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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낙동정맥(2011.11.12.~2012.12.8.)

낙동정맥 4구간(답운치~통고산 ~937.7봉~칠보산~새신고개~신암분교)

지난 번 낙동정맥은 쌓인 눈으로 인하여 부득이 불신골(佛神谷)로 하산하여 애초에 예정되었던 구간을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랜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었겠으나 그런 등로 사정을 무시하고 계속했다면 어떤 불상사가 있었을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집행부의 용단에 대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현명했었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2주 후인 2011. 12. 24. 다시 낙동정맥으로 듭니다.

오늘 구간은 답운치(踏雲峙)부터 새신고개까지 진행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군요.

오늘은 비슬님이 4주만에 산행을 하는 날이기도 하여 제대로 완주를 하게 될 지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됩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1. 12. 24.

2. 동행한 이 : 그랜드산악회 대원

3. 산행 구간 : 낙동정맥 제4구간 (답운치 ~ 통고산 ~ 937.7봉 ~ 애미랑재 ~ 칠보산 ~ 새신고개 ~ 신암분교장)

4. 소요시간 :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답운치

 

10:36

 

 

임도 1

  4.8km

12:06

 90

 

통고산

  1.8

12:51

45

5분 휴식

937.7봉

 2.7

13:48

57

 

애미랑재

4.1

15:20

92

15분 휴식

칠보산

2.6

16:32

72

 

새신고개

1.2

16:58

26

 

신암분교장

3.8

18:00

62

 

21(17.2)

07:24(62)

07:04(62)

순 운행시간

 

 

 

 

 

 

 

 

 

 

 

 

 

 

산 행 기 록

10:36

전회보다 30분 일찍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영주시내를 관통한 후,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답운치에 도착합니다.

사실 아무리 눈 때문에 부득불 지난 회 산행을 중간에 탈출하게 되었고 그것은 다행스런 결정이었다고 애써 자위를 하더라도 지난 구간 날머리였을 내리막 길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군요.

표지띠 몇 개가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봉화, 현동으로 향하는 36번 국도는 장장 40리 계곡길인 불영천을 따라 오르는 길입니다.

불영계곡은 명승 제6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그 장엄한 계곡미가 절경을 이루고 관광명소로 인기있는 곳이며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인 불영천 중심부에 유명한 불영사(佛影寺)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불영천 고개마루가 이 답운치입니다.

답운치((踏雲峙)라....

말 그대로 풀어보자면 구름을 밟고 가는 고개라는 뜻일진대 그렇다면 이 고개가 하도 높아 이 고개에 오르면 아래로 구름이 깔려 있을 정도여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 불영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쪽으로 내려가는 물은 왕피천이 되고 반대방향은 광비천이 되는군요.

문구가 좀 이상합니다.

통고산을 오르려는 분들은 자연휴양림을 이용하라는 말인데 이리로 오르면 속된 말로 '덧'나나 봅니다.

준비된 선수들부터 오르기 시작합니다.

산악회 산행을 별로 안 해본 저로서는 산행을  시작하기 전의 대원들 모습이 마치 마라톤 출발선에 서 있는 선수들 모습을 연산시키더군요.

상당한 준족들 이십니다.

등로는 이렇게 조금 가파르게 오르다가 약간 왼쪽으로 틀어 진행을 하게 되는군요.

그러니까 우측으로는 아까 버스를 타고 올라오느라 미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서면 광회리의 거응동 마을이 보입니다.

오늘 정맥길은 여느 마루금과는 달리 그 흔한 면계나 군계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937.7봉까지는 그저 울진군 서면 관내만을 진행하게 되는군요.

유난히 굴참나무가 많은 지역을 지납니다.

고나무와 참나무 두 가지가 주된 수종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굴참나무 맞는가요.

과거 굴참나무의 껍질을 ‘굴피’라 하여 우수한 방부 특성과 비후도 및 내후성 등으로 지붕을 덮을 수 있어 굴피집을 만들기도 한다는 군요.

지난 주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님과 송년회를 할 때 'BAEKDU DAEGAN TRAIL'의 저자 Shepherd씨도 함께 만났는데 Shepherd씨가 가지고 온 북한 쪽 백두대간  영상자료를 보는 과정에서 북한의 민가를 몇 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촌락의 한 가구는 굴피집인지 너와집인지 하여간 나무로 지붕을 만든 집에서 살고 있더군요.

남한의 너와집과 굴피집 몇 채는 민속자료용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북한의 그것은 현실이니까...

긴장을 하면서 보다가 남북한의 현실에 맥이 풀림을 느끼게 되더군요.

