가봐도 또아리봉과 따리봉은 같은 이름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솔봉이 따리봉과는 도대체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언제 지명위원회를 열어 이렇게 개명을 해놓기라도 한 것입니까?
아무래도 이정표를 보면 구례군 작픔인 거 같은데.....
부언하거니와 백운산은 '밝'사상에 근거하여 신성함을 나타내주는 산이라면 도솔봉은 예전 불교가 나라를 지배하던 신라나 고려 시대때 지어진 이름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 중의 봉우리라는 말도 되는 봉우리를 뜻합니다.
전라남도 광양시 북부의 옥룡면과 구례군 간전면 경계에 있는 산봉우리이다(고도:1,153m). 백운산 줄기의 북서쪽 봉우리로 서쪽의 형제봉으로 산맥이 이어져 광양시의 북부 고지대를 형성한다. 광양서천에 합류하는 봉강천과 광양동천이 발원해 광양시의 남쪽으로 흐른다. 『여지도서』(광양)에 "도솔산은 계족산에서 뻗어 나오며,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를 이룬다. 관아의 북쪽 30리에 있다."하여 처음 기록이 등장한다. 『광양현읍지』 등 대부분의 지리지에 현의 주맥(主脈)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계족산과 이어지는 산으로 인식하였다. 『조선지지자료』의 답곡리에 도솔봉으로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에 현북쪽 읍봉과 계족산 사이에 도솔산이 묘사되어 있는 등 대부분의 조선 후기 고지도에 도솔산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백운산 북서쪽으로 한치를 지나 도솔봉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산에서 백운산 지맥의 봉우리로 개념이 바뀐 것으로 파악된다.
-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국토지리정보원
광양시는 '마지막'은 뭐고 '끝자락'은 뭡니까!
이게 광양시 이정표인데 여기도 구례군의 이정표나 정상석을 따라 따리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여기서 도솔봉은 2km 더 가야한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나 영진지도에 따를 때 그 봉우리는 무명봉이올시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나라에서 발행한 지도의 명칭을 따라야 할 거 아닙니까!
지도 좀 봅시다!
성토할 때 성토하더라도 조망은 해야겠죠.
좌측 제일 높은 봉이 백운산1228m.
억불봉은 가려서 보이지 않고 그 우측으로 뚝 떨어진 봉우리가 노랭이봉800.3m.
그 뒤로 멀리 바다 건너 보이는 게 남해의 망운산784.9m이군요.
바로 아래 마을이 옥룡사지가있는 옥룡면 논실마을.
백계산과 그 우측 뒤가 바로 광양시내로군요.
저 뒷줄기가 바로 여수지맥 줄기겠고.....
저 봉우리가 문제의 봉우리로 여기서는 도솔봉이라 우기는 봉이로군요.
광양시 옥룡면과 봉강면의 면계 역할을 하는 봉우리이긴한데.....
그 봉우리로 가는 도중에 참새미재 부근에 헬기장이 보이고 그 봉 우측으로도 신산으로 내려가는 줄기가 보이기는 합니다.
그 우측 뒤로는 천황봉이 보이고....
천황봉 우측 뒤가 둥지리봉 ~ 오산 줄기.
앞 쪽 우측 능선이 광대바위 ~ 계족산 줄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시장기가 오는군요.
싸가지고 온 고로케 두 개에 지난 번 마시다 남은 공부가주 두 잔을 홀짝합니다.
20분 정도 머무르다 자리를 뜹니다.
효곡천 발원지....
계족산이 무척이나 낮아 보이는군요.
좌측 하단 섬진강.
우측 상단 뒤로 종석대에서 내려가는 차일봉 라인.
그 앞줄이 형제봉 라인.
지나온 밥봉과 하천산 라인.
저 가짜 도솔봉을 향하여!
천왕봉.
좌측이 지나온 도솔봉.
굳건하게 따리봉을 고수하는 이정표.
09:21
논실로 떨어지는 참새미재입니다.
그냥 참샘고개였던 게 이상하게 변한 거 같습니다.
저 파란 통은 아마 고로쇠 수액을 받던 집수통 같습니다.
길어온 수액을 저기에 부으면 호스를 따라 저 아래 집수탱크로 모이겠죠.
혹시나 하고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역시나 텅 비었습니다.
그곳의 이정표입니다.
다시 숲으로 들어갑니다.
도솔봉과 우측의 백운산.
09:26
981.2봉의 헬기장 통과.
09:33
지도 #3의 '라'의 곳을 지나고.....
고도를 높입니다.
09:41
잠시 뒤를 살피고.....
09:9
바위도 하나 보고....
천왕봉과 도솔봉을 보고....
그 우측의 노랭이봉.
밥봉.
엄밀하게는 940.4봉.
뒷 줄 중앙 우측이 천왕봉.
우측이 국사봉과 제비추리봉으로 내려가는 줄기.
아까 얘기한 봉강면과 옥룡면의 면계가 되는 줄기입니다.
09:57
도솔봉과 2km 떨어져 있다고 표기된 지도 #3의 '마'의 곳입니다.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봉우리입니다.
반면 영진지도에는 1123.4봉, '사람과 산' 지도와 동아지도에는 도솔봉으로 표기되어 있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광양시에서 설치한 정상석을 이렇게 보쌈을 해놓았을까요.
