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두대간/백두대간(2009. 3. 17.~2009.9.13.)

백두대간(제17구간, 사다리재~조령3관문) 나홀로 산행 18.9km

새벽산행

새벽에 산에 오른다는 것은 촉촉한 공기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낮보다는 좀 더 덜 힘을 들이면서 안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사위를 조망할 수 없어 도대체 내가 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으며 내가 바라보고자 하고 내가 밟고자 하는 이 산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안부에 오르기 까지 잡목들로 인하여 조망도 제대로 될 리 없을 것이라는 평소의 지론과 어차피 그럴 것이라면 그냥 헤드랜턴에 나를 의지하여 좀 더 힘이 덜 드는 방향 즉 앞만 보고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오르다보면 그 안부에 도착할 것이니 그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부 방향의 높은 봉우리들을 올려 쳐다보면서 “어휴, 저기까지 언제 올라가나”하는 괜한 걱정도 이 새벽 산행에서는 필요 없을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그 오르는 길이 지난번 하산길이어서 눈에 익은 곳이고 그 눈에 익은 지형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할 정도로 급한 경사여서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올라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의뢰인을 만나야 하는 관계로 산행을 걸렀기 때문에 온 몸이 근질근질한 2009. 5. 4. 월요일.

이미 약 1시간 정도의 접속거리면 사다리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난 주 산행의 경험에 맞추어 퇴근하자마자 차를 수안보로 향했다.

괴산군 연풍읍에는 늦은 시간과 이른 아침 시간에는 먹을 곳이 전혀 없어 수안보에서 숙식을 하고 새벽에 연풍으로 이동, 그곳에서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분지리의 안말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할 요량이다.

수안보에서 빈대떡과 모두부 그리고 월악막걸리로 저녁을 갈음하고 잠에 들어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연풍으로 향했다. 

04:20. 연풍지구대 앞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유기사님이 바로 나온다.

근처에 주차를 해 놓고 유기사님의 차를 타고 안말에 도착하니 04:35.

 

 

 

다리 앞에 세워진 등산로 안내도를 지나 우측으로 이만봉 표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2009. 5. 5. 04:40.

드디어 백두대간 제19구간 시작이다.

조그만 개울을 건너면서 식수를 보충하고 즉 지난번 대야산을 지나면서 수낭의 마개가 암봉을 지나면서 벗겨져나가 만약 고모치의 샘물만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이지 아찔한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를 뻔 했던 지난 기억 속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이제는 간편하게 500ml 생수통을 4개 준비하여 간편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주위는 어두워도 길은 명백하였고 지난 번 하산했던 길이라 길을 오르는 데에는 거침이 있을 리 없다.

또 내가 누구인가?

‘홀대모’ 아닌가!

이런 일을 내가 좋아하고 또한 내가 하여야만 한다는 어떤 당위성 같은 것을 고집하는 내가 다른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은 터부(taboo)시 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는 나 아니던가?

하지만 말이 그렇지 어둠은 항상 나를 긴장하게 하고 머릿속으로 온갖 상념을 다 하게 만든다.

최인석의 소설 ‘세때’의 영향도 아니고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의 영향도 아니다.

그저 어둠은 터널을 빠져 나올 때 햇살을 받으면서 그 만큼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한 전단계가 아니라 고문(拷問)을 당하기 전 눈을 감고 어떤 위해가 나에게 가하여질 지에 대해 온갖 상념을 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의자에게 주어진 한 단면과도 같다.

 

 

유인경주손씨래흥지묘(孺人慶州孫氏來興之墓) 앞을 지난다.

지난 번 봐 두었던 터가 넓은 묘지이다.

 

 

 

 

 

낙엽이 푹신한 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감아 오르다보면 인명 구조판이 제1지점, 제2지점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자 멀리 백두대간 능선 뒤로 조령산이 어슴푸레 보인다.

 

 

05:34.

사다리재에 오른다.

지난 주 보았던 표지판이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다.

 

 

그런데 지난주와 다른 환경이 눈에 띈다.

즉 지난 주 내가 예정했던 산행 코스였던 ‘사다리재 ~ 와야리’ 하산 코스를 하산길일 와야리 방향 내림길이 불분명해 하는 수없이 ‘안말’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던 것인데 오늘은 그 방향으로 장동건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머리에 둘렀던 띠를 풀어 맨 ‘빨간띠’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숭산(崇山)

‘산앙(山仰)’

참 좋은 말이다.