참 곧게 쭉쭉 뻗어 있는 소나무의 모습입니다.

눈은 이 정도이니 걷는 데에는 별로 문제가 없으나 내리막 길에서는 조금 문제가 생깁니다.

다만 우리가 남진을 하고 있으니 남쪽은 다행히 양지여서 그 어려움을 조금은 덜어줍니다.

11:09

806고지에 오릅니다.

멀리 통고산 전위봉이 보이는군요.

잡목이 가려 조망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런대로 조금 높은 봉우리이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은 볼 수 있군요.

벌목 작업을 한 곳도 몇 군데 눈에 띄고...

뒤로는 남쪽 사면임에도 눈에 덮여 있는 낙동정맥 줄기가 힘차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진조산 정도가 됩니까.

11:39

비슬님이 844고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4주만의 산행이어서 그런지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오늘은 애미랑재라는 탈출로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거기서 탈출을 하면 될 것이니 무리를 할 필요없이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따라가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덕에 사진도 여러 장 찍고 gps로 흔적도 남기면서 주위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도 부려보게 됩니다.

11:42

별 특징없는 844고지입니다.

저 멀리 893고지가 보이고 그 뒤로는 통고산 줄기가 이어져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몹시 세게 불고 있습니다.

그랜드산악회의 표지띠가 다른 산악회나 산객들의 그것에 비해 유난히 커서 눈에 제대로 띄눈군요.

'그랜드'라는 이름을 쓸 정도면 저 정도의 표지띠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도 겨우살이가 많이 눈에 띄는군요.

내일은 한강기맥으로 몇 명이 어울려 겨우살이 채취산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날씨와 눈이 변수일 것 같습니다.

평산지기 형님이시군요.

요즘은 산줄기에서 떠나 북한산 숨은벽으로 완전히 숨으신 것 같습니다.

11:54

893고지에 오릅니다.

이제 통고산도 손에 잡힐 듯 합니다.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녹아 있는 곳도 많으므로 아이젠은 아직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배선생님도 알현하고....

이 소나무는 '10지춘양목'이라는 이름은 듣지 못하더라도 7지 춘양목이라는 이름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대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대규모로 자생하고 있는 천연보호림으로, 토종소나무의 한 품종인 금강송은 줄기가 곧고 강하며, 잎이 햇살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줄기 윗부분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적송(赤松)"이라고도 불리며 강원도, 경상도 북부지역의 해발 600~700m 높이에 자생하고 있다. 품질이 우수하여 왕실의 목재로 이용되면서 "황장목" 이란 이름을 얻었고 예전에는 봉화군 춘양역을 거쳐 전국으로 공급되었다고 해서 특히  "춘양목"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황장목, 황장목하다 보면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대미산에서 차갓재를 지난 백두대간의 분수령은 황장산(1077.3m) 정상 직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암봉을 만들어 놓았고 거기서 주위를 조망하면서 감탄을 하던 그 맛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 황장산에는 조선시대에 질 좋은 소나무의 대명사인 황장목이 많이 자라고 있어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던 곳이었다는 기억도 나는군요.

황장산의 또 다른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인데 거기에는 고구려 성으로 추정되는 작성(鵲城)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왔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지금 걷고 있는 이곳과도 연관이 되어 있음에 역사의 연관성에 대하여 감탄을 하게 됩니다.

공민왕과 소나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합니다.

참 편안한 길을 걷습니다.

12:06

그러다 보니 임도가 나옵니다.

이 임도는 봉화군 소천면 남회마을과 통고산자연휴양림을 잇는군요.

몇 분이 임도의 절개지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지만 저는 그냥 올라갑니다.

참나무 방재 사업을 실시하였다는 기록도 보고....

12:14

바람이 상당히 셉니다.

그런 길을 걷노라니 갑자기 '한고조'가 생각납니다.

1990년 개봉한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의 원작인 최인석의 소설 '새떼'에서 읽은 내용인데 히말라야에 산다고 하는 상상속의 한고조라는 새는 집이 없어 눈보라 몰아치는 추운 밤에 "내일은 꼭 집을 지어 따뜻하게 자야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날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노는 데 열중하다가 밤에는 또 후회를 한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더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다 소용없다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에 다름 아닌데 센 바람을 맞으며 가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주제와는 동 떨어짐에도 생각이 나는군요.

   

가뿐 숨을 몰아치고 오르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썩은 나무가 흉물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고,

12:26

966고지를 지나 통고산으로 향합니다.

12:38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납니다.                  

통고산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군요.