구례군에서 설치한 것은 설치한 기관 이름 '구례군'은 쪼임을 당한 채 서 있고.....
무슨 이유일까요.....
하여간 이름도 잘 짓습니다.
조금 있으면 '갈매기봉'도 나오겠군요.
이곳은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봉우리인데.....
계족산 ~ 오산 라인만 구경합니다.
10:07
1061.7봉을 지납니다.
등로는 예전과 같이 잡목으로 지나기가 걸리적 거립니다.
예전에 지날 때 공사 중이던 안전시설물들....
지도 #4
10:42
둥주리봉입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성불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입니다.
계곡이 무지 좋다고 하는데....
5년 전 이곳에서 그린 팀과 합류하여 진행하기로 했었는데 너무 추워서 그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 그냥 진행했던 기억이....
10:50
835.2봉을 지나는데 잡목이 하도 성가시게 굴어 중요한 포스트만 체크합니다.
10:55
지도 #4의 새재를 지납니다.
새재가 조령인지 아니면 예전의 구례와 광양 사이에 있어서 새재인지 그것도 아니면 억새의 일종인 새가 많이 자생하는 곳이어서 새재이지....
그런데여기는 백두대간의 조령과는 달리 이곳만큼은 아랫 마을이 조령리鳥嶺里여서 이 조령을 우리말로 표기하여서 새재로 붙인 거 같습니다.
성불사가 있는 봉강면 조령리 일대입니다.
좌측이 가짜 도솔봉1123.4m.
중앙 뒤가 진짜 도솔봉1153.2m.
11:08
그러고는 형제봉881.2m입니다.
그런데 여기도 정상석을 보쌈해 놓았습니다.
헬기가 날아와서 다 수거해 갈 태세인 거 같은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건너에 계단이 있는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가 월출산 줄기로군요.
넘어가 봅니다.
11:12
이곳이 사실 지도 #4의 '사'의 곳인데 여기에도 형제봉이라는 정상석이 있군요.
그렇다면 아까 형제봉에 있는 정상석이 이쪽으로 옮기려고 보쌈을 해놓은 건가요?
뭐가 뭔지....
도대체 왜들 이러시는 건지....
지자체나 산림청 심지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뭔가 힘 있는 민간 단체가 나서서 이런 걸 저지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관리나 이와 비슷한 사람들의 손끝 하나에 모든 사람들이 놀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까 보쌈 당한 정상석이 있는 오리지널 형제봉......
11:14
성불사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계족산을 따릅니다.
이곳에서의 계족산은 광대바위 옆의 계족산702.8m이 아니라 여수지맥 상의 계족산729.4m를 얘기합니다.
11:27
834봉을 지나고....
11:36
죽은 산죽 밭을 지나면,
11:45
782.4봉을 오르게 됩니다.
11:52
다시 등로 사정이 좋아지며 바닥은 부서지는 흙으로 푸석푸석한 기운을 느낍니다.
12:00
낡은 이정표를 지나면,
12:02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오릅니다.
성과 같은 구조물 을 지나면,
좌측으로 표지띠들이 무수하게 달려 있군요.
여기서 호남정맥과 아쉬운 이별을 나눕니다.
우리는 직진합니다.
12:11
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에 월출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봉이 순천시 황전면과 광양시 봉강면 그리고 구례군 간전면이 만나는 삼시봉三市峰입니다.
여기서 광양시를 버리고 이제부터는 순천시와 구례군의 시계를 따라 걷습니다.
여기서 단맥 하나가 가지를 치게 됩니다.
자하 신경수 선생은 이 단맥을 둥지리단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실제로 여기서 호남정맥과 헤어지게 되는 곳이죠.
등로 사정은 여전히 양호합니다.
12:21
달뜨기재를 지납니다.
월출봉을 풀어서 쓴 거 같은데...
산이름 월출의 월月은 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달達이어서 達 = 月이고, 월月은 곧 고高여서 높다는 뜻인데 저 매재 마을에서 보면 이 산이 그렇게 높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딸뜨기재라고 억지로 풀어 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달재 혹은 높은재로 쓰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그러고는 조금 오름을 탑니다.
12:26
구례군에서는 이렇게 하찮은 봉우리에도 정상석을 해놨습니다.
그러니 밥봉에 정상석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누군가 처단(?)했다는 강력한 의심을 품기에 너무도 충분합니다.
정면으로 지난 번 걸었던 매재삼거리가 보이는데 아무래도 저길 치고고 내려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12:43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865번 도로에 가까워졌습니다.
12:45
이내 매재마을이 보이고,
그러고는 순천시와 구례군의 경계인 매재입니다.
12:46
매재마을 표지석을 보고 오늘 산행을 여기서 접습니다.
남은 시간은 14분.
짐을 정리하고 도로를 따라 효곡리쪽으로 향합니다.
차 두 대를 흘려보내고...
무지 큰 덤프트럭이 옵니다.
아쉬운 대로 손을 듭니다.
예상 외로 정차를 하면서 타라고 하는군요.
차대가 높다보니 오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덕분에 차를 타고 내려가다보니 효곡제 옆에 버스가 서 있습니다.
간절면 까지 내려가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리다 차에 오릅니다.
버스는 널널하게 구례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인근 목욕탕에 가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 입습니다.
순천의 덤프기사님.
고맙습니다.
돈 많이 버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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