‘숭산(崇山)’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쨌든 그 일행들은 그 길을 알았기 때문에 그 길을 하산 길로 택했을 것이고 초파일에 한 번 개방한다는 ‘봉암사’까지 진행을 하여 경내 구경도 잘 했으리라 생각된다.

 

 

표지띠가 어지러이 날리는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작은 돌봉우리에 올라서자 바로 앞에 886고지와 970고지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전에는 그랬었다.

저런 봉우리들을 보면 “어휴, 쓰펄 저걸 언제 넘지!”라는 한숨이 나왔었다.

그러나 요즘은 “조(저)것은 10분 코스, 조(저) 뒤에 것은 20~25분 짜리....”

 

 

 

분지리를 중심으로 백화산을 꼭짓점 형상으로 타원형 모양을 한 대간 마루금 위로 즉 황학산 정상 부근 위로 일출을 감상한다.

참으로 이런 장면을 새벽산행을 통해서가 아니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볼 수 있을까?

새벽 산행의 장점이자 마루금 산행의 특장(特長)이다.

 

 

 

 

05:48.

벌목을 해 놓아 어지럽게 잡목들이 누워 있는 오솔길을 지나는데 멀리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들도 꽤나 부지런한 꾼들 같다.

남자 3명에 여자 1명인 산객들과 어색한 조우를 하자 이내 나를 반겨주는 ‘초은님’ 표지띠.

 

 

 

 

언제 지나가셨는지 이즈음 지나 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손을 흔들고 있다.

초록색 풀이 너무도 선명한 길 위로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조그마한 능선을 오르자 표지목이 서있는 981봉이다.

 

 

06:07.

그 곳을 지나자 앞에 볼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나오고 그 봉우리를 지나자 전망이 좋은 암릉군이 있는 바위(06:32)가 나타나고 뒤를 돌아보니 문경시 가은읍과 마성면을 구분하는 뇌정산(991.4m) 연봉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대야산이 가물거린다.

 

 

 

 

 

이쪽에서는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 백화산 뒤로 여명이 보이고 지나온 981고지 뒤로 이만봉이며 희양산 벽면이 보이고 이내 평전치(平田峙)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지친 몸을 숨겼다는 곳인 평전치.

이 곳이 그렇게 요새인가?

 

 

 

왼쪽으로 안말을 지나 나오는 동네인 흰두뫼가 보이고 나는 여전히 탁 트인 조망을 즐기는데 높이 까마귀가 나른다.

흉조라 생각하기 싫다.

 

 

 

 

 

암릉을 오르고 내려가고 이제는 백화산일 것이라 생각하고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는데 백화산이 아닌 석축 같은 것이 나타나며 희미한 갈림길이 이어진다.

 

 

 

 

또 직벽이 나타나고 그 직벽을 로프를 타고 오르자 왼쪽으로 바위산이 보이며 그 뒤로 조봉이 이어지자 이내 백화산(1063.5m) 정상석이 보인다.

 

 

 

 

07:11.

새소리가 들리며 개스가 껴서 대야산은 윤곽만 보일 뿐 조망이 잘 되지 않는다.

 

 

 

 

바로 크게 좌회전을 하여 백화산을 내려오자(07:14) 바로 헬기장이 보이며 그곳에는 위험스럽게도 풀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옥녀봉(952m) 갈림길이 나온다.

 

 

 

07:25.

904고지 정도에 도착하니 오히려 희양산이 더 가까워졌으며 안말 골짜기와 분지제 저수지까지 보인다.

결국 이 대간 마루금이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을 구분하고 있다.

 

 

 

호젓한 오솔길이 진행되다 바로 또 헬기장이 나온다.

 

 

 

탁 트인 이곳에서 다시 희양산을 돌아보고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황악산(912m)의 사면은 새로 조림한 듯이 낙엽송의 색깔이 다른 나무들의 그것과 너무도 확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짙은 녹음이다.

 

 

 

07:48.

밋밋한 황악산 정상에 올라 우유와 빵으로 아침밥을 갈음키로 하고 10여분 간 쉬다가 왼쪽으로 난 길로 내려가면서 862고지를 향한다.

 

 

 

 

08:06.

왼쪽으로는 흰드뫼와 안말로 가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오른쪽 잡목 사이로 중앙내부 고속도로가 보이며 그 위를 지나는 찻소리로 주위가 시끄럽다.

낙엽송이 짙은 푸른색을 발하는 백화산이 80분 걸린다는 방향을 바라보자 지나 온 능선이 보이며 내가 내려가는 길은 몹시 가파르다.

 

 

 

 

 

天上의 花檀

그곳을 내려서자 파란 풀로 장식을 한 천상의 화단 같은 곳(965고지 일대)을 지나게 되는데(08:20) 과연 이런 것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여러 생물체들의 조화다.

