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계획 대로라면 오늘이 3회 차 구간을 진행하는 날이어야 했는데 예기치 않은 눈과 비로 어쩔 수 없이 오늘이 거창군 환종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 되어버렸군요.
공교롭게도 산수 대장(이하 존칭 생략) 댁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산수대장과 날다람쥐는 참석이 어렵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길일을 미루자니 대원들이 너무 지루해하셔서 그냥 나머지 6명이 진행하기로 합니다.
오늘 구간은 백두대간 마을인 소사고개의 탑선마을에서 시작하여 수도산까지 약 27km 정도를 진행합니다.
차량은 승용차 두 대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구간 이동의 편의상 두 개조로 나눕니다.
A조는 이 소사고개를 출발하는 순방향으로 진행을 하고, B조는 날머리인 수도암으로 가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는 역방향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죠.
중간에 만나 차키를 교환하면 될 것이고.....
B조의 중책을 희생과 배려심으로 완전무장한 이한검 대장이 맡아주었습니다.
4. 2. 00:00
경부고속도로 죽전 간이버스정류장에서 럭키문, 김영순, 장산 등을 만나 이동하여 죽암휴게소에서 인자무적과 함께 온 이한검 대장을 만납니다.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는 무주로 이동하여 따뜻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는 A조는 소사고개로, B조 이한검 대장은 수도암으로 갑니다.
지도 #1
05:00
차는 바로 옆 창고 앞마당 한 구석에 세워두고....
저는 백두대간을 혼자 진행했는데 그때 하룻밤을 묵었던 곳이죠.
그때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고 출발한 시간과 똑같은 시간에 기념촬영을 합니다.
그러고는 오늘 구간을 시작합니다.
초재산을 오르면서 하늘을 봅니다.
밤하늘에 별이 무수히도 반짝이는 게 오늘 날씨는 무지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날도 길어지고...
생강나무에 물이 잘 올랐습니다.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면서 고도를 높입니다.
날은 이미 어느 정도 밝았고....
뒤를 돌아봅니다.
바로 앞이 삼봉덕유이고 우측 뒤가 향적봉입니다.
아직 눈이 있군요.
향적봉 하니 떠오르는 게 있군요.
우리가 걸으려 하는 거창 출신의 유학자입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남명 조식 (1501~1572) 선생의 제장이신 분이죠.
바로 갈천 임훈(1500~1584) 선생이신데 선생은 안음현 갈천동 그러니까 지금의 북상면 갈계리에서 태어나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북으로는 백두대간의 못봉과 대봉, 서쪽으로는 무룡산(불영봉)과 남덕유(당시는 황봉으로 불렀음) 그리고 동쪽으로는 호음산을 보았고 남으로는 지리산을 보면서 살았으니 선생이 늦게나마(53세에 불과하지만)에 등덕유산향적봉기를 썼다는 것만 해도 우리 같은 산꾼으로서는 큰 행운입니다.
산경표 최성우 본 -대한 광문회 간
산경표에는 봉황산 대목에 “自三峯至此皆德裕이라 하여 덕유삼봉부터 이 봉황산 즉 남덕유산까지는 다 덕유산이라 칭하듯 이 산행기에서 선생은 남덕유산을 봉황산으로 표기하였는데 이와 관련해 저로서는 흥분하였을 정도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즉 이렇듯 산경표에도 나와 있고 함양 분들로부터도 직접 들은 적인 있는 봉황산 이야기를 선생의 글에서 확인을 하였기 때문이죠.
대동여지도 -김정호
대동여지도는 그 당시를 풍미하던 산경표의 체계를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봉황산이라는 그 좋은 이름을 놔두고 남덕유산이라니....
구지도 (1920~1930)
사실 일제강점기 때의 지도를 봐도 이 봉황산을 덕유산이라 표기하였고,
구지도 (1920~1930)
지금의 제2 덕유산 1593.7m은 해발고도까지 표기되었고 향적봉(A, 1614.2m)은 아무 표기가 없던 것을 보면 지금의 향적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2덕유산을 향적봉이라고 본 거 같습니다.
잠깐 갈천 선생의 산행기를 보겠습니다.
