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2구간은 동학혁명과 이성계의 황산대첩 등 역사지리의 현장이었습니다.
역성혁명과 관련된 곳이라는 얘기죠.
원래 지리산 둘레길 공식 제3구간은 구인월 ~ 금계마을 구간입니다.
그런데 2구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구인월 ~ 장항마을 구간을 해버렸으니 이번 3구간은 11.7km로 거리가 확 줄었음은 물론 지리산 둘레길 답지 않게 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을 거 같은 우려감이 듭니다.
그럴까요?
지리산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죠.
즉 별 특이한 게 없을 것 같지만 옛 지리산 여행길로 많이 이용됐던 백무동과 추성동 그리고 우리가 황산에서 보았던 임천지맥 등이 등장하면서 그 루트를 이용했던 선인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는 곳을 걷게 된다는 것이죠.
특히 사림의 원조인 점필재 김종직의 산행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지명을 익힐 수 있고 시간 상 바로 좌측에 있는 삼봉산은 오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우측에 있는 백운산이나 금대봉에 올라 지리의 북쪽을 좌측 왕산이나 웅석봉부터 우측 바래봉과 덕두산까지 지리산을 full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이 구간이 갖는 자랑입니다.
지리산 줄기 전부 보기!
1. 매동마을에서 등구재 가는 길
등구재는 경상남도 함양과 전라북도 남원시를 경계하는 도계 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등구재입니다.
장항마을을 떠나 매동마을로 들어서서 산내면 중황리로 향하다 잠시 고개를 돌려 백련암과 꾀꼬리봉도 관찰합니다.
백련암은 선화사 지나 수성대 매점 있는 곳 콘크리트 포장에서 이정표만 본 곳이죠?
그러면서 옆 동료와 수다를 떨다 보면 서진암 가는 길이 나오는데 왕복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길인데 반해 그저 평범한 암자에 불과한 곳입니다.
그래서 국보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실상사의 선방禪房인 백장암까지 욕심을 내고 싶지만 그럴 경우 이 지선支線구간이 오늘 주루트가 되어 버립니다.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과감하게 서진암을 버리고 진행을 하다 보면,
상황마을과 중황마을의 다랭이논이 보이면서 정면으로는 등구재640m가 보이고 우측으로 백운산903.8m이 부드럽게 그 위용을 드러냅니다.
다락논이라고도 하는 다랭이논은 고단한 옛 지리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이푸가오Ifugao 지방의 계단식 논보다야 못하겠지만 상당한 규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18세기 이후 전쟁이나 전염병 그리고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대부분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의 가난한 농민들로 그들은 벼농사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이 있는 10˚ 내외의 경사 지역이 그들이 찾는 곳 1순위였습니다.
그러고는 돌로 논둑을 쌓았고 논면은 점토를 져다 날아와서 다져 넣었습니다.
이런 논들을 특히 '구들논'으로 부른다고 하죠?
그러다 보니 논 모양이 등고선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생기게 되는데 결국 농로와 수로 역시 그에 따라 같은 모양으로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산에서 내려오는 찬물이 농사에 부적합하므로 수로를 따라 고이거나 흐르는데 시간이 걸리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수온을 높여 냉해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혜의 산물입니다.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중황리에 다다릅니다.
중황마을은 개인적으로 지리를 바라보며 평생을 살 수 있을 만한 곳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하는 곳입니다.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함양군수로 있던 1472년 8월 14일 유호인, 조위 등과 함께 지리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예전 말로는 유람이었지만 그 유람이 산으로 들어오면 현대어로는 등산 아니겠습니까?
천왕봉 ~ 영신봉 등을 들르고는 백무동으로 하산하였습니다.
선생이 훌륭하게 4박 5일 일정의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할 때 지났던 루트가 바로 이 길입니다.
등구재를 넘어 오도재를 거쳐 함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이쯤 되면 조의제문 사건으로 35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탁영 김일손(1464~1498) 선생이 생각날 법도 합니다.
탁영 김일손은 1489년 4월 14일 정여창, 김형종 등과 함께 산행을 나섰습니다.
천령天嶺 그러니까 지금의 함양을 출발한 세 사람은 등구사에 도착합니다
"불룩하게 솟은 산의 형상이 거북 같은데 절이 그 등에 올라앉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된 축대가 우뚝한데 그 틈새에 깊숙한 구멍이 있었다.
석간수가 북쪽에서 그 속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우리는 동쪽 사찰에 묵었다."
14박 15일이라는 긴 일정을 소화한 산행이었습니다.
상황마을의 소류지를 지나고,
마지막 민가와 식당이 있는 곳을 지나 조금 거친 숨을 쏟아내면,
2. 등구재에서 백운산 올라서기
등구재登龜岾입니다.
"불룩하게 솟은 산의 형상이 거북같은데 절이 그 등에 올라앉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탁영 김일손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일제가 창지개명을 하여 登九岾라 표기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어쨌든 여기서 좌틀하면 삼봉산1186.7m(3.1km)으로 올라 임천지맥에 닿을 수 있고, 우틀하면 (1.2km)백운산903.8m ~ (1.1km) 금대봉851.5m ~ (0.7km)금대암으로 이어지는 루트입니다.
등구재에서 삼봉산은 3.1km이지만 등로가 조금 거칩니다.
이곳에서의 이정표의 중심은 금대암입니다.
하지만 등구재에서 금대암은 삼봉산과 비슷한 약 3km.