 

 

 

 

그 길은 이내 이상스럽게 생긴 웅덩이를 지나게 되는데 큰 나무의 밑둥아리가 보이는 그것은 마치 그것을 통째로 뽑으려 했던 것 같은 자리에 물이 고여 있고 거기에는 개구리까지 노는 모습이 신기하게 까지 보인다.

 

 

 

08:32.

777고지에 위치한 폐헬기장에 지나게 되고 그 헬기장을 살짝 오르자 바로 헬기장이 또 나온다.

 

 

08:39.

조봉(673m)에 이르자 이화령에서 왔다는 부부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가벼운 산인사를 나누고 내리막길로 들어서는데 이곳은 가까이 부대가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참호가 많다.

 

 

 

그 참호는 방어선으로 이어져 산을 많이도 훼손하여 놓았다.

 

 

 

잡목 사이로 길이 보인다.

이화령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령산(1025m)이 올려다 보이고 왼쪽으로는 주진리로 떨어지는 갈림길이 보이는데(08:45)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이미 길로서의 효용가치를 상실한 그것 같다.

 

 

 

 

 

09:07.

작은 헬기장을 지나자 표지판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는 금방 보이는 봉우리로 올라가는 게 아니고 산기슭 옆으로 난 오솔길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는데, 이때 ‘박달령’님의 표지띠가 이화령이 다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옆에는 ‘새재파크’를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판이 비닐에 쌓인 채 낙엽 속에 파묻혀 있으며 부대 입구와 갈리는 삼거리가 나오고 이내 이화령이다.

09:19.

사다리재를 출발한지 3시간 45분 만에 이화령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이화령(梨花嶺).

원래 이화현(伊火峴)으로 불리던 이 예날의 작은 고갯길을 일제에 의하여 전혀 엉뚱한 이름인 이화령으로 바뀌어진 것을 2007년 문경시에서 우리의 고유 이름인 '이우릿재'로 다시 고쳐 부르는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우릿재는 아래 뚫린 터널로 인하여 도로 자체도 관리가 되지 않아 중앙선도 희미해진 채 가장자리에는 낙엽이 바람에 뒹굴고 있었다.

 

 

인자하신 道公派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경시와 괴산군에서 관리하는 이곳의 입산금지 기간의 해제 싯점이 국립공원과 다른 5. 15.까지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이 처져있었으며 초소에는 관리인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정 상 우회하였기 때문에 이 부분은 생략....

 

 

09:30.

아저씨의 변심을 우려하여 초소 뒤로 난 길로 잽싸게 접어들자 철구조물(원래 이 철구조물은 문경의 대표 작물인 오미자를 홍보하기 위하여  오미자 터널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이 나오고 진달래가 화사하게 나를 반긴다.

무지 기분 좋다.

 

 

09:38.

너덜지대 두 개를 지나자 10:02 작은 헬기장을 또 지나는데 상당히 배가 고프고 갈 길은 까마득하다.

 

 

 

 

삼거리를 지나고 또 헬기장을 지나자 10:24  900고지에 위치한 조령샘 삼거리에 이른다.

 

 

 

 

그 위로 억새풀이 보이고 파이프가 보이는데 그 곳에서 물이 나온다.

대단한 곳이다.

이런 곳에 이런 물터가 있다니...

그곳에서 우유와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물을 보충한다.

안면에 선크림을 바르고 10:42 야영하기에 좋은 터를 지나 조령산으로 향한다.

 

 

 

10:56.

신풍리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도착.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신풍리 시가지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관 건물 두 개가 보여야 할 텐데 그것이 조망이 되지 않는다.

멀리 신선암봉 등이 보인다.

 

 

 

 

11:07.

조령산(1025m)에 도착.

 

 

 

 

이화령 너머 조봉, 황학산 능선 등이 보이고 앞길은 잡목으로 조망이 잘 되지 않는다.

 

 

 

서원대학교 산악부원의 추모목이 서 있고, 부봉이며 주흘산 연봉 일법한 산군들을 조망해본다.

너무 덥다.

 

 

 

 

 

11:13.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앞이 팍 트인 985고지에 도착하여 조망하지 못하였던 갈 길들을 바라본다.

오른쪽 880고지의 암봉들이 장관이고 그 너머로 조령 1관문에서 3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전방에는 937고지에서 923고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보이며 880고지 뒤로 ‘왕건촬영 세트장’이 보인다.

 

 

 

3관문까지는 4.55km가 남았는데 높이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11:22.