위 산행기에는 향적봉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바, '향목香木은 처음대로 넝쿨로 자라다가 해가 오래될수록 곧게 자라서 성목이 되면 절반은 땅에 눕게 되고, 비록 노목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무의 키는 몇 길에 불과하고 크기도 몇 아름에 불과하다. 나무줄기와 잎은 무리 중에서 뛰어나 만년송 같다. (중략) 이 나무의 지엽枝葉에서는 왜 달리 향기가 없느냐고 물어본 즉 반드시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살게 될 때를 기다려야만 된다고 말을 하니 승려들은 온갖 것에 말들이 많아 가히 우습다.’고 평하였습니다.
향적봉香積峰의 유래는.....
주목을 향목香木 또는 적목積木이라 하며, 그는 향림이 즐비하게 있으므로 산봉우리 명칭을 향적봉이라 했다는 것이죠.
조선의 선비들은 산행 시 가이드 격인 지로승指路僧 심지어는 남여승藍輿僧의 도움을 받아 산행을 하였고 나아가 그들이 묵는 곳 또한 암자나 사찰이었으면서도 불교에 관한 것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종교에 대한 졸렬함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향적봉의 대피소 자리 정도에 향적암이 있었다고 하니 향적암이 있어 향적봉이 되었다면 이해가 가지면 향나무가 많아서 향적봉이 되었다는 얘기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향적산 혹은 향적봉은 사실 그곳에 가보면 향나무와는 별반 상관이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죠....
이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오죽했으면 정도전을 간신으로 폄하하면서도 그가 지은 불교 비판서 ≪불씨잡변≫은 5백 년 동안이나 우려먹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향적봉의 유래가 위와 같다니보다는 대부분의 우리나라의 산이름이 그러하듯 저는 이 향적봉의 이름 또한 불교지명설에서 찾고 싶습니다.
엉겅퀴님의 고견을 들어봅니다.
불교 대승경전 ≪유마경≫ 제10품『향적품』에 「아득히 먼 衆香세계가 있고 그곳에는 모든 것이 향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향기(妙香)로서 장엄삼매에 드는데 그곳의 부처님이 香積佛이다. 유마힐은 향적부처가 남긴 밥 한 그릇을 얻어다 수많은 대중들에게 대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도 절밥을 香飯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절 이름 향적사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불교가 민간에 파고들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을 것인데 불교식 이름을 짓는 것도 그 과정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향적사가 곧 불국토, 이상 세계라는 염원이 녹아 있다는 얘기도 되겠다.
세월이 흘러 향적사가 들어선 산을 향적산으로 부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고....
물론 향적봉의 향적암은 향나무에 착안하여 향적사로 이름 지었을 수도 있겠고, 또 천왕봉의 향적사는 聖母祀의 향화객들을 받다 보니 그렇게 알려졌을 수도 있지만, 향적사 자체는 불교의 고유용어이다.
유마경에 향적불의 밥을 얻어먹은 이는 해탈하기 전에는 멈출 수가 없다고 했으니, 천왕봉 아래에 향적사가 있고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에 곧 이른다는 상징성을 나타낸 것이다.
멀리 팔공산 부근에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군요.
대원들 모두 어린애들 같이 팔짝팔짝 뛰고....
오늘 무사산행을 기원합니다.
초점산은 초재산의 오기 일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번에 말씀드렸고....
즉 草岾山의 岾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일 경우에만 '점'으로 독음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조령(鳥嶺)이 새가 쉬어서 가는 고개라고?
석성 흔적을 내려오면 산신각이 있고 그러고는 조령 3 관문이다.조령 약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내려간다.
“형, 근데 이 조령을 새재라고 하잖아. 문경새재. 너무 높아서 날아가는 새도 쉬어서 가야 한다는…”
“사실 영남(嶺南) 지방이라고 할 때의 영(嶺)은 이 조령을 뜻하지. 그런데 이곳이 640m 정도 되니 그다지 높은 봉우리도 아니야. 그러니 새재를 조령(鳥嶺)이라고 하여 새 조(鳥)자를 쓴 건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어. 우리말에서 ‘땅 이름’을 얘기할 때 ‘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가령 사이(間), 새로운(新), 풀(草), 동쪽(太陽), 쇠(釜), 새(鳥) 등이 그 예야.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문경현 초재(草岾)라고 지명 표시를 해 놓았어. 이는 억새의 아종인 ‘새’가 많아 그렇게 불렸으리란 점을 암시하지. 따라서 이 고개는 누군가 새재를 한자로 옮기면서 鳥嶺으로 오역한 거라고 볼 수 있어. 따라서 이곳의 새재는 그냥 새고개이지 鳥嶺이라는 한자어로 표기하는 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보이네. 한편 문경새재는 문경과 괴산의 사이에 있다 하여 간(間)의 의미로 보는 설도 있어.”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68쪽
그러니 문경의 조령의 새재는 하늘재와 이화령의 사이(산경표 상으로는 하늘재의 옛 이름인 계립령鷄立嶺과 이화현伊火峴)에 있다거나 아니면 위와 같은 의미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 초재 역시 대덕산의 덕산재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에 있는 소사고개의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취지로 새재를 한자로 쓰다 보니 草岾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한 장 남깁니다.
