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하는 늑대 형님을 보내버린 후, 지리에 대한 집착이나 간절함이 없어진 거 같습니다.
그런 저를 탓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못 보았으니 제가 지리를 사랑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분들도 그다지 많은 거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예년 같았으면 산친구 나무지게님의 사진 촬영을 위해서 혹은 산수님이나 이한검님 홀대장님 그리고 에델님 같은 경우는 예정되었던 호림 스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반야를 찾자고 운이라도 띄었을 텐데.....
하긴 지리 산신령이 되어가고 계신 고남 형님도 지리에서 발을 떼신 느낌이니.....
어쨌든 순전한 눈가뭄을 핑계로 마음속의 산을 멀리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찾는 곳.
코로나-19 이후로 자주 찾게 되는 곳.
눈을 찾아 또 같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번은 총복습편으로 2박 3일로 날을 잡습니다.
가을이 아닌 겨울의 그곳은 어떨까?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합니다.
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가?
한가합니다.
06:10 비행기로 출발합니다.
07:20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셔틀버스로 렌터카 회사로 가서는 예약한 차를 타고 어리목으로 향합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매시 30분에 어리목 ~ 영실로 운행하는 버스가 출발을 하니 그 버스가 매시 07분경에는 어리목에 도착을 합니다.
그러니 차는 이곳에 주차를 하고 영실로 가서 영실 ~ 윗새오름 ~ 어리목 루트로 진행을 하여 하산해서는 이 어리목에서 차를 회수할 심산입니다.
어리목 주차장에서 영실매표소까지 운행하는 택시가 있는데 그 셔틀택시는 20,000원을 받으니 그 비용을 줄여야죠....
09:07이 되자 여지없이 240번 버스가 모습을 보입니다.
이 시간 대의 이 버스는 늘 만원.
하지만 거의 반 정도되는 승객이 차에서 내립니다.
어리목 코스를 택하는 분들입니다.
버스는 영실입구에서 좌틀하여 영실매표소까지 올라갑니다.
승객이 전부 내리는군요.
중문사거리로 가려는 몇 분이 차에 오르는군요.
입구에서 아이젠을 차고 걷습니다.
그동안 눈이 한두 번 더 왔나 봅니다.
눈에 익은 길이고 근 한 달 만에 오는 곳이니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영실 매점까지 오르는 길에 좌측으로 보이는 볼레 오름.
이따 병풍바위봉으로 오르다 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겠죠.
영실 매점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영실의 병풍바위가 눈에 들어오고....
먹은 게 없으니 일단은 매점에 들어가서 비빔밥을 하나 시켜서 먹습니다.
제주도는 어디 가서 먹든 음식 맛 걱정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맞아서 그런지 어느 곳이든 다 맛집입니다.
점심 대용으로 주먹밥 하나를 포장합니다.
매표소 앞에서 표지석 인증을 하고....
영실靈室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저 '신령스러운 곳'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명을 표기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그 시대, 그 지방에 사던 사람들의 문화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화석화된 것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 영실도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
지금의 이름으로 막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입니다.
존경하는 신정일 선생님을 소환해 봅니다.
선생님에 의하면 이 영실의 옛 이름은 영취靈鷲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해가 갑니다.
불교 지명설이죠.
인도를 떠올리고 고구려의 수리를 떠올립니다.
수리가 '높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기도 하거니와 곧 영수리가 영취가 되고 여기서 다시 영실로 바뀐 것이군요,
이곳의 생김새가 수리鷲가 날개를 펼친 형상이니 곧 이곳이 그 독수리가 사는 둥지室라는 의미와 상통하기도 하는군요.
이 매점 자리 부근에 존자암이라는 제주 불교의 발상지 격인 사찰이 있었고 그 사찰은 부처님 16 제자 중 한 사람인 발타리존자가 인도 영취산 같은 도량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지어진 그것이고....
아까 좌측으로 본 볼레 오름의 볼레는 보리수나무라고 하니 이를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불래佛來오름.
이는 곧 오백나한과 연결이 되니 부처가 열반한 뒤 제자 가섭이 부처의 설법을 정리하기 위해 소집한 회의 때 모였던 제자 500명을 따서 이곳도 500 나한이 모인 곳이라 하는 것이니 나아가 제주 368개의 오름도 그 오름의 반은 땅속에 묻혀 있고 나머지 반은 지상에 나와 있는 모습이라고 하니 과연 이곳의 나한과 관련 있는 불가적인 해석인가?
고대하던 눈을 밟습니다.
올해 마지막으로 밟는 눈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월요일 정도 설악산 쪽으로 눈이 예보가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다음 주 주말에는 설악산에 가서 눈을 밟아봐?
그래 봤자 네 번째 아이젠을 차는 셈이 되나?
