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는 이른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있었습니다.
서울시가 서민아파트 공급을 빨리 늘리겠다고 서두르다 철근을 제대로 넣지 않고 빼돌려서 결국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로 입주자 33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인재 사고였습니다.
이때 이 와우아파트는 바로 臥牛山 기슭에 지어져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건데 보통 이 와우산은 '소가 누운 모양'이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소개되기 마련이죠.
전국에 있는 와우산, 와우고개 등도 같은 설명을 달고 다니지만 실제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기 마련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우리 옛말 '두름/ 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르다'의 명사형으로 '주변을 빙 둘러싸다'라는 뜻으로 '돌다'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민족이든 언어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단어가 먼저 생겨났을 것이고 음절 숫자가 길지 않은 이런 기초 단어를 바탕으로 의미상 연관이 있는 다른 단어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며 이런 것이 '언어 분화'의 일반적인 원칙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두름/ 둠'도 땅이름에 편입이 되어서는 분지처럼 '주변이 산 등으로 빙 둘러싸여 있는 곳', '땅 모양이 둥근 곳'을 흔히 '둠'이라는 불렀고 이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여 '도로', '두루', '도마', 두모', '두미', 두밀', '더미' 등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은 분화를 거듭하여 땅이름뿐만 아니라 일반 단어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바, '두루'마기, 두메산골의 '두메', 논두렁의 '두렁(두르 +엉)', '둥지(《둠지)' 등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얘기하는 지리산의 옛이름인 두류산도 '백두산頭에서 흘러내려와流 빚어진 산山'이라고 그 어원을 설명하지만 이도 사실 따지고 보면 두르》드르》디리》지리와 같은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친 것에 적당한 한자를 붙여 智異山이 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두름은 신라 경덕왕 이후 한자화 정책으로 '두루'로 바뀐 것이 발음이 비슷하고 좀 더 예쁜 이름이 '두루미'가 되어 한자 '鶴'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고는 학고개》하오고개》아오고개》와우고개로 바뀝니다.
그러니 청주의 우암산이나 이 와우산도 다 같은 계열의 이름이고 성남에서 의왕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하오고개'도 다 여기서 파생된 이름들 입니다.
한듬산.
이 이름을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 바로 대둔산大芚山으로 이 역시 '듬《둠'이라는 것이죠.
해밀산악회에서 이번 주 명산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 걸쳐 있는 산이며 충청남도에서는 세 번째의 도립공원이 된 대둔산으로 간다고 합니다.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이 대둔산.
평소 명산 산행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제가 임진왜란과 근세사를 돌이켜볼 수도 있는 대둔산이기에 잽싸게 산행 신청을 합니다.
2022. 11. 12. 제 전역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06:20
죽전농협을 출발하여 옥산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다음,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목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의 경계에 있는,
배티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을 합니다.
정맥길은 저 배티재에서 좌측의 659.9봉으로 올라 오대산643.8m 삼거리를 지나 상여봉 바위를 거쳐 우리가 이따 오를 낙조대857.3m로 오르게 됩니다.
그러고는 대둔산 정상을 거쳐 월성봉647.8m ~ 바랑산556.2m ~ 함박봉404.4m ~ 천호산371.6m을 지나 계룡산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금남정맥을 신산경표에서는 금남기맥이라 부르는데 이는 박성태 선생님이 남한의 산줄기 체계를 1대간 9정맥으로 보는 게 아니라 1대간 7정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금남정맥이냐 금강정맥, 금남기맥이냐 하는 것은 여기서 얘기해봤자 이해도 잘 안 될 것이고 재미도 없는 것이니 그냥 통과하기로 합니다.
또한 오대산 삼거리에서 갈리는 지맥을 신산셩표에서는 안평지맥이라 부르는데 반해 대한산경표에서는 유등지맥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패스합니다.
어쨌든 오늘 산행은 배티재에서 오르는 산줄기 산행이 아니라 금강계곡을 따라 대둔산 정상으로 오르는 일반 루트를 택합니다.
준비운동에 단체촬영까지 마치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끝물인 단풍.
결사항쟁까지 벌었으나 왜놈들의 신식무기를 이길 수 없었던 동학군은 결국 패하게 되고....
