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 6. 21.
장소 : 설악산 서북능선 일부(19.2km)
소요시간 : 마지막 팀원 기준 12:10
참가인원 : 8명{야인,미녀, 행복, 박소장, 한수, 바이다 내외, 나(존칭 생략)}
오래전부터 계획된 산행 일정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빠져야 할 이유도 생겼었으나 다모아님들과의 약속 이행을 위해서는 집에 양해를 구해야만 하였다.
그 사전 포석으로 주중 내내 야구 시청을 빙자여 집에 일찍 들어가서는 화요일 함께 훈제 치킨 먹기, 수요일 참도미 먹기, 목요일 족발 먹기, 금요일 농어에 산오징어 곁들여 먹기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달래기 작전에 돌입할 수밖에.....
이런 나의 계획에 부합하듯이 주중 시리즈의 대(對) 한화 전적도 2승1패로 무난했고, 금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아침에 설악산 산행을 해야만 하는 위와 같은 당위성, 그것 때문에 함께 하는 대간 산행은 다음 주부터 이어야 한다는 얘기 등으로 열심히 설명을 할 때 터진 대타(代打) 이진영의 역전 3점 홈런.....
그걸로 경기는 끝이었고 나의 설악산 행도 기분 좋게 진행될 수 있었다.
토요일인 6. 20. 약속시간에 1분 정도 늦어 강동역에 도착하였고 예보대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울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B조의 박소장님의 차량이 추돌사고를 당하여 출발 시간이 약간 지연된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으나 전혀 부상은 없고 다만 가해 차량 운전자가 음주 상태였고 당연히 ‘안전거리 미확보’ 정도로 처리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곧 출발할 거라 하신다.
야인님이 모는 차는 팔당대교를 건너 양수리를 지난다.
이제 두물머리 부근도 전철 개통과 지자체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 행위로 많이 도시화 되어 예전의 소위 ‘정취(情趣)라는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다만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과 그 너머에 비구름 사이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자락만이 예전의 그것에 대한 감흥을 조금은 들려주고 있는 듯했다.
정말 예전에는 그랬었다.
비포장도로인 이곳을 지나기 위해서는 을지로 6가 계림극장 옆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며 갔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고 망우리, 덕소, 양수리, 양평, 용문,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설악산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길을 30~40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고 있는 것이다.
흥도 많이 났다.
홍전까지 오려면 5시간은 족히 잡아야 하며 예전에는 운전자와 차장이 점심을 먹어야만 하기 때문에 30~50분 점심시간(지금의 고속도로 휴식시간과는 개념이 다르다 하겠다.)으로 차가 쉬었다 가야 하였으며, 인제군에 들어서면서 리빙스턴교(橋)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사실, 군축령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한계령을 만든 김재규와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악연 등...
그러다보니 속초로 들어섰고, 대포항에 소재한 다모아님 누이 식당에서 기가 막힌 회와 소주로 점심을 먹는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한다.
다만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방문한 김일성별장 등은 소위 ‘안보관광지’용 이었는데, 그 전시관이라는 곳의 시설과 내용 등은 고리타분한 30년전 초등학생 대상으로 제작된 그것일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숙소인 금강산콘도는 정말이지 그 풍광만큼은 끝내주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밖을 바라본다.
단합대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그런 건설적인 의견을 나누는 동안 시간은 벌써 8시를 훌쩍 뛰어 넘는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느낀다.
그러고는 새벽 2시 50분.
3시에 기상 약속이 되었던 지라 알아서 기상을 하는 내 잠재의식 속의 시계는 참으로 정확하다.
술을 마셨건 마시지 않았건 시간만큼은 정확하다.
그런데 상태가 좀 좋지 않다.
대충 매운탕에 말아서 밥을 먹었지만 무의식속에서 먹는 그런 정도이다.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노래방에 갔었나?
갔었던 것도 같다.
이미 알코올 중독 2기 정도에 접어 든 나는 소위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오늘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무슨 노래를 불렀지?
내가 즐겨 부르는 Bee Gees?
아니면 Rainbow?
친구들과의 자리도 아니어서 그러면 ‘떠나지마? 아니면 꽃보다 귀한 여인?’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안개가 자욱한 6번 국도 따라 남진한다.
오색에 야인님 차를 두고 박소장님의 차로 한계령으로 오른다.