구호는 오늘 좀이 쑤셔서 곧 미칠 지경까지 갈 산수 대장을 위해서 '산수!'로 합니다.
향긋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오늘 진행 루트를 가늠합니다.
바로 아래 보이는 마을이 대덕면 내감리.
능선 우측에서 가운데 움푹 파인 곳이 웅양면 한기리와 그 내감리를 잇는 감 주재, 그 뒷산이 비록 지맥 외 봉우리이지만 그래도 꼭 들러야 할 국사봉 876.0m.
우리는 국사봉을 우측으로 다시 백 back 해서 한기리로 들어와서는 자잘한 봉우리를 넘어 3번 도로가 지나는 배티고개로 가서는 우측의 봉산 902.1m을 넘어 우두령으로 떨어진 다음 거의 5km를 올라 지코봉 1236.5m과 수도산 1317m으로 오를 것입니다.
우두령이 580.9m 정도가 되니 650m 정도의 고도차를 극복하여야 하니 이 구간은 곧 '죽음의 구간'입니다.
수도산 좌측으로 가야산 1432.6m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다시 진행을 합니다.
올라오던 길을 자시 되돌아나가야죠.
지도 #1의 'A'의 곳입니다.
여기서 황강(수도) 지맥이 분기합니다.
오늘 우리는 지맥 산행이 아닌 거창군계를 따르는 산행을 하는 것이니 여기서 '국사봉'을 따르지 않고 조금 더 내려가,
지도 #1 'B'의 곳에서 좌측으로 틉니다.
마침 지금이 4월이니 망정이지 6월 이후로는 진입금지 일 정도로 잡목과 덩굴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제부터 김천시 대덕면과 거창군 고제면의 군계를 따라 걷습니다.
이런 곳은 길도 거의 없어 정확한 루트는 이런 삼각점이 주요 기능을 발휘합니다.
968.4봉에서 4등급삼각점(무풍431)을 확인합니다.
개활지로 잠깐 나왔다가 다시 밀림으로....
그러고는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지맥의 흐름을 봅니다.
중간 봉우리에서 가지를 친 황강지맥이 능선을 타고 내려와 우측 능선을 경유하여,
아래 전봇대가 서 있는 곳의 좌측을 따라 우측 봉우리의 능선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측 파인 곳으로 물이 흐르니 이 능선이 바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개울물은 우측으로 흘러가 소사고개에서 내려오는 황강의 기본 물줄기를 만나 합류되면서 황강이라는 커다란 물줄기가 되어 낙동강을 만나는 곳에서 이 산줄기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이 산줄기가 맥을 다하게 되는 것이죠.
대원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며 걷습니다.
아!
그런데....
2004. 5. 이곳을 지나면 붙여둔 제 표지띠를 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썩지를 않다니!
자연보호에 역행을 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지도 #2
그러고는 4등급삼각점(무풍430)이 있는 877.2봉입니다.
이 봉우리는 사면으로 워낙 길이 찰 나 있어서 진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입니다.
인증사진을 하나 남기고....
초재산....
기억에 남아 있는 철조망.....
아까 보았던 거창과 김천을 잇는,
감주재.....
이곳도 이제는 완연한 봄인가?
맥의 흐름은 직진을 하여야 하지만,
사실 지맥은 국사봉 전에서 능선을 넘어 좌측 한기리 능선을 넘어 3번 도로를 건너 다음 중앙 우측에 보이는 봉산902.1m을 지나 우두령을 지나 좌측 능선을 타고,
저 수도산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래도 이 지방 수호신 역할을 한 국사봉인데 안 들를 수가 없죠.
직진합니다.