아까 답운치에서 보았던 안내문에 따른다면 이 루트로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군요.              

뒤를 돌아보니 처음 올랐던 806봉이 상당히 높게 보이는군요.

12:44

이런 안내판은 상당히 반갑습니다.

12:51

통고산에 오릅니다.

우측으로 보니 왼쪽으로 일월산이 보이는군요.

정상에 있는 군부대시설물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통고산을 지나 헬기장에서 갈라지는 줄기가 박달재를 지나 천축산으로 이어지는 26.3km의 여정을 시작하는 힘찬 모습입니다.

통고산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통고산 <이 산은 서면 쌍전리에 위치한 해발 1067m의 백두대간 낙동정맥으로 산세는 유심웅장(幽深雄狀)하다. 전설에 의하면 부족국가시대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으면서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通(?)哭山)으로 부르다가 그후 통고산(通古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산의 동쪽에는 진덕왕 5년 의상대사가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天竺山)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지어 불리어지고 있는 천축산이 있고 산 기슭에는 그 당시 창건한 불영사가 있으며 하류에는 불영계곡이 있다. 이 표주석은 관광 울진, 환경 울진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7만 군민의 정성어린 뜻을 담아 육군본부 항공대 헹기 지원으로 이 곳에 세우다.

그렇군요.

이 정상석 뒤에 써 있는 내용입니다. 

통고산 정상의 모습입니다.

넓은 헹기장  뒤로 정상석이 있으며 왼쪽으로 산불감시초소와 무선 중계탑이 보이는데 삼각점은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군요.

여기서 통고산 휴양림에서 올라온 분들과도 만나게 되는군요.

산인사도 모르는 '불학무식'한 사람들 같더군요.

멋진 주변 산세를 둘러보면서,

  비슬님이 포즈를 취해봅니다만 눈밖에 안 보이니...

오늘 구간 중 그래도 가장 고봉이니 이 정도의 조망은 제공해 주어야겠지요.

13:00

왕피리 삼거리입니다.

마을 이름은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935년 경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손씨(孫氏) 모후(母后)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왔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고, 둘째로 1361년 원(元)나라 말엽에 한산동(韓山童) 두목 이이조는 홍건적이 결빙기를 이용하여 남침하므로 고려 31대 공민왕이 피신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울진군-

그러고보니 우리가 백두대간을 할 때 공부하던 것이 있습니다.

즉 백두대간을 힘겹게 넘어 한양길을 이어주던 고개에 관한 것인데 영남의 유생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갈 때 '추풍낙엽'처럼 낙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용했다고 하는 궤방령, 여원재, 대관령 그리고 기록상 두 번째로 문이 열린 죽령과 지금은 하늘재로 불리우는 계립령에 관하여서 입니다.

기록상으로는 AD156년에 처음으로 개척되었다고 하니 이보다 2년 뒤에 죽령이 열렸다고 하니 계립령 즉 하늘재는 충주시 미륵리와 문경시 관음리를 잇는 불교 색채가 짙은 이 동네를 지났다는 전설에 마의태자와 공민왕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기묘한 인연이기도 합니다.

즉 마의태자는 망국의 한을 곱씹으면서 피난지였던 왕피리에서 이 고개를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였고 공민왕은 이 고개를 통하여 작성을 거쳐 왕피리로 도피하였다고 하는데 참으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더욱이 마의태자는 고려에 망한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고 공민왕은 그 고려의 31대 왕으로 34대 공양왕이 마지막 왕이며 우왕이니 창왕은 왕 노릇도 못한 위인들이니 결국 공민왕이 고려 말의 마지막인 왕다운 왕이라는 점도 뭔가 야룻한 뉘앙스를 풍기는군요.

이정표가 '하산길'로 가리키는 방향인 이곳으로도 표지띠가 여러 장 달려 있으니 야간에 산행을 할 때에는 주의를 하여야 할 곳 입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이 길로 진행을 하여 산줄기를 타고 가면 천축산 줄기로 진행하게 됩니다.

무론 왕피리로 떨어지는 길이 곧 '하산길'이 되고요.

그러니 특별히 정맥길을 '왕피리'로 표기한 것은 실무자의 무성의와 무개념에 다름 아닙니다.

오히려 이따 다시 만나게 되는 '임도2'에 이정표 하나를 더 만들어 왕피리 하산 길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생략하였군요.

13:16

1040봉을 지납니다.

아주 너른 지대로 고원지대를 연상하게 하는군요.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는데 초은 선생님의 표지띠를 보게 됩니다.