어쩌면 내란이라 볼 수도 있는 내전에 외세를 끌어들였으니.....
참 바보같은 정권이었습니다.
올 마지막 단풍.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서 점차 고도를 높입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보고.....
좌측으로 동심바위도 봅니다.
삼거리.....
우측 케이블카 승강장을 버리고 좌틀합니다.
이런 된비알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출렁다리를 보면서 예전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대둔산 집단 시설지 및 우측의 북산리.
출렁다리 뒤로 대둔산 정상의 개척탑을 봅니다.
그 출렁다리 위로 올라 같은 곳을 조망합니다.
막걸리 한 통 비우고,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대둔산 정상 개척탑에 올라 이한검 대장님과 포즈를 취합니다.
산사랑 고문님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2등급 삼각점(금산24)을 보고는 주변을 조망합니다.
금남정맥은 낙조대에서 이 정상으로 와서는 우측으로 이어져 바로 앞의 석봉과 그 뒤로 마천대836m를 지나 우틀하여 무수재399.9m로 떨어진 다음 고도를 높여 월성봉 방향으로 진행할 겁니다.
좌측으로는 이 정맥에서 가지를 친 639.9봉이 험하게 보입니다.
좌측으로 배티재와 그 우측 뒤로 천태산이 보이는군요.
그리고 진행방향으로는 866.4봉이 보이고 좌측 끝으로 낙조대가 보이고......
낙조대를 중앙에 두고 정맥 라인을 감상합니다.
다시 삼거리로 빠져나옵니다.
866.4봉으로 가면서 개척탑이 있는 정상을 봅니다.
당겨보고.....
무슨 바위인고?
중앙에 배티재를 지나 도계를 넘어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중앙 뒤로 천태산714.3m라인....
배티재가 보입니다.
한자로 쓰면 '梨峙'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저 이치에서는 커다란 전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치대첩'이죠.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을 향하다 보면 배티재 1.5km 전방에 위치한 진산면 묵산리에 이 전투와 관련한 '이치 대첩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금성면 상가리에 이치대첩비(梨峙大捷碑)와 대첩사(大捷祠)를 함께 세워 그 뜻을 기렸는데, 1944년 6월 일제에 의해 폭파되었고 1964년에 진산면 묵산리에서 이치를 바라볼 수 있는 산 중턱에 다시 세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2구간에 있는 이성계의 황산대첩비 폭파사건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지리산 둘레길 6구간 예습하기'에서 황진 장군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이라 했습니다.
동래성을 격파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문경을 거쳐 한양으로 진격을 하다 한 무리는 호남평야를 병참기지화할 목적으로 금산을 거쳐 전주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황진이 웅치(熊峙 곰티재, 호남정맥 제1구간)와 이치(梨峙 금남정맥 배티재의 한자어)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이들의 남진을 저지하였죠.
또 남해를 지나 서해로 돌아 전라도와 경기도를 공격하려 했던 왜군의 해군은 이순신 장군에 막혀 작전에 차질을 빚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리고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려는데 지리산이 버티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하동을 거쳐 진주로 통하여 구례로 혹은 함양을 통해 남원으로 진격을 하려 하였으나 함양은 팔량치에서 남원의 의병 조경남이, 진주나 의령 쪽은 의병 곽재우 등이 왜군을 격파하는데 앞장섰었죠.
바로 이 의병들의 모태가 된 사람이 바로 강우학파의 비조 남명 조식이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죠.
당시 종6품의 직급에 불과했던 황진은 장계조차 쓸 수 없어 비록 큰 공을 세워 종5품으로 승진하기는 했지만 모든 공은 도원수인 권율에게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죠.
연려실기술에는 "황진이 나무에 의지하여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고, 적의 진격이 멈추고 황진을 목표로 집중 사격을 가하여 황진이 부상을 당하자 적이 연속으로 뛰어 들어와 우리 군사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나려 하므로 권율이 후퇴하는 자를 참하니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황진도 부상당한 몸으로 다시 싸우니 군사들이 일당백으로 싸워 적이 크게 패하여 병기를 버리고 달아났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임진왜란 3대 대첩을 행주산성, 한산도, 진주성 등이라 부르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오히려 이 웅치와 이치 전투의 패배를 더 뼈아픈 패배로 꼽는다고 합니다.