지난 수해의 참사 현장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한계령 건설 당시 ‘공병감’으로 있던 김재규 장군이 그 완공을 치하하는 취지에서 세운 ‘공병(工兵)’이라는 비석도 지난다.
한계령에 도착한다.
싸늘한 새벽공기가 우리를 맞는다.
잠이 부족하고 소맥을 짬뽕하여 많이 마신 느낌은 있지만 생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모두들 준비를 마치고 설악루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06:04
나와 한수님이 선두에 서고 다른 분들은 뒤를 따른다.
100m 정도 오르면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땀은 땀구멍이 활짝 열린 나로서는 언제나 10분 정도면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
숨이 가빠온다.
아직 발동이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체질적인 현상 또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발이 무거워진다.
오르막이고 아직 발동이 걸리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는 초기 증세라고 치부한다.
머리가 흔들린다.
어 ! 이상하다.
좀 이상하다.
머리가 흔들리고 뇌가 해골(다른 말로 두개골이라고 하던가?)에 자꾸 부딪친다.
사위는 밝아지는데 시야는 어두워진다.
앞에 가는 한수님은 멀어져가고 뒤따라오는 행복님은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힌다.
식은땀이 칼로리 배설 내지는 열량 배설로 배출하는 일반적인 땀에 묻어 나온다.
이제 500m 왔다.
바이다님까지 다 따라왔다.
아! 이건 아니다.
일행들을 다 올려 보내고 오뉴월에 개가 헐떡이듯이 나도 똑같이 해보고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보려 하지만 어지러워 다시 주저앉고 만다.
최악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쪽 팔린다.
홀대모의 대간꾼으로서 고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는 내가....
악을 쓰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로 작전을 수정해 본다.
이런 와중에도 계획 수정이 가능한 건 그래도 그간의 경험 축적으로 인한 노련함의 부산물이리라.
그런데 나의 이론 즉 ‘산만큼은 악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실증이라도 하듯이, 아니 내가 직접 증명이라도 하듯이 온갖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06:58
귀떼기청봉이 보인는 바위위로 올라가 혼자서 잠시 피어나는 운무를 바라본다.
셧터를 눌러보긴 하지만 운해고 운무고 다 귀찮다.
박소장님을 찾아 키를 받아 오색그린파크 사우나로 가서 몸을 누이고 싶다.
구토하고 싶다.
고개를 숙이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이제 1km 왔다.
길은 어제 내린 비로 질퍽하고 파인 곳에는 아직도 물이 흥건하다.
갑자기 어떤 놈이 나무 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리친다.
웬 양아치인가?
하마타면 뒤로 자빠질 뻔 했을 정도의 충격인데 워낙 발이 무겁다보니까 그 무거운 발이 나의 몸무게를 지탱해주어 다행히 뒤로 자빠지진 않았다.
나를 팬 놈을 바라본다.
쓰펄.
나무 계단 즉 사람이 다니는 통로까지 침범하여 나온 소나무 줄기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왼쪽으로 귀청이 더욱 가깝게 보인다.
나무 계단과 돌 계단이 반복하여 나오는 설악은 그만큼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하물며 머리가 빙빙 돌고 있는 나에게는 더 이상 말하여 무엇하랴!
박소장님이 보고 싶다.
오른쪽으로는 설악의 주릉인 서북능선의 일부가 눈에 들어오지만 그것을 감상하고 즐길 상황이 아니다.
이윽고 새로 설치한 다리가 나온다.
지난 수해의 참혹한 모습이 아직도 암아 있다.
물을 마셔보지만 아직도 정신이 없다.
지긋지긋한 돌계단.
그것을 지나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나무계단.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한계령 삼거리는 나오질 않고 나를 걱정 하며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이제야 드는 것을 보면 정말로 사리분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간인 것 같다.
다행히 이 정도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호전시켜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설악의 따스한 포용력 덕이다.
07:48
이윽고 한계삼거리에 도착한다.
한수님이 20m 정도를 마중 나와 나를 걱정해 준다.
바이다님 사모님이 참외 두 조각을 주신다.
게걸스럽게 그 맛있는 것을 먹어봐도 비몽사몽인 것은 마찬가지.
귀청까지 갔다 올 것이냐에 대한 의견을 모은다.
다들 귀청까지 다녀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나는 그들이 놓고 간 배낭을 지키며 약 1시간 30분 정도를 푹 쉬기로 작정하고는 자리를 잡고 즉 접이의자에 앉아 머리를 나무에 기대고 휴식을 취하는 자세로 쉬는 것이다.