70세가 넘으셨는데도 왕성한 산행을 하십니다.

13:28

그러고는 다시 만나게 되는 임도입니다.

완만한 오르막입니다.

이 방향으로 내려가면 아까 그 임도와 만나 남회마을로 진행을 하게 되는군요.

13:48

937.7봉에 오릅니다.

삼각점이 있다고는 하는데 이곳 역시 눈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준희선생님의 안내판이 여지없이 정상석이 없는 이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년 봄모임에 '준·희'라는 닉을 쓰시는 최남준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사모님이 '숙자 희자'를 쓰시는 분인데 먼저 돌아가셔서 항상 가슴에 묻고 사시는 그 아픔을 표지띠 내용에 담고 전국의 산줄기에 이런 안내판을 설치하시는 등 후답자를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하시고 계십니다.

'여영'님과 '아름다운강산'님도 같은 부류의 분들입니다.

연세들도 다 한 살씩 차이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각설하고 이 봉우리가 가진 의의가 자못 큽니다.

즉 지금까지 울진군 서면 안으로 진행하던 정맥길이 지금부터는 울진군과 양양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울진군 서면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를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조릿대 군락을 만납니다.

그렇게도 지겹게 만나던 조릿대를 오늘은 처음보다니 조금은 이상하군요.

지금껏 왼쪽으로 따라오던 흰줄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버섯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초 전문가인 '다올'선배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여기가 그냥 버섯이 아니고 노루궁둥이 버섯이 자생하는 곳이라고도 하는군요.

물론 주 채취물은 송이버섯일 것이나 노루궁둥이 역시 송이에 못지 않은 것이니 그 동네 주민들의 큰 수입원이 될 것 같습니다.

14:14

여기서는 우틀을 합니다.

정맥길 안내지도에는 이곳을 '길주의'라고 표기하여 놓았는데 여름에는 혹시 몰라도 겨울에는 보시다시피 알바할 염려 전혀 없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통고산도 보이고...

14:39

945봉으로 오릅니다.

그 945봉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975봉으로 진행을 하게 되므로 저희는 여기서 좌틀을 합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편하고 멋진 길을 걷습니다.

아이젠을 풀렀다 매었다 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지체합니다.

우측으로 아까 보았던 975봉 줄기를 봅니다.

안부를 내려서서 오르면 921봉이 나오고 그러면 바로 애미랑재가 나오겠지요.

우측으로 깊은 계곡이 나옵니다.

사면을 우측으로 돌아드니,

광비령이라고도 불리우는 애미랑재가 나옵니다.

정맥 구간종주시 남회룡마을로 내려서는 구간접속점으로 많이 활용되는 곳이며 왼쪽은 민물고기의 천국이라 할 만큼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왕피천의 상류가 되는 신암천, 오른편으로 흘러내린 물은 회룡천의 지계곡이 되어 답운치 아래에서 광비천으로 이름을 바꾼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고개는 분수령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여기서 등로는 왼쪽 신암리 방향과 오른쪽 남화룡리의 절개지로 오르는 두 가지방법이 있으나 왼쪽으로 오르는 게 힘이 덜 듭니다.

15:20

여기서 비슬님은 도로를 따라 내려감으로서 오늘 산행을 마치고 저는 '산새들의 합창' 삼돌이님의 표지띠를 따라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어 놓은 정맥길을 오릅니다.

그러면서 울진군은 버리고 온전하게 영양군 수비면 안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올라오면서 아까 내려온 곳을 바라봅니다.

몇 명의 대원이 이 방향으로 따라 오고 있군요.

15:26

이제 마루금으로 올라섭니다.

우측으로 올라온 등로와도 만나게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우선은 편안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칠보산으로 오르려면 상당한 곳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형상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서 보니까,

등로는 다행히 오른쪽으로 휘어지듯이 진행을 하다가 왼쪽으로 틀어오르게 되어 있는 형상입니다.

적이 안심이 되는군요.

15:38

741봉에 오릅니다.

여기서 왼쪽 아래로 급히 틀면서 내리막을 걷습니다.

불이 난 흔적도 확인하고...

바위봉을 우측으로 돌아드니,

15:49

묘지를 지납니다.

여기도 참나무와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게 됩니다.

쉬면서 뒤를 잠시 돌아보았습니다.

아주 힘겹게 칠보산을 오릅니다.

저 봉우리를 올라 좌틀하여 30여m를 걸으니,

16:32

칠보산(974.2m)에 오릅니다.