어쨌든 황진의 전사 소식을 접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황진이 죽었으니, 나랏일이 어긋나게 됐다"라고 하시면서 탄식했다고 하죠
산도 참 많습니다.
한검 선사님께서 포즈를 취하시는군요.
네. 좋습니다.
이 분은 누구신지....
용문골로 내려가는 등로.....
866.4봉과 우측 정맥길.
중앙 멀리 서대산904m이 보입니다.
저 서대산은 서화(장령) 지맥을 할 때 걸었는데 그때 거기서 이쪽을 본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고는 낙조대입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조망이라는 조망은 다 하고 왔습니다.
정상곡 하나 뽑으시고.....
동영상으로 담아주시는군요.
좌측 뒤가 서대산904m.
여기서 뒤로 진행하는 라인 우측의 태고사가 보이기는 만무하고......
행정저수지만 간신히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잡목 때문에 정맥길은 보이지 않지만 이따 우리가 하산할 수락저수지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그리고 희미하긴 하지만 중앙 멀리 계룡산이 보입니다.
중앙 우측 멀리 탑정저수지가 보이는데 그 저수지 북동쪽의 연산면 송정리와 천호리 일대가 황산벌로 그 유명한 계백장군의 황산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황산黃山은 무슨 뜻인가요?
석양이 지는 누런 벌판에서 양쪽 군사들이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벌여서 나온 이름인가요?
고려사를 보면 본래 백제의 황등야산군을 신라 경덕왕 때 황산군으로 고쳤고 고려초에는 연산군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태조가 후백제를 평정하고 난 뒤 큰 절을 황산의 골짜기에 지었는데 그 후 산이름을 천호天護라 고치고 절의 이름을 개태사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남정맥이 지나는 천호산371.6m의 예전 이름은 황산이었으며 그 산줄기 끝에 펼쳐져 있는 들판이었기에 황산벌이라고 부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호산이라는 이름도 후백제를 평정한 태조 왕건이 "하늘天이 도와서護 싸움에서 이겼다"라는 취지에서 명명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산連山은 우리말 '느르뫼'나 '늘뫼' 정도로 본다고 하죠.
결국 황산 = 연산임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백제 시대의 이름인 황등야산에서 등야等也는 우리말 'ㄷ.ㄹ.》ㄷ.ㄹ》달' 즉 높은 곳이나 산 즉 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누를 황黃의 훈인 누를은 늘어지다의 어근 '늘'을 나타낸 글자로 봅니다.
그러니 '늘》느르'를 한자로 표기하여야 하는데 적당한 글자가 없자 '누렇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黃을 차용하게 된 것입니다.
늘뫼는 늘어진 산 이 되는 것이고 이는 계룡산의 금남정맥을 타고 내려와 늘어진 산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인데 이는 연산連山과도 같은 뜻이 되며 한걸음 더 나아가 늘뫼》는미》논미가 되어 결국 論山이 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논산=연산=황산은 다 그 의미가 같은 단어입니다.
계룡산 앞쪽의 천호산을 보면서 금남정맥 라인을 감상합니다.
지나온 대둔산 정상과 그 우측의 마천대836.0m 그리고 맨 우측의 827.5봉.
솔빛님이 가지고 오신 정성스러운 잡채 맛을 보고 유화님의 맛있는 안주로 막걸리 한 통을 또 비웁니다.
단체 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합니다.
계단.....
수락리 ~ 비선폭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석천암 뒤의 암벽으로 오지 말라는.....
탑 한 기를 보고.....
석천암은 패스!
정맥길의 월성봉647.8m.
좌측 봉우리를 넘어가면 바랑산556.2m으로 이어지고.....
독수리바위?
석천암의 등.
도대체 독수리봉이 어디인고?.
어쨌든 독수리 형님이 독수리봉을 접수하셨습니다.
새로 조성된 데크.
갑천 상류 물을 덮은 낙엽.
선녀폭포 상단부.
선녀폭포
이제 가을도 끝물.....
만추를 만끽하고 계시는 분.
정맥 얘기도 나누고.....
정말 멋지군요.
이걸로 가을을 마무리해야겠군요.
낙조대에서 흘러내리는 능선을 보며,
수락리 주차장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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