영실 소나무 숲을 지나,
파란 하늘을 보며 진행합니다.
예보는 흐림인데.....
우측으로 나한상이 하나 둘 그 윤곽을 드러내고....
가섭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그러고는 도순천을 건넙니다.
지도를 보니 이 물이 강정마을 쪽으로 흘러가는군요.
그렇다면 흑돼지 막 퍼주는 집 옆 개울이 바로 이 물?
고도를 높입니다.
아!
드디어 병풍바위.
북설악의 병풍바위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좀 멀리 잡아봅니다.
병풍바위와 나한의 만남.
영실靈室은 죽은 사람의 영궤와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을 모셔놓은 곳이니 곧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신성스러운 의미로도 다가오겠습니다.
작은 골 하나하나를 유심히 봅니다.
물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빙폭의 흉내는 내고 있고....
사재비동산1399.9m.
이따 하산 코스에 있는 오름이죠.
나한의 모습들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고....
이 분은 왜 여기 계신고?
이 분이 가섭존자?
오백 나한을 주재하고 계십니다.
한라산의 고사목.
주로 구상나무가 죽은 것인가요?
오늘 처음 눈여겨본 분.
병풍바위봉 정상에 이르자 드디어 한라봉 반쪽을 엎어놓은 한라산 정상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산의 폭발이 있었던 분화구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백록담이라는 호수가 있고......
물론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제대로 없지만....
그 분화구 우측으로 차례대로 웃방애1747.0m, 방애 1699.6m, 알방애 1585m 등으로 오름 이름이 붙어 있군요.
사람들이 줄 지러 걷고 있는 방향의 봉우리가 바로 윗세오름 1740.5m이고...
한라산 정상부는 이렇게 평원에 가까운 곳.
가슴이 탁 트입니다.
키 작은 나무....
오름과 하늘.
한라산을 처음 찾던 날.
스물몇 살의 젊은이는 이 길을 따라 저 분화구의 남벽을 돌아 부스러지는 흙을 밟으며 정상에 올랐었는데......
그 젊은이가 지금은 벌써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들었군요.
붉은 깃발.
중국에 가면 유난히 저런 깃발이 많죠.
한라산에서는 눈이 많이 오게 되면 저 붉은 기가 등로를 안내해 주겠죠.
웃세족은 오름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올라온 계단과 좌측으로 윗세오름 대피소 방향으로 걷는 산객들.
그리고 좌측의 세 개의 방애오름.
올라온 병풍바위봉......
뭐 봉이라고 할 것도 아니지만....
............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 바다가 보이고....
품앗이 한 번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무늬가 공교롭게도 안경을 이마에 걸친 모습과 흡사하군요.
뒤에 보이는 오름이 민대가리 동산.
지평선.
웃세누운오름과 웃세족은오름 사이......
범섬 방향.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범섬이 보이지 않는군요.
웃세누운오름.
드디어 윗세오름 대피소가 보이는군요.
표지석 인증을 하고....
이 표지석 인증을 위하여 산객이 100여 m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벽분기점까지 갈 필요는 없고 ...
여기서 주먹밥을 먹고는 어리목으로 향합니다.
제 파트너 중에 러시아 출신의 마리나Marina라는 여성이 있는데 마침 페이스북에 올린 제 사진을 보고는 바로 메시지가 날아오는군요.
제주도에 있냐고...
"국장님 또 라라 생각하시겠네요?"
얼마 전 닥터 지바고 얘기를 해주었던 것까지 기억을 하는군요.
제가 겨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TSR을 타고 모스크바까지 가는 게 버킷 리스트 bucket list 중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고 했더니 그 지겨운 것을 왜 타냐고 되묻더군요.
어리목 길에 들면서 웃세누운오름과 우측의 조금 전 올랐던 전망대가 있는 웃세족은오름을 봅니다.
민대가리......
장구목과 정상부.....
만세동산....
꿈꾸었던 곳.....
너무 그립고 꼭 보고 싶었던 이 장면.
다행히 이 길은 지난번 그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군요.
역시 산은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웃세누운오름과 웃세족은오름.
라라의 테마를 듣습니다.
오늘은 튄 폴리오로 들을까요?
Somewhere my love.........
우측의 삭도를 TSR이라 생각하고 걷습니다.
노루오름, 붉은오름, 쳇망오름.....
사제비동산.
눈에 멈춘 TSR 열차.....
고사목.....
To Moscow....
숲으로 듭니다.
좁은 길을 걸어,
광령천을 건넙니다.
그러면 어리목 초소가 나오는데.....
그나저나 저 어승생1172m은 언제 갈고!
오늘은 꼭 가보려 했는데 꼭 내려오면 다음에!
산줄기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하련만......
또 다음을 기약하고 어리목으로 입구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회수하고 서귀포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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