북한의 칠보산이 자연히 연상이 되어 산당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올랐건만 정작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표지띠가 수없이 날리고 있을 뿐 일곱 가지 색깔의 쇠가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을 연상할 수 있는 조망은 물론 그 어느 것도 찾을 수 없군요.

육군 군삼각점 말뚝입니다.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어 하산길을 서두릅니다.

이 정도면 10지춘양목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부로 뚝 떨어지고,

16:58

오늘 우리 그랜드 산악회의 정맥길은 여기까지 입니다.

새신고개라는 곳인데 여기서 우틀하면 새신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새신마을이란 이름은 그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군요.

선두 대장님이 혹시나 대원들이 길을 헷갈릴까봐 이렇게 표지띠를 달아놓았고 그것도 모자라 깔판까지 깔아 놓으셨군요 .

다음 구간인 깃재로 진행하는 방향입니다.

진행 방향으로는 이렇게 표지띠가 여러 장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요 포스트로는 저 전봇대를 들 수 있겠군요.

산속에서 저런 전봇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흐름을 따라 진행해도 충분한 이 길인데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 선두에 진행하시는 분들이 표지띠를 잘도 달아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겨울에는 큰 계곡이 아닐 경우에는 웬만하면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는 게 지름길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계곡으로는 항상 등로도 겹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알바의 걱정도 전혀 없고 말입니다.

밭과 비닐 하우스로 만든 가건물도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민가도 가까워졌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립니다.

지맥이나 단맥을 할 때 가장 지겨운 것이 민가 옆을 지날 때 늘상 마주쳐야 하는 저 개입니다.

특히 개농장이라도 지나칠 때에는 요란한 견공들의 오케스르라 연주까지 들어야 할 때에는 혹시나 저 도사견이 집을 부수고 당장이라도 뛰쳐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포감도 가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저 같은 경우에는 '바이다'라는 군견의 이름을 닉으로 가진 군견병 출신의 친구로부터 개들의 특성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하였고 TV를 볼 때에는 '동물농장' 같은 르포그램에서 개가 나오는 경우 주의 깊게 시청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겨운 접속 구간을 운행할 때 저 녀석보다 반가운 경우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 녀석들도 사람이 그리운 녀석들이기 때문에 반가워서 짖는 거라고 이해를 함은 물론 선두조가 이미 이 길을 통해 내려갔으므로 우리도 그 일행일 것이니 자신들에게 별 다른 위해를 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것이므로 저 짖는 소리는 오히려 저희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짖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17:49

드디어 아스팔트 도로를 만납니다.

이제 우측으로 가서 분교를 찾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도로 옆을 지나는 개천이 신암천이고 이 신암천은 곧 왕피천에 합류하게 되는군요.

왕피천영양군 일월산 동쪽 기슭의 수비리에서 발원하여 백암산금장산 사면의 1차수 하천들을 합류하여 심천리에 이르러 심천수와 합류한다. 그리고, 서면 왕피리에서 통고천을 합류하여 한천이 되고 다시 근남면 구산리에서 매화천에 합류된다. 노음리 장평평야의 저수지가 되고 성류굴 관광객의 선유장이 되어 행곡리에서 광천을 합류하여 수산리망양정을 지나 동해로 훌러든다.

 

 

18:00

함께 후미조를 형성한 일행들과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신암분교장에 도착합니다.

저는 분교 운동장에서 발발 떨면서 저녁을 대충 먹고 귀경을 하게 되는 그런 장면을 그리고 있었는데 웬 호강?

미리 신암리 이장님께 섭외를 해 놓으셔서 대원들로 하여금 따뜻한 식사를 하면서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섭외를 해 놓으셨군요.

먼저 내려오신 분들은 후식을 취하고 계시고 총무님과 또 다른 일행들은 후미조를 위하여 맛깔나는 육개장을 준비해 주셨군요.

거기에 드시고 싶은 욕구가 목을 간질간질하게 함에도 후미조를 위하여 남겨주신 막걸리를 반주로 하여 하산주에 갈음합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일을 분담하여 뒷정리를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군요.

총대장님 이하 집행부 모든 분들께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산행의 뒷풀이를 위하여 싱싱한 딸랑무 김치를 제공하신 분께도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선두에서나 중간은 물론 후미에서도 자신이 있는 그 자리를 묵묵히 안전하게 운행하신 전 대원들의 탁월한 능력없이는 불가능 할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단 한 분의 낙오도 없이 몰운대까지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데 전혀 의심을 가질 수 없군요.

그런 분들이 그랜드를 지키는 한 'Grand'란 이름은 이름이 갖는 그 의미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산악회로 거듭날 것입니다.