상암사터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도착.

 

절경의 극치

이제부터 신선암릉까지는 줄곧 돌멩이만 타야하는 험난한 구간이 예상된다.

 

 

 

 

 

 

눈앞에 암벽이 버티고 서있으며 로프를 타고 오르니 좁은 암릉 길이 나오고 그 양 옆은 낭떠러지이다.

왼쪽으로는 신풍리가 뚜렷하게 보이고 앞에 사람 소리가 나며 이내 절골 삼거리(888m)다(11:38).

 

 

조그만 암봉에 오르자 바로 앞에 몇 명의 산객들의 등이 보이며 로프를 타고 오르는 암벽에서 그들과 조우를 한다.

 

 

 

바위 틈으로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칼날 같은 마루금이다.

그들을 지나쳐 멀리 세트장과 지나 온 길을 돌아본다.

 

 

 

바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를 건너 줄을 타고 오르니 여기가 신선암봉(937m)으로 도착 시간이 12:05이다. 

이곳에서 보건대 확실히 이우릿재와 조령만 없었으면 이 지역은 새와 하얀구름 이외에는 아무도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쌀을 먹고 싶다.

여기서 멋진 절경을 실컷 감상을 해보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배가 너무 고프다.

 

 

 

12:32. 용성골 갈림길(930m)을 통과한다.

아까 우유를 세통이나 먹었더니 뱃속이 장난이 아니다.

계속 나오는 방귀는 그 소리가 메아리를 만들 정도였으며 금방이라도 설사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또 오르자 아래 보이는 고지가 한쪽 사면은 바위이고 다른 한쪽은 숲으로 우거진 그것인데 마루금은 절묘하게 그 가운데로 아슬아슬하게 나있다.

그곳을 향해 내려가는 길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로프를 잡고 낭떠러지 같은 곳을 기어내리면 이제야 400m를 내려왔다는 표지판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오른쪽으로는 주흘산 연봉이 보이고 전방에 오를 곳은 온통 바위투성이이며 그 바위들을 오를 때에는 당연히 로프가 제 몫을 충분히 하려는 듯 매달려 있다.

주흘산 연봉 아래로 관문 도로가 비포장으로 확실히 보이고 있으며 그 바위 위에는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모습이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새터까지 4.63km 남았다는 표지판(900m)이 나오는 데 여기서 급우회전 해야 2관문으로 가는 갈림길이 만나게 되는데 (13:32) 나는 봉우리가 아닌 표지띠가 많이 휘날리고 있는 아랫길을 택한다.

 

그 길로 한참을 올라가니 평평한 곳이 나오며(13:58) 그 길은 왼쪽 길과 오른쪽 길로 갈린다.

이제 체력은 거의 고갈되어 나는 허기에 지쳐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사과 하나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 본다.

그런데 이곳은 왼쪽 길에도 표지띠가 많이 날리고 있는데 그곳은 일반등산로로 한섬지기 마을로 향하는 곳이어서 나는 백두대간 띠가 많이 달린 오른쪽 길을 택한다.

 

 

 

시원한 능선은 바위로 연결되어 있어 바위 부봉 줄기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고 앞으로 멀리 이름도 모를 연봉들이 목책과 같은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이윽고 14:34.

삼각점이 있는 깃대봉 갈림길이 나오며 나는 마루금이 아닌 깃대봉 길을 버리고 3관문으로 향한다.

 

 

 

마루금은 석축 같은 성터로 이어지며 반대 방향은 거의 낭떠러지 수준이라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도대체 이곳에서 왜군을 막지 않고 자신이 직접 기마병을 데리고 충주로 와서는 왜 이곳을 버리고 탄금대에서 전투를 하였다는 신립 장군의 전략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그 곳은 저습지였고 그 날따라 비가 와서 기마병은 진흙에 빠져 왜군의 조총 표적이었을 따름이었다니... 

 

 

 

 

머리를 들어보니 3관문 건너 마패봉(마역봉)이 보이고 그 길을 계속 내려가자 나무 계단을 거치니 시끄러운 관광객들과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산신각이 보이며 조령약수가 나타난다.

 

 

 

 

 

 

14:55.

조령 3관문이다.

약수는 다 말라버렸고 나는 허기를 이기지 못하여 다음 주 가야할 마패봉 입구를 확인하고 관문을 나선다.

내려오는 길에 자연휴양림 앞에서 마지막 기념 촬영을 마쳤다.

 

접속구간 1.4km, 소요시간 54분.

대간구간 18.9km, 소요시간 9시간 24분(휴식시간, 식사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