그러고는 국사봉 정상에서 3등급삼각점(무풍332)을 확인하고,
정상 안내판도 봅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이 국사봉의 한자어 표기가 國士峰이라고 표기 되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당연히 國師峰이라고 표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國師는 불교의 승계를 얘기하거나 임금의 스승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우리 토속 신앙의 단군 왕검을 얘기하거나 환웅을 얘기하는 것이죠.
초재산.
이 국사봉은 내감마을을 통해 이 초재산과 등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삼도봉도 관측합니다.
기분들이 좋으십니다.
아직 멀었죠?
갑시다.
아까 본 그 삼거리에서 좌틀합니다.
민가가 가까워지다 보니 산은 야산이 되어 길을 찾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대나무와 울타리 등으로 진행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열녀비를 지나,
대나무 밭으로 들어선 다음,
퇴뫼식 석성의 흔적을 봅니다.
하성이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다 창작한 " ~ 카더라". "라 불린다.".
봄.
대나무밭.
그러고는 백학동 노인정에서 우리의 희망 이한검 대장을 만납니다.
가지고 온 막걸리는 이미 다 마셔버렸으니 해후주도 못하고....
차키를 받아 이한검 대장 먼저 출발합니다.
백학마을이 마을의 생김새가 학 모양이라서 그렇게 지어졌다고요?
생각건대 이 부근은 아까 국사봉에서 보듯 500m가 넘는 고원의 분지 형태입니다.
전라북도 운봉에 버금가는 곳입니다.
그렇듯 이 웅양면의 신촌리와 한기리는 국사봉 ~ 877.2봉 ~ 791.6봉 ~ 봉산 등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우리 옛말이 '둠, 두름'은 바로 이런 형태를 가진 지형을 일컬었습니다.
그런 말이 시대와 장소를 따라 변화를 하게 됩니다.
둠 > 두르 > 드르 > 디리 형식을 변화를 하니 사실 지리산도 여기서 변형이 된 말이며 두류산, 두밀, 더미 등도 다 이런 변형된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변한 말 중 두루는 두루미가 되기도 하고 이 두루미를 한자로 표기하가 보니까 鶴이 되었을 뿐입니다.
성남과 의왕을 잇는 고개인 하오고개도 이 변형에 불과하며 하오는 와우가 되어 예전 와우아파트 사건이 생기게 된 갓입니다.
나아가 여기서 한자어로 臥牛山으로 표기하다 보니 '누워 있는 소를 닮았다.'는 소설까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점심을 먹고 배티고개를 건넙니다.
김천시에서는 더말산으로 표기하였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봉산902.1m으로 표기되어 있는 이정목을 따릅니다.
오소리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닙니다.
소리를 쳐봐도 "너는 짖어라. 니는 내 갈길을 간다."는 식입니다.
중앙 멀리 초재산.
이렇게 분지 형태라는 것이고 이 산줄기들이 이렇게 에워싸고 있는 형태라는 것이죠.
항아....
오늘 산행을 하는 동안 이 표지띠를 최소 100개 정도는 봤습니다.
아까도 이 능선을 부드럽다 생각했는데 역시입니다.
우측 삼봉덕유에서 좌측 못봉, 백암봉 부근으로 흘러가는 백두대간.
사랑하는 이한검.
그 옆에 제 것을 기대어 봅니다.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는 장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은 지리산.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산을 장산이라 일러둡니다.
편의 시설을 따릅니다.
덕유라인....
초재산과 삼도봉....
조금 진행을 해야 합니다.
아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봉산.
중앙 능선을 따라 올라 첫 번 째 만나는 봉우리가 시코봉.
그리고 그 좌측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수도산.
더 자세히는 수도 서봉이죠.
봉산 정상에서 3등급 삼각점(무풍308)도 확인합니다.
기념 촬영 한 방 합니다.
이곳에서 우두령으로 내려가는 길을 된비알입니다.
우두령까지 거의 220m 정도 내려와야 합니다.
좀 쉬었다 올라갑니다.
헬기장을 지나,
철책을 만나고는,
지루하게 무조건 오르기만 합니다.
전에 오를 때에는 그저 그랬었던 거 같은데 왜 이리 힘이 드는 거야!
다 쓸데없는 뱃살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고도를 1,000m 이상으로 올립니다.
모든 게 다 귀찮아집니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몽롱해지고,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맥박도 제 멋대로이고....
아무래도 고산병(?)에서 오는 증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조금은 안 좋아 보이는 럭키문에게 물어봅니다.