그러나 파리가 그것도 똥파리가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쉴 새 없이 귀, 팔, 머리 등 가만히 나를 놔두지 않는다.
손사래를 치느라 편안하게 안정을 취하기로 작정했던 계획은 무너지고 여기에 올라오는 관광객들마저 시끄럽게 떠들면서 자기 잘난 척 하기에 바빠 나는 그들에게 적당히 참견도 하고 적당히 무시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무도 없을 때는 조망이 되는 곳에서 공룡과 소청에서 용아를 그리고 멀리 신선봉까지 바라본다.
그때 아름다운 청년 한 명을 발견한다.
커다란 봉지를 들고 올라와서는 자신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며 눈에 띄는 쓰레기를 주워 그 봉지에 담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솔직한 나의 얘기에 역시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라는 겸손한 말을 남기고 대청 쪽 숲길로 잽싸게 사라진다.
숲으로 들어가는 그를 바라본다.
바로 앞 나무 꼭대기에 까마귀가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다.
귀청을 다녀온 우리 팀들은 몹시도 배고프고 지친 것 같다.
맛있는 밥을 먹고 삼거리를 출발한다.
10:35이다.
이제 조금 괜찮아졌을라나?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앞장을 서고 뒤를 한수님과 행복님 그리고 바이다님 내외다.
야인님은 후미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
11:18
잠시 조망이 되는 곳에서 한계령 건너편을 바라본다.
점봉산과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다.
뒤로는 귀청의 너덜이 백담사골로 이어지는 암봉까지 전체적인 위용을 다 들어낸다.
이제는 끝청이 중청까지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을 다 보여준다.
한결 숨이 터진다.
컨디션은?
아직도 50% 정도밖에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흐르는 땀과 회복도는 비례하는 것 같아 악착같이 걸어본다.
너덜지대인 이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상당히 심한 곳이다.
아무런 표정 없이 걷는 행복님은 말 그대로 철녀(鐵女)이다.
바이다님 사모님은 다른 산악회에서 대장 임무를 수행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신 분인데 어젯밤 나, 박소장님 그리고 바이다님이 분위기에 취해 도를 약간 넘기게 과음을 하는 바람에 남편 수발하시느라 산행 내내 수고가 많으셨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보호수목으로 관리되고 있는 주목을 지난다.
흘림골 부근의 암봉 뒤로 점봉산을 보면서 가리봉 쪽도 조망해 본다.
귀청 쪽의 암봉이 더욱 선명하다.
이 높은 곳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일락 나무가 있다.
대간 운행 중 가끔 만날 수 있었는데 오늘 만나는 이 라일락이 나의 컨디션을 조금이나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실런가?
그곳에서 함께 진행하고 있는 행복님의 환한 얼굴을 놓치기 싫어 모델로 되어 줄 것을 부탁 한다.
소청이 확실해지고 공룡과 용아가 새로운 각도에서 다가온다.
라일락 위로 중청을 조망한다.
한계령 쪽으로 흘러내린 돌덩이들을 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라보이는 귀청이 이제는 제법 멀어졌다.
11:30
광장같이 널찍한 곳을 통과한다.
가장자리에 텐트 두어 동은 가볍게 펼칠 수 있을만한 곳이다.
중청이 2.8km 남았다는 표지목을 11:58에 통과한다.
한수님의 얼굴이 자신의 오늘 컨디션을 대변해주고 있다.
올해 2월에 첫 산행을 같이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괄목상대(刮目相對),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산행 능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이는 단기간에 이루기가 어려운 것으로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력 외에 산행에 대한 열렬한 열정이 없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한수님은 차곡차곡 그런 능력을 갖춰가고 있는 듯했다.
개선문 같이 생긴 나무를 통과한다.
행복님 배낭에 매달린 쓰레기봉투가 아름답다.
나도 증명 사진을 남긴다.
아직까지 썩은 인상이다.
조망이 탁 트인 곳에서 지나온 서북능선을 보고 방향을 달리하는 점봉산을 본다.
멀리 구룡령 뒤로 연결된 백두대간이 아름답다.
공룡이며 용아가 이제 눈 아래 있다.
끝청(1604m)이다.
12:30이니 한계령 삼거리에서 2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았다.