금대암까지 갈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백운산(30분 소요)은 조망이 조금 떨어지지만 금대봉(20분 소요) 가는 길에 있는 조망바위나 평탄한 금대봉을 가면,
삼봉산과 오도봉,
그 오도봉 우측의 오도재와 법화산 그리고 다랭이논을 보면서,
임천 건너 와불산臥佛山과 함양독바위라 불리는 독녀암獨女巖과 지리동부능선의 새봉 진주 독바위 그리고 좌측의 왕산과 필봉산과 웅석봉까지 조망할 수 있고....
* 와불산 조망.
그 와불산 바로 앞쪽으로 독녀암으로 불리는 '함양 독바위'가 명백한데 사진으로는 그저 뿌옇게만 보입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저 바위를 지나면서
"내 일찍이 산음(산청)을 오가며 이 바위를 바라보았는데, "고 하여 여러 봉우리와 함께 우뚝 솟아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였다." 고 하였죠?
"전하는 말에, 한 부인이 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혼자 살며 도를 닦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독녀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돌을 쌓아 놓은 것이 여태 남아 있었다."라고 하여 그 유래도 설명하였습니다.
저 동부능선에는 독바위가 하나 더 있죠?
'진주 독바위'라고....
악양 뒤편에 있는 지리남부능선에 있는 삼신산 옆의 독바위는 '하동 독바위'라고 부르고....
와불산은 말 그대로 누워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한 산인데 그 참모습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송전리의 견불사입니다.
마을로 치자면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는 동네가 바로 휴천면 문정리의 견불동이라고 하는데 제가 들렀을 때는 조망이 안 되는 날씨였고 주민들에 의하면 자신들도 제대로 못 봤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견불사니 견불동이니 하는 이름이 괜히 생긴 게 아니고 저 와불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다음 구간 걸을 벽송사 라인과 천왕봉, 지리주릉 그리고 국골과 지리 최대의 칠선계곡을 조망하면서,
창암산에서 오르는 창암능선을 제석봉까지 감상하고......
그 우측으로는 마천에서 백무동과 삼정으로 빠지는 덕전천의 산태골과 한신계곡을 보면서 주릉 상의 연하봉 ~ 화장봉 ~ 촛대봉 ~ 영신봉 ~ 칠선봉 ~ 덕평봉 ~ 벽소령 ~ 부자봉(형제)을 가늠하고,
지리북부능선의 삼정봉 라인을 보면서 능선 뒤로 펼쳐지는 지리서부능선의 만복대 ~ 정령치 ~ 고리봉 ~ 세걸산,
바래봉과 덕두산을 조망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매동마을에서 등구재까지 3.4km : 1시간 + @
등구재에서 금계마을까지 8.3km : 2시간 + @
등구재에서 이 조망터를 다녀오려면 ,
백운산은 1.2km에 35분 정도 소요.
금대봉은 백운산 1.2km에서 + 1km..... 20분 소요.
그러면 등구재에서 백운산 지나 조망터(약 2km)까지 왕복 2시간이면 족할 거 같습니다.
다만 난이도면에서 황산 같은 급오름이나 바위는 없으니 그 점은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아까 보셨죠?
오히려 상황마을에서 등구재 오르는 게 더 버겁습니다.
그렇다면 매동마을 ~ 등구재 ~ 금대봉(까지 간다고 해도) ~ 등구재 ~ 금계마을까지 11.7km + 4.4km = 16.1km가 됩니다.
체력 보충을 위해 사전에 운동 좀 하시기를.....
3. 창원마을 내려가기
마천면 창원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낙엽송 군락지입니다.
바닥의 푹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멘트 임도가 나오는데 화살표는 좌측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측길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둘레길이 변경이 되었습니다.
좌틀합니다.
와불산이 조금 더 가까워졌고.....
창원마을은 외곽으로 통과하게끔 길이 개설되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마천면에서 거둔 세금과 각종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 창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지면서 창원마을이 되었습니다.
조망터....
제발 날씨가 좋기를 기원합니다.
이 정도를 볼 수 있는 곳이니.....
금계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조금 전 지나온 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이곳들까지.....
좌측 등구재에서 삼봉산으로 올라가는 줄기.
우리나라 최장 계곡인 그 이름도 아름다운 칠선계곡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다음 구간에 자세히 들여다보겠죠.
마천석재에서 마애불을 조성 중인 채석장
금계 쉼터에서 구간을 마무리합니다.
이 금계마을은 지방도로 80번과 1023번 도로가 지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1023번 도로는 여기서 좌틀하면 우리가 내려오던 창원마을을 지나 오도재 ~ 지안재(임천지맥이 지나는 고개)를 지나 함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도재하니 귀가 번쩍 뜨입니다.
그 아래 지안재가 있잖아!
그렇죠.
그 쪽으로 갈 경우 함양읍이 있고 거기서 바로 고속도로와 연결이 되니 귀경 시에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다만 뒤풀이 장소가 어떻게 될지....
그렇다면 보너스로 한 번 살펴볼까요?
7. 귀경 루트 : 오도재에서의 지리제1관문 조망 및 지암재
아까 계속 언급된 오도재悟道岾는 남사 송운영 선생의 쓴 '지리산제일문智異山第一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함양 쪽으로 이런 봉우리들이 조망 가능하고,
최치원 선생이나 청해선사 등 많은 이들의 시비가 있습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지안재 고개가 유명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 루트를 이용하여 귀경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임천지맥 오봉산에서 내려오는 옥녀봉801.5m도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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