"어떻습니까? 제 증상은 딱 이런데?"
"저도 그런데요. 1,100에서 오는 증상인데요. 참 희안하네요..."
대원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코봉은 무슨 뜻?
시코봉에 오르니 내일 진행할 단지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남강지맥의 매화산과 한우산까지 조망이 되고....
우측으로는 양각산 라인이 펼쳐지는군요.
이 지코산에서 웅양면을 버리고 이제는 가북면을 만나 거창군 가북면과 김천시 대덕면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양각산 라인과 황강지맥 사이로 좌가천을 발원시키고 이 좌가천은 우가천을 합수하여 가천이 되어 남하면 대하리 부근에서 황강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때 이 양각산 라인도 거기서 맥을 가라앉히게 됩니다.
이 우측으로 진행하는 이 라인이 도상거리 35.5km의 가천지맥(신산경표에서는 양각지맥)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능선이라 불렀습니다.
아!
가야산.
내일 우리는 우측의 단지봉으로 올라 중앙에 좌대곡령을 지나 가야산 바로 아래에 있는 두리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좌측이 수도서봉 그리고 중앙이 수도산 우측은 동봉.
서봉은 이리 올라도 되고,
이쪽에서 올라도 됩니다.
신선봉?
언제부터 신선봉인가요?
예전 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줄기는 황강 기맥으로 그리고 우측 다릿재 방향은 지워졌는데.....
아마 회천지맥이라 추정은 되는데 아마 어느 골수분자가 지운 거 같습니다.
보통은 금오지맥이라 써졌어야 할 거 같고....
그런데 신선봉이라는 이름은 아마 한현우님이 그 빌미를 제공해 주신 거 같습니다.
이 분도 '봉 따먹기'계에서는 이름을 날리시던 분인데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셔서....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열심히 산에 다니실 겁니다.
어쨌든 지금 이 서봉은 간경학에서는 무지 중요한 봉우리가 됩니다.
즉 신산경표에서는 금오지맥이라 불리는 산줄기가 분기를 하는데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죠.
위 그림에서 보듯 이 수도서봉 우측으로는 회천이 발원을 하게 되는데 아까 가천지맥에서 봤듯 이 수도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이 회천과 이 회천보다 상위등급의 강인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88.7km)을 다하여야 하고 그것이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이며 이는 그 3가지 유형 중 제1인 합수점의 원리에 해당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회천지맥의 염속봉산에서 가지가 하나 더 쳐 나가는데 그 사이에서 백천이 발원하고, 그 백천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강인 낙동강에 합수가 되고 그 합수점에서 이 산줄기는 맥을 다하게 되고 그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30km가 넘으니 이는 백천지맥(54.7km)이라 명명하게 되고....
그런데 이 백천지맥의 능밭재에서 분기하는 산줄기는 이와 성격을 좀 달리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에서 보듯 우측으로 흐르는 물들은 낙동강에 너무 인접해 있어 이 산줄기들이 너무 자잘하여 어느 것도 30km가 되질 않습니다.
산줄기의 3요소 중 산줄기의 도상거리 30km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고마운 산경표를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노릇.
좌측의 감천을 주목합니다.
사실 이 감천은 이 황강지맥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보다는 좌측의 백두대간과 더 친합니다.
그래서 감천지맥도 생기게 된 것이고....
이 능밭재에서 낙동강으로 가는 줄기를 따라가 봅니다.
다행히 33.9km가 되는군요.
이 감천의 주인은 감천지맥이기 때문에 이는 감천의 남쪽으로 흐르는 산줄기이므로 이를 감천남지맥이라 이름 붙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대한산경표 이론입니다.
어때요!
장산님.
이해가 가시죠?
오늘 구간은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겠군요.
산의 위용답게 삼각점도 1등급대삼각점(무풍11)입니다.
네 분 모두 행복하셨죠?
배가 홀쭉해졌습니다.
내일 우리가 내려갈 능선.
회천지맥의 삼방산.
우리는 수도암으로......
나무관세음보살....
이번 산행의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희생심과 배려심으로 돌돌 뭉친 이한검 대장.
너무 고마웠습니다.
용추민박 사모님이 빨리 안 내려오신다고 성화이십니다.
손만 씻고 자리에 앉습니다.
행복하셨죠?
건배 구호는?
네 "산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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