공룡 뒤로 멀리 울산바위가 살짝 보인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은 된 것 같으나 발이 여전히 무겁다.
어제 짬뽕을 확실히 한 것 같다.
이제 봉정암이 바로 앞쪽에서 조망이 되면서 그 뒤로 용아의 끝나는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공룡도 이제는 거의 정면으로 와 있는 것 같다.
괴목을 보며 중청을 우로 감아 도니 드디어 대청(1708m)이 보인다.
설악산인 것이다.
특유의 바윗길인 대청으로 오르는 길.
그것이 이제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중청산장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편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대해주는 모습이 되어 있다.
화채 너머로 울산 바위와 속초 시내 그리고 바닷가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12:53
중청산장에 도착하여 한수님, 행복님과 함께 라면을 끓인다.
코펠이 1인용이라 라면 세 개를 두 번으로 나누어 끓일 수밖에 없었는데 두 번째 라면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바이다님 내외가 들어오신다.
드디어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이다님도 상당히 힘들었는지 라면을 먹은 다음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나는 밖에 나가 사진 촬영도 마무리하고 다른 사람들 촬영에 간섭하다가 나도 증명사진을 하나 남긴다.
중청산장에서 바라보는 공룡과 울산바위 그리고 화채능선이다.
1988년경부터 시행되었을 화채능선의 출입통제 지역을 그 이전에 두 번 그리고 출금 이후에 1회 더 다녀왔었는데, 그 길은 권금성을 지나 바로 설악동으로 떨어지는 길이라 그곳까지 3시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아 그 루트를 아는 많은 사람이 다니는 바람에 생태계 보존 차원에서 자연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청을 바라보며 야인님 일행을 기다린다.
이윽고 야인님 일행이 눈에 들어온다.
라면과 정상주 한 잔을 마시고 산장을 나선다.
14:48
중청산장 출발.
오랜 시간을 산장에서 지체한 셈이다.
대청을 오르는 길에 중청을 바라본다.
중청에서 대청을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눈에 피로감이 덜하다.
대청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 있는 곳은 모두 그 곳이 등산로라는 얘기와 같다.
이 길은 백두대간일 잇는 길로 그 유명한 '죽음의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로 예전에는 이 길을 이용하여 희운각을 거쳐 양폭, 비선대, 설악동 코스로 사용했었다.
지금은 대간을 하려 해도 끝청 - 중청 - 대청 그리고 희운각 - 공룡능선을 이용하여 대간을 밟아야 하는데 사실은 맞지 않는 길이다.
그러나 대간의 상징성보다는 생태계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약15년전부터 이 길을 차단하여 부득이 대간 종주자들은 대청 - 소청 - 희운각이라는 엉터리 코스를 밟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969. 히말라야 원정대 동계훈련 중, 산사태로 젊은 산악인 10여명을 사망케 한 곳.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조난 사고가 발생하였던 곳인 '죽음의 계곡' 코스.
그 하산 코스를 이렇게 막아놓았다.
대청에 올랐다.
쇠파리와 모기 하루살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사진에 까만 점들이 그것들로 사진 촬영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구룡령 방향으로 대간을 저망한다.
스틱을 놓고 신나게 내려가던 한수님.
다시 올라오신다.
지금은 엉겅퀴가 자라고 있는 이곳.
지금은 흙으로 덮여 있는 이곳이지만 바로 그 위 축대 뒤가 예전의 대청산장 있었던 곳이다.
월남하신 이용옥씨가 관리하던 그곳은 예전에 군부대 방카로 사용하다 군인들이 철수하면서 대피소로 관리되던 곳인데 중청산장이 생기면서 국립공원이 직접 관리하게 되면서 지금은 완전히 매몰된 것으로 우리 같은 사람이나 그곳을 지나면서 옛날을 회고하게 된다.
내려오는 길은 5km가 전부 나무 아니면 돌계단이라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곳을 내려오려면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며 내려오고 그럴 때 스틱은 올라갈 때의 110cm를 약 20cm를 떠 길게 하여 찍어서 내려오는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게 개인적인 경험이다.
16:44
오색관리사무소 앞에 도착하여 다리 밑으로 가서 씻고는 일행들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박소장님이 불편한 몸으로 하산을 완료하신다.
모두들 고생하셨다.
18:08
한계령으로 올라와 차를 나눠타고 귀경을 시작하여 홍천에 들러 원조화로구이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서울에 도착한다.
집에